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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때는 오리털 패딩이 유행이었다. 고등학생이 되자 거위털 패딩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오리털보다 거위털이 보온성이 높고 가볍다는 이유였다. 

겨울이 되면 우리는 교복 위에 등산복을 입고서, 산이 아니라 학교로 향했다. '북쪽 얼굴'이라는 브랜드가 가장 흔했고 비쌌다. 검은색 패딩이 가장 인기가 많았다. 패딩에도 레벨 같은 게 있었는데 700 Fill, 800 Fill 이런 식이었다. 필파워는 복원력을 뜻하는데 숫자가 올라갈수록 복원력이 우수하다. 더 따뜻하다는 뜻이다.

부유층 친구들은 당연히 복원력 수치가 높은 패딩을 입고 다녔다. 나는 '자연환경보호 옹호론자'라는 뜻을 지닌 브랜드의 패딩을 구매했다. 덕분에 떨지 않고 겨울을 보냈다. 이 게 시작이었다. 그 후 나는 2년에 한 번 꼴로 구스다운 제품을 구매했고 10번이 넘는 겨울을 구스다운과 함께 보냈다.

 
Fill Power에 따른 복원력
▲ 복원력 Fill Power에 따른 복원력
ⓒ Sheet Mark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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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날씨가 싸늘해져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겨울이 온 것이다. 월동 준비를 위해 옷장을 뒤적였다. 발열내의, 스웨터, 니트도 보이지만 패딩코트와 패딩점퍼로 가득하다. 채식 이전에는 옷을 고를 때 디자인과 색깔을 봤다. 채식 이후에는 보이지 않던 게 보이기 시작했다. 바로 소재다.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관심을 갖게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멋을 포기한 건 아니다.

겨울 패딩 겉감과 안감의 소재는 대부분 나일론이나 폴리에스터다. 우리가 흔히 아는 '슥' 소리가 나는 비닐 같은 소재다. 패딩이 따뜻한 이유는 겉감 때문이 아니다. 보온성 비밀은 충전재에 있다. 충전재에 사용되는 소재는 오리털, 솜, 거위털 등이다. 오리털 패딩은 충전재로 오리털을, 구스 다운은 충전재로 거위털을 사용한다.

그 털은 어디서 났을까

패딩 한 벌당 10~15마리 털이 들어간다. 이 어마어마한 충전재 양은 어떻게 생산될까? 반려동물 미용을 상상하면 안 된다. 사람이 손으로 거위와 오리의 털을 뜯는다. 죽은 동물 털을 뜯는 게 아니다. 산 채로 뜯는다. 오리와 거위는 생후 10주부터 솜털을 뜯기기 시작한다. 사료를 강제로 먹이고 털이 다시 나면 다시 뜯긴다. 고통의 연속이다. 사람으로 치면 살아있는 사람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잡아 뜯는 것과 같다. 머리카락이 뽑히는 고통이 상상되는가? 거위라고 고통을 느끼지 못할까? 덜 아플까? 이는 생산이 아니라 착취이자 학대다.

 
옷 생산을 위해 털이 뽑힌 거위
 옷 생산을 위해 털이 뽑힌 거위
ⓒ PE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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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년에 하나 꼴로 구스다운 패딩을 구매했다. 10년간 총 50~70마리의 털을 구매했다. 50~70마리 고통의 가해자였다. 진실은 나의 무지 속에 가려져 있었다. 진실을 알게 되고 다시 옷장 안 구스다운을 보자, 들리지 않았던 비명이 들리기 시작했다. 고통의 날갯짓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따뜻하게 보냈던 그 모든 겨울에 동물들의 고통은 패딩 겉감에 가려졌고 자본주의에 가려졌다. 나는 동물을 입고 있었다.

비건이 되고서 명품 가죽지갑과 가방 그리고 구스다운 패딩을 처분했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참 멋진 결단이라고 생각했다. 부끄럽게도 아직 난 처분할 용기는 없다. 내게 채식이 과도기가 필요했듯 비건 패션에도 과도기가 필요하다. 기존에 있던 구스다운 패딩을 버리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절대' 구스다운을 구매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실제 옷장에 있는 옷의 택
 실제 옷장에 있는 옷의 택
ⓒ 이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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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다운뿐만 아니라 동물의 털과 가죽이 사용된 제품을 구매하지 않겠다. 기회가 되면 가지고 있던 구스다운 패딩들도 의미 있게 처분할 것이다. 올 겨울에는 구스다운을 입을 때마다 애도하고 그간 무지 속에 내 손으로 행해졌던 동물학대를 반성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애도와 반성이 삶에 이어질 수 있도록 고민하고 실천할 것이다.

오늘도 멋지고 아름다운 모델들은 구스다운 패딩을 입고서 우릴 유혹한다. 유혹에 넘어가는 순간, 비명은 커지고 고통의 날갯짓도 늘어난다. 부디 그 유혹에 넘어가지 않길 바란다. 패딩 속에 가려진 동물의 고통을 봐주길 바란다.

※ 이외 동물 착취 소재
- 가죽, 스웨이드, 악어가죽, 양모(wool), 실크, 캐시미어, 알파카, 양털(Fleece) 등

- 플리스(후리스) 같은 경우 예전에는 실제 양털로 만들어졌는데, 요즘은 퍼 라이크 소재 폴리에스터로 만들어지는 플리스가 많다. 소재를 보면 구분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 계정 brunch.co.kr/@rulerstic에 동일한 글을 발행하였습니다.


태그:#구스다운, #겨울옷, #구스다운패딩, #패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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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에게 덜 폐 끼치는 동물이 되고자 합니다. 그 마음으로 세상을 읽고 보고 느낀 것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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