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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계탕
▲ 삼계탕 삼계탕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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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보내주신 찜통이 도착했다. 남편이 말없이 어머니에게 다녀오며 들고 온 것이었다. 매년 삼복을 지날 때쯤이면 한 번씩 어머니는 삼계탕을 거하게 끓여 보내주신다. 당신 아들과 손녀딸이 좋아하는 것을 생각하셔서 그렇게라도 먹이려고 정성을 쏟으신다. 

막 끓여서 온 것인지 여전히 뜨끈한, 커다란 찜통 가득 뽀얀 국물과 커다란 닭이 들어있다. 닭 속에도 찹쌀을 가득 채웠고, 따로 면포에도 찰밥이 가득이다. 두 마리지만 평소 우리라면 절대로 사지 않을 크기라서 삶아진 닭은 더 커 보인다. 거기에 대추와 밤, 인삼과 마늘 등이 들어있어 그야말로 영양 덩어리다. 초복 중복을 지나며 자식들에게 먹여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 급했을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보내온 닭은 날이 더우니 되도록 빨리 먹어야 했다. 가족이 모두 한자리에 모이는 저녁 식사에 연거푸 이틀 동안 삼계탕이 올랐고 그 외에도 아침에, 낮에 닭죽을 식구들이 번갈아 가며 먹었다. 물에 빠진 고기를 싫어하는 나를 위해서는 따로 한 마리를 찜기에 찐 것이라고 구분을 해서 보내셨다. 커다란 닭 한 마리를 혼자 먹으라니. 철없던 시절에는 정색을 했겠지만 이제는 열심히 먹는 시늉이라도 한다. 끓여 보내고 들고 온 수고까지 생각하면 조금도 불편한 내색을 할 수는 없다. 약이 되겠거니 생각하고 열심히 먹으려고 노력했다.

장사를 마친 함바집은 폐허 같았다

예전, 공사장 안 허름한 간이 건물에서 공사장 노동자들에게 밥을 지어주던 지인이 있었다. 인사차 들렀고 때마침 밥때여서 잠깐 일을 거든답시고 옆에서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본 기억이 있다. 뭐든 큼직큼직한 그릇마다 음식과 재료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것들이 뚝딱하면 반찬이 되고 요리가 되었다. 

어느새 사람들이 밀려 들어오고 각각 줄을 서서 밥을 뜨고 반찬을 떠서 자리까지 잡으면, 커다란 냉면 그릇에 닭 한 마리씩 넣은 뜨끈한 삼계탕이 따로 자리로 배달되었다. 밥을 먹는 것도 금방이었다. 접시 한가득 있던 밥은 어느새 없어졌고, 큰 그릇 가득이던 삼계탕은 뼈만 남았다. 그날은 삼복 중 어느 한 날이었다. 고된 일하는 사람들이니 잘 먹어야 한다고 지인은 말했다.

장사를 마치고 난 후의 함바집은 폐허 같았다. 정리하고 나니 빈 그릇만 남았고, 간이 테이블과 의자는 한쪽으로 모두 치워져 간단한 짐이 되어 있었다. 다음 날이면 다시 푸짐한 음식이 쌓이고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왔다가 음식과 함께 썰렁하게 빠져나가게 될 것이 분명한, 간이식당이었다. 먹는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때에 맞는 음식을 챙기는 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예전에 가끔 식당에 가서 뽀얀 국물에 기름이 동동 뜬 삼계탕을 만날 때면, 나는 밑반찬만으로 한 끼를 채웠다. 가족들이 좋아하는데 그 분위기를 망칠 수는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가족들은 육개장이나 순댓국, 삼계탕 등 고깃국물을 좋아한다. 나는 그것들을 먹지 않는다. 안 먹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 거부감이 일어 잘 못 먹는다. 기름기 없는 담백한 음식을 좋아하지만, 밖에서 음식을 먹을 때는 나를 고려한 식단을 강하게 주장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곤 했다. 

"물에 빠진 고기는 싫단 말이야."

영화 <집으로>에서 외할머니와의 시골살이를 했던 어린 유승호가, 먹고 싶었던 프라이드치킨 대신 푹 삶은 삼계탕을 보고 한 말이었다. 철없는 아이의 그 대사와 할머니의 난감한 얼굴이 아직도 생각난다. 그런데 영화의 그 말을 듣고는 문득 나도 그렇다고 생각했고 그때부터 사람들에게 같은 방식으로 얘기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이제는 어머니도 기억하실 정도라 민망하지만.

