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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진, 토욜에 김 지도 응원하러 부산 갈래요?"

지난주 수요일 밤, 박혜림 작가(아래 림)에게 메시지가 왔다. '김 지도'는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을 부르는 말이다. 그가 한진중공업 앞에서 지난여름부터 복직 투쟁 중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정년이 코앞이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고 최근 암이 재발했다는 것도. 그에게 힘을 보태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사는 인천에서 부산은 우리나라 지도를 대각선으로 연결해야 닿는 거리. 늘 마음만 일렁이다 이내 일상에 묻혔다.

림의 연락이 반갑고 고마웠다. 바로 답장을 보냈다.

"오~ 좋아요. 가고 싶었어요!"

'김진숙 희망버스 기획단'의 이번 '리멤버 희망버스'는 참가자들이 각자 자신의 차를 타고 영도 시내를 도는 방식으로 진행한다고 했다. 차 앞뒤 보닛에 붙일 종이 현수막과 깃발을 기획단에 신청해 금요일 오후 택배로 받았다.

토요일 오전 9시 반 김포공항에 여자 셋이 모였다. 사실 림과 나를 불러 모은 것은 은유 작가였다. 우리는 은유의 글쓰기 수업에서 만났다. 몇 달 전 은유는 복직 투쟁을 시작한 김 지도위원을 인터뷰해 글을 썼다 ('잊힌 노동자들 잊지 않으려 "나의 복직은 시대의 복직"' 한겨레 2020.08.29.). 김 지도위원이 고공 크레인에서 309일이나 버틴 강철 같은 사람이 아니라, 동료들과 투쟁해 얻어낸 구내식당에서 "따뜻한 국, 따뜻한 쌀밥"을 먹고 싶어 하는, 먼저 간 동료들이 일했던 장소에 가보고 싶어 하는 그냥 사람이었다는 것에 새삼 마음이 아팠고 이내 숙연해졌다. 바로 그 '김 지도'를 응원하러 가는 길. 오랜만에 만난 은유와 림이 반가워 웃음이 절로 나왔지만, 마음만은 비장했다.

비행기 연착으로 오후 한 시에야 김해공항에 도착했다. 안내문에 나온 집결 시간이 30분밖에 남지 않았다. 점심은 편의점 김밥과 물로 때우기로 했다. 렌트카에 서둘러 종이 현수막을 붙인 뒤 온라인 신청자들의 집결지인 국립해양박물관으로 출발했다.

다리를 건너 영도로 들어서는 길. 익숙한 풍경을 보니 묘한 기억 하나가 되살아났다. 2011년 희망버스를 떠올릴 때면 내겐 어버이연합 쪽이 타고 온 '참희망버스'가 자동으로 생각난다. 당시 어버이연합 쪽 참가자들이 영도로 들어가는 길목을 막는 바람에 희망버스가 움직일 수 없었다. 모두 버스에서 내려 도보로 부산대교를 건넜다. 영도 시내를 걷고 있을 때, 한 중년 남성이 느닷없이 내 머리채를 쥐고는 놓지 않았다. 사람들이 달려들어 겨우 그를 내게서 떼어 냈다. 그런데 술 취한 아저씨가 벌인 소동이라기엔 어딘가 수상했다. 그의 손이나 몸에서 특별히 날 해치려는 의도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소란 자체가 목적인 것 같았다. 다들 그가 참희망버스를 타고 왔을 거라 수군거렸고 나도 그렇게 믿고 있다.

지금은 다행히 거리에 참희망버스는 보이지 않는다. 대신 복직 투쟁에 대한 관심과 열기도 그때만큼 뜨겁지 않은 것 같다. 9년 전엔 화장실이 부족해 출입 가능한 건물마다 줄이 길게 늘어섰었는데. 불편마저 나누며 서로를 응원했던 그때가 문득 그리웠다. 당시 밤 시간에 기꺼이 화장실을 열어 주었던 병원을 지났고, 한진중공업에서 일하다 다친 산재 노동자들 덕분에 돈을 벌어 건물을 지어 올렸다는 또 다른 병원도 지났다.
 
