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8 11:57최종 업데이트 20.10.08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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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영월 서강 ⓒ 서강 항공사진

 
대한민국에 그림처럼 아름다운 강이 있다. 물이 흐르며 빚어내는 굽이굽이마다 황홀한 절경을 이룬다. 우리에게도 이토록 예쁜 강이 있다니 놀랍기만 하다.
 

굽이굽이 돌며 자리자리마다 절경을 빚어놓은 서강 ⓒ 서강항공사진

 
강원도 영월에 있는 서강이다. 하늘에서 바라보는 아름다운 서강을 담기 위해 항공사진 전문 작가에게 긴급히 부탁했다. 벼가 노랗게 익어가는 맑은 가을날을 기다려 드디어 하늘을 날아올랐다. 깊어가는 가을 하늘에서 바라본 서강으로 함께 떠나보자.
 

가을이 익어가는 서강. 발길이 멈추는 모든 곳이 가슴 시리도록 아름답다. ⓒ 서강항공사진


영월에는 강이 많다. 영월 동쪽에 있는 동강과 서쪽에 있는 서강이다. 동강은 산세가 크고 강물이 빨라 '지아비강'이라 부르고, 서강은 동강에 비해 산세가 작지만 기암절벽이 아름답고 수심이 깊고 잔잔하게 흘러 '지어미강'이라 부른다.

서강은 동강처럼 거대한 절벽으로 사람에게 위세를 부리지 않는다. 서강은 하늘과 산과 기암절벽과 맑은 강물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어머니의 품처럼 아늑한 서강에는 논과 밭이 잘 발달되어 있다. 그 덕에 사람들이 기대어 살아가는 생명의 강이다.
 

위압적이지 않은 부드러운 품으로 사람과 어울리기에 더욱 아름다운 강이다. ⓒ 서강항공사진


서강은 대표적인 감입곡류 하천이다. 감입곡류천이란, 평야 지대를 자유 곡류하며 흐르다가 지반이 융기한 후 원래의 흐름을 유지하면서 하도를 깊이 파며 흐르는 하천을 말한다. 이렇게 자유롭게 흐르는 물줄기가 굽이굽이 휘감아 돌며 여기저기 아름다운 풍경을 그려내는 것이다.

한반도의 축소판을 처음 발견한 그날의 감동

서강의 백미는 '한반도 지형'이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반도의 모양, 동고서저(동쪽은 높고 서쪽은 낮은 지형), 서해와 남해의 넓은 갯벌과 모래사장의 지형적인 특징까지 쏙 빼닮았다.
 

서강의 한반도 지형을 하늘에서 바라본 모습. 하늘보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모습이 더 한반도를 닮았다. ⓒ 서강항공사진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1999년 12월 20일 서강의 한반도 지형을 처음 발견하던 그날의 감동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한반도를 빼닮은 지형은 수만 년 전부터 저 자리에 있어왔을 텐데 그날에야 내가 처음 발견한 것이었다.

동강댐으로 유명해진 동강처럼 강물 줄기가 휘돌아 흐르는 지형을 찾기 위해 선암마을 절벽을 기어올랐다. 강물 위에 기다란 반도가 눈에 들어왔다. 기다란 반도 모양의 물돌이동(강물이 둥글게 휘감아 돌아가는 지형)이 우리나라 지도인 한반도 지형이 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더 좋은 광경을 담으려고 절벽을 타고 계속 좌측으로 이동했다. 내가 자리를 잡으면 나를 안내해주던 선암마을 토박이인 고 이종만님이 카메라 시야를 가리는 잔가지들을 낫으로 쳐내 주었다. 그의 도움이 없었으면 지금까지도 서강의 한반도 지형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종만님은 안타깝게도 몇 달 뒤 서강을 지키다 사고로 먼저 하늘나라로 갔다.

이종만님과 함께 절벽을 이동하던 어느 순간 한반도를 쏙 빼닮은 축소판이 눈앞에 나타났다. 지금은 전국에서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는 한반도 지형 전망대가 설치된 바로 그 자리다. 이렇게 발견한 서강의 한반도 지형이 오늘에 이른 것이다.