그때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언젠가부터 우리 가족은 외식 메뉴로 삼계탕은 선택하지 않았다. 대부분은 자연스럽게 지나쳐도 내가 큰 부담을 갖지 않았지만, 복날에는 그 가게를 그냥 지나치는 것이 왠지 많이 미안했다. 집에서 직접 끓이는 것도 아니니 가서 먹을 수도 있는데, 그러지 않았다. 가족들이 나를 배려해서였다. 

나와 다르게 가족들은 물에 빠진 고기든, 건져진 고기든, 구운 고기든 모두 잘 먹는다. 특히 삼계탕은 남편과 딸이 좋아하는 음식이다. 삼계탕을 싫어하는 나지만, 적어도 복날 남편과 아이들은 이것 정도는 먹어야 무더위를 이겨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질리도록 먹는 닭이지만

올해는 기상청의 폭염 예고와는 다르게 여름이 왔는가 싶은데 아직까지는 더위가 심하지 않았다. 연일 비가 계속되는 장마철이지만 내가 사는 지역은 다행스럽게 비의 피해가 없었다. 주말이라 시장에 들르니 닭을 파는 집마다 산처럼 생닭이 쌓여 있었고 찾는 손님이 많았다. 별 감흥 없이 무심히 지나쳤는데 다음날이 중복이라고 했다.

불 앞에 서 있는 것이 힘들게 느껴지는 날, 따로 조리하지 않아도 되는 음식을 찾으러 대형 마트로 갔다. 역시 삼계탕이 커다란 용기에 작은 닭 두 마리가 쏙 들어가게 포장되어 있었다. 복날이라는 것이 퍼뜩 생각났다. 집었다가 놓는 남편을 향해 오늘은 그것을 먹자고 했다. 가스 앞에 서서 생닭을 끓이는 것까지는 선택하지 않겠지만, 데우기만 하는 것은 괜찮을 것 같았다. 삼계탕을 좋아하는 남편과 딸을 위해 나도 속일 만큼 강하게 먹겠다고 말했고 사 오게 되었다.

포장된 삼계탕에 물도 더 붓고 찹쌀도 넣고 마늘도 더 넣고 냉장고에 있던 인삼 뿌리도 넣어 끓였고 저녁 한 끼로 뚝딱 해치웠다. 모처럼 복날에 적합한 음식을 먹은 것 같아 그간 불편했던 마음을 조금은 덜어 낸 날이었다. 

그러고 이틀 뒤에 도착한 어머니의 삼계탕이었다. 그것을 네 식구가 아직도 먹고 있는 중이다. 아무리 먹어도 없어지지 않는 마법을 경험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 부부는 어머니의 마음을 생각해서, 아이들은 할머니의 마음을 생각해서 매 끼니마다 닭죽과 삶은 닭과 찐 닭이 오르는 식탁을 웃으며 맞는다. 

중복날, 끓여 놓은 삼계탕을 사서 먹는 것만으로도 가족들이 더위를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마음이 놓였였다. 이제 어머니가 보내주신 삼계탕으로 매 끼니 배를 채우니, 올해는 여름을 이겨내기 위해 먹어야 할 건강 음식의 총량을 다 채우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뿌듯하다. 

때에 맞는 음식을 먹는다는 것, 가족을 먹인다는 것이 주부에게는 부담이 된다. 그러나 때에 맞는 음식을 잘 챙겨 먹였을 때에는 보람이 배가 되어 돌아오는 것 같다. 그래서 어머님도 음식을 해서 보내주시는 것이 아닐까. 뒤늦게 어머니의 마음이 이해가 가고 앞으론 나도 열심히 챙겨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아이들 초등학교 이후로 올해처럼 부엌에서 오래 있었던 적은 없는 것 같다. 음식을 만드는 것도 올해가 가장, 자주, 많이 한 것 같다. 모두 코로나 덕분이다. 그럼에도 가족들의 건강이나 절기에 따라 특정 음식을 챙기는 부분에서는 아직 허술하고 많이 부족하다. 어머니의 마음이나 행동을 따라 하기엔 아직 멀었지만, 이제는 어른의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생기는 것 같기도 하다. 

태그:#삼계탕, #복날, #무더위 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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