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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6시면 어김없이 14개월 아기 지수가 내 곁으로 다가온다. 초등학교 시절 '산 넘고 물 건너'라는 장애물 달리기를 하듯 내 몸을 좌우로 번갈아서 넘기를 반복한다. 군대에서 매일 아침 울려대는 기상나팔 같은 지수의 몸부림을 애써 외면하며 눈을 감고 잠을 청해보지만, 강력한 니킥과 발길질에 결국 백기를 들고 이불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밥 먹고 잘 놀다가 잠 와서 징징대는 지수
▲ 14개월 아기와 놀아주는 아빠 밥 먹고 잘 놀다가 잠 와서 징징대는 지수
ⓒ 이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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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밤새 활발한 배변 활동으로 축축해진 지수의 기저귀를 뽀송뽀송한 새 기저귀로 갈아주는 것이다. 그리고 지수와 출근하는 아내의 아침 식사를 챙긴다. 지수는 따듯한 밥과 김을 기본으로 먹이는데 가끔 두부 요리를 하거나 채소를 삶기도 하고 요즘은 계란찜을 자주 한다.
 
꽤 근사한 지수의 아침 식사
▲ 갖출 것 다 갖춘 지수 아침식사  꽤 근사한 지수의 아침 식사
ⓒ 이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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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벌러 나가는 아내를 위한 아침 도시락
▲ 출근하는 아내의 아침 도시락 돈벌러 나가는 아내를 위한 아침 도시락
ⓒ 이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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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수 아침밥을 먹인 후 아내의 아침 식사를 준비한다. 아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침 식사 메뉴는 샌드위치다. 식빵 두 장을 프라이팬에 굽고 토마토를 얇게 썰고, 치즈와 양상추를 함께 넣어 네 조각으로 자른다. 아내는 아침 출근길에 식사를 하기 때문에 식빵과 베지밀 그리고 과일을 함께 넣어 완성한 도시락을 출근길에 건네준다.

아내의 출근 후 시작되는 본격 육아

아침 8시에 아내가 출근하면 본격적인 육아가 시작된다. 놀고 싸고 자고 다시 일어나서 먹고 놀다 보면 하루가 금방 지나간다. 지수가 낮잠 자는 시간 이외에는 한시도 지수 곁을 떠날 수 없다. 지수와 함께 있는 낮 시간은 행복하지만, 오후가 되면 나도 모르게 자꾸 시계를 쳐다보게 된다.

아내의 퇴근 시간은 정해져 있다. 직장에서 육아시간을 사용해서 4시에 퇴근하고 4시 30분 즈음에 집에 도착한다. 아내가 퇴근한다고 해서 내 육아에 큰 변화가 있는 건 아니다. 그러나 아내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안정을 찾게 되고 몸의 피로가 사라지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정말 마법과 같은 효과다.

아내의 퇴근이 이렇게 소중한 줄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집에서 육아하는 모든 부모의 마음이 내 마음과 같으리라. 온종일 제대로 씻거나 먹지도 못하고 아이와 씨름하다 보면 나가서 일하는 배우자가 빨리 집에 와줬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육체적 피곤함보다는 육아에 지친 마음을 위로받고 싶기 때문이다.

아내의 퇴근 이후에도 계속되는 육아는 밤 9시가 다 돼서야 끝난다. 밤 9시는 나의 육아 퇴근 시간이다. 선물 같은 육아 퇴근 시간에 나는 소위 말하는 육퇴런(Run), 야간런(Run)을 하기 위해 운동화 끈을 묶고 집을 나선다. 누군가는 나에게 피곤할 텐데 쉬지 않고 왜 달리냐고 말하기도 한다. 나는, "피곤하니까 달리고, 달리면 행복하니깐 또 달린다"라고 말한다.

육아휴직을 하고 4개월이 지난 작년 6월부터 달리기를 시작했다. 지수를 낳기 두 달 전부터 육아 체력을 키우기 위해 헬스장에 다녔다. 그러나 코로나가 심각해지면서 사회적 거리 두기가 확산되고 실내 다중 이용시설에 대한 방역이 강화되면서 헬스장 이용이 어렵게 되었다.

헬스장은 나에게 단순히 체력을 키우는 장소일 뿐만 아니라 육아 스트레스를 해소 할 수 있는 힐링의 공간이었다. 육아를 즐겁게 하기 위해서는 내 몸과 마음을 힐링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우연히 페이스북에서 선배가 100일 동안 날마다 달리기를 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생각해보니 달리기는 특별한 장비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달릴 수 있는 장소만 있으면 혼자서도 누구나 가능한 운동이었다.

'그래 달리기를 하자.'

그런데 달리기를 할 시간이 애매했다. 낮에는 지수를 봐야 하니 결국 육아를 끝내고 밤에 달리기로 했다. 처음에는 1km도 제대로 뛸 수 없었다. 걷다 뛰기를 며칠 동안 반복하니 어느새 5km를 쉬지 않고 달릴 수 있는 몸이 되었다.

삶의 여유와 리듬감을 잃지 않기
 
육아 퇴근하고 야간에 동탄 호수공원 달리기
▲ 동탄호수공원 육퇴런(Run), 야간런(Run) 육아 퇴근하고 야간에 동탄 호수공원 달리기
ⓒ 이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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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의 'Dynamite' 연속 듣기로 설정해 놓고 동탄 호수공원을 달리며 세상과 단절된 듯 자연 속을 그저 달려간다. 그저 달릴 뿐인데 표한 행복감이 몰려온다. 육퇴런, 야간런은 부상을 당하지 않을 정도로만 달린다. 빨리 달리고 싶다고 느껴지면 나름대로 페이스를 올리지만, 거리는 줄여서 몸이 기분 좋은 상태 그대로 내일까지 유지되도록 힘쓴다.

부상을 당하면 달리기를 못 하는 것뿐만 아니라 육아에도 문제가 생긴다. 무릎이나 발목을 다치면 지수는 안고 일어서거나 안고 있는 것 자체가 힘들어진다. 그래서 적당히 기분 좋은 상태에서 멈추는 것, 다음 날 그 기분으로 일상을 시작할 수 있도록 여지를 남겨 두는 것을 '달리기 여유'라고 한다. 육아하면서도 나에게 필요한 여유를 달리기를 통해서 배운다.

야간에 동탄 호수공원을 달리는 동안은 누구와도 얘기하지 않아도 괜찮고 누구의 얘기도 듣지 않아도 된다. 그저 주위의 풍경을 바라보고 하루 동안 육아를 열심히 한 나 자신을 응시하면 된다. 그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시간이다.

온종일 육아에 찌들어 몸과 마음이 고단하지만, 하루에 한 시간 정도 달리기는 나를 돌아 볼 수 있는 여유를 갖게 한다. 그리고 그 여유로움으로 삶의 리듬을 유지하게 된다. 삶의 여유와 리듬감을 잃지 않는 것, 이것이 내가 육아를 오랫동안 즐겁고 행복하게 할 수 있는 비결이다. 그리고 달리기를 멈출 수 없는 이유이다.
 
"빨리 달리고 싶다고 느껴지면 나름대로 스피드도 올리지만
설령 속도를 올린다 해도 그 달리는 시간을 짧게 해서
몸이 기분 좋은 상태를 그대로 내일까지 유지되도록 힘쓴다.
장편 소설을 쓰고 있을 때와 똑같은 요령이다."
-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태그:#육아하는아빠, #달리기하는아빠, #육퇴런(RUN), #야간런(RUN), #코로나시대달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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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입니다.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하면서 사람과 세상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달리기를 하며 가장 자연스러운 나를 만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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