차량 행진 중 현수막을 붙인 차를 만날 때마다 무척 반가웠다.
 차량 행진 중 현수막을 붙인 차를 만날 때마다 무척 반가웠다.
ⓒ 심혜진, 박혜림, 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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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저기 봐!"


해양박물관이 가까워졌을 때 림과 은유가 동시에 탄성을 질렀다. '해고 없는 세상!', '일하다 죽지 않게!' 우리와 똑같은 현수막을 붙인 차들이 바로 앞에서 달리고 있었다. 드디어 동지를 만났다는 기쁨에 가슴이 두근대고 든든했다. 어디에서 온 분들일까. 차량번호판에 지역 표시가 사라진 게 처음으로 아쉬웠다.

해양박물관 앞 도롯가에는 이미 많은 차량이 출발 대기 중이었다. 본네트에 꽂힌 분홍 깃발을 보니 정말 집회 현장에 온 것 같다. 두 시가 되니 유튜브 방송이 나오기 시작했다. 정홍영 희망버스 집행위원장과 김소연 운영팀장이 사회를 봤다. 2011년 김 지도위원의 크레인 농성으로 한진중공업의 모든 해고 노동자들이 복직했지만, 경총(한국경영자총협회)과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회)의 반대로 오직 김 지도위원만 해고자로 남아 있다는 것, 그것이 자그마치 35년이나 되었다는 것, 김 지도위원의 복직을 요구하며 25일째(현 30일째) 단식 중인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있다는 것... 핸드폰 음량이 작아 승용차 뒷자리까지 정확히 들리진 않았지만, 단식 중인 분들이 보낸 영상 메시지 속 단호함만큼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4시 20분, 드디어 차들이 슬슬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장면은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되었다. 420대가 넘는 참가 차량이 영도 시내를 행진 중이라 했다. 이 묵직한 기분과 현장을 기억하고 싶어 귀를 쫑긋거리며 영상 내용을 열심히 수첩에 받아 적었다. 그런데 이게 실수였나보다. 차가 10분도 달리지 않았는데 스믈스믈 멀미를 하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수첩을 덮고 눈을 감았다.
   
국립해양박물관 앞 길가에서 대기 중인 희망차량.
 국립해양박물관 앞 길가에서 대기 중인 희망차량.
ⓒ 심혜진, 박혜림, 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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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를 바깥쪽으로 크게 도는 동안 길 곳곳에서 손팻말을 들고 서서 차량을 향해 손을 흔드는 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한진중공업 노조원들과 정당 당원 등 연대하는 이들이라고 했다. 바람이 세게 불어 몹시 차가운 날이었음에도 몇몇 분들은 장갑도 끼지 않았다. 이곳은 투쟁의 현장. 각자의 자리에서 이토록 열심히 움직이고 있으니 나도 오늘만큼은 멀미를 버텨내 보자고 다짐했다. 그들을 향해 힘차게 손을 흔들었다.

차량 오른편으로 바다가 나타났다. "윤슬 좀 봐. 너무 예쁘다." 흰여울마을 해안도로였다. 은유가 감탄하며 사진을 찍고, 나도 창문을 내려 잠시 햇빛 쏟아지는 바다를 바라봤다. 낭만적인 풍경에 마음이 이렇게 쉽게 녹아도 될까. 현실 속 노동자들은 추락하고 깨지고 부서지는데. 나 역시 불안정한 원고료에 마음 졸이는 신세다. 슬픔과 죄책감 없이 아름다움에 온전히 빠져드는 것도, 공과 사에 단호하게 선을 긋는 것도 나 같은 중생에겐 쉽지 않다.

한 바퀴를 돌아 시작점으로 돌아올 무렵 유튜브에서 한진중공업 앞으로 모여 달라는 얘기가 들렸다. 타종 행사를 한다고 했다. 김 지도위원 해고 기간 35년을 상기하며 참가자 35명이 통나무로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철문을 서른다섯 번 두드렸다. 길가에 차를 대고 타종 소리를 듣다가 잠시 차에서 내려 조선소 앞 천막 농성장에 들렀다. 몸을 움직이니 두통도 가시고 멀미도 조금 가라앉았다.

