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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거리두기가 길어지면서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기간이 길어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단순한 일상의 지루함에 지쳐가며 가벼운 오락거리를 찾나 보다. 넷플릭스나 왓챠같은 유료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의 가입자수가 폭발한 지 오래고, 게임과 홈트레이닝을 할 수 있는 콘솔게임인 스위치의 판매실적도 수직 상승했다고 한다. 우리 집 아이들도 스위치를 오죽 많이 했으면 멀쩡하던 눈이 한데 모일 지경이다. 이쯤 되니 학업을 위해서가 아니라 눈 건강을 위해 매일 등교가 절실하다.

옛날 드라마 다시보기도 유행하고 있는 것 같다. 1990년대에 방영되었던 <아들과 딸>, <서울의 달>, <여명의 눈동자> 같은 드라마가 다시 지인들의 화제에 오르내리는 걸 보면 말이다. 집에 TV가 없는 나는 그저 핸드폰으로 짤막한 영상들을 들여다보는 걸로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보니 확실히 코로나 이전에 비해 핸드폰 이용 시간이 대폭 증가한 게 사실이다. 봐도 좋고 안 봐도 그만인 세상의 소식과 영상들을 접하는 게 급한 일도 아닌데, 일단 핸드폰을 잡았다 하면 피곤해질 때까지 손에서 놓을 줄 모른다. 별 수 없이 그 엄마에 그 아이들인가 보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핸드폰을 너무 들여다본다
 
핸드폰을 과하게 보면서 생긴 습관 하나, 문장과 단어를 성의를 들여 꼼꼼히 읽지 않는다.
 핸드폰을 과하게 보면서 생긴 습관 하나, 문장과 단어를 성의를 들여 꼼꼼히 읽지 않는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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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을 과하게 보면서 생긴 습관 하나. 관심 가는 제목을 보고 읽으러 들어간 기사 전체를 결코 다 읽지 않는다. 쭉 훑으며 궁금한 포인트만 눈에 넣는다. 본론으로 들어가기까지 따라 읽기가 지루할 뿐더러 다 읽을 마음이 애당초 없다. 영상을 봐도 웬만하면 건너뛰고 원하는 부분만 찾아본다. 그리고는 눈길을 끄는 또 다른 제목들을 쫓아 같은 행태를 반복한다.

그렇게 몇 시간을 보내고 나면 허리와 눈이 뻐근해지고 스쳐 지나간 낱말과 문장들로 머리는 뒤죽박죽이 되지만, 지루한 건 여전하다. 그러다 가끔 심기일전해보겠다고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같은 고전에 과감히 도전해 보지만, 몇 장도 넘기지 못해 곧 무거워지는 눈꺼풀에 항복하고 만다.

단어나 문장을 시간과 성의를 들여 꼼꼼히 읽어내기가 예전보다 확실히 어려워졌다. 허구한 날 핸드폰으로 짧은 글들만 눈으로 쓱 훑고 마니, 책을 읽어도 읽은 내용이 자리잡지 못하고 스쳐 지나가는 게 당연한지도 모른다.

이렇게 지내다 보니 어느새 내가 점점 깊이 생각하지 않고 살고 있음을 인지하게 되었다. 생각은 원래 불편함 또는 낯섬을 만나야 자극되고 발동되는데, 매일이 익숙한 일상의 무한 반복일 뿐이니 그럴 만하다. 기껏해야 아이들과의 말씨름 내용과 먹는 음식들이 조금씩 다르달까? 물론 그것들도 거기서 거기지만 말이다.

사람들을 만나고 경험과 의견을 나누며 궁금함이 동해 그 답을 찾느라 홀로 끙끙거리던 때가 그립다. 맞장구치는 이도 없고, 다른 의견도 접하기 어려우니 혼자 뭔가에 열중하려다가도 금방 맥이 빠진다. 무릇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려고 애쓰다가 내 생각이 확장되면서 사는 재미도 있고 그런 건데 말이다.

