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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감도>의 시인 이상은 1910년 9월 23일(음력 8월 10일) 출생했다. 그러므로 올해는 이상(李箱, 1910-1937) 탄생 11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상은 <날개>를 쓴 소설가이기도 하다.

1934년 작 <오감도>와 1936년 작 <날개>도 그렇지만, 이상은 내면의 자아와 현실의 충돌을 다루는 작품을 많이 창작했다. 이상의 문학을 통해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말미암아 답답하게 가라앉은 마음을 달랠 수 있는 오솔길을 찾아볼까 한다.

이상을 통해 찾아보는 코로나 극복의 오솔길
 
이상은 <날개>의 결말을?현실에 짓눌려 무기력하게 살아가던 자아가 "날고 싶다"고 말하는 장면으로 맺는다.
 이상은 <날개>의 결말을?현실에 짓눌려 무기력하게 살아가던 자아가 "날고 싶다"고 말하는 장면으로 맺는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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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이라면 무엇보다도 <오감도>가 떠오른다. <오감도>는 "열세 명의 아이들이 도로를 질주하는데, 제 1의 아이가 무섭다고 하고. 제 2의 아이도 무섭다고 하고. 제 3의 아이도 무섭다고 하고... 제 13의 아이도 무섭다고 한다"식으로 연상되는 아주 특이한 작품이다. 여느 시와 첫 느낌이 전혀 다른 까닭에 초면의 독자는 누구나 충격을 받게 된다.

생소함과 파격이 주는 문화충격에 일상적으로 노출되어 있는 요즘의 독자조차 놀랄 지경이니, 84년 전 발표 당시 사람들의 반응이야 알아보지 않아도 저절로 헤아려진다. 기상천외한 시가 1934년 7월 24일부터 8월 8일까지 날마다 신문에 연재되었으니 독자들로부터 "장난 치느냐?"며 거센 항의를 받은 것은 당연했다. 

<오감도>를 연재한 신문은 조선중앙일보였다. 조선중앙일보는 동아일보와 함께 손기정 선수 일장기 말소 사건을 일으켜 일제에 맞섰던 저항적 논조의 신문이다. <오감도> 연재시 여운형이 사장, 이태준이 문예부장을 맡고 있었다. 하지만 천하의 여운형과 이태준도 독자들의 빗발치는 항의를 견디지 못해 이상이 써온 30편 중에서 그 절반인 15편만 게재하고 연재를 중단했다.

이 사건은 신문사 경영진이 독자의 눈높이를 고려하지 못해서 발생한 결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역발상으로 보면, 독자의 수준과 전문가의 경지 사이에 까마득한 격차 때문에 초래된 일이다. 작가인 이상과 작품을 알아본 여운형·이태준은 모두 세기의 천재들이었다. 하지만 대중이 천재들을 억눌렀다. 여운형과 이태준이 아니었으면 우리는 천재 문학가 한 사람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결론은, 보통의 평범한 대중은 전문가, 적어도 나라 안에서 최고의 전문가가 하는 말에는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 코로나19 같은 국가적 재난 사태 때는 질병관리본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마스크 쓰기, 손 씻기 등의 지침을 철저히 따라야 한다는 말이다. 믿고 따르면 불만이 없어지고 희망이 생기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오감도>를 다시 한번 읽어본다. 공자는 사무사(思無邪), 낙이불음(樂而不淫), 애이불상(哀而不傷) 등이 좋은 시의 기준이라 했다. 필자는 <오감도>를 생각에 사특함이 없고, 재미있지만 지나치지 않고, 슬프지만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는 뛰어난 시로 본다. 그러나 1934년대 독자들은 생각이 기이하고, 지나치고, 사람의 정신을 흐리게 하는 시로 판단했던 모양이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오.
(길은막달은골목이적당하오.)
제1의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2의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4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5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6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7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8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9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0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1의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1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십삼인의아해는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는아해와그러케뿐이모혓소.
(다른사정은업는것이차라리나앗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좃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좃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좃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좃소.
(길은뚤닌골목이라도적당하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야도좃소.


같은 말이 반복되는 것은 작가나 화자가 그것을 강조하고 싶어서다. <오감도>에는 '아해'가 스물여섯 번 나오고, '무섭다'·'무서운'·'무서워하는'이 합해서 열아홉 번 나온다. 시 전체를 아이와 무섭다의 두 핵심어로 요약하면 '많은 아이들이 무서워한다'가 된다.

