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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는 누군가 자신의 등을 밟고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존재다. 또한 모든 것을 이어주는 존재다. ‘이음과 매개, 변화와 극복’은 자기희생 없인 절대 이뤄질 수 없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옛 다리부터, 최신 초 장대교량까지 발달되어온 순서로 다룰 예정이다. 이를 통해 공학기술은 물론 인문적 인식 폭을 넓히는데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기자말]
내성천이 먼 길을 돌고돌아 회룡포를 감싸안 듯 흐른다. 물길이 마치 승천하는 용의 모습을 닮았다.
▲ 하늘에서 본 회룡포 겨울 내성천이 먼 길을 돌고돌아 회룡포를 감싸안 듯 흐른다. 물길이 마치 승천하는 용의 모습을 닮았다.
ⓒ 유대성_드론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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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이 승천하며 한 바퀴 크게 휘돌아 지나간 자리에 생긴 물길'에 회룡포(回龍浦)가 들어앉았다. 물길은 꿈틀대며 하늘로 박차 오르는 용을 닮아있다. 힘겹게 먼 길을 흘러온 세월과 내성천이, 혼신의 힘을 다해 빚어낸 아름다운 물돌이동이다.

강물이 깎고 쌓아 올린 절벽과 모래더미가 극명하게 대조되어 더 운치 있다. 물은 다시 산과 들을 휘감아, 아담한 태극(太極)문양을 강물에 살포시 띄워 올린다. 승천하는 용의 자취가 서린 길지(吉地)다.

지명에 '浦(포)'가 들어간 것으로 보아, 옛날엔 소금배가 이곳까지 드나들었을 거라 추측해 본다. 지금은 어디를 보아도 포구 기능을 할 만한 곳으론 보이지 않는다. 그땐 그만큼 강을 통한 물류 흐름이 활발한 곳이었으리라.

예전 외나무다리는 흔적조차 없어졌지만
 
회룡마을에서 회룡포로 뿅뿅다리를 이용해 내성천을 건너는 사람들. 풍경에 봄 기운이 가득하다.
▲ 회룡포 뿅뿅다리 회룡마을에서 회룡포로 뿅뿅다리를 이용해 내성천을 건너는 사람들. 풍경에 봄 기운이 가득하다.
ⓒ 네이버블로그/thro4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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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룡포엔 외나무다리가 두 군데나 있었다. 용포마을 - 회룡포, 회룡포 - 회룡마을을 이어주는 다리로, 둘 다 약 160m 규모의 긴 다리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포구기능이 쇠퇴하고 인구가 감소하자, 이용이 뜸해지고 나무다리는 낡아 유실되어 버렸다. 모두 사라져 이젠 흔적조차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지금 그 자리를 일명 '뿅뿅다리'라 부르는 철제 다리가 차지하고 있다.

예전 외나무다리가 있던 자리에 예천군에서 철제로 다리를 만든 것이다. 강관을 깊이 박아 교각으로 삼고, 쇠파이프로 멍에와 귀틀을 걸었다. 상판은 공사장에서 흔히 비계발판으로 사용하는, 구멍이 숭숭 뚫린 기다란 강철판을 깔았다.

주민들이 상판 위를 걸으며 "물이 '퐁퐁 솟는' 것 같다"고 한 말을, 모 언론에서 "뿅뿅 솟는"으로 오기(誤記)하여 이름이 '뿅뿅다리'가 되었다 한다. 일견 흥미로운 이야기이긴 하나, 전통이 아닌 그것도 강제와 철판으로 가설된 다리에 대해 뭐라 말하랴. 이 다리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것은 좀 억지스러워 보인다. 
 