지적 호기심은 어려워지고, 다양성 호기심은 넘치는 시대

구본권의 <로봇시대, 인간의 일> 호기심의 인류학 편에 보면, 인간이 로봇과 다른 특징 중 하나가 호기심이라고 한다. 호기심은 지적 호기심과 다양성 호기심으로 나뉘는데, 지적 호기심은 읽고, 보고, 경험한 바에 대해 자신이 가진 느낌과 생각이 시간을 두고 숙성되도록 만드는 호기심이라고 한다. 생각이 숙성될 때까지 끈질기게 한 생각의 끈을 놓지 않고 집중함으로써, 창의적 사고와 자아발견, 공감 능력까지 가능하게 하는 호기심이다. 지적 호기심이야말로 생각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설명하는 중요한 특징이라고 한다. 

반면에 다양성 호기심은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을 추구하고 관심을 할당하는 호기심이다. 당연히 초스피드 인터넷과 손 안에 컴퓨터 세상은 다양성 호기심이 즉시적으로 충족되기에 너무나 흡족한 환경이다. 다양성 호기심이 지적 호기심으로 연결될 사이도 없이 휘몰아치는 거대한 정보의 흐름에서 헤어나오기가 점점 어려워짐을 오히려 우려해야 할 상황이다.

정보의 홍수 시대 더하기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겹쳐진 요즘, 당연하게도 다양성 호기심은 과잉 충족되는 경향이 있고, 지적 호기심을 발휘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게 사실이다. 관심과 흥미를 자극하는 유혹거리들이 주변에 널려있고, 흘러가는 자극적인 정보들에 쉴 새 없이 눈길을 돌리며 탐닉하다 보면, 지적 호기심을 발휘할 단순하고 한가한 시간을 비워놓는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기회삼아 홀로 조용히 명상도 하고, 사색도 하며 빈 시간을 충분히 의미있게 쓰면 좋을텐데, 쓸데없이 핸드폰만 주야장천 보느라 공연히 눈만 아프고, 결국엔 허무해지다가 기분만 가라앉기 일쑤이다. 결국 핸드폰 보는 시간의 양과 반비례해서 지적호기심을 발휘할 때 사용하는 집중력이나 끈기같은 능력들만 점점 약해지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에너지가 남지 않기도 하거니와, 하던 대로의 행태가 몸에 배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오랜만에 작정하고 제대로 한가한 시간 좀 가져보려고 창밖의 전경을 바라보며 조용히 가부좌 자세를 잡아본다. 이런저런 생각이 들다가 필연적인지 현재의 삶과 나를 돌아보게 되는, 그리 반갑지 않은 질문들이 솟아난다. 도대체 지금 잘 살고 있는 건지, 목표는 있는지, 진지하게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지 등등 생각들이 중구난방 터져나온다.

헌데, 이런 생각들을 두고 진득하게 바라보자니 고독해지고 괴로워진다. 당장 답도 없고, 따라갈 발자국도 별로 없는데, 왠지 못난 자신의 민낯만 확인하는가 싶어 말이다. 다시 재미있다는 드라마로, 영화로, 핸드폰으로 빠져 괴로움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결국 아무것도 안 하는 빈 시간 갖기가 어려운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거다.

아마도 생각한다는 것은, 호기심에서 비롯된 다양한 생각 씨앗들이 타인과의 교류나 다양한 매체들 속에 관련된 아이디어를 만나 싹을 틔우고, 한가한 시간의 깊은 사색과 탐구를 거름 삼아 쑥쑥 자라게 되는 것 같다. 그러니 생각하며 살기를 바란다면 즉흥적, 자극적, 인스턴트적 정보들의 홍수 속에서 줏대 없이 허우적대기는 이제 정말 그만둘 일이다.

대신 사회적 거리두기 생활이 끝나기 전에 모처럼 단순해진 이 느린 삶의 속도를 제대로 만끽하며, 고독하고 괴롭더라도 민낯의 나를 좀 더 자주 만나보자. 자신을 자주 대면하면 무엇이 어떻게 좋아질지 잘 모르겠지만, 최소한 생각하며 살려고 노력하는 나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길어지는 코로나 시대, 생각없이 사는 쉬운 길로 접어들지 않도록 버틸대로 버티며 드는 생각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브런치에도 함께 실립니다.


태그:#생각하며 살기, #코로나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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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궁금한 게 많아 책에서, 사람들에게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즐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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