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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미성년자 성매매' 판결문 219개를 분석했다. 또 피해 여성 5명을 인터뷰했다. 아홉 차례에 걸쳐 그 실태를 해부한다. [편집자말]
 
성범죄자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 왜 일어나는 지에 대해 '사회적 유대(지위나 관계)'가 견고한 것을 기계적으로 양형을 감경하는 사유로 드는 관행을 언급했다.
 성범죄자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 왜 일어나는 지에 대해 "사회적 유대(지위나 관계)"가 견고한 것을 기계적으로 양형을 감경하는 사유로 드는 관행을 언급했다.
ⓒ 오마이뉴스 유성호
  
(* 이전 기사 <12세 성매수, 16세 강간미수... '초범'이면 봐준다?>에서 이어집니다.)
 

아동·청소년 성매수자를 최종적으로 어떻게 처벌할지는 사법부가 결정한다. 그래서 <오마이뉴스>는 성범죄자에 솜방망이 처벌은 왜 일어나는 것인지, 또 최근 'n번방 성착취' 등으로 인한 사회 인식 변화를 사법부가 어떻게 반영하려 하는지 궁금했다.

이에 지난해 12월 지방법원 형사부에서 아동·청소년 성매수 사건을 맡고 있는 A 판사를 서면과 전화를 통해 인터뷰했다. 성매수자들을 어떻게 처벌하면 좋을까라는 질문에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성매수 사실이 밝혀지면 실형을 살고, '인생이 끝난다'고 생각하면 범죄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는 미성년자 성매수 양형 기준이 전반적으로 상향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사회적 유대(지위나 관계)'가 견고한 것이 기계적으로 양형을 감경하는 사유로 드는 관행에 대해서도 경계했다.

"평범한 사람들이 많이 저지르는 아동·청소년 성매수는 형벌 위하력(형벌을 통한 범죄 억제력)이 높은 범죄다. 법원은 기소된 내용을 바꾸는 게 어렵기 때문에 수사기관과 검찰 역시 의지를 갖고 수사해야 한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유독 '성매수'에 관대한 시각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 미성년자 성매수 초범은 대체로 집행유예나 벌금형으로 처벌이 되는 경향이 있다. 처벌이 조금 더 강해져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성매수 초범의 경우, 다른 성범죄가 경합범으로 같이 기소되지 않을 경우 실형 가능성은 낮다. 초범의 경우 비단 성매수범에게만 리한 정상(참작해야 하는 구체적 사정)으로 작동하는 건 아니다. 중범죄가 아닌 한 초범 여부는 중요한 양형인자이고, 초범의 경우 역시 실형은 낮다.

다만, 유독 성매수에 관대한 것은 아닌지 주의할 필요는 있다. 성매매에 대해 여전히 운이 나빠서 걸렸거나, 성매매 여성의 유혹에 넘어갔다는 등의 시각이 이런 관대한 양형에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닌지 유의해야 한다.

미성년 성매수 뿐 아니라 거의 모든 범죄의 개별 범행 태양(형태)은 사건마다 천차만별이다. 단순 성매수를 넘어선 성착취에 가까운 범행도 있을 수 있다. 이에 대해 일률적으로 말씀드릴 순 없고, 성착취에 가까운 성매수는 당연히 엄벌이 필요하다."

- '취업제한 명령'의 유무는 뚜렷한 기준이 없어 보인다. 성매수 가해자가 1심에서 취업제한 명령을 받아 자신이 운영하던 동물체험관을 운영하지 못하게 되자 항소했고,  2심에서 '처분이 과도하다'라며 취업제한을 풀어준 사건도 있다. 이와 같은 사례는 어떻게 보나.

"신상공개고지, 취업제한, 전자발찌 같은 부수처분은 명확한 기준이 없어 실무상 적용에 난점이 있고, 또 재판부마다 중구난방인 경향이 있다. 인권침해가 심한 순(전자발찌>공개고지>취업제한)으로 기각하는 경향이 높은 것 같다.

개인적으로, 미성년 성범죄에 있어 취업제한명령은 다른 경우보다는 더 많이 붙이고 있는데(특별한 경우 외에는 대부분 붙이고 있음), 그 이유는 아동·청소년에 대한 성범죄는 일반 성범죄보다 위험성이 더욱 크므로, 이를 사전에 차단한다는 정책적 고려에 따른 것이다.

일반적으로 학원을 한다거나 아동·청소년 관련업을 영위할 경우 생계 문제와 연관해 판단에 어려움이 있어, 이런 사정을 취업제한의 기각 사유로 드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오히려 아동·청소년 관련업에 종사하고 있거나 그럴 가능성이 크다면 재범 위험성이 더 높다고 볼 수 있다.

