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25 14:46최종 업데이트 20.12.25 14:46
  • 본문듣기
<삶을 위한 수업>(인터뷰·글 마르쿠스 베른센, 기획·편역 오연호)을 읽은 독자들이 '행복한 배움', '행복한 우리'를 만들어가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차례로 연재합니다. 이 글은 독후감 대회 우수상 수상작입니다.[편집자말]
덴마크 아이들처럼 살아간다면, 내 삶은 어땠을까? <삶을 위한 수업>을 읽으면서 든 생각이었다. 덴마크에서 태어나 덴마크의 교육 과정을 따라 성장했다면 지금의 나와는 다른 아이가 되어 있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은 한국이었기 때문에 덴마크에서와 같은 교육을 받으며 성장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상상하긴 힘들었다. 다만 덴마크에서는 시험을 최소한으로 보고 8학년까지는 시험 점수를 받지 않는다는 점이 막연히 부럽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질문을 바꾸어보았다. 내가 지금 덴마크로 가서 덴마크 고등학생이 되면 어떨까?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한국의 교육 과정을 따라 성장해온 나로서는 적응하기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정된 시험에 맞춰 공부해온 그동안의 방식에 큰 불만을 가진 적이 없었고, 그래서 덴마크 선생님들의 방식이 오히려 번거롭게 느껴질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왜 공부를 해야 하느냐'는 아이, 말문이 막혔다 
 

얼마 전 외삼촌의 부탁을 받아 사촌동생의 공부를 가르쳤다. ⓒ pixabay

 
이런 생각이 바뀐 것은 얼마 전 외삼촌의 부탁을 받아 사촌동생의 공부를 가르쳐보고 난 후였다. 외삼촌은 중1인 사촌동생이 코로나19로 온라인 수업을 위주로 듣다보니 공부를 어려워한다면서, 내게 시험 준비를 도와달라고 부탁하셨다.

코로나19 때문에 학원에는 갈 수 없고, 평소 잘 따르는 내가 가르쳐준다면 사촌동생도 공부에 흥미가 생길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내 공부에 지장이 될까봐 잠시 고민했지만 그래도 중학교에 막 입학해 코로나19라는 상황에 직면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동생을 모른 척할 수 없어 주말마다 공부를 봐주겠다고 약속했다.

그 주 주말, 나는 약속대로 외삼촌 집으로 갔다. 사촌동생은 내가 자기랑 놀러 온 줄 알고 무척 좋아했다. 외숙모가 형이 공부를 가르쳐주러 왔다고 하자 실망한 기색이 가득했다. 책상에 나란히 앉은 우리 사이에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다.

"형 우리 게임 30분만 하고 공부할까?"

나는 잠깐 마음이 흔들렸지만 고개를 저었다.

"안 돼. 너 시험 얼마 안 남았잖아."

동생은 평소와 같지 않은 내 모습이 입술을 삐죽였다. 나는 책꽂이에서 동생의 국어 교과서를 펴보았다. 거의 필기가 되어 있지 않았다. 막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은 책상에 엎드려서 내가 교과서를 들춰보는 모습을 쳐다볼 뿐이었다. 나는 시험 범위에 들어가는 소설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 소설 무슨 내용인지 기억나?"

동생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부드러운 말투로 다시 말했다.

"그럼 형이랑 같이 읽어볼까?"

동생은 대답 대신 한숨을 쉬었다.

"공부를 왜 해야 되는지 모르겠어. 이런 소설을 내가 왜 읽어야 돼?"

동생은 정말 궁금하다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잠시 고민한 후 답했다.

"시험을 잘 봐야 하니까."
"시험은 왜 잘 봐야 하는데?"
"그래야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으니까."
"좋은 대학은 왜 가?"
"좋은 직업을 가지려고."
"좋은 직업을 왜 가져야 돼?"
"그래야 살기 편하니까."
"왜 편하게 살아야 하는데?"
"......"


말문이 막혔다. 동생의 말에 더 이상 대답을 하기가 힘들었다. 다만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게 동생이 공부를 하지 않는 이유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자 문득 <삶을 위한 수업>에 나온 선생님들의 교육 철학이 떠올랐다.

특히 수학을 가르치기에 앞서 학생들에게 실생활에서 수학이 얼마나 유용한지, 수학이 얼마나 재밌는 것인지 알려준다는 대목이 계속 생각났다. 그러자 문득 이런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덴마크 선생님처럼 나도 한번 해볼까?

그저 환경을 탓해선 안 될 일이었다
 

'삶을 위한 수업' 책 표지, 마르쿠스 베른센 (지은이),오연호 (편역) ⓒ 오마이북

 
나는 사촌동생의 흥미를 끌 만한 걸 생각해보았다. 역시 게임이었다. 내가 컴퓨터를 켜서 게임을 실행하라고 하자, 동생은 같이 게임을 할 거라 예상했는지 기분이 좋아져서 컴퓨터를 켰다.

게임이 실행된 후 나는 사촌동생이 키우고 있는 캐릭터의 퀘스트 목록을 살펴보았다. 동생은 한 퀘스트를 가리키며, "이 퀘스트를 해결하지 못해서 캐릭터 레벨이 계속 그대로야"라고 말했다. 나는 마우스를 움직여 그 퀘스트를 위한 던전이 있는 마을로 동생의 캐릭터를 데리고 갔다.

"너 이 게임 세계관이 뭔지 알아?"

동생은 고개를 흔들었다.

"전쟁 영웅의 아들이었던 주인공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었다가, 아버지가 남긴 유물 속에 살고 있던 요정이 이 아들을 다시 부활시켰다는 내용이잖아. 그 부활이 이루어진 곳이 이 던전이 있는 곳이야. 그러니까 부활의 목걸이는 여기서 전투를 벌이면서 찾으면 돼."

동생이 눈을 반짝였다.

"네가 게임 처음 시작할 때 나오는 세계관에 대한 글을 유심히 읽어봤으면 금방 해결할 수 있는 퀘스트였어. 그리고 세계관에 대한 글을 열심히 읽으면 앞으로 어떤 퀘스트가 나올지, 내 캐릭터는 어떻게 키울지 고민해볼 수 있지."

동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빠졌다. 나는 컴퓨터를 끄고 국어 교과서를 펼쳤다.

"게임 세계관을 이해하는 데도 국어 능력이 필요해. 국어 공부는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니까. 게임뿐만 아니라 네가 친구들과 싸우거나 부모님과 갈등이 생겨도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이 어떻게 행동했는지 생각하면서 문제를 해결해볼 수 있을 거야. 우리 국어 공부 좀 해볼까?"

사촌동생은 여전히 눈을 깜빡이며 펜을 들었다. 나는 사촌동생의 공부를 가르쳐주며, 아까 대학에 가기 위해, 좋은 직업을 가지기 위해 공부를 하는 거라고 말했던 스스로에 대해 반성했다.

공부를 하는 이유는 사람마다 모두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덴마크의 선생님들이 학생을 위해 고민하여 제공하는 좋은 교육이 '번거로울 것 같다'고 생각한 것에 대해서도 반성했다.

한국에서 태어나 덴마크에서와 같은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이대로 시험에 맞춰 공부하는 생활을 이어가는 게 낫다고 생각한 것도 후회했다. 그저 환경을 탓해선 안 될 일이었다. 몇 년 후면 나도 성인이 되니 나의 동생들에게, 나중에는 내 아이에게 내가 받은 것과는 다른 교육이 실현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댄스 교사인 마리아네 스코루프의 조언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그냥 춤춰라. 나도 나 자신을 믿고 나의 리듬에 맞춘 삶을 살아나가야겠다고 결심했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