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5 11:59최종 업데이트 20.12.15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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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치러진 대학수학능력시험 한국사 20번 문제를 비판한 조선일보 기사는 어처구니없었다. 지문에 나온 노태우 전 대통령의 연설을 두고,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이라고 단언하고 이를 근거로 수능문제인지 정권 홍보인지 모르겠다고 비판한 것은 검증을 도외시한 안일과 섣부른 예단이 빚어낸 사고였다.

남북의 유엔 동시 가입이 어느 때 일이었는지만 확인했더라도 문재인 정권의 홍보용 문제라는 억측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학수학능력시험 문제조차 정권 홍보용이냐고 나무란 조선일보는 오히려 얄팍한 역사 인식과 문재인 정부를 향한 막연한 적대감만 드러낸 꼴이 되고 말았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 수행 지지율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정당 지지율이 3주 연속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와 법무부-검찰 갈등, 전셋값 폭등과 주거 불안, 하루 확진자 1천 명을 오가는 코로나19 대유행과 경기 침체 우려 등의 악재들이 지지율 하락의 요인이다.

국민이 속속들이 알지 못하는 사실을 취재로 밝히고, 정부의 어두운 면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것은 언론의 존재 이유다. 그러나 먼저 살펴야 할 것은 비판과 비난, 진실과 왜곡의 경계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연설을 두고 문재인 정권의 홍보용 수능 출제라는 지적은 비판이 아니라 비난이고 진실이 아니라 왜곡이다.

13평 논란

지난 11일 문재인 대통령이 경기도 화성 동탄 행복주택 단지를 찾은 자리에서 한 발언을 두고 일부 언론이 사실과 다른 기사를 내보냈다. 대통령이 44㎡ 투룸형 아파트를 둘러본 뒤 '신혼부부에 아이 한 명이 표준이고, 어린아이면 두 명도 (생활이) 가능하겠다'라고 한 질문형 발언은 진의의 확인도 없이 '서민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발언'으로 소개됐다.

<13평 임대주택 본 文 "부부에 아이 둘도 살겠다"... 野 "그게 할 소리냐>(중앙일보),  <文대통령, '13평' 보고 "부부에 어린이 2명도 가능하겠다?">(뷰스앤뉴스) 등 일부 언론은 변창흠 국토부 장관 후보자의 '4인 가족이 사는 것도 가능하다'라는 자랑에 대통령이 맞장구를 쳤다고 보도했다.

공개된 영상을 보면 대통령은 좁지만 4인 가구도 살 수 있다는 국토부 장관 후보자의 말에 "가족이 많아지고 소득이 높아지면 좀 더 나은 주택의 욕구가 생겨난다"라며 "굳이 자기가 자기 집을 꼭 소유하지 않더라도 이런 임대 주택으로도 충분히 좋은 주택으로도 발전해 갈 수 있는 주거사다리 그런 것을 잘 만들어야 될 것 같다"라고 당부했다.

대화의 맥락은 무시한 채 부분만 떼서 13평 공공임대 아파트에 4인 가족도 충분히 살 수 있다는 발언을 했다는 식의 제목을 달아 기사를 내보낸 건 왜곡이다. '그게 할 소리냐'는 볼멘 여론과 '부동산값 폭등으로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부어'보자는 문재인 정부를 향한 적대감이 앞서지 않았다면 만들어질 수 없는 기사들이다. 있는 사실조차 정해진 언론사의 논조에 짜 맞추는 고질병.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퇴임 후 양산 사저로 간다고 한다. 경호동을 짓는 데만 62억 원의 세금이 들어간다. 이 정권 사람들 중에 공공임대에 살겠다는 사람은 한 명도 못봤다. 자기들은 공공임대에 살기 싫으면서 국민들은 공공임대에 살라고 한다. 그래서 이런 말들이 나오는 거다. "평생 공공임대나 살라고?" "니가 가라 공공임대"
- 유승민 전 의원 페이스북 글 일부
 
언론의 의도된 왜곡을 비판하기는커녕 일부 정치인은 이에 편승해 비난하기 급급했다.