태극 문양으로 내성천 강 위에 연꽃처럼 떠 있는 회룡포. 서기어린 햇살이 눈부시다. 오른쪽 하단에 내성천을 건너는 뿅뿅다리가 보인다.
▲ 회룡포 일출 태극 문양으로 내성천 강 위에 연꽃처럼 떠 있는 회룡포. 서기어린 햇살이 눈부시다. 오른쪽 하단에 내성천을 건너는 뿅뿅다리가 보인다.
ⓒ 예천군청(이상익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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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룡포는 내성천 물살이 백화산 자락에 막혀 서쪽으로 길게 흐르다 비룡산에 부딪치면서 급격한 침식과 퇴적을 반복하는 자리에 생겨났다. 백화산 가늘고 길게 뻗은 산자락이 마을 남측을 막고 있어, 여기에 부딪친 물살이 반대편에 모래를 쌓아 두었다. 산자락 끝 강 건너 서측 비룡산 자락엔 침식 흔적이 역력하다. 여기에 부딪친 물살이 회룡포를 감고 돌면서 내성천 하류 곳곳에 드넓은 모래사장을 펼쳐 놓았다.

회룡포는 하천지형 학습장이다. 생육곡류하천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거의 모든 지형을 이곳에서 볼 수 있다. 단구면과 단구애(하안이나 해안에 형성된 가파른 절벽)를 볼 수 있는 사력(강바닥에서 갈리고 씻겨 반질반질하게 된 잔돌)질의 하성단구(하천 흐름을 따라 생긴 계단모양 지형)가 있다. 큰 홍수가 져 회룡포 동측이 물에 잠기면, 자연스레 하중도(河中島)가 형성된다.

비룡산 측 침식 사면 주변에는 포인트 바(Point bar, 곡류하도에서 활주사면 중앙부분에 모래나 자갈이 쌓여 이루어진 퇴적지형)와 하식애(하천 침식작용으로 생긴 감입곡류구간 공격사면 절벽)가 잘 발달되어 있다. 또한 오랜 세월 강이 넘쳐흘러 비옥한 토지를 형성한 범람원(홍수 등으로 범람하여 흙이 퇴적되어 형성된 넓고 편평한 지형)이 마을 안에 있어, 비옥한 농토로 이용 중이다.
 
겨울(2016년 2월)임에도 불구하고, 회룡포를 둘러싼 모래사장에 잡풀들이 말라 검게 변한 모습이 역력하다.
▲ 육화된 회룡포 모래사장 전경 겨울(2016년 2월)임에도 불구하고, 회룡포를 둘러싼 모래사장에 잡풀들이 말라 검게 변한 모습이 역력하다.
ⓒ 유대성(드론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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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룡포 금빛 모래사장도, 몇 년 전부터 수초들이 큰 군락을 이루며 볼썽사납게 점령하고 있다. 무섬마을과 마찬가지로, 영주댐에서 약 50km 떨어진 이곳도 댐으로 인한 내성천 육화현상 영향을 받았다. 옛 사진에나 나오는 '곱디곱던 반짝이는 금모래'를, 이곳에서마저 영영 떠나보내야 하는가? 아련한 기억 속 고향 같던 풍경을 언제쯤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문화재가 된 유일한 주막, 삼강주막

회룡포에서 흐르는 내성천 물길을 2km 남짓 따라 내려가면, 풍양면 삼강리가 나온다. 삼강(三江)은 낙동강에 내성천과 금천이 합류한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은 물이 많아 다리 놓기에 한계가 있었던지 예부터 나루터가 번성했다. '삼강나루'는 옛 영남대로를 따라 문경새재를 넘어 한양으로 가는 길목으로, 무척 번성한 주막거리였다.

자연스레 먼 길 떠나는 객들과 장사치들이 몰려든다. 저잣거리가 번성하고 덩달아 물산이 쌓여만 간다. 멀리서 들려오는 사공들의 거친 숨소리가, 나룻배를 쉼 없이 강으로 내몬다. 바람을 품은 나룻배가 거센 물살을 타고 빈번하게 낙동강을 거슬러 오르내린다.

영남에서 한양으로 가는 길은 크게 세 갈래다. 추풍령을 넘어 천안으로, 죽령을 넘어 제천·원주로, 새재인 조령을 넘어 충주를 거쳐 한양으로 가는 길이다. 이 중 가장 왕래가 빈번한 곳이 새재 길이었다. 새재를 넘으려면 반드시 이곳 삼강나루를 지나야 한다. 특히 한양으로 과거시험 보러 가는 선비가 반드시 거쳐 가는 곳이 새재 길이다.

