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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군수어통역센터를 방문했을 당시 사회복지사 박창남씨는 혼자서 정신없이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다른 직원의 행방을 묻자 농아인을 모시고 대성병원에 진료 보조를 갔다고 한다. 테이블 위에는 '대상포진 무료접종'이라는 우편물이 놓여있었다. 좀전에 신지에서 오신 농아인께서 가지고 오셨다는 것이다.

"완도에 거주하시는 농아인 대부분이 한글을 읽을 줄 몰라서 집에 우편물이 오면 가지고 나오십니다. 조금 이따 보건소에 대상포진 예방접종 하러가야 해요."

그나마 이렇게라도 나오시는 분은 나은 편이란다. 현재 완도군수어통역센터에 근무하는 직원은 겨우 2명이다. 지금 이곳엔 무엇보다도 전문인력이 절실하단다.

"전 사실 수어통역사 자격증이 없어서 수어통역사라고 말할 수가 없어요. 2014년도에 사회복지사 자격으로 1년간 근무를 했었어요. 그때는 수어 한마디 못하고 일하다가 2018년도에 다시 들어와 일하면서 틈틈이 수어를 익혔어요. 체계적으로 배운 수어가 아닌 현장에서 부딪히면서 배운 생존 수어라고 할까요?"

인터뷰 도중에 전화벨이 울리자 벌떡 일어나 농인을 위한 화상전화기 앞으로 앉았다. 그리곤 몇 분간의 영상전화기를 향해 침묵의 대화가 이어졌다. 어떤 대화였냐고 묻자, 물건을 사야 하는데 어떻게 사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이였단다.

"비(非)청각장애인이 일상적으로 아무런 불편함없이 행하는 모든 일들을 도와주고 있어요. 병원진료, 은행업무, 관공서 업무는 물론 집에 TV가 안 나온다고 해서 약산면까지 찾아가니 리모컨 조작이 잘못된 거였더라구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단다. 사소하다 생각하는 모든 일들이 농인들에겐 혼자서는 넘을 수 없는 산 같은 일이기 때문에 일의 경중을 따지지 않고 그가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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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장날에 아침 일찍 배 타고 많이 나오셔서 그동안 밀린 일들을 처리하려는 경우가 많아요. 그럴 땐 정말 화장실 갈 시간도 없어요. 오신 분들을 모두 한분 한분 눈을 마주치며 대화(수어)를 해야 하거든요."

지금은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행사들이 멈춰있지만, 이곳에서 '수어교실강좌'도 진행하고 있다. 최근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한 정부 브리핑 현장에서 수어로 동시에 전달하는 수어통역사의 모습이 지속적으로 전파를 타면서 수어통역사에 대한 주민들이 관심이 부쩍 높아져 많은 농인의 수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크게 달라진 거 같아 다행이라고 말한다.

"수어를 배우시겠다고 신청하신 분들이 많은데 아직 개강을 하지 못하고 있어요. 수어통역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한때의 유행으로 그치지 않고 농인과 청인이 한걸음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완도군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관내 언어, 청각 장애인의 수는 총 700여명에 이르며, 이중 수어센타에 등록한 이는 50여명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청산, 노화, 보길, 생일, 금당에 이르기까지 아직도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들이 많아요. 누구 한사람이라도 소외되는 사람이 없도록 하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전문수어통역사가 되기 위해 올해 시험을 치러 서울에 가려했지만, 코로나 사태로 갈 수 없게 됐다며 아쉬워했다. 수어통역사 시험이 1년에 딱 1번 서울에서 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격증이 없다며 인터뷰 자격도 안 된다고 말했지만, 지금 완도의 농인들은 박창남씨의 수어통역이 없으면 소통의 창구를 잃어버리고 만다. 자격증보다 더 중요한 것은 농인들을 향한 그의 따뜻한 마음이 아닐까 싶다. 몸짓과 마음으로 소통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 '수어' 그의 눈과 양손은 오늘도 농인들을 향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완도신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수어, #청각장애인, #완도군, #수어통역센터, #박창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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