유승민 전 의원은 페이스북에 "니가 가라 공공임대"라는 장문의 글을 통해 대통령의 발언을 비난했다. '대통령은 퇴임 후 62억 경호동이 있는 사저로 가며, 공직자 누구 하나 간다는 사람 없는 공공임대 주택에 국민들만 등 떠밀고 있다'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도 같은 비난에 가세했다. (대통령은) 정책 실패 인정은커녕 13평 임대 아파트를 보고 4인 가족도 살겠다고 하셨는데, 퇴임 후 795평 사저를 준비하시는 상황에서 국민께 하실 말씀은 아닌 것 같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오전 경기 화성시 LH 임대주택 100만호 기념단지인 동탄 공공임대주택에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현 LH 사장)와 함께 임대주택 단지 모형을 보고 있다. ⓒ 연합뉴스

 
그러나 퇴임 후 대통령 사저는 공공임대 주택 보급과는 하등 아무런 관련이 없다. 795평의 사저와 62억 원의 경호동 건설이 위법한 일이라면 법의 심판을 구해야 할 일이고, 공직자가 공공임대에 살지 않는다고 해서 공공임대 주택 보급을 살기 싫은 사람 등 떠미는 정책 정도로 희화화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795평 사저나 62억 원의 경호동, 공직자 사는 곳까지 끌어와 서민들의 공공임대 주택과 대척점에 세우는 건 망신 주기 의도다. 언론이 사실을 왜곡하고, 정치가 왜곡된 뉴스에 비난을 더 얹어 여론을 호도하는 것.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지만, 매번 이런 구태를 반복하면서도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니 신뢰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지난 대선 바른정당 대통령 후보로 나섰던 유승민 전 의원은 청년층 1~2인 가구 주택 15만 가구 공급과 공공실버 임대주택 5000가구 공급, 취약계층에 임대 주택 시세의 80%로 공급을 공약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도 대통령 후보 당시 매년 공공임대주택 15만 가구를 공급하겠다고 공약했다.

오래된 일도 아닌 불과 3년 전의 일이다. 공공임대 주택 공급으로 서민의 주거난을 해소하겠다고 모든 후보가 손을 맞잡아 놓고, 3년이 지난 지금 대통령의 공공임대 주택 방문을 두고 '니가 가라'니. 이런 주장을 누가 정당한 비판이라 하겠나?

공공임대주택

공공임대 주택도 국민 주거의 한 방편이다. 집 없는 국민이 조금 더 여유 있고 편안하게 머무르면서 내 집 마련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정치와 정치인의 할 일이다. 공공임대 주택 보급이 가기 싫은 사람 등 떠미는 일이라면 유승민 전 의원이나 안철수 대표는 지난 대선에서 누구의 등을 떠밀려고 실버 임대주택 5000가구 보급, 15만 공공임대 주택 건설을 공약했는지 물어보고 싶다. 또, 차기 대선을 염두에 두고 있는 두 사람이 다가올 대선에서는 공공임대 주택 보급 말고, 가구당 아파트 한 채씩 주겠다는 허무맹랑했던 공약이라도 흉내 낼 생각인지도 궁금하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박수 받기 어렵다. 전셋값 고공행진에 국민들의 주거난은 오히려 악화일로에 있다. 그래서 비판할 수 있고, 정치적 대안 모색도 필요하다.

그러나 공공임대 주택을 두고 누구도 가지 않을 곳이라는 식으로 주장하는 건 정당한 비판이 아니라 일부 언론과 정치인이 만들어 낸 가짜 뉴스에 가깝다. 내 집을 가지지 못한 국민의 주거 공간에 낙인을 찍고 고가 아파트를 넘볼 수 없도록 철조망을 치는 격이다. 국민과의 공감 능력이 이 정도라면 대통령 후보는커녕 정치판에 나서지 않는 게 역사 발전에 도움 되는 일이란 생각마저 든다.

문재인 정권에 대한 태생적 적대감이 없었다면 대통령의 발언이 언론에서 이렇게 왜곡될 수 있었을까. 대통령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이 없었다면 아무리 야당 정치인이라도 왜곡된 뉴스에 기대어 '니가 가라 공공임대'라고 막말을 할 수 있었을까. 일부 언론의 왜곡과 정치인의 막나가는 비난이 도를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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