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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굴  새로  둥실한  호박들
▲ 둥실한 호박들 덩굴 새로 둥실한 호박들
ⓒ 염정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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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가 하루 종일 추적추적 내린다. 연이은 태풍에 다소 흘러내리긴 했어도 덩굴 버틴 호박 잎마다 다시금 새순이 나와, 담을 타오르고 있다. 가을인데도 짝을 찾지 못한 늦 매미 울음이 이파리 사이 사이를 휘돈다. 그 사이 사이 호박을 매달고 있는 호박 덩굴 밑동이 마치 등나무처럼 굵어져 있다. 마치 그 모양이 아낌없이 내어주는 부모님의 마음 같아 눈시울이 촉촉해진다.

처음 이 집으로 이사올 때 가장 눈에 거슬렸던 시멘트 담장이었다. 전 주인이 돌담 위에 벽돌담을 쌓고 시멘트를 바른 뒤 용 비늘 문양으로 거칠게 표현한 담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대문을 달면서 안이 보이는 담장으로 바꿀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비용이 만만찮아 장미 덩굴로 이끌어 보자는 남편의 제안에 장미 다섯 그루를 사와 심었지만 생각처럼 자라지 않았다. 할 수 없이 호박도 따 먹고, 운치도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호박을 심었다. 밤호박과 일반 호박을 심었는데 텃밭 담을 타오르나 싶더니 점차 바깥 담으로 이어갔다. 

눈엣가시 같은 담을 덮은 호박 이파리가 한들대면 시원함까지 전해와 호박 심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차 자란 호박잎 사이로 밤호박이 줄지어 맺혀 이웃들과 나눠 먹는 기쁨까지 안겨주었다.

정수리를 파고드는 팔월의 뙤약볕
고문처럼 내리쬐는 가시광선 헤치고
담을 타고 오르는 호박덩굴
아침 이슬로 갈증만 잠재웠을 터인데 
어찌 저리 선명한 초록으로 
달궈진 담을 기어오를까

밤새 짝 찾는 논개구리 울음따라 
담을 넘어 둔덕으로 뻗어난 푸른 호기심
사이사이 노란 호박꽃 피워 
담 밖 세상을 품고 있구나 

개구리 울음소리 잦아들고 
벼들이 고개를 숙일 무렵 
할머니의 가마솥에선 
고향 찾는 자식들 먹일
호박죽이 뭉근하게 끓고 있겠지


이는 첫 시집 '밥은 묵었냐 몸은 괜찮냐'에 수록된 '호박덩굴' 시다. 남편을 따라 조도에 살 때 담장을  넘어 밖으로 향하는 호박덩굴을 보고 쓴 시인데 지금 바로 그런 모습과 흡사하다. 동네 길을 흘깃대며 담 밖으로 뻗어가는 호박덩굴을 보노라면  괜스레 내 맘도 그 담을 타오르는 듯 흐뭇해진다.

벌써 두 팔로 안을 만큼 자란 밤호박 두 덩이와 누렇게 익어가다 태풍에 길 위로 축 쳐진 일반호박 한 덩이가 창고에 들어 앉아 저 시처럼 추석에 올 아들 딸을 기다리고 있다.

아래는 그동안 담장의 호박 덩굴이 선물한 호박으로 요리한 것들이다. 대부분 호박나물과 된장찌개로 사용하고, 밤호박은 특별 요리로 활용했다. 
 
호박을  삶아  으깬  뒤  설탕  소금  간하고  불린  찹쌀  믹서로  갈아 넣어  만든  호박죽
▲ 호박죽 호박을 삶아 으깬 뒤 설탕 소금 간하고 불린 찹쌀 믹서로 갈아 넣어 만든 호박죽
ⓒ 염정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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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으로  밤호박 견과류 샐러드
▲ 밤호박 견과류 샐러드 점심으로 밤호박 견과류 샐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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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호박덩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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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두 자녀를 둔 주부로 지방 신문 객원기자로 활동하다 남편 퇴임 후 땅끝 해남으로 귀촌해 살고 있습니다. 그동안 주로 교육, 의료, 맛집 탐방' 여행기사를 쓰고 있었는데월간 '시' 로 등단이후 첫 시집 '밥은 묵었냐 몸은 괜찮냐'를 내고 대밭 바람 소리와 그 속에 둥지를 둔 새 소리를 들으며 텃밭을 일구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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