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프로축구 K리그는 젊은 지도자들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전북 현대를 최강의 왕조로 발돋움시키며 오랫동안 K리그를 지배해왔던 최강희 감독이 지난해부터 중국으로 떠났고, 베테랑 지도자들이 하나둘씩 세월의 흐름에 밀려나면서 그 빈 자리를 주로 40대의 젊은 감독들이 메웠다. 올해 K리그 1,2를 합쳐 22개구단 중 무려 19개 팀을 70년대생 감독들이 이끌었다. K리그 1,2 모두 김기동(포항)과 남기일(제주), 70년대생이자 40대 감독들이 나란히 첫 감독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누린 것은 상징적인 장면이다.

김기동 감독은 지난해 4월 최순호 전 감독의 후임으로 포항 지휘봉을 잡은 뒤 한정된 구단 지원과 스타급 선수 부재 속에서도 첫해 4위, 2년차에 3위라는 우수한 성적을 기록했다. 전북과 울산이라는 강력한 양강 구도에 가려져서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지만, 이들을 제치고 리그 최다득점(56골)에 오를만큼 화끈한 공격축구나, 고비마다 양강의 발목을 잡는 우승경쟁의 '캐스팅보트' 역할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 성과를 인정받아 김기동 감독은 K리그 역사상 최초로 '3위팀에서 감독상 수상자'가 배출된 최초의 사례로 이름을 올렸다. 김 감독은 포항에서만 10년 넘게 선수생활을 하며 2007 K리그 우승, 2008 FA컵 우승, 2009 AFC 챔피언스리그 등 수많은 영광의 순간을 함께한 포항의 레전드이기도 하다.

'승격 전도사' 남기일 감독은 광주 FC(2014), 성남 FC(2018)에 이어 올해 제주 유나이티드까지 서로 다른 세 팀에서 모두 승격을 이루어내는 최초의 기록을 세웠다. 지난 2019시즌 충격의 강등을 당했던 제주는 당시만 해도 1부 복귀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다. 하지만 남기일 감독을 영입한 이후 초반부터 파죽지세를 이어가며 2위 수원FC를 6점차로 제치고 1위를 차지하여 강등 1년 만에 K리그2 우승-다이렉트 1부 승격을 확정지었다.

남기일 감독은 광주 FC 시절에는 승강 플레이오프를 거쳐 승격했고, 성남 FC 땐 2위를 차지했으나 당시 1위인 아산 무궁화 축구단이 승격자격 박탈로 자격을 넘겨받은 것이었기에 온전하게 2부 정상을 차지하며 승격시킨건 이번이 처음이다. 제주가 알찬 선수 영입으로 1부리그 시절과 비교해도 크게 손색없는 전력을 유지해준 구단의 지원도 있지만, 강력한 전방 압박과 유기적인 조직력을 강조하는 남기일 감독의 축구 스타일도 제주와 잘 맞아떨어졌다는 평가다.

이밖에도 지난해 승격에 이어 광주FC를 사상 첫 K리그1 상위스플릿(6위)까지 이끈 박진섭 감독은 최근 FC서울행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K리그2 2위로 플레이오프를 통하여 수원FC를 5년만에 승격시킨 김도균 감독, 시즌 개막을 앞두고 전임 안드레 감독의 이탈로 갑작스럽게 감독대행 역할을 물려받았지만 팀을 5위로 이끌며 당당히 대구 FC의 정식 사령탑 자리를 꿰찬 이병근 감독, 부임 이후 극도의 부진에 빠져있던 수원과 인천을 각각 강등 위기에서 구해낸 두 '소방수' 박건하 감독과 조성환 감독 등도 주목받는 성과를 올린 70년대생 지도자들이다. 이들은 비록 감독 경력이 긴 편은 아니지만, 올해의 성과를 통하여 그동안 물음표가 붙기도 했던 지도력을 확실히 입증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스타플레이어 출신 지도자'의 아쉬운 성적

반면 축구팬들의 큰 관심을 받았던 '스타플레이어 출신 지도자'들은 올시즌 대체로 아쉬운 성적표를 남겼다. 황선홍 대전 감독은 구단과 갈등설에 휩싸이며 시즌 중반이던 9월 초에 갑작스럽게 석연치 않은 모양새로 사임했다. 황 감독이 재임할 때까지 대전과 1위 제주와의 승점차는 5점에 불과했으나, 이후 시즌종료까지 승점차는 오히려 21점차까지 벌어지며 4위로 마쳤고 승강 플레이오프에서는 경남FC와 무승부에 그치며 결국 승격에 실패했다.

FC서울의 터줏대감으로 불리던 최용수 감독도 지난 7월 극심한 성적부진에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서울은 이후 김호영 감독대행을 거쳐 현재는 이원준 대행 체제로 아시아 챔피언스리그를 치르고 있지만 성적은 저조하다. 2002 한일월드컵의 주역이자 K리그 우승경력까지 보유하여 '스타 감독의 성공사례'로 자주 회자되던 황선홍-최용수 감독의 동반 몰락은 축구팬들에게도 큰 충격을 안겼다.

또다른 40대 스타 출신 감독의 기수였던 김남일(성남)과 설기현(경남), 두 초보 감독의 첫 시즌에 대한 평가도 미묘하게 엇갈린다. 김남일 감독은 올시즌 막판까지 1부리그 잔류를 놓고 살떨리는 승강 경쟁을 펼쳐야 했고, 설기현 감독은 경남을 끝내 1부로 승격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김남일 감독은 팀이 후반기 극도의 부진에 빠진 상황에서 본인도 감정조절에 실패하여 심판에게 과도한 항의를 하다가 퇴장당하여 벤치를 비우는 등 미숙한 모습을 드러냈다. 설기현 감독은 시즌내내 경남이 롤러코스터 같은 모습을 거듭하며 선수들의 능력에 맞는 축구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축구철학을 구현하기 위하여 팀을 실험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그나마 성남과 경남 모두 유종의 미를 거두며 다음 시즌 발전에 대한 여지를 남겼다는 것은 희망적이다. 성남은 파이널라운드 막판 2연승으로 거짓말 같은 1부리그 잔류의 드라마를 이뤄냈다. 경남은 정규시즌 승점차가 15점이나 나며 상대전적도 전패에 그쳤던 수원FC를 상대로 최종 승강플레이오프전 막판까지 리드를 유지하다가 뼈아픈 PK 허용으로 다잡은 승리와 승격을 놓쳐야했다. 하지만 설기현 감독의 축구가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여 경험부족만 보완하면 더 좋은 팀이 될수 있다는 가능성을 봤다는 점에서 실망할 시즌만은 아니었다.

오늘날 K리그에서 젊은 감독들의 역할은 과거처럼 단순히 단기적인 성과를 내는 데 주력하는 것을 넘어선 지 오래다, 선수단-프런트와의 소통, 젊은 선수 육성, 팀의 미래 비전 제시, 자신만의 축구철학과 전술적 혁신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입체적 역량'을 필요로 하고 있다. 과거의 성공 방식이나 선수 시절의 명성-경험에 안주하지않고 끊임없이 변화하고 공부하려는 지도자들이 매년 치열해지는 지도자들의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K리그감독 70년대생사령탑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