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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이 하기에 꿀알바죠."

흔히들 쿠팡 물류창고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하면 이런 말들을 듣고는 한다. 과연. 제3자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날짜도 사실상 자기 마음대로 골라서 나갈 수도 있고, 그래도 명색이 대기업이라고 임금 체불이 일어난 적도 없다. 식사도 제때 챙겨주니, 요즘 이만한 '괜찮은' 알바가 없기도 하다.

나도 그런 생각으로 '알바몬' 같은 사이트에 들어가서 쿠팡 알바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동생이 그럭저럭 할 만하다고 권유한 것도 있거니와, 무엇보다도 당시 나는 시에서 주관하는 과외 사업으로는 생활이 버거웠다. 공고는 많았고, 지원 방식도 간단했다. 정해진 휴대폰 번호에 양식만 맞추어 보내고 기다리면 쿠팡 물류창고 입사 지원은 끝났다.

언제 연락이 올까 전전긍긍하던 중에 내일 출근해도 된다는 허가가 떨어졌다. 신분증과 통장 사본을 보내라는 문자도 덧붙여왔다. 나는 유경험자인 동생의 도움을 받아가며 쿠팡으로의 첫 출근 준비를 차근차근 시작했다. 준비라고 해봤자 별거 없었다. 셔틀버스는 언제 오는지, 내려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간단한 주의 사항을 듣는 정도였다.

이후 나는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잠자리에 들었다. 당시 다음 날은 주말이었지만, 쿠팡 물류창고로 향하는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아침 6시에는 일어나야 했기 때문이다.

물류창고로

다음 날 아침 6시, 휴대폰 알람이 요란하게 울렸다. 나는 힘겹게 일어나서 나갈 준비를 마쳤다.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서 근처 모란역으로 향했다. 역에는 주말 아침임에도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대부분은 등산객들이었지만, 주말 노동을 하는 노동자들도 군데군데 섞여 있었다. 덕분에 역 주변부에 서 있었던 나는 내가 타야 할 버스를 제대로 잡기 위해서 온 신경을 집중해야 했다.

다행히도 나를 태우고 갈 셔틀버스는 무사히 도착했고 나는 셔틀버스를 타고 내가 가야 할 물류창고로 향할 수 있었다. 나는 긴장 속에서 버스를 타는 사람들을 살펴보았다. 내 또래도 있었고, 부모님뻘 되어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고, 어르신이라고 부를 만한 나이의 사람들도 버스에 올랐다.

물류창고로 향하는 셔틀버스는 계속해서 다양한 사람들을 실으려고 정차했다가 출발했다. 셔틀버스가 물류창고에 도착한 것은 내가 그 버스에 오른 지 1시간 조금 지난 뒤였다.
 
쿠팡 물류센터로 전국 각지에서 모인 버스들.
 쿠팡 물류센터로 전국 각지에서 모인 버스들.
ⓒ 김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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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하고 나니 많은 인파가 거대한 물류창고 앞에 형성되어 있었다. 그들은 수 대의 버스에서 내렸는데, 각각의 버스 앞에는 그들이 어디서 왔는지 붙여져 있었다. 경기도 광주, 강원도 원주, 충청북도 충주, 서울시 노원구 등등 전국 각지에서 온 노동자들이었다. 익숙한 사람들은 출근 수속을 알아서 끝냈지만, 나는 처음이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낯설었다.

쿠팡에서 제작한 출퇴근용 앱인 쿠펀치에서 계정을 생성하고, 창고 와이파이에 연결해서 출근 버튼을 눌렀다. 그것으로 끝난 줄 알았는데, 사람들이 몰려 있는 책상 앞에서 관리자로 보이는 사람이 내 이름을 크게 불렀다.

"김상현씨 계세요? 김상현씨?"

갑자기 이름이 불린 상황에 당황해서 나는 말을 더듬으면서 "네?"라고 대답하면서 우물쭈물 앞으로 나갔다. 그러자 나를 불렀던 관리자는 명부에 서명하고, 각종 계약서에 사인해야 한다고 알려줬다.

