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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쯤이면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예측하는 전문가들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의견이다. 갈수록 비대면, 온라인, 집콕, 원격, 홀로이, 각자, 따로... 등으로 갖가지 개인적인 생활방법이 늘어나고 있다. 이런 활동은 언제까지라고 장담할 수 없는 현실이고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이제 동해시로 향하는 길은 일단 멈춤이다. 코로나19의 엄중함에 무조건 동참한다. 다행히 그 이전에 동해시의 잔잔했던 시간을 마음 가득 담아와서 간간히 떠올려 본다. 지극히 개인적인 떠남이었다. 머잖아 누구나 편안한 마음으로 세상의 화사한 봄날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한적하고 고요하다. 그곳에 한때 우리의 부모형제들의 고단한 일상이 있었다.
 한적하고 고요하다. 그곳에 한때 우리의 부모형제들의 고단한 일상이 있었다.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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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혼자 다니기에 좋은 곳으로 오래된 근대사의 유적을 찾는 것은 의미 있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시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다시 한번 짚어보는 기회이기도 하다. 동해시 지역에는 80년 전의 시간을 거슬러서 그 시절의 고단했던 삶을 짐작해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노동자들의 100호 사택이라 불리는 동부(DB메탈) 사택, 정확히 '동해 구 삼척 개발 사택과 합숙소'다. 삼척 개발 주식회사는 일제강점기의 식민 회사로 우리의 자원을 수탈해가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회사였다.
 
동부사택을 찾아가는 길부터 우리는 근대사의 역사 속으로 가는 들어가는 중이다.
 동부사택을 찾아가는 길부터 우리는 근대사의 역사 속으로 가는 들어가는 중이다.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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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 사택을 찾아가는 길은 쉽지가 않았다. 동해시 용정동 숫골길을 자동차 내비게이션의 안내로 따라갔지만 처음엔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 다시 겨우 길을 찾아가다 보니 인적이 드물고 어딘지 깊숙이 들어가서 살짝 두려움이 생기기도 하는 길이었다. 꼭꼭 숨은 듯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외곽에 자리 잡은 동부사택은 오랜 세월이 스며든 모습으로 차분히 거기 있었다.

입구의 앞마당인듯 널찍한 운동장 저쪽으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낡은 옛 사택이 군부대 막사처럼 줄지어 있다. 오가는 사람도 없고 고요했다. 멀리서 보면 어딘지 모를 삭막함은 있지만 이국적이고 독특한 건축물들이 눈길을 끈다. 다가가 들여다볼수록 이런 것이 시간여행의 진수라는 생각이 든다.
 
오래된 건축물, 오래된 나무...때로 과거로 떠나보는 시간은 가치있다.
 오래된 건축물, 오래된 나무...때로 과거로 떠나보는 시간은 가치있다.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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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인 1937년에 지어진 공장 사택, 지금껏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서 문화재의 가치가 크다. 당시 한. 양. 일 절충식 주택의 사례로 한국 근대 주거사의 중요한 자료로 2010년 '근대문화유산 문화재 456호'로 등록되었다.

운동장을 지나 그 옛날의 시간 속으로 걸어가듯, 영화 속으로 들어가듯 묘하게 가슴이 설렌다. 어쩐지 옛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낼 것 같은 기대감, 또는 힘들었던 근대사의 이야기가 스며있는 공간에 다가가는 조심스러움, 머뭇머뭇 한 걸음씩 옮겼다.
 
방치된듯 하지만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었다. 반질반질한 작은 마루, 텃밭에 푸성귀가 자라고 마늘과 시래기가 벽에 걸려 있다.
 방치된듯 하지만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었다. 반질반질한 작은 마루, 텃밭에 푸성귀가 자라고 마늘과 시래기가 벽에 걸려 있다.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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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주민들이 살고 있었다. 집과 집 사이에 텃밭이 넓다. 처마 밑엔 마늘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고 시래기가 잘 마르고 있다. 담장이나 울타리가 없는 집 앞에는 함께 모여 쉬었을 평상이 있고 장독이나 자전거가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이란 걸 알려준다.

텃밭에서 푸성귀를 가꾸던 할머니가 말씀하신다. "앞 동보다는 뒤편에 몇몇 집이 사람 사는 집이지, 저쪽 뒤편으로 가면 더 볼 게 있으려나?" 하신다. 뒤편의 회의장 건물 방향을 가리키며 구경 잘하고 가라며 손짓을 하신다.
 