서강의 한반도 지형을 많은 분이 찾아오고 있다. 이곳에 오면 내게 한반도 지형을 찾도록 길을 안내해준 고 이종만님의 희생이 있었음을 기억해주면 좋겠다.

산과 강이 많은 대한민국엔 한반도를 닮은 지형이 많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서강의 한반도 지형이 가장 완벽하게 한반도를 빼닮았다. 서강엔 또 다른 한반도 지형들이 숨어 있다. 굽이굽이 휘감아 돌아가는 물줄기가 빚어낸 숨은 보물들이다.
 

선암마을 한반도 지형 외에도 서강엔 한반도를 빼닮은 물돌이동이 많다. 이곳도 동고서저의 한반도 지형 특징을 쏙 빼닮았다. 그래서 서강은 더더욱 한반도 마을이다. ⓒ 서강항공사진


세계 람사르 습지에도 등록된 서강

서강의 한반도 지형이 더욱 소중한 이유는 지형적인 특징뿐만 아니라 소중한 생태계 때문이다.

강원도 평창군에서부터 흘러 내려온 평창강이 영월군 한반도면 옹정리를 지나며 한반도 지형을 빚어낸 후 주천강과 만나 비로소 진짜 서강이 된다. 평창강과 주천강이 하나가 되는 지점에 드넓은 습지가 발달되어 있는데 이곳은 한반도 지형의 이름을 따서 '한반도 습지'라 부른다.
 

좌측 위쪽의 한반도 지형과 그 아래에 있는 한반도 습지. 이곳도 한반도 모습을 조금 닮아 있다. 세계 람사르 습지에 등록된 생태계 보고다. ⓒ 서강항공사진

 
천연기념물과 멸종위기 보호종들이 가득한 한반도 습지는 2012년 1월 13일 환경부가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했으며 2015년 5월 13일 세계 람사르 습지로 등록되었다.

환경부는 지난 2010년 2월 한반도 습지를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할 계획을 발표하며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 환경부는 국토의 상징성이 재현된 형상으로 유명한 영월군 한반도면 옹정리 선암마을에 위치한 한반도 습지(1,064km²)를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하는 계획을 수립·추진한다.
- 한반도 습지는 09년 정말 조사를 이미 수행한 바 있는데 멸종위기 야생 동·식물 I급인 수달을 비롯하여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이 분포하고 있고, 습지 내 담수어류 62%가 한국 특산종으로 자연생태계가 우수한 내륙 습지다.
- 지형학적으로 전형적인 감입곡류천의 사력퇴상에 위치하고 있고, 한반도 형상을 갖추고 있어 경관학적으로 가치가 높은데 향후 관계부처 협의 등을 거쳐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고시될 예정이다.
 
환경부는 보도자료에 '서강은 다른 습지보호지역인 한강하구 습지나 담양하천습지보다 면적 대비 각각 6.2배, 3.9배 높은 식물 종 다양성을 보이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식물뿐만이 아니다. 서강에 사는 어류 21종 중 62%가 한국 특산종으로 한강 수계 한국 고유종의 출현 빈도인 41.7~50.0%보다 매우 높은 고유성을 나타내고 있다. 서강은 살아 있는 생태 박물관으로써 앞으로 잘 보호해야 할 강임을 환경부 보도자료에서도 잘 알 수 있다.

생태 박물관 서강에 쓰레기매립장 건설이라니

맑은 물과 아름다운 경관과 소중한 생태계를 지닌 서강에 위기가 닥쳤다. 시멘트를 만드는 기업인 쌍용양회가 서강변에 산업폐기물 매립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쌍용양회가 1960년대부터 석회석을 채굴한 폐광에 산업쓰레기매립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서강에서 2.5km에 불과하다. ⓒ 서강항공사진

 
이곳은 쌍용양회가 1960년대부터 시멘트를 만들기 위해 채굴하던 석회석 광산이다. 그런 쌍용양회가 폐광을 복구하기는커녕 쓰레기매립장을 건설하겠다고 한다. 쓰레기매립장 허가만 받으면 약 1조 원에 이르는 막대한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지역은 석회암으로 지하에 동공이 많고, 수직절리가 발달되어 물이 줄줄 새는 지형이다. 수직절리는 얇은 타일을 수직으로 겹겹이 세워놓은 것을 연상하면 된다. 수평으로 퇴적된 암반엔 물이 새기 어렵지만 얇은 석회암이 수직으로 겹겹이 세워진 곳은 암반 사이 사이에 틈새와 동공이 많아 물이 지하로 새나간다.

