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3 12:56최종 업데이트 20.10.13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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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 케이팝의 인기가 높다고 합니다. 과연 어느 정도일까요? 오마이뉴스 해외 시민기자들이 자신이 거주하는 나라에서 경험한 케이팝 현상을 소개합니다. 또한 2020 케이팝 열풍의 명암을 조명합니다.[편집자말]
 

방탄소년단 ⓒ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제공

 
며칠 전, 모르는 사람에게서 이메일을 받았다. '테일러'라는 여성이 보낸 편지였다. 매우 정중하게 쓰인 이 편지글에서 그는 자신을 인류학을 공부하는 대학생이라고 소개한 뒤, 내가 공저자로 낸 케이팝(K-pop) 책을 흥미롭고 유익하게 읽었다며 고마워했다.

테일러는 자신이 케이팝에 대한 연구를 진행 중이며, 책에 언급된 학자와 이론들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노라고 했다. 하지만 편지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말미에 등장했다. 요지는 내가 쓴 글에 사소한 오류가 있으며, 나중에 개정판을 낼 때 고쳐주면 감사하겠다는 것이다.


"교수님이 책에서 세븐틴 멤버를 17명이라고 쓰셨는데, 이 그룹의 인원은 현재 13명입니다. 연습생 시절, 리얼리티 쇼에는 연습생으로 17명이 출연했지만, 데뷔 인원은 13명이고 그 이후로 더 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정중한 인사로 글을 맺었다. 나는 답장을 보냈다. 고맙다고 말한 뒤, 세븐틴이 2015년에 데뷔했지만, 아쉽게도 책이 2014년에 출간된 탓에 연습생 시절의 수를 기록했으며, 이후 개정 작업에서 이 부분을 고치겠다고 말해 주었다.

결코 특별한 사건은 아니었지만, 이 학생과의 대화는 꽤 흥미로운 생각거리를 던져주었다. 테일러는 한국 문화에 노출되기 쉬운 아시아계 미국인이 아니며, 사는 곳 역시 뉴욕, 로스앤젤레스, 시카고 같은 대도시가 아니다. 그가 사는 곳은 인구 3만 명이 안 되는, 펜실베이니아의 소도시 윌리엄스포트다. 이 사실은 한국 대중문화가 미국 내에서 갖게 된 지위를 말해준다.
 

필자가 최근 참여한 한국관련 대중문화 관련 저서들. 북미와 유럽에서 한국 음악, 영화, 게임, 스포츠는 매우 인기있는 주제로 부상했다. ⓒ Duke/Routledge

 
여기서 방탄소년단이 미국 팝음악의 '주류'로 부상했다고 말하고 싶은 유혹이 생길지 모르겠다. 실제로 신곡 '다이너마이트'가 빌보드 '핫100' 정상에 오르자, 한국 언론은 "높은 장벽 넘어 주류로", "미국 음악시장 주류 우뚝", "세계 음악시장 주류로 '우뚝'"이라고 앞 다퉈 보도했다.

한국 언론 특유의 '주류'에 대한 갈망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들의 평가는 현실에서 크게 빗나가 있다. 방탄소년단은 미국 음악시장에서 결코 주류가 아니며, 가까운 미래에 주류가 되는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방탄소년단은 미국은 물론, 전 세계의 수많은 팬들에게 사랑받으며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이 환호와 열광의 주된 이유는 그들이 '주류'가 아니라는 데 있다.

주류는 뻔하고 예측 가능한 것

한국 사회에서 '주류'는 흔히 긍정적 담론과 결합하지만, 주류 문화는 사실 '뻔하고 구태의연함'을 의미한다. 주류 문화는 모두를 만족시키는 것을 목표로, 태생적으로 보수적인 매체인 텔레비전과 라디오를 등에 업고 등장한다.

실제로 방탄소년단이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누리는 인기에 비하면, 미국 방송의 편성 빈도는 터무니없이 낮다. 미국의 '아미'들이 텔레비전과 라디오가 방탄소년단을 배제하고 차별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팬들은 이런 배제 기제에 인종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고 비판한다.

<워싱턴포스트> 역시, 그냥 '팝음악'으로 평가하고 시상하면 될 것을, 흑인 가수들은 '어반(urban)', 방탄소년단을 포함한 한국 가수들은 '케이팝' 같은 틀 짓기를 통해 교묘하게 차별한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주류매체가 외면한다고 해서 방탄소년단의 영향력을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어차피 팬들은 방송매체보다 인스타그램, 스냇챕, 틱톡, 유튜브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밀레니얼 세대이기 때문이다.