쿠펀치 앱으로만 출근 처리를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수기 출퇴근 명부가 따로 있었다. 나는 이것 또한 작성해야 했다. 명부는 남성과 여성 두 가지로 나누어져 구분되어 있었는데, 처음 온 내가 그것을 알 수 없었기에 여성명부에서 이름을 찾으려고 부단히 노력하다 답답해하는 관리자에게 이끌려 남성명부에서 이름을 겨우 찾고 서명하기도 했다.

다음으로 '근로계약서'와 '안전교육 이수 확인서' 등을 작성했다. 나는 이 경험을 신선하게 받아들였다. 지금까지 알바 하면서 내가 '스스로' 근로계약서를 확인하고 작성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이전에 했던 알바들은 근로계약서가 있기는 했지만 모두 사장님이 '알아서' 보관해주는 그런 식이어서 실물을 본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투입
 
쿠팡 물류센터 전경.
 쿠팡 물류센터 전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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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9시가 가까이 다가오자 좀 더 높아 보이는 관리자가 사람들이 몰려 있는 사무실로 들어왔다. 그는 사람들을 주목시키더니 오늘 해야 할 작업과 관련된 여러 주의사항을 말했다. 마지막에 물건 처리량이 적다고 오늘은 좀 열심히 부탁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후 기존 노동자들은 일어나 물류창고 일을 하러 갔고, 나를 비롯한 신규노동자들은 사무실에 그대로 남았다.

마침 앞자리에 앉아있었던 나는 주위를 둘러볼 수 있었다. 많은 수의 인원이 사무실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런 나를 본 옆자리 사람은 "이 정도면 많은 것은 아니다"라고 귀띔해주었다. 일용직 아르바이트를 많이 고용하는 쿠팡 물류창고의 특성상 매일 이렇게 새로운 사람이 많은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었다.

2020년, 코로나19의 진원지로 쿠팡 창고가 지목되었다. 내가 다니던 물류창고에서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주변에서는 우리 창고의 신규 지원자가 확 줄었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실제로 신규 지원자들이 줄어들었지만, 신규 노동자들은 여전히 적지 않은 규모였다. 그리고 대부분 기존에 있던 아르바이트 자리에서 잘리거나, 운영하던 가게가 망해서 급하게 돈이 필요해서 온 사람들이었다.

사무실에 남은 신규 노동자들에게 관리자는 점심시간은 언제인지 등 몇 가지의 추가 주의사항을 들려주었다. 휴대폰은 작업 현장으로 반입할 수 없고, 출퇴근 명부를 제대로 기록하지 않으면 일급 지급이 늦어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 등등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 바로 관리자의 인솔 아래 나는 주변에 있던 사람들과 함께 물류창고 현장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창고 내부는 매우 넓었고, 많은 물건들이 구획 별로 나뉘어 있었다. 지게차들이 돌아다니고, 컴퓨터 앞에는 여러 사람이 전산을 처리하고 있었다. 물건을 팔레트 위에 쌓고 쟈키라고 불리는 팔레트를 손으로 끌 수 있는 도구를 사용해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관리자는 창고 안으로 들어온 우리에게 다시 한번 주의 사항을 환기시키고, 각각의 작업 파트에 사람들을 배정했다.

육체노동을 경험하다

나는 '2차 분류'라고 불리는 파트에 배정받았다. 하는 일은 간단했다. 'QA'라고 불리는 파트에서 전산 처리된 물건을 가져와서 항목별로 분류된 팔레트 위에 쌓는다. 팔레트가 어느 정도 채워지면 그것을 쟈키로 빼서 랩으로 감싸고 지게차가 처리할 수 있도록 지정된 자리에 가져다 두면 되는 일이었다. 나는 첫날에 전산 처리된 물건을 팔레트에 분류하는 작업을 맡았다.

전산 처리된 물건을 내가 가지고 있는 2단 혹은 1단짜리 운반 카트에 실은 다음에 알맞게 팔레트 위에 분류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간단해 보였지만 의외로 많은 힘이 드는 일이었다. 간혹 무거운 물건이 나와 허리에 무리를 주기도 했고, 왔다 갔다 하면서 물건을 분류하는 것이 지루했기 때문에 시간을 버티는 것도 고되었다.

