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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퇴근길.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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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이란 말을 오랜만에 들으니 실감이 안 나면서도 기분 정말 좋던데."
"누구한테 그런 말을 들었는데?"


2020년 12월 중순경이었다. 저녁 무렵 집으로 들어서는 남편이 싱글벙글한다. 난 "밖에서 무슨 좋은 일 있었어?" 하고 물었다. 

"특별히 좋은 일은 아니고 일 끝내고 딸내미한테 물건 잘 전달했다고 하니 '아빠 바로 퇴근하셔도 돼요.' 하잖아. 퇴근하라는 말을 오랜만에 들으니 기분이 새롭더라고."
"그 말이 그렇게 기분 좋았어?"
"그러게 오랜만에 들으니 정말 좋더라고."


얼마 전 사위로부터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아버님 요즘 뭐 하세요?"라며. "뭐하긴 놀지"라고 답했더니, "그럼 물건 납품하는 일 하실 수 있겠어요?" 하며 물었다고 한다. 남편은 생각할 필요도 없이 "아 그럼, 그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지" 하고 흔쾌히 대답을 했단다. 다음날에 첫 납품을 무사히 마치고 딸아이하고 통화한 내용이었다. 납품은 일주일에 2~3번 정도 있고, 거리도 그다지 멀지 않아 남편은 할만하다고 했다.

사위는 작은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데 바쁜 날에는 딸아이가 도와주고 있다. 남편이 납품을 시작하기 전에 하던 사람이 있었는데 약속 시간을 잘 지키지 않아 여러 번 낭패를 봤다고 한다. 그래서 남편이 시작하게 된 것이다.

이토록 평범한 일상이 감격스러울 줄이야 

남편의 나이가 74세이지만 신체가 건강하고 외모도 동안이라 그렇게 보는 사람이 드물기도 하다. 다니던 직장을 퇴직하고 나서 그동안 남편은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었고 나름대로 바쁘게 일을 했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작년에는 손으로 꼽을 정도의 일을 했다.

남편의 나이도 있으니 우린 더 이상 욕심을 내지 말고 건강을 잘 챙겨 아이들에게 부담을 주지 말자고 늘 이야기했다. 적으면 적은 대로 소박하게 살아갈 생각을 하니 마음도 편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생각지도 않은 행운을 만나게 된 것이다.

일주일에 2~3번 나가니 그다지 부담도 되지 않고 오히려 생활에 활력소가 되는 듯했다. 남편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그 일이 없었더라면 평소처럼 하루종일 집안을 들락거리며 TV채널이나 이리저리 돌리고 있었을 텐데.

어디 그뿐인가. 12월 마지막 날에는 며칠 동안 일한 임금도 받아왔다. 생각보다 많았다. 아마도 부모라 조금은 더 후하게 준 듯했다. 봉투를 나에게 전해주는 남편의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었다. 나도 그런 남편의 모습을 보니 남편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오랜만에 치킨을 시켜 맥주도 한 잔씩 했다. 고맙고 부자가 된 느낌이다.

2021년 연초에 가족이 모였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내가 "딸아, 네가 아빠 바로 퇴근하시라는 말이 그렇게 좋았다고 하시더라" 하니 딸아이는 "내가 그 기분을 알 것 같아"라고 한다. 사위에게도 "자네도 아버님이 일 끝나고 전화하면 '그냥 퇴근하세요'라고 해봐" 하니 사위는 "제가 어떻게 아버님한테 그런 말을 해요. 전 못 하지요" 한다. "왜 공과 사는 다른데. 자네는 사장님인데" 했다. 모두 함박웃음이다. 남편은 "사위가 그런 말 해도 괜찮아. 난 그 말이 정말 좋다네" 한다.

사위는 장인이 하는 일이라 마음을 더 써주는 듯했고, 남편은 자식의 일이니 시간 약속도 철저히 지키며 사소한 일이라도 더 도움이 되고 싶어 하는 듯하다. 그런 서로의 마음이 읽힌다. 

코로나19로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고 있다. 74살의 남편도 일하는 것을 저렇게 좋아하는데 젊은 사람들은 오죽할까 싶다. 하루속히 코로나19가 물러나 보통 사람들이 출근하고 퇴근하는 평범한 일상을 되찾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 브런치에도 게재했습니다.


태그:#일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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