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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철가면>, <삼총사> 등 궁전이 나오는 동화책을 좋아했다. 책을 읽을 때마다 한 권에 채 10페이지도 되지 않는 삽화를 들여다보며 나는 상상의 나래에 빠지곤 했다. 프랑스의 궁전은 사극에 나오는 궁궐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자라면서 만화책 <베르사유의 장미>를 보며 가면무도회 속의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비운의 왕비가 되는 상상도 했다.

프랑스 궁전에는 가면무도회, 화려한 드레스, 미로정원뿐 아니라 '살롱'이 있다. 영화 속에서는 주로 술을 마시거나 카드게임을 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살롱의 주역할은 좀 다르다. 살롱(Salon)은 프랑스어로 '방'을 뜻한다. 지성과 예술을 겸비한 프랑스의 젊은이들은 '지적대화'와 '사교욕망'을 이곳에서 충족하곤 했다. 10대의 어렸던 나는 살롱문화를 동경했다.

군산에서 한 달 살기를 끝낸 권나윤 작가는 책 <여행기 아니고 생활기예요>에서 '지금 한길문고는 군산의 문화 살롱이다'라고 했다. 한 달만 살아본 권나윤 작가도 알고 있는데, 나는 지금까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동경하던 살롱문화를 깊이 체험하고 있는 중이다.

한길문고를 군산의 문화 살롱이라고 부르는 이유
 
한길문고는 행사마다 여러 간식을 제공한다. 김밥, 떡, 과자, 과일, 음료수 등. 특히 책에 둘러싸여 김밥을 먹을 때면 나는 도서관에서 금지된 식사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한길문고는 행사마다 여러 간식을 제공한다. 김밥, 떡, 과자, 과일, 음료수 등. 특히 책에 둘러싸여 김밥을 먹을 때면 나는 도서관에서 금지된 식사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 한길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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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문고가 '군산의 문화살롱'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2012년에 한길문고는 수해로 큰 피해를 입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뻔 했다. 군산 시민들은 발 벗고 나섰다. 이들의 도움으로 부활한 한길문고는 더 큰 보답을 지금까지 베풀어주고 있다.

군산 사람들은 한길문고에서 책만 구입하는 게 아니다. 에세이 수업을 듣고, 독서 토론을 하고, 사적인 모임을 가진다. 서점 측에선 지방에서 쉬이 만날 수 없는 작가들을 데려와 작가 강연을 열어준다. '살롱문화'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4번의 심야책방, 마지막을 앞두고 있다.
▲ 2020년 심야책방 4번의 심야책방, 마지막을 앞두고 있다.
ⓒ 신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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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만 즐기는 문화도 아니다. '엉덩이로 책읽기', '문태현 마술사의 마술쇼', '독서캠프' 등을 통해 '살롱문화'에 아이들도 발을 담근다. 지금 한길문고에서 2020년 '심야책방'이 진행 중이다. 성인만 참여하는 게 아니라 온 가족이 같이 참여할 수 있다. 남녀노소가 모두 함께 모이는 살롱이다. 총 4회로 구성된 행사는 다음과 같다. '릴레이 웹툰', '독서 캠프', '라면먹고 갈래요', 'DJ가 있는 서점'.

첫 번째 심야책방, '가족이 함께 릴레이로 글과 그림을 그려요'. 포스터를 본 내 머릿속에서는 가족들과 돌아가면서 한 컷씩 그림을 그리고 말풍선을 만드는 그림이 그려졌다. 행사 당일 서점에는 참가 가족별로 책상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고, 앞쪽 무대에는 현재 활동 중인 웹툰 작가가 있었다.

작가는 카카오 프렌즈의 캐릭터가 탄생하게 된 배경을 설명해주었다. 뒤이어 캐릭터 만드는 방법을 배우고 가족들 모두 자신의 캐릭터를 만들었다. 그 캐릭터가 등장인물이 되는 4컷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가족들이 돌아가며 릴레이로. 완성된 4컷 만화는 한길문고의 한쪽 벽면을 장식했다. 벽에 붙어 있는 자신들이 그린 만화를 바라보는 강물이와 마이산의 얼굴에는 뿌듯함이 가득했다.
 
서점을 단숨에 캠핑장으로 변신시키는 마법의 아이템
▲ 북캥핑의 모닥불 서점을 단숨에 캠핑장으로 변신시키는 마법의 아이템
ⓒ 신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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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심야책방, '독서캠프'는 작년에도 참여했다. 작년에 1등을 차지한 강물이와 마이산은 올해에도 1등을 노리며 참가신청을 했다. 올해에도 행사장 한 가운데에는 커다란 양초를 둘러싼 장작 쿠션이 있었다. 서점을 단숨에 캠핑장으로 바꿔주는 마법의 아이템이다.