이후 내가 다른 아르바이트를 구하지 못하고 쿠팡 일용직을 주말마다 나가게 되었을 때는 나머지 작업을 담당하게 되었다. 팔레트 위에 쌓인 물건을 정리하고 랩으로 칭칭 감는다. 마치 먹고 남은 음식을 랩으로 감싸는 작업을 하는 기분이었다. 물론 내가 랩을 감아야 할 것은 먹고 남은 음식 부스러기가 아니라 내 키만큼 쌓인 여러 잡화였지만.

팔레트 위에 올라간 물건들을 꼼꼼하게 랩으로 감싸기 위해서는 우선 허리를 숙여서 팔레트 끝에 랩을 묶어야만 했다. 그리고 보통 사람 팔뚝보다 더 두꺼운 랩을 두 손으로 들고 허리를 숙여 파레트 주변을 빙빙 돌기 시작한다. 그러면 팔레트 밑단을 랩으로 감싸게 되는데 이런 식으로 점점 허리를 펴고 팔을 올려가면서 팔레트 위에 올려진 물건 전체를 랩으로 칭칭 감았다. 이것을 사람들은 '랩을 친다'라고 불렀다.

이 작업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지게차가 팔레트 위에 있는 물건을 나를 때 물건이 다 쏟아지기 때문에 잘못하면 몇 번이고 랩을 다시 감는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랩으로 감겨진 팔레트는 쟈키를 동원해 정해진 장소에 두고 와야만 했다. 이러다 보니 처음 랩을 여러 개 치던 다음 날에는 허리가 아파서 학교도 제대로 못 가고 하루 종일 누워있고는 했다.

그리고 이런 경험을 통해서 비로소 육체노동이 왜 중요한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동안 추상적으로 '고생하시는구나'라고만 생각했던 것을, 직접 경험해보니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물건 하나를 위해 수십 명의 사람이 붙어 많은 일을 해야 한다는 걸 현실에서 직접 체험해보게 된 것이다.

근무시간은 8시간, 하지만

"점심 드시러 가세요!"

관리자가 외치자 사람들이 우르르 달리기 시작했다. 관리자가 다친다고 말려도 사람들은 계속해서 달렸다. 쉬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 탓이었다. 점심시간은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유일하게 앉아서 쉴 수 있는 시간이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점심 메뉴는 그저 그런 반찬들뿐이었지만, 아침 일찍부터 움직여왔기에 나는 금세 식판을 다 비워버렸다. 그리고 휴대폰 알람을 몇 개 확인하니 점심시간은 금방 끝나버렸다. 앞으로 여기 온다면 점심시간 때 좀 더 빨리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을 배우게 되었다.

오후 작업도 오전 작업과 같았다. 오전 4시간 동안 했던 일을 오후에도 4시간을 했다. 오후 5시 50분대가 되자 관리자가 슬슬 마무리하라고 소리쳤고, 나는 주변 사람들을 도와 일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관리자는 사람들을 불러 모으더니 오늘 미흡했던 사안들을 지적했다. 분명 큰 목소리였지만, 간만에 몸을 써서 그런지 내 귀에는 잘 들어오지 않았다.

이후 출퇴근 명부에 다시 사인하고, 쿠펀치 앱으로 퇴근 처리를 했다. 그리고서는 셔틀버스에 올라 집으로 향했는데 모든 긴장이 그때서야 풀렸는지 버스 안에서 잠들고 말았다. 집에 도착하니 오후 8시가 되었다. 실질 노동 시간은 8시간 정도였지만 출퇴근 시간을 포함하니 12시간 넘게 쿠팡 아르바이트를 위해서 써야만 했다. 누군가는 시간 낭비라고 했지만, 나는 그 시간 낭비를 2년 동안, 학기 중에는 매 주말마다 방학 때는 주 3~5일을 하게 되었다.

다음 날 나는 전날 한 쿠팡 아르바이트 일급을 받았다. 2018년 당시 일일 최저임금은 6만 원이 조금 넘었지만, 고용보험비 등 일부를 공제하고 나니 5만 9천 원대였다.

태그:#노동, #쿠팡, #아르바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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