하지만 <오감도>에 등장하는 '아해'는 일반적 의미의 아이, 즉 초등학생 이하의 어린이가 아니다. 대략 현대인 정도의 뜻이다. 즉 '많은 아이들이 무서워한다.'는 '대부분의 현대인은 무서움을 안고 살아간다'로 읽힌다.

이상은 '현대인'을 왜 '아이'라고 표현했을까

이상이 <오감도>의 사람들을 '아해'로 표현한 데에는 특별한 계산이 깔려 있다. 오감도는 일반사회의 조감도를 뜻하는데, 조감도에 표시된 건물이나 사람들은 모두가 자그마하다. 작다는 것은 힘이 없다는 상징이다. 현대사회가 인간을 압도하는 힘은 너무나 거대해서 사람에게는 맞설 힘이 없다. 그래서 시인은 등장인물들을 모두 아이로 표현한 것이다.

또 이상은 아이들이 무서워하며 도망치는 모습을 '질주'로 표현했다. 너무나 심한 공포를 느꼈다는 뜻이다. 게다가 도망치는 도로가 '막다른 골목'이라 했다. 절망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무서운가? 급변하는 세상이 무섭고, 낯선 위험요소들이 몰려오는 것이 무섭고, 대중을 현혹하는 상업주의도 무섭고, 새로운 불치병도 무섭다. 모두 전통사회에는 없었던 것들이다.

날이 갈수록 무서운 것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코로나19도 그것들 중 하나다. 사람들이 무심코 잊고 지내지만 교통사고, 자살 등으로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코로나보다도 많다. 코로나19 이전에도 현대인은 늘 공포를 안고 살아왔다는 말이다. 이제야 사람들은 그 진실을 조금씩 깨닫고 있다.

사람 사는 세상은 언제나 힘든 사회였다

그런데 세상은 무서운 사람과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뒤섞여 산다는 말로 시가 끝난다. 열세 명의 아이들이 도로를 질주하지 않아도 좋고, 막다른 골목이 아니라도 좋다고 한다. 사람들이 도망을 치지 않아도 결과는 마찬가지이고, 절망적 상황이 아닌 듯 여겨져도 결과는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인간사회의 속성이 그렇다는 말이다. 어느 시대나 인간 세상은 모두 힘든 사회였다는 지적이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이성적 동물이다. 역사를 학습하고, 거기에서 희망을 찾는다. 이상은 <날개>의 결말을 현실에 짓눌려 무기력하게 살아가던 자아가 "날고 싶다"고 말하는 장면으로 맺는다. 그것도 "다시 날고 싶다"고 한다. '다시'가 중요하다.

인간은 본래가 날 수 있는, 즉 현실을 초극할 수 있는 존재라는 의미이다. 오늘은 자아와 현실의 갈등에 짓눌려 살고 있지만 사람은 누구든 언젠가 훨훨 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상은 시 <거울>에도 거울 속의 나, 즉 나의 자아는 '외로된 사업'을 하고 있다고 표현한다. 현실의 나는 그렇지 못하지만 자아로서의 나는 독창적인, 뭔가 남다른 일을 꿈꾸고 추진하고 있다는 말이다.

자신도 잘 모르는 본질적 자아가 현실의 나를 지탱해준다

<거울>에는 거울 밖의 나와 거울 속의 나가 악수도 하지 않는 사이로 나온다. 서로 잘 알지 못하며, 친근하지도 않다는 뜻이다. 거울 밖의 현실적 존재인 나는 거울 속의 자아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해 섭섭해 한다. 복잡다단한 현대사회를 사는 현대인은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지경이 되기 일쑤다. 하지만 섭섭한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래도 나의 자아가 현실의 나도 모르게 좋은 모습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은 좋은 일이다. 코로나19 때문에 바깥 활동에 제약이 많은 이때 부지런히 독서나 글쓰기, 예술감상, 사색 등에 매진하면 장차 나의 본질적 자아와 현실의 나는 반갑게 악수를 하게 될 것이다. 

이상 탄생 110주년 맞아 그가 남긴 소설 <날개>, 시 <오감도>, <거울> 등을 '다시' 읽어본다. 지금까지 필자는 이상의 문학을 그저 심리주의 계열의 작품으로만 알아왔다. 그런데 코로나19 덕분인지 모두가 현실 문제를 치열하게 다룬 시와 소설로 읽힌다. 역시 문학 작품의 속성에는 다의성(多義性)이 깃들어 있는 모양이다. <날개>를 읽으며 내 마음이 날아가는 듯한 기분을 맛본다.

태그:#이상, #날개, #오감도, #1910년 9월 14일 오늘의 역사, #코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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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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