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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티밸리의 작은 마을, 당카르(Dhankhar)
 스피티밸리의 작은 마을, 당카르(Dhankhar)
ⓒ 이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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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티 밸리의 작은 마을, 당카르로 향해

당카르로 향하는 버스는 오후 2시 반에 있었다. 앞서 버스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찾아간 터미널의 시간표에는 온통 영어가 병기되어 있지 않은 힌디어가 적혀있었다. 버스 전광판도 오직 힌디어로만 되어있어, 승객이 몇 명 타고 있는 버스를 찾아가선 일일이 확인해야 했다. 웬만하면 소통의 어려움이 적은 인도에서 영어가 적혀 있지 않은 곳이라니. 여행자가 그리 많지 않은 곳이라는 사실, 그리고 여타 도시와도 동떨어진 시골 오지라는 사실을 새삼 체감하게 되었다.

당카르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언제 망가질지 모르는 덜컹대는 버스를 타고 강줄기 옆 절벽으로 난 도로를 달렸다. 금방 도착하는 것으로 봐선, 터미널이 있던 중심도시 카자에서 그리 멀리 떨어진 곳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알지 못했다. 목적지에 도착한 게 아니라 '시작'이라는 것을.
 
마을로 올라가는 길목
 마을로 올라가는 길목
ⓒ 이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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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는 정확하게 마을이 아닌 마을로 올라가는 길목에 세워줬고, 마을까지 어떻게 가면 되냐는 물음에는 알아서 가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마을은 산 위에 있었고, 마을까지 올라가는 길이 있었다. 하지만 가파른 경사를 피해 산을 둘러서 건설된, 10km 가까이 되는 길이었다. 도저히 걸어갈 수는 없어 보였다. 마을까지 갈 수 있긴 한 걸까, 간다고 하면 히치하이킹을 해야 할 텐데, 과연 차가 다니긴 한 걸까. 다행히 30분 정도 지나자 자동차 한 대가 내 앞에 섰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타도 되냐고 물으니 괜찮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뭄바이에서 왔다는 남자는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사업차 한국에 몇 번 간 적이 있었다고 답했다. 목포나 광주, 제주도를 알고 있음은 물론, 온산이라는 곳도 언급했는데 아마 울산에 있는 산업단지를 말하는 건 아니었을까. 또한, 이곳 스피티 밸리에는 이전에 갔던 라다크만큼이나 인도인 여행자들을 꽤 볼 수 있었는데, 한국 사람들이 동해 바다나 부산, 제주도와 같은 여행지를 가는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보였다. 인도 사람들에게도 이곳이 일상에서 벗어나 마주하는 색다른 여행지로 보였다. 
 
당카르(Dhankhar)의 마을 풍경
 당카르(Dhankhar)의 마을 풍경
ⓒ 이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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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계 사람들은 어떤 언어로 대화를 나눌까

저렴한 숙소를 찾기 위해 마을 두 바퀴 넘게 다녔더니 숨이 쉬어지지 않을 지경이었다. 해발고도 4000m 가까이 되는 곳에서 지름길로 가보겠다고 산길을 탔으니 그럴 수밖에. 처음으로 찾아갔던 불교사원은 자리가 꽉 차 있었고, 그 뒤로도 여러 숙소를 찾았지만 적당한 가격대의 숙소를 찾을 수 없었다.

결국, 마을에 있는 모든 곳을 들르고 나서야 겨우 숙소를 정할 수 있었다. 이전에 갔던 도시의 숙소에 비해 조금 비싼 축이었지만 아침과 저녁까지 포함이라는 말에 바로 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숙소가 마을 꼭대기에 있던 터라 옥상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좋았다.
 
정전되어 양초 하나에 의지했던 밤
 정전되어 양초 하나에 의지했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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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안간 전기가 나갔다. 마을 전체가 정전되었는지 밖에는 촛불이나 랜턴을 든 사람들의 움직임만 보였다. 정전은 다음 날까지 계속됐다. 의지할 것은 오직 숙소에서 건네준 양초뿐, 이 또한 처음 켠 불씨가 작은데 괜찮나 싶어 심지만 하염없이 보고만 있어야 했다.

하지만 전기가 나간 덕분인지 하늘은 온통 별천지였다. 이전에 봤던 여행지에서의 밤하늘보다 더했다. 촘촘하게 박힌 별의 향연과 은하수가 내 앞에 쏟아질 듯 다가왔다. 예상치 못한 곳에 만난 은하수라니. 기대조차 하지 않은 순간에 만난 은하수는 황홀경으로 다가왔다.

지금 내 옆에 한 사람이라도 있었더라면, 지금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을 두고 같이 이야기라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었더라면 참으로 좋았을 텐데. 카메라로도 담을 수 없고 눈으로밖에 담을 수 없는 풍경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당카르(Dhankhar)의 마을 풍경
 당카르(Dhankhar)의 마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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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계 사람끼리는 보통 어떤 언어로 대화를 하나요?"

단순한 궁금증에서 시작한 질문이었다. 이곳 스피티 밸리에 사는 티베트계 인도인은 어떤 언어로 대화를 나누는가. 자세히는 알지는 못하지만, 이들이 1950년대 중국 공산당의 강제 점령 이후 이곳으로 이주한 티베트인의 후손이라면 이민 3세대쯤 되지 않을까. 물론 내 생각과는 다르게 이 근방이 티베트의 영향권에 속했던 수 세기 전부터 살았던 사람들의 후손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중년의 숙소 호스트는 힌디어로 대화한다고 답했다. 답변을 들어서 그런지 몰라도, 이들의 대화를 자세히 들어보니 힌디어 어휘가 몇 개 들려왔다.

"인사말인 '줄레'는 티베트어인가요?"

이전에 갔던 여행지 레(Leh)에서부터 들었던 표현인데, 그는 티베트어가 아니라고 답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힌디어가 아닌 레(Leh)가 있는 라다크 지방에서 쓰이는 라다크어였고, 티베트어 인사말은 '타시텔레'였다. 또, 이곳 사람들은 실질적으로 티베트어를 조금만 쓸 줄 알 뿐이라, 호스트는 티베트어로 '감사합니다'가 뭔지 모른다고 했다.
 
티베트의 미래
 티베트의 미래
ⓒ 이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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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경우 재외교포가 3세대, 4세대로 갈수록 모어를 잊어버린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쩌면 인도의 티베트계 사람들도 같은 상황은 아닐까 싶었다. 문화는 그대로 고수하지만, 사용 빈도가 줄어 모어를 점차 잊어가는 여느 재외교포처럼.

하지만 다음 날 찾아간 불교사원의 승려를 보고는 다시 한번 생각을 바꾸게 되었는데, 티베트어를 사용하며 티베트 문자가 적힌 그의 노트를 보고는 조금이나마 마음을 놓게 되었다. 모든 티베트계 인도인이 티베트어를 잊고 살아가진 않는다는 것, 한 사람의 이야기만을 듣고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태그:#인도여행, #스피티밸리, #티베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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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을 마음에 품고 현실을 바라봅니다. 열아홉 살의 인도와 스무 살의 세계일주를 지나 여전히 표류 중에 있습니다. 대학 대신 여행을 택한 20대의 현실적인 여행 에세이 <우리는 수평선상에 놓인 수직일 뿐이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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