즉, 취업제한 판단에 있어 피고인의 생계 곤란 등의 사정을 면밀히 따져야겠지만, 반대로 취업제한을 부과해 업종 자체를 변경하도록 유도해서, 향후 청소년 대상 범행을 미리 방지할 필요도 있어 보인다.

이 문제는, 생계나 인권 침해와 재범 방지 사이에서 어느 쪽에 더 무게를 둘지에 대한 것인데, 청소년 관련 업종에 종사하지 않으면 생계를 도저히 영위할 수 없는 경우 등 특수한 사정이 없는 한, 청소년 대상 성범죄의 심각성에 비추어 가능한 관련 업종 종사를 막는 게 맞지 않을까 싶다."

"사회적 유대관계 떠나 재범 위험성 더 고려해야"

 
재판에서는 재범의 위험성에 따라서 양형을 달리해야 한다.
 재판에서는 재범의 위험성에 따라서 양형을 달리해야 한다.
ⓒ pixabay
  
- '사회단체 기부금을 많이 냈다', '실형을 선고할 경우 피고인의 건전한 사회복귀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 '사회적 유대' 등을 재판부에서 유리한 정상으로 꼽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관행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성범죄자의 경우 사회단체 기부 등을 양형에 유리하고자 재판에 자료로 제출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나, 저는 실제 재판에선 잘 보지 못했다. 설령 그런 자료를 낸다 해도 이 부분은 잘 반영하지 않을 것 같다. 피고인들이 무수하게 적어내는 반성문처럼 과연 이런 정상을 진정한 반성으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이 들어서다.

'건전한 사회복귀(가 어렵다)'나 '사회적 유대관계' 등이 유리한 정상으로 많이 거론된다. 피고인이 멀쩡하고 평범한 사회인인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이 경우 가족이나 주변 동료나 지인들이 선처해 달라고 탄원하는 경우가 많다. 어쩌다 충동적으로 실수했다는 내용의 탄원이다.

저는 개인적으로 '사회적 유대관계'라는 표현을 가급적 자제한다. 사회적 유대관계 자체가 아니라 재범의 위험성을 중요하게 본다. 이 표현에 담긴 실제 맥락은, 주위의 지지가 있고 경제적, 사회적 지위가 확실하므로 여러 여건상 앞으로 재범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이러한 지지환경 없이 떠돌면서 사는 사람들과 달리, 성매수로 잃어버릴 것이 상당히 많음에도 과감하게 성매수로 나아간 점에서 성 에너지가 더 높고 재범의 위험성이 더 높다고 볼 수도 있다.

'사회적 유대관계' 등의 표현은 재고할 필요가 있고, 기계적으로 양형에 유리한 요소로 반영하는 것도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즉, 건전한 사회복귀나 사회적 유대관계 표현은, 재범의 위험성으로 포섭하여 설명함이 바람직하다.

사회적 유대관계를 떠나 여러 정황상 일회적 실수라 보여지면, 단기 구금할 경우 실직과 가정파탄 등 심각한 불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감경요소로 참작 가능하다. 하지만 성매수 에너지가 강해서 향후에도 재범의 위험성이 높아 보인다면, 피고인 개인의 불이익은 스스로 결정한 것이라는 차원에서 유리한 양형요소로 참작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 의제강간 연령이 상향되고, '대상 아동' 조항이 삭제됐다.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를 바라보는 법조계, 그리고 법원의 분위기가 많이 변화됐다고 판단하나.

"미투, 페미니즘 등의 영향으로 법원도 변화되어 가는 과정으로 보인다. 특히 n번방 사태 이후 성착취 범죄나 아동·청소년 대상 범죄에 대해 그동안 양형이 과경했다는 점에 대한 반성적 고려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변화에 대해 체감하는 정도나 그 변화를 판결이나 양형에 적극 반영하는 것은 판사 각 개인의 성인지감수성에 따른 것으로서, 여전히 편차가 큰 것으로 본다."

-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자신의 피해를 증언하기 힘든 아동이라는 사실, 또한 매매가 아니라 착취라는 인식도 공유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피해자가 아동인 경우는 당연히 양형에 각별히 반영하고 있다. 미성년자 성매매를 성인 성매매와 달리 보는 것도 법령상 당연하고, 착취성을 띤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여전히 충분하지는 않다고 생각된다.