추풍령은 '추풍낙엽'을, 죽령은 '죽죽 미끄러지는'을 연상시켜 반드시 피했다. 대신 문경은 '聞(들을 문)을 소리 나는 대로 여기거나 혹은 차운하여 文(글월 문)으로 여기고, 거기에 慶(경사로울 경)'이다. 경사로운 소식을 듣거나 글로써 경사를 이루게 된다는 뜻이니, 이 고개를 넘으면 과거급제는 '따 논 당상'이라는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주말과 축제 때 삼강나루에서 사물놀이 등 공연을 벌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삼강주막 공연 모습 주말과 축제 때 삼강나루에서 사물놀이 등 공연을 벌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예천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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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터엔 최근까지 옛 주막이 남아 있었다. 언론에 보도되어 아련한 향수를 자극한 '삼강주막'이다. 주막은 나루터를 이용하는 보부상과 사공의 허기를 달래 주었다. 과거시험에 낙방한 선비의 마음도 달래 준다. 넉넉한 인심과 함께 편안하고 깔끔한 잠자리도 내어 준다. 혹은 산천을 유람하는 시인묵객도 있었으리라. 해가 떨어지면 목이 쉰 부엉이도 함께 깃든다. 모두가 쉬어가는 보금자리다.

주막은 1900년 무렵 건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규모는 작으나 주막 기능에 충실한, 집약적인 평면구성이 돋보인다. 옛 주막으로 건축 사료로 희소가치도 높다는 게 전문가들 평가다. 당시 시대상과 지역의 역사·문화를 잘 보여주는 가치 있는 곳이다. 이런 가치들이 인정되어 경상북도 민속 문화재로 지정된, 주막으로선 유일한 문화재다.

하지만 고비도 있었다. 2006년 오랜 시간 주막을 지켜내신 유옥연 할머니가 세상을 등지면서, 그대로 방치될 위기에 처한다. 이에 예천군에서 주막을 복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옛 정취를 되살리기 위해 노력한 흔적들이 역력하다. 낡은 함석으로 방치된 지붕을 초가로 바꾸었다. 주변에 있었다던 보부상숙소, 사공숙소도 복원했다.
 
갑술(1934)년 대 홍수에 멸실된 보부상과 사공숙소를 고증과 증언을 바탕으로 옛 모습으로 재현했다.
▲ 삼강나루 재현된 숙소  갑술(1934)년 대 홍수에 멸실된 보부상과 사공숙소를 고증과 증언을 바탕으로 옛 모습으로 재현했다.
ⓒ 네이버블로그/thro4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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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술(1934)년 큰 홍수에 멸실되어 사라져버린 옛 모습을 문헌 고증과 나이 드신 분들의 증언을 채록, 이를 바탕으로 삼강 주막거리를 재현해 낸 것이다. 지금 삼강나루는 주막과 체험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나루터와 나룻배도 온전치는 않으나 복원했다. 여기에서 바라보는 낙동강은 선경이다. 주말이면 평상에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라 하니, 과연 옛것이 제대로 평가받고 있단 징조일까?

나루터에 접어든다. 옛 정취가 빚어낸 삼강주막 늙은 풍경이, 단정하게 옷을 갈아입고 방긋 인사한다. 술 익는 항아리엔 아련한 향수가 진득하니 배어있고, 구수한 지짐이엔 흔전한 인심이 넉넉하다. 두고 온 고향에 다시 온 듯, 향기로운 술 한 잔에 흠뻑 취기가 오른다. 주막 뒤 낙동강 변엔, 500년도 더 살아낸 몇 그루 회화나무가 울울하다. 늙은 나무는 흥청대던 옛 주막거리, 아스라한 정취를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겠지?
 

덧붙이는 글 | 드론 촬영 사진을 제공해 주신 유대성님. 네이버블로거 thro4321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태그:#회룡포, #회룡포_외나무다리, #뿅뿅다리, #삼강나루, #삼강주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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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스레 타인과 소통하는 일이 어렵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그래도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소통하는 그런 일들을 찾아 같이 나누고 싶습니다. 보다 쉽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서로 교감하면서,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풍성해지는 삶을 같이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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