합숙소 답게 시설이 웬만큼 갖추어져 있다. 회의실, 공중목욕탕의 굴뚝이 인상적이다.
 합숙소 답게 시설이 웬만큼 갖추어져 있다. 회의실, 공중목욕탕의 굴뚝이 인상적이다.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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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직 사택 1, 간부직원 사택 2, 미혼 직원을 위한 1동 이렇게 4동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이 밖에 일반직원이 거주하는 연립 15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부는 한국식 온돌과 일본식 다다미, 서양식 복도형 구조와 건축양식으로 복합적인 방식이다. 나이를 먹은 나무들이 건물 사이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봄이 되면 오래된 벚나무에서 화사하게 피어난 벚꽃으로 눈부시다고 한다.

천천히 돌아보며 암울하던 시절의 근로자들의 생활상을 짐작해 본다. 이처럼 동떨어진 곳에서 한때는 가족들을 위해서 밤낮없이 고된 나날을 보냈을 우리의 노동자들을 생각을 하니 숙연해진다. 지금은 폐허처럼 방치되고 썰렁한 분위기이지만 우리 근대사의 중요한 자료로서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고 있다.
     
노동자들과 고위직 간부가 사는 공간이 확연히 다르다. 간부의 근사한 공관에 환한 햇살이 쏟아진다.
 노동자들과 고위직 간부가 사는 공간이 확연히 다르다. 간부의 근사한 공관에 환한 햇살이 쏟아진다.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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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쪽에 위치한 근로자들의 숙소를 지나 뒤편으로 회의장 건물이 있다. 고된 노동 후 공동의 공간인 이곳에서 무슨 회의 했을까.

조금 더 올라가면 나타나는 간부직원들의 생활공간은 한결 깔끔하고 독립적이다. 고위직 간부의 독채 형식의 공간은 정원을 앞에 두고 제법 멋스럽다. 그 시절 계급사회의 구별이 확연한 건축물이라고나 할까. 울타리 뒤로는 널찍한 테니스장도 있었다. 
 
나이를 먹은 나무들이 즐비하다. 꽃피는 봄이 오면 봄햇살에 빛나는 화사한 꽃으로 온통 눈부시다고 하는데...
 나이를 먹은 나무들이 즐비하다. 꽃피는 봄이 오면 봄햇살에 빛나는 화사한 꽃으로 온통 눈부시다고 하는데...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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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택 주변으로 긴 세월을 말해주는 아름드리나무들이 자연스럽게 나이를 먹었다. 고목에서 떨군 낙엽이 그대로 쌓여서 남다른 정취를 느끼게 한다. 한적했다. 레트로 감성 물씬한 동부사택 마을의 봄,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의 독특한 변화를 기대해 볼 만하다.

굳이 음울하고 쓸쓸하게 생각할 일은 아니란 생각을 했다. 이국적인 정취 속에서 오래 전의 시간을 되살리며 더 굳건한 오늘을 위한 가치를 확인하는 것, 80년 전 이곳에서 노동자의 삶을 살았던 그분들에게 자신도 모르게 마음 깊이 따뜻한 마음을 보내게 된다.  
 
동해시 구 상수시설의 봄을 기다린다. 근대문화유산 을 둘러싼 눈부신 벚꽃의 풍경을 보러 봄이면 많은 사람들이 찾는곳이다.
 동해시 구 상수시설의 봄을 기다린다. 근대문화유산 을 둘러싼 눈부신 벚꽃의 풍경을 보러 봄이면 많은 사람들이 찾는곳이다.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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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김에 조금 더 보기, 부곡동 동해 구 상수시설

동해의 근대문화유산으로 <동해 구 상수시설>이 보존되어 있는 동해시 부곡동의 농업기술센터를 꼭 가 볼 만하다. 1940년 삼척 개발 주식회사에서 증기기관차에 물을 공금 하기 위해서 개발했는데 그 후 1990년에 가동이 중지되어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다.

특히 이곳에 봄이 오면 온통 벚꽃으로 가득 차서 봄날의 눈부신 정경에 모두들 놀란다고 한다. 낡고 독특한 근대사의 구조물들과 어울린 벚꽃 숲의 아름다움은 동화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이라 하니, 봄날의 외출로 기억해 둘 일이다.

공원으로 되어있는 전체 시설을 둘러보면 용수가 필요한 물을 확보하는 취수댐→착수정→침전지→기계실→염소투입실→정수지→배수지. 이렇게 7단계를 거쳐서 각 가정으로 물을 공급했던 과정을 모두 볼 수 있다. 같은 공간 안에 '동해시 문화창작공간'과 '수원지 체육공원'이 함께 있다.

태그:#동해시, #동부사택, #동해 구 상수시설, #봄날 벚꽃, #근대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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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세이 - 잠깐이어도 괜찮아 -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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