다른 팀도 마찬가지이지만 강물이와 마이산은 문제가 나올 때마다 손을 번쩍번쩍 들며 정답을 외쳤다. 다른 팀으로 발언권이 넘어가면 땅이 꺼져라 아쉬워했다. 중간 휴식시간에 컵라면을 먹고, 아이들의 장기자랑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마지막 문제가 남았다.

올해에는 팀별 점수가 막상막하였다. 마지막 문제가 1등 팀을 결정할 수 있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을 영어로 번역한 번역가가 가장 어려워했던 단어가 무엇일까요?"

사회자의 질문이 끝나자마자 강물이와 마이산은 손을 번쩍 들었다. 다른 팀들도 마찬가지로 손을 들었다.

"점장님 공정하게 제일 먼저 손을 든 팀이 어디인가요?"

사회자의 질문에 행사장은 정적이 감돌았다.

"감자 팀이 제일 먼저 들었습니다."

점장님의 대답에 긴장하고 있던 강물이와 마이산은 활짝 웃었다. 바로 우리팀이 '감자팀'이었다. 강물이는 또랑또랑하게 대답을 외쳤다.

"짜파구리입니다."

작년에 이어 2년 연속 1등을 차지했다. 상품을 받아오는 아이들은 신이 났다. 봉준호 감독에게 1등의 영광을 돌리며 나도 같이 기뻐했다.

세 번째 심야책방. '라면 먹고 갈래요'는 어느 영화에 나온 대사를 떠올리게 했다. 서점과 걸맞지 않는 대사를 떠올리며 나는 의아했고 포스터를 보고나서 궁금증이 풀렸다. '써온 글에 따라 매운라면, 비빔라면, 짜장라면을 먹어요.'

서점 가는 날을 기다리는 아이들 
 
형들을 좋아하는 웹툰작가의 아이와 함께
▲ 릴레이 웹툰의 결과물과 함께 형들을 좋아하는 웹툰작가의 아이와 함께
ⓒ 신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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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대회를 좋아하는 아이들은 드물다. 하지만 한길문고에 오는 아이들은 글쓰기가 놀이이다. 아이뿐 아니라 어른도 즐겁다. 이번 주제는 '코로나19', '라면'이다. 전혀 다른 주제이지만 하나의 글에 섞일 수도 있는 주제이다. 각자의 글을 열심히 썼다. 아직 글을 쓰기 어려운 아이들은 식구들의 이름을 적고, 하트를 그려서 종이를 꽉 채웠다.

한길문고의 상주작가인 배지영 작가가 심사를 하는 동안 참가자들은 서점에서 준비해준 김밥을 맛있게 먹었다. 한길문고는 행사마다 여러 간식을 제공한다. 김밥, 떡, 과자, 과일, 음료수 등. 특히 책에 둘러싸여 김밥을 먹을 때면 나는 도서관에서 금지된 식사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심사 후 글 분위기에 따라 매운라면, 비빔라면, 짜장라면을 받아든 참가자들은 즐거웠다.

"처음에 기획했을 때는 돌아가면서 서로의 글을 읽어주고 서점에서 라면을 끓여 먹으려고 했어요. 하지만 코로나19로 여러 위험이 있어 제가 심사를 했어요. 라면은 집에 가서 맛있게 드세요."

사회를 맡은 배지영 작가가 말했다.

마이산 : "엄마, 집에 가서 라면 꼭 먹으래. 방금 작가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어."

그날 야식은 라면이었다.

마이산 : "밤 9시 40분에 먹는 라면은 정말 맛있다."
강물 : "한길문고 아니었으면 엄마가 이 시간에 라면 끓여줬겠어?"


서점에서 하는 행사라고 참여했던 그간의 활동들이 무척이나 소중해졌다. 단 한 달을 살아본 권나윤 작가의 깨달음이 없었다면 나는 군산의 문화살롱을 지금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동경하던 살롱문화 속에서 이루어진 만남들이 소중하고, 아이들까지 자연스럽게 그 문화에 동참하게 되어 한길문고가 고맙다. 이제 아이들은 자연스레 한길문고 언제 또 가는지를 묻는다. 아이들은 스스로 사고 싶은 책을 고르고 서점 가는 날을 기다린다.

책을 읽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한길문고 안에서 하면 즐겁다. 서점에서 하는 강연이 얼마나 귀중한 시간인지도 깨달았다. 사춘기 초등학생인 강물이와 마이산은 좋아하는 아이돌이 아직 없지만 좋아하는 작가는 있다.

7월 31일 네 번째 심야책방이 아직 남아 있다. 7월의 마지막 밤에는 또 어떤 추억이 생길지 기대된다.

덧붙이는 글 | 기자의 브런치 (brunch.co.kr/@sesilia11)에도 실립니다.


태그:#군산 한길문고, #심야책방, #북캠핑, #웹툰그리기, #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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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아들을 키우며 꿈을 이루고 싶은 엄마입니다.아이부터 어른까지 온 가족이 다같이 읽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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