경적을 울리며 다시 차량 행진을 시작해야 했지만, 내 상태를 알아챈 림과 은유가 '병자 우선 배려 원칙'을 내세우며 여기서 멈추자고 했다. 내가 봐도 눈이 퀭했다. 우리는 차 안에서 나머지 방송을 들었다. 타종식 후엔 기다리던 김 지도위원의 영상 메시지가 나왔다. 9년 전에는 멀리서 85호 크레인만 겨우 보았었는데, 이제 편하게 차 안에서 그의 얼굴을 마주하고 목소리를 듣는다. 그는 '아저씨'들을 먼저 호명했다.

"그때 그 시절에 아저씨들이 왜 그렇게 좋았을까요. 조용필도 아니고 혜은이도 아니고. 용접비들을 그렇게 이쁘게 뽑아내던, 나의 우상이었던 00 고씨 허씨 아저씨. 노래를 진짜 구성지게 부르시던 강씨 아저씨. 온종일 추운 바닷바람 위에서 일하시고 국도 없는 찬 도시락을 먹던 아저씨들이 마음 아파서 혼자 울었습니다. 설계할 때부터 아예 노동자들은 없었던 공장, 그래서 식당도 화장실도 없는 공장에서 먹고 싸는 일부터 인간임을 부정당했던 우리가 너무 억울했습니다."

김 지도위원의 연설을 듣고 있으면 자꾸 눈과 가슴이 뜨거워진다. 그는 앞서 세상을 떠난 박창수, 김주익, 곽재규, 최강서 동료들의 이름을 부르며 "그들과 함께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눈물이 울컥, 멀미로 울렁. 둘 다 가라앉히느라 좀 힘들었다.

모든 행사가 끝났다. 시내에서 밥을 먹고 차를 반납한 뒤 오후 8시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한진중공업 앞 커다란 현수막
 한진중공업 앞 커다란 현수막
ⓒ 심혜진박혜림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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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다. '힘 있는' 자들은 여전히 묵묵부답. 이제 노동계뿐 아니라 종교계도 나섰다. 대한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소속 승려들이 22일 오체투지를 진행했다. 앞으로도 김 지도위원 복직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멈추지 않을 것 같다.

언젠가 은유는 말했다. 김 지도위원 정도의 인지도 있는 노동운동가 중 정치권으로 나가지 않은 사람을 찾기가 힘들다고. 하긴, 한때 김 지도위원과 함께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을 하며 해고의 부당함을 역설하던 이는 지금 대통령이 되었고, 김 지도위원은 여전히 찬 거리 위의 해고자다. 우린 "김 지도는 대통령을 했어도 백 번은 더 했을 사람"이라 말하며 씁쓸하게 웃었다. 그의 진실되고 올곧은 삶 앞에 이런 (진심 어린) 농담을 던져도 되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너그럽게 넘어가 줄 것 같다.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이 아름다운 구호를 외쳐 온 사람이니까.

그가 원하는 건 "정년이 아닌 복직"이라 했다. 곱씹을수록 정신이 번쩍 드는 말이다. 12월 31일이 지나고 새해를 맞이하더라도 복직 투쟁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선언이다. "하루를 일하더라도 내 발로 걸어 나오고 싶은 게 내 꿈"이라는 김 지도위원. 앞으로 적어도 십수 년은 노동자로 살아야 하고, 어린 조카들이 살아갈 세상을 미리부터 걱정하는 난, 그가 꿈을 이루는 모습을 꼭 보고 싶다. 멀미를 하더라도 다시 부산으로 향하겠다고 다짐하는 이유다.

