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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정현모씨(좌)와 정성인씨(우).
 아버지 정현모씨(좌)와 정성인씨(우).
ⓒ 충북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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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월 '내 인생' 음반 내고 정식 가수로 데뷔
"장애인들에게 희망 주는 사람 되고 싶어"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각고의 노력과 의지로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을 이룬 사람이 있다.

"저어는 노래를 부루믄 마음이 좋아지고 행복합니다."

언어장애를 갖고 있지만 음반도 취입하고 당당히 가수로 활동하고 있는 정성인씨(29).

어눌한 말투, 혼자 걷는 것조차 불편한 그가 가수라니 이해가 안될 수도 있지만 그는 마이크만 잡으면 똑 부러지게 노래를 하는 정식 가수다. 절절한 감성으로 듣는 이들은 감동한다. 최근 KBS 1TV '아침마당'에 출연해 '비 내리는 경부선', '공항의 두 얼굴', '밤안개속의 사랑' 등을 불러 3연승을 거머쥔 주인공이기도 하다. 조금은 특별한 사연을 가진 '가수' 정성인씨를 만났다.
 
KBS 1TV ‘아침마당’에 출연했던 모습.(사진 정현모 씨 제공)
 KBS 1TV ‘아침마당’에 출연했던 모습.(사진 정현모 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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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노랫소리는 한줄기 빛

정성인씨 복지카드엔 '지적장애'와 '뇌병변장애'라는 글씨가 쓰여 있다. 그러나 그의 장애는 이 두 가지 이상이다. 오른쪽 신경이 마비돼 언어, 시각, 청력 등 신체 거의 대부분에 장애가 있다.

그가 장애를 얻게 된 것은 두 살 무렵 발병한 뇌종양 때문이다. 구토와 두통을 호소하는 어린 아기를 데리고 이 병원 저 병원 전전하던 정성인씨 부모는 아들의 병이 선천성 뇌종양이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었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었고 어린 아기를 데리고 수술실로 향했다.

'불행은 홀로 오지 않는다'더니 정성인씨 종양 발병 부위는 뇌간, 일명 숨골 부근이라 완전한 제거는 불가능했다. 수술 도중 자칫 잘못해 숨골을 건드리기라면 하면 바로 사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숨골 부근 종양은 건드리지도 못하고 수술을 마쳤다. 그리고 수술 후유증으로 오른쪽 신경 마비, 지적장애, 뇌병변장애를 얻게 됐다. 4살 무렵 뇌종양은 재발했고 또다시 수술을 감행해야만 했다. 그렇게 정성인씨의 유년시절은 견디기 힘든 고통과 구토로 점철됐다.

그런 와중에도 어린 정성인에게 한줄기 빛은 있었다. 바로 할아버지의 노랫소리였다. 구토와 극심한 두통이 이어졌지만 할아버지의 구성지면서도 절절한 트롯 소리는 고통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었다고.

"머리가 아프고 구토를 하면서도 할아버지 트롯 소리만 들으면 행복해하더라고요. 잠시지만 고통을 잊는 것 같았어요. 그러니까 할아버지는 성인이만 보면 계속 노래를 불러주고 성인이는 자동으로 노래가 좋아진 거죠."

어떤 이유때문인지는 모르나 6살 이후 종양은 더 이상 자라지 않고 있다. 현재도 정성인씨 머릿속에는 종양이 있지만 더 이상 커지거나 전이되지는 않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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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대신 다시 찾은 노래

한솔초, 수곡중, 하이텍고 특수반에서 학업을 마친 정성인씨는 충청대학교 컴퓨터정보과에 입학했다. 장애인으로 삶을 개척하기 위해선 앉아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하는데 컴퓨터를 배우는 것이 유일한 살길이라고 아버지 정현모씨는 생각했다. 학교만 갔다 오면 트롯을 듣고 따라 부르는 아들이지만 그것은 취미생활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우리 성인이는 노래를 정말 좋아하고 배우고 싶어했어요. 늘 노래를 틀어놓고 따라 불렀죠. 그렇다고 하더라도 언어장애를 가진 아이가 가수가 될 수 있다고 누가 생각이나 하겠어요? 경제적인 여유도 없었지만 음악학원이나 가수가 되는 학원에 보낼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정성인씨는 아버지 권유대로 충청대 컴퓨터정보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학업을 이어가는 것은 역시 역부족이었다. 결국은 자퇴하기에 이르렀고 학교 대신 노래를 선택했다.