역시 이 부분에서 인식의 차이를 가져오는 가장 큰 문제는, 청소년이 자발적으로 성매매에 나선 경우다. 자발적 성매매에 대한 이해의 정도에 따라 유무죄 및 양형에서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된다. 저는 청소년 성매매의 경우 자발성을 성인과 비슷하게 고려하거나 반영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아동·청소년 성매수는 엄벌 필요... 특수성도 이해해야"

A 판사는 인터뷰와는 별개로 아동청소년 성매수 사건에 대해 네 가지 제언을 했다. 그는 사법부와 수사기관, 시민 모두의 각성을 요구했다. 그의 제언을 그대로 옮긴다.
  
1. 성매매 단속 혹은 엄벌은 위하력이 크다.

"통상의 형벌은 범죄예방을 위한 위하력 차원에서 효용성이 크지 않다. 범죄자들을 심리적으로 압박해 범죄를 줄이는 효과가 크지 않다는 뜻이다. 그러나 성매수범은 대부분 평범한 사람들이 많다는 점에서, 단속이 강화되고 무겁게 처벌됨으로써 결국 자기 인생을 완전히 망칠 수 있다는 인식을 주게 되면 범죄가 줄 가능성이 다른 범죄보다 월등히 크다 할 수 있다.

따라서 수사기관과 사법당국의 의지와 실천이 범죄 예방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박찬걸 (대구가톨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의 <랜덤채팅을 통한 청소년 성매매의 효과적인 대응방안>이라는 논문에서도 이 점을 지적하고 있다."

2. 수사기관과 검찰의 의지에 따라 무거운 처벌도 가능하다.

"법원은 일단 기소된 내용을 바꾸라고 하기 어렵다. 청소년 성매수는 아청법 13조에 해당해서 형이 상당히 무겁고 합의부 관할(단기 1년 이상 법정형)에 해당한다. 그러나 청소년 성매수 단독범행으로 합의부로 오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

청소년 대상 성범죄의 경우, 미성년자인지 몰랐다는 주장을 많이 하는 상황이고, 실제로도 애매한 경우가 많아 무죄가 나는 경우도 가끔 있다. 즉, 범죄의 대상이 미성년자인지 여부는 밝히기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 수사기관이나 검찰이 현실적 입증의 어려움을 들어 이 점을 가볍게 생각할 경우, 꼼꼼히 수사하지 않고 일반 성매수로 기소할 가능성도 많다.

그런데 일반 성매수는 아청법이 아니라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의 적용대상이 되어 형이 상당히 약하다. [단순 성매매,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제21조(벌칙) ① 성매매를 한 사람은 1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만원 이하의 벌금·구류 또는 과료(과료)에 처한다.]

그러나 실제 랜덤채팅 내용 등을 보면 미성년임을 알고 범행한 정황이 많다. 따라서 범행 대상이 미성년자인 경우, 수사기관이 의지를 갖고 적극적으로 이 부분(미성년임을 알았는지 여부)을 조사할 필요가 있다. 성매매와 마찬가지로 성범죄도 아동청소년에 대한 인식 여부를 충분히 조사하고, 또 법령이 중복 적용되는 경우 무거운 법률로 의율해 기소할 필요가 있다."

3. 디지털 네이티브로 지칭되는 최근 청소년 성매매의 특수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전통적 성매매(집창촌이나 중간 알선업자를 끼고 하는 경우)와 달리 최근에는 1:1 랜덤채팅을 통한 직접 거래가 많다. 이 경우 특히 청소년이 개인적으로 성매매에 노출됨으로써 그 위험이 커질 뿐 아니라, 성매수자의 경우 직접 청소년을 그루밍하고 성매매로 유인, 권유하는 경향이 강하다. 청소년이 자발적으로 성매매에 나섰다는 외관에만 너무 치중하지 말고, 그런(유인·권유) 행위가 있는지 면밀히 살펴서, 성매수에서 더 나아가 유인, 권유죄로도 처벌해야 한다.

즉, 청소년 성매수 유인·권유죄는 아동·청소년이 이미 성매매 의사를 가지고 있었던 경우에도 그러한 아동·청소년에게 금품이나 그 밖의 재산상 이익, 직무·편의제공 등 대가를 제공하거나 약속하는 등의 방법으로 성을 팔도록 권유하는 행위도 '성을 팔도록 권유하는 행위'에 포함된다고 봐야 할 것이다(우리 대법원도 그렇게 보는 추세이기도 하다).

다만, 미성년자를 상대로 성매수에 성공하면 아청법에 따라 처벌이 무거우나, 유인, 권유만 한 경우는 성인보다 오히려 형이 낮은데, 이에 대해서는 앞서 언급한 논문에서도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4. 근본적으로 청소년이 성매매에 나서는 사회구조적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

"빈곤 청소년이나 학교밖 청소년 문제가 심각하다. 이에 대해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고, 실효적인 지원조치를 다해야 한다."

태그:#아동청소년 성매매, #성착취, #아주오래된N번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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