방탄소년단의 부상은 시대 변화를 알리는 신호탄이다. 대중매체를 소비하는 방식이 변했고, 소비의 주체가 바뀌었으며, 이 새로운 팬들을 둘러싼 경제적, 문화적, 이념적 질서가 재편되고 있다. 방탄소년단이 근본적 지형변화의 중심에 서 있다. 이는 '주류'를 향한 따분하고 허구적 욕망보다 훨씬 신나고 의미 있는 사건이다.

이른바 '주류'가 돼야 빌보드 차트에 오르던 시대는 지난 지 오래다. 오히려 '주류'가 포섭하지 못하는 새로움이야말로 팬들을 달구고 끈끈히 연대하게 만드는 매력이다. 이런 변화는 이미 수년 전부터 미국을 포함한 세계 전역에서 감지되기 시작했다.

2017년 8월 <뉴욕타임스>는 주목할 만한 심층 분석 기사를 냈다. "미국인들은 어떤 음악을 가장 좋아할까?"라는 제목으로 음악 청취자들의 '팬지도'를 그려낸 것이다. 빌보드의 주목을 받는 가수와 그룹을 대상으로, 2016년 1월부터 2017년 4월까지 유튜브에서 가장 많은 시청자를 확보한 50인의 시청자 분포를 추적했다.
 

<뉴욕타임스>가 분석한 미국내 방탄소년단의 열성팬 분포지도. 캘리포니아, 위스콘신, 하와이가 짙은 적색으로 표시돼 있다. ⓒ New York Times

 
이 기간은 방탄소년단을 빌보드 핫 100에 진입시킨 <디앤에이(DNA)>가 발표되기도 전이었다. 결과는 매우 흥미로웠다. 미국 내에서 방탄소년단 비디오 애청자들이 집중된 지역이 하와이, 캘리포니아, 위스콘신이었기 때문이다.

하와이와 캘리포니아는 아시아계 미국인과 외국인이 많다는 점에서 이해할 만하지만, 위스콘신의 경우는 특이했다. 그것도 대도시 밀워키나 전 세계 유학생이 밀집한 매디슨이 위치한 위스콘신 남부가 아니라, 인구밀도가 낮은 북부에 집중 분포돼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대중문화의 확산 방식이 과거와 크게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주류매체를 건너뛰어 세계의 팬과 만나다

과거에는 문화 확산이 거의 예외 없이 대도시에서 시작해 전국으로 확산되는 형태를 띠었다. 대도시는 타지 거주자나 해외 방문자가 많고, 콘서트나 팬과의 만남 등을 통해 가수와 접할 기회가 많으며, 인구 밀도가 높아 타인의 영향을 받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사람들은 지역의 한계에 묶이지 않는다. 사는 곳과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이 24시간 소셜미디어로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주류매체에 의존할 필요도 없다. 유튜브에서 마음에 드는 뮤직비디오를 발견하면 몇 번이고 돌려보고, 애플뮤직이나 아마존뮤직에서 음원을 내려 받고, 소셜미디어로 친구에게 추천하고, 가수 계정을 찾아가 말을 걸고, 운이 좋다면 직접 대화도 나눌 수 있다. 여기서 방탄소년단이 팬과의 소통에 남다른 열정을 지녔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렇듯 방탄소년단은 지리적 장벽과 매체의 한계를 넘어 팬들과 만났고, 팬들은 크고 작은 도시, 크고 작은 나라를 넘어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더욱이 방탄의 젊은 팬들은 나라와 문화를 떠나 매우 유사한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세대다.

아시아, 유럽, 북미와 남미 등의 다수 젊은이들은 부모 세대보다 더 적은 소득, 더 적은 기회를 누리게 된 첫 세대다. 불확실한 미래를 짊어진 이들은 위로 받기를 원했고, 가식 없이 마음을 열 상대가 필요했다. 스스로 약자가 되어 본 경험은 다른 약자들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는 공감대가 된다. 밀레니얼들이 인류역사상 가장 진보적 세대라고 불리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들은 베이비부머 세대의 조부모, 엑스(X)세대 부모보다 훨씬 섬세한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감수성을 지니고 있다. 이들은 인종적 편견에서도 상대적으로 자유로운데, 태어날 때부터 아시아의 경제적, 문화적 부상을 몸으로 느끼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이들은 엘지 냉장고와 세탁기, 삼성 텔레비전, 중국에서 생산된 아이폰과 함께 자라난 세대다.

이 좌절한 젊음에게 방탄소년단은 '내일이 두려워/ 참 웃기지/ 어릴 땐 뭐든 가능할거라 믿었었는데'라고 말을 걸고(Tomorrow), 세상의 잣대에 가위눌려 고민하는 이들에게 '세상은 욕할 자격이 없다'(낙원)며 한 편이 돼 준다. 그리고 '그저 남의 인생들을 살게'된 자신도 다르지 않다고 고백하면서(Intro: O!RUL8,2?), '우리가 함께면 끝이 없는 미로조차 낙원'(Love Maze)이니, 함께 '살아내자'(Tomorrow)고 손을 내민다.

