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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육체적 에너지가 충만하던 시절에는 가지지 못한 것들에 대한 갈망이 컸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의 소중함을 뒤늦게 깨닫고 그리워한다.

아버지의 월급봉투를 먹고 자랄 때는 그의 고단함을 몰랐다. 내가 회사에 두 무릎을 내준 후에야 아버지 어깨에 올랐던 나를 돌아본다. 월급날 노란 봉투에 통닭을 들고 퇴근하시며 우리를 부르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그립다.

삼시세끼 누구나 밥을 챙겨 먹고 사는 줄 알았다. 아버지의 월급봉투의 두께가 달라져도 엄마는 가족을 위해 세끼를 준비해야 했다. 가사노동과 가난이 주는 육체적 심리적 무게를 안고 당신의 청춘을 양념 삼아 요리하던 엄마의 고단함을 몰랐다. 엄마가 직접 구운 김에 밥 세 그릇을 먹던 그때의 한 끼가 그립다.

80년대 코미디 프로에서는 물을 사 먹는 일이 콩트 소재가 되었고 온 가족이 웃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온종일 친구들과 학교 운동장에서 뛰어논 후, 거침없이 수도꼭지를 틀고 배부르게 물을 마시던 시절이 그립다.

방학마다 찾던 외가. 밤하늘에 쏟아지던 별과 메뚜기를 잡다 잠시 올려다본 미세먼지 하나 없던 가을 하늘을 컴퓨터 바탕화면처럼 당연하게 생각하던 시절이 그립다. 여름밤 외할머니가 삶아준 옥수수와 겨울밤 새 모이 주듯 하나하나 까서 손자손녀 입안에 넣어주던 군밤 맛이 그립다.

누군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천 마리의 종이학을 접고, 네잎크로바를 찾아 헤매던 시절의 고단함이 그립다. 스마트폰으로 쿠폰을 토스하며 생일을 축하하는 대신 좋아하던 가수의 테이프와 LP를 직접 건네던 시절의 불편함도 그립다.

대학교 과 편지함에 수북이 쌓여있던 전국 각지에서 온 학보와 먼저 입대한 동기들의 편지만큼이나 켜켜이 쌓여있던 스무 살의 나른했던 시간이 그립다. 단체 미팅에서 내가 집은 그 립스틱이 그녀의 것이기를 열망하던 찰나의 순간과 더 빠르게 지나가 버린 내 청춘이 그립다. 심지어 군대에서 축구 하던 어떤 날도 그립다.

병원 복도에서 본 엄마의 어깨는 굽어 있었고, 머리는 백발이었다. 첫 월급으로 산 빨간 내복을 검은 머리에 곧게 선체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던 엄마의 젊은 모습이 그립다.

병장이 된 것만큼 기뻤던 팀장이 되던 날과 좌천으로 괴로워하던 날들이 버무려진 회사 생활도 언제가 그리워질까?

그리고… 2020년의 끝자락에서 이런 것들을 그리워할 줄 몰랐다. 안부를 가장해 치부를 드러내려는 친척들의 모임이. 생각이 다른데도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야만 하는 회사 사람들과의 회식이. 사회생활이라는 명목으로 얼굴을 내밀던 공허 하기만 한 연말모임을 그리워 할 줄 몰랐다.

그래서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 사랑하는 가족들, 오래된 친구들과의 모임이 더욱 그립다. 아니 그저 왕복 3시간이 넘는 출퇴근 길을 마스크 없이 다니던 일상이 그립다.

태그:#일상의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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