아니, 꼭 부산으로 가지 않아도 좋다. 26일 토요일 오후 2시부터 4시 사이, 국회에서 청와대까지 왕복 비대면 차량 행진을 진행한다. 종이현수막과 깃발은 현장에서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내가 느꼈던 뭉클함, 든든함, 노동자로서의 분노와 연대감을 그 자리에서도 분명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희망 차량에 나설 수 없다면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제대로 된 중대재해기업법 제정', '해고 금지', '김진숙 복직 촉구' 메시지를 담은 인증샷을 찍어 올리면 된다. 또 같은 시간 포털 다음에 위의 메시지로 실시간 검색 동시 올리기도 진행한다고 한다. 토요일 두 시, 알람 설정이 시급하다.

* 희망차량행진 신청 링크 bit.ly/240희망차량행진
 
26일 진행하는 '240 드라이브스루 희망차량' 웹자보
 26일 진행하는 "240 드라이브스루 희망차량" 웹자보
ⓒ 김진숙희망버스기획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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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숙 지도위원 영상 메시지 전문>

그때 그 시절에 아저씨들이 왜 그렇게 좋았을까요. 조용필도 아니고 혜은이도 아니고. 용접비들을 그렇게 이쁘게 뽑아내던, 나의 우상이었던 00 고씨 허씨 아저씨. 노래를 진짜 구성지게 부르시던 강씨 아저씨. 온종일 추운 바닷바람 위에서 일하시고 국도 없는 찬 도시락을 먹던 아저씨들이 마음 아파서 혼자 울었습니다. 설계할 때부터 아예 노동자들은 없었던 공장 그래서 식당도 화장실도 없는 공장에서 먹고 싸는 일부터 인간임을 부정당했던 우리가 너무 억울했습니다.

완장 찬 관리자가 저쪽에서 나타나도 주눅부터 들었던 아저씨들이 그 하늘 같던 관리자들의 면전에서 도시락을 엎으며 싸워서 만들어진 식당. 그 식당을 지척에 두고, 제가 해고될 때 열 살이었던 심진호 지회장이 25일째 단식을 합니다. 같은 공장에서 단 하루도 같이 일해보지 않은 문철상 지부장도 25일째 굶고 있습니다.

매각을 앞두고 다시 고용 위기에 맞닥뜨린 조합원들이 청와대 앞에서 노숙을 하고 천막농성을 하고 새벽마다 출근 투쟁을 하고 시민단체들이 릴레이 단식을 하고 신부님과 동지들이 오체투지를 하고 군사독재 정권 시절에 해고된 아픔을 가지고 있는 평생을 지니고 살아온 칠순이 넘은 선배님들이 나서고 부산시의회가 나서고 국회가 나서고 마침내 희망차가 다시 왔습니다.

무얼 더 해야 합니까. 35년을 이어온 싸움, 얼마나 더 해야 합니까. 35년간 외로웠던 싸움,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고 연말이 지나도 저는 포기할 수 없습니다. 자식 잃은 부모들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하라고 국회 앞에서 단식을 하고 세월호의 진실 역시 단 한 자락도 밝혀지지 않은 지금, 문재인 대통령께 묻고 싶습니다.

지금 이 세상의 모습이 노동자들이 이렇게 죽어가고 이렇게 고통받는 이 나라가 34년 전 우리가 최루탄을 마시고 구속되고 해고되며 그렇게 만들고자 했던 그 세상이 맞습니까. 해고자는 여전히 해고자이고 비정규직은 아직도 비정규직인 이 모습이 대통령이 꿈꿔왔던 그 나라가 맞습니까?

박창수 위원장은 안양구치소에서 아직도 풀려나지 못했고 사전 구속영장이 청구된 김주익 지회장도 85호 크레인에서 내려오지 못했습니다. 재규형은 4도크에서 올라오지 못했고 정리해고 투쟁을 가장 열심히 했던 강서도 복직하지 못했습니다. 그들과 함께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저는 새해 1, 2월 방사선 치료 잘 받고 3월달에 수술도 잘 해내겠습니다. 9년 전 희망버스와 조합원들의 힘으로 85호 크레인을 웃으면서 내려왔듯이 웃으면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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