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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공부할까 고민했다
 무엇을 공부할까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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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직 활동 기간에 실업 급여를 받으며 무엇을 공부할까 고민했다. 워크넷에는 정말 다양하고 많은 구인 정보가 있지만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적었다. 전문 기술을 요하는 일은 당연히 못할 것이고, 보육교사나 간호조무사 자격증, 조리사 자격증이 필요한 일들이 많았다. 

남편은 자격증을 하나 따 보라고 했고 나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 고용센터에서 발급받은 내일 배움카드로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려고 했다. 그런데 이 자격증 코스의 경우 자비 부담이 30만 원이 넘었다. 많은 생각을 했다. 자비 부담만 30만 원이 넘는 일인데 이 바리스타 자격증을 딴다고 해도 커피숍에서 나를 고용할까?

아마 내가 커피숍을 차리지 않는 이상 내가 딴 바리스타 자격증으로 커피숍 일을 하기엔 무리가 있을 것이다. 유명 커피 체인에 지원 서류는 냈지만 어쩌면 그건 나의 희망 사항에 그칠지도 몰랐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다시 도전해 볼 생각이지만, 스타벅스에 원서를 내는 것이 취업으로 연결되리라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바리스타는 접었다.

다음 생각한 것이 '손해평가사'이다. 이 자격증은 50대가 많이 합격한다고 한다. 얼마 전 중장년이 자격증에 가장 많이 도전하는 나이라는 기사를 읽었다. 내게 닥치니 그런 기사가 눈에 쏙 들어왔나 보다. 그러나 댓글은 참 암울했다. 그런 자격증 백날 따 봐야 남 좋은 일 시킨다는 내용과 따봤자 아무 쓸 데 없다는 이야기 등이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내가 국문학과 입학할 때 사람들은 '취직 안 되는 과'라고 걱정했다. 오죽하면 '굶는 과'라고 했을까. 하지만 나는 한국어와 관련된 공부를 꾸준히 하고 관심을 가지면서 이를 바탕으로 자원봉사 기간 포함해서 20년 넘게 일했다. 나는 무엇을 배우는 것에 있어 '유망 직종'이냐 아니냐 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일인지 아닌지가 더 중요했다. 

'손해평가사'도 마찬가지였다. 남편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니 비슷한 영역에서 일을 하면 서로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공부하기로 정했다. 한 해 동안 죽을 듯 공부하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꼭 합격하겠다고. 

고용노동부 구직자 프로그램 중에서 손해평가사 온라인 수업을 받고 있다. 역시 온라인 수업은 집중도가 떨어진다. 그래서 보내준 책을 미리 읽고 영상을 본다.

하지만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말이 무색하게도 어려운 점이 많았다. 특히 이 교재에 나오는 판례의 내용을 이해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읽어도 읽어도 그 뜻을 무엇인지 파악하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온라인 과정이니 질문하기 수월한 것도 아니어서 머리만 아프다. 판례는 일단 문장이 너무 길다.

"일반적으로 보험자 및 보험계약의 체결 또는 모집에 종사하는 자는 보험계약의 체결에 있어서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에게 보험약관에 기재되어 있는 보험상품의 내용, 보험료율의 체계 및 보험청약서상 기재사항의 변동사항 등 보험계약의 중요한 내용에 대하여 구체적을 상세한 명시·설명의무를 지고 있으므로 보험자가 이러한 보험약관의 명시, 설명의무에 위반하여 보험계약을 체결한 때에는 그 약관의 내용을 보험계약의 내용으로 주장할 수 없다고 할 것이나, 보험자에게 이러한 약관의 명시·설명의무가 인정되는 것은 어디까지나 보험계약자가 알지 못하는 가운데 약관에 정하여진 중요한 사항이 게약 내용으로 되어 보험계약자가 예측하지 못한 불이익을 받게 되는 것을 피하고자 하는 데 그 근거가 있다고 할 것이므로, 보험약관에 정하여진 사항이라고 하더라도 거래상 일반적이고 공통된 것이어서 보험계약자가 별도의 설명 없이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사항이거나 이미 법령에 의하여 정하여진 것을 되풀이하거나 부연하는 정도에 불과한 사항이라면 그러한 사항에 대하여서까지 보험자에게 명시·설명의무가 인정된다고 할 수 없다. (대법원 선고 2003다15556)"

이것이 한 문장이다. 읽고 또 읽으면 무슨 뜻인지 파악은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기니 심리적으로 부담스럽고 더 어렵게 느껴진다. 판례는 한 문장으로 써야만 하는 규정이라도 있는지 궁금하다. 그래도 이건 그나마 내용은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경우도 많다.

"보험계약의 청약을 유인하는 안내문에 보험약관의 내용이 추상적·개괄적으로 소개되어 있을 뿐 그 약관 내용이 당해 보험계약에 있어서 일반적이고 공통된 것이어서 보험계약자가 충분히 예상할 수 있거나 법령의 규정에 의하여 정하여진 것을 부연하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닌 이상, 그러한 안내문의 송부만으로 그 약관에 대한 보험자의 설명의무를 다하였다거나 보험계약자가 그 내용을 알게 되어 굳이 설명의무를 인정할 필요가 없다고는 할 수 없으며, 이와 같은 보험약관의 명시·설명의무에 관한 법리는 보험료율이 낮다거나 보험계약의 체결 방식이 통상의 경우와 다르다고 하여 달라지지 아니한다. (대법원 98다43342)"

뒷부분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결론이 무엇인지 파악이 잘 안 된다.

'쉬운 영어 쓰기 운동(Plain English Campaign)'은 언어를 쉽고 간결하게 쓰자는 운동이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까닭도 어리석은 백성이 이르고자 할 것이 있어도 자기 뜻을 쉽게 펼치지 못함이 안타까워서였다. 이런 애민사상을 담아 만들어 낸 문자인 '한글'이지만 그 안에 담은 내용은 여전히 어렵다. 

국립국어원에서는 공공언어를 다듬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누리집에서는 공공언어 바로쓰기 자료를 내려 받을 수 있다.
 
명료성이 가장 큰 원칙이다. 언어의 목적은 소통이기 때문이다.
▲ 한눈에 알아보는 공공언어 바로쓰기 명료성이 가장 큰 원칙이다. 언어의 목적은 소통이기 때문이다.
ⓒ 김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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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자에 나오듯이 지나치게 긴 문장은 좋지 않다. 천천히 읽다 보면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문장이 길어지면 '주어-서술어 호응'이 잘못될 가능성도 있다. 

예전의 어려운 말이 한자어였다면 지금의 어려운 단어는 주로 영어에서 온 것들이다.  
 
세상 돌아가는 모습도 알 수 있어서 좋다.
▲ 국립국어원 누리집 다듬은 말 세상 돌아가는 모습도 알 수 있어서 좋다.
ⓒ 김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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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존재 이유는 의사소통이다. 여기에 다양한 기능이 더해진다. 경우에 따라 지방어를 선택한다면 상대방과 친교에 더 목적을 두었다고 볼 수 있다. 문장을 정확하게 끝맺고 발음을 정확하게 하면 신뢰성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소통이 안 된다면 그것은 다른 많은 기능을 충족시킨다고 하더라도 의미가 없을 것이다.

교재에 나오는 판례를 보면서 나는 진정한 어린 백성이 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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