그는 수십 명이 한곳에 앉아 노래를 배우고 부르는 주민센터 노래교실과 MBC충북, KBS청주, CJB 3사 방송국 노래 교실엘 무작정 찾았다. 따라 부르고 박수를 치는 것만도 좋았다. 그 기간만 무려 9년이다. 트롯가수가 오는 행사라도 개최되면 찾아가 노래를 들었다. 노래하는 가수를 멀찍이서 바라보는 것만도 좋았다.

매일 7~8시간을 노래에만 집중했고 듣고 부르고, 듣고 부르고, 수도 없이 반복했다. 가끔 용돈이라도 생기면 홀로 코인노래방에 가서 트롯 연습을 했다. '배우사랑 예술단' 회원으로 봉사활동을 나가기도 했다. 메인 무대에 선 것은 아니었지만 노래가 위로가 된다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싶었다.

그러는 사이 정성인씨는 듣고 따라 부르는 것에서 '나도 무대에 서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노래교실에서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나이 지긋한 사람이 대부분이었던 노래교실에서 정성인씨는 사실 존재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는데 노래를 부르고 나서 이어지는 칭찬과 박수소리를 그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렇게 '가수가 되고 싶다'는 정성인씨 꿈은 더욱 간절해졌다.

가수는 유일한 지푸라기이자 모든 것

그러나 그것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정성인씨는 무지막지한 고통 속에 또다시 빠지게 된다. 예전에 한 수술에 문제가 생겨 2014년과 2019년에 또다시 수술을 해야만 했고 깊은 시련에 빠지게 된다. 가수가 되고 싶다는 꿈은 있었지만 몸은 나약해져만 가고,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았으며, 노래보다 장애를 먼저 바라보는 시선도 힘겨웠다. 급기야 삶을 정리하고 싶다는 생각마저 하게 된다.

"밥을 먹을 때도 소리 없이 울고 눈물을 흘렸어요. 죽고 싶다는 말을 수없이 하고 왜 자기를 낳아 이렇게 힘들게 하냐며 울더라고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집니다."

아버지 정현모씨는 그런 아들을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 할 줄 아는 것이 없다는 생각,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절망감에서 어떻게든 아들을 빼내와야만 했다. 정현모씨가 가수라는 두 글자를 떠올린 것은 당연했다. 정성인씨와 아버지 정현모씨에게 가수는 유일한 지푸라기였고 모든 것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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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가 되다

무작정 청주시 상당구 북문로에 있는 '세기프로덕션'을 찾아 오디션을 봤다. CD제작만이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문을 두드렸으나 뜻밖에도 '잘만 다듬으면 가수가 될 수도 있겠다'는 작곡가의 말을 듣게 된다. 그야말로 서광이 비친 것이다.

지난해 1월 '내 인생'이라는 음반을 내고 6월에는 정식가수로 등록도 했다. 물론 가수로 등록됐다고 해서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또 앞으로 더 큰 시련이 닥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성인씨는 지금 너무 행복하다고 말한다. 뭔가 목표가 있다는 것, 무언가를 더 열심히 할 수 있다는 생각,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더 이상 아프지 않고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처럼 아픈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음반의 타이틀 곡 '내 인생'의 가사처럼 정성인씨는 '험한 세상 헤쳐가자 다짐을 하며 두 눈을 부릅뜨고 용기를 내어 일어나 보자'고 오늘도 다짐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북인뉴스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정성인 , #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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