올여름 기후이상으로 기상 관측 이래 54일이라는 최장의 장마를 경험했다. 장마 기간이던 지난 8월 4일 쌍용양회 매립장 예정지에 물이 가득했다. 쌍용양회 환경영향평가서엔 연결된 동공이 없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한쪽 벽에선 물이 펑펑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이날도 사진을 찍고 서울로 돌아오는데 앞이 보이지 않는 폭우 덕에 자동차 운전이 아니라 수상 스키를 타는 기분이었다. 
 

쌍용매립장 예정지. 한쪽 벽에서 빗물이 펑펑 유입되어 예정지에 물이 가득했는데 며칠 만에 모두 지하로 새나가고 없다. ⓒ 최병성

 
8월 12일 또 다시 현장을 살펴보았다. 8월 4일부터 8월 12일까지 비가 그친 날이 없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수위가 더 내려갔다. 여전히 한쪽 벽에서는 빗물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지만 수위가 더 낮아졌다. 지하로 물이 펑펑 샌다는 뜻이었다. 다시 10일 뒤인 8월 21일 찾은 매립 예정지엔 그 많던 물이 다 빠져나가고 없었다.

서울 시민 식수 위협하는 쌍용매립장 건설 중단해야

빗물이 줄줄 새나가는 지형에 유독성 높은 산업폐기물 매립장을 건설하면 어떻게 될까? 쌍용이 추진하는 매립장 면적은 무려 축구장 25개 넓이다.

물에 잘 녹아 동공이 많은 석회암일 뿐 아니라 암반 틈새가 발달된 수직절리 지형에다가 54일의 장맛비가 모두 새나갈 만큼 지하 구멍이 많은 곳이다. 이곳에 산업폐기물 매립장을 짓겠다는 상식 이하의 일은 중단해야 한다.

이곳에 짓는 산업폐기장은 서울과 수도권 시민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일이기도 하다. 서강 물줄기 끝자락에 단종이 유배되었던 청령포가 있다. 청령포를 지나면 서강이 동강과 만나 남한강이 된다. 그리고 남한강은 다시 북한강과 만나 한강이 되어 서울과 수도권 시민의 식수가 된다.
 

단종 유배지인 청령포를 지나면 서강은 동강과 만나 남한강이 되어 서울로 흘러간다. ⓒ 서강항공사진

 
이윤 창출이 기업의 목적임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기업의 이윤 창출도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상식선에서 이뤄져야 한다.

지난해 일본 석탄재 수입 문제로 전 국민이 분노했다. 일본에서 쓰레기 처리비를 받고 일본 석탄재를 제일 먼저 수입하기 시작한 회사도 쌍용양회고 지금까지 가장 많은 양을 수입하고 있는 회사도 쌍용양회다. 쓰레기 시멘트를 가장 먼저 시작한 회사도 쌍용양회고, 자동차와 항공기 폐 부동액과 대형 건물의 폐 냉매를 시멘트에 제일 먼저 사용한 기업도 쌍용양회다.

1998년 IMF로 부도 난 쌍용양회를 막대한 국민 혈세를 투입해 회생시켜주었다. 그러나 국민에게 돌아온 것은 쓰레기 시멘트와 일본 쓰레기 수입이었다. 이제는 서강변 산업쓰레기매립장 건설까지 추진하고 있다.

서강은 한 기업의 이윤을 위해 잃어버릴 수 없는 소중한 강이다. 한반도의 상징이요, 소중한 생태박물관인 서강은 언제나 우리 곁에 맑은 물로 흘러야 한다.
  

맑고 아름다운 서강, 영원히 우리 곁에 흐르도록 잘 보전해야 한다. ⓒ 서강항공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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