물론 메시지 이전에, 귀에 붙는 음악과 몸을 들썩이게 하는 기막힌 춤이 있다. 세상의 젊은이들에게 방탄소년단의 노래는 즐거움의 외피에 싸인 따뜻한 메시지다.
 

방탄소년단이 모델로 등장한 타임지 표지. 오른쪽이 2018년 정규판, 왼쪽이 2020년에 나온 특별판이다. ⓒ Time

 
기획을 뚫고 자란 가능성, 그리고 위험

이렇게 쓰고 보니 글 전체를 방탄소년단의 찬사로 채운 듯하지만, 나는 그동안 케이팝을 비판적으로 분석해 왔다. 한국 음악시장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아이돌 그룹의 절대다수는 철저히 상품으로 기획된다. 각 구성원의 이미지는 영화의 배역처럼 정해지고, 그에 따라 머리모양과 색, 의상, 화장법이 결정된다. 7, 11, 13 명처럼 여러 멤버로 채우는 것은 그물을 넓게 던져 최대한 다양한 팬들을 확보하려는 포석이다.

앞에 언급한 책에서 나는 한국 아이돌의 탄생 기제를 '음악산업의 맥도널드화(McDonaldization)'로 규정했다. 맥도널드가 모든 음식의 재료와 조리온도와 시간을 철저히 매뉴얼화해 표준화된 음식을 대량 생산하고 고객 응대방법까지 체계화해온 방식을 음악산업에 적용했다는 뜻이다. 맥도널드(혹은 스타벅스)가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과 부정적인 영향 모두를 끼쳤듯, 한국의 아이돌 역시 마찬가지다.

노래를 하면서 그토록 완벽한 춤을 소화할 수 있는 그룹은 한국 외에는 찾아보기 어렵다. 자질을 갖춘 사람을 꼼꼼히 선발한 뒤 가공할만한 연습을 시키기 때문인데, 이 과정은 거의 러시아의 마린스키나 볼쇼이 발레단에 비길 만하다. 이에 따라붙는 개인의 철저한 관리와 통제는 완벽한 이미지 생산과 유지를 가능케 하지만, 그 가운데 희생되는 개인의 삶은 비극적 결말로 이어질 위험성이 크다.

흥미롭게도 방탄소년단은 예외적일만큼 느슨한 기획의 세례를 받았다. 아이돌을 여럿 배출하며 체계적 경험을 쌓은 대형 기획사가 아니었다는 점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국내용으로 기획되었다가 (대부분의 노래가 한국어라는 사실이 이 점을 입증한다) 유튜브와 소셜미디어를 타고 해외로 알려지면서 팬들과 더불어 고민하고 성장하며 진화해 왔다는 점이 그렇다.

방탄의 멤버들은 음악적으로 발전하는 동시에, 동시대의 생각을 공유하는 자연인으로서도 성장해 왔다. 전 세계 팬들이 그들에게 그토록 깊은 애착을 갖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들은 팝스타들일 뿐 아니라, 같이 자라온 동료들이기도 하다.

이 방탄소년단의 존재와 가치는 '수치'로도 입증되고 있다. 연일 화제가 되고 있는 기획사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의 공모주 청약이 그렇다. 15일 코스피 상장을 앞둔 빅히트의 시가총액은 4조 8천억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국 언론은 주가가 얼마나 뛰어오를 것인가와, 방시혁 대표와 방탄소년단 멤버가 얼마나 큰 주식부자가 될 것인가에 이목을 집중시킨다. 방탄소년단의 인기와 영향력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동시에 전에 없던 위험도 존재한다. 이제 팬들만이 아니라 주주도 만족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기획사는 주가 유지를 위한 통제와 관리 시도가 예상치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2019년 새 음반 <더 맵 오브 더 소울: 페르소나>를 낸 뒤, 방탄소년단의 리더(RM)는 팬들의 사랑과 관심에 기쁨과 감사와 동시에 두려움을 느낀다며 "키가 커지면 그늘이 길어진다"고 말했다.

방탄소년단은 '페르소나'를 통해 사회적 역할과 내면의 자아의 관계를 말하고자 했다. 외부의 기대가 개인에게 요구하는 '페르소나'는 누구도 피할 수 없지만, 그 속에서 본연의 모습을 잃지는 말라는 것이다. 이 아름다운 메시지는, 이 시간 방탄소년단이 마음속에 되새겨야 할 약속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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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프리미엄 2020 케이팝 월드 리포트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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