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1.22 13:34최종 업데이트 21.01.22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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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위한 수업>(인터뷰·글 마르쿠스 베른센, 기획·편역 오연호)을 읽은 독자들이 '행복한 배움', '행복한 우리'를 만들어가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차례로 연재합니다. 이 글은 독후감 대회 가작 수상작입니다.[편집자말]

나는 누구인가. ⓒ pixabay


연일 악몽에 시달린다. 아무리 소리쳐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숨이 막혀 몸부림치다 잠에서 깬다. 삶에도 이와 같은 순간이 찾아온다. 현실의 벽 앞에서 좌절하기도 하고 자기가 자신에게 등 돌리고 마는 순간도 온다. 산다는 것이 쉽지 않음을 느낀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나로 살고 있는가. 이것은 삶의 중요한 문제다. 우리가 아기였을 때는 아기가 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이 들어감에 따라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게 된다. 부모가 바라는 나, 사회가 인정하는 나, 내가 꿈꾸는 나. 그 어디에도 진짜 나는 없고 이상 속의 나만 남는다. 내가 나로 있지 못하기에 삶에 뿌리내리지 못한 나란 나무는 작은 바람에도 쉽게 흔들린다. 겨울 너머에 봄이 있음을 미처 생각하지 못한다.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한 정신과 전문의의 유튜브 강연을 보았다. 그는 자신이 만난 아이들이 말한, 자신을 사랑할 수 없는 이유를 소개하고 있었다. 장기화된 코로나로 학교를 가지 못하게 되자 존재감이 없다고 느끼는 아이, 외모, 성적 등 모든 것이 싫다는 아이, 어디에도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 없다는 아이, 그리고 자신을 격려해주는 누군가가 없다는 아이.


아이들의 말에 나도 모르게 울컥하고 만다. 그들의 호소는 그동안 내가 살아오며 느껴왔던 감정 그대로다. 이 아이들도 나와 같은 고뇌의 시간을 겪으며 앞으로 어른이 될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우리 학생들이 자기 삶에 오랫동안 보탬이 되는 공부를 하도록 돕고 싶어요."

<삶을 위한 수업>이라는 책에는 열 명의 덴마크 교사가 나온다. 가르치는 과목은 다르지만 그들이 지향하는 교육의 모습은 같다. '삶을 위한 공부'가 그것이다. 삶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감과 자부심이죠. 스스로를 쓸모 있는 사람이라고 여기는 마음,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그것만 있으면 나머지는 다 따라옵니다."

그동안 내가 가진 마음의 문제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결국 자신감이 부족하거나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는 것이 원인이었다. 하지만 이것들의 부재를 알게 된 것은 수많은 어려움을 겪고 난 후다. 덴마크의 행복지수가 한국보다 높은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한국 부모들이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은 것도, 나의 부모가 나를 사랑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그러나 내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유는, 삶에 무엇이 필요한지도 모른 채 어둠 속을 울며 헤맸던 길고 긴 시간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덴마크 교사들이 입을 모아 강조하는 것이 또 하나 있다. 그것은 학생들 스스로 큰 결정을 내리고 책임지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인다. 올바른 선택으로 자신이 원하는 길을 개척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못된 선택을 해도 괜찮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자신의 길을 선택하고 삶을 관장하는 힘"이라고 그들은 강조한다.

성공의 경험은 물론 중요하다. 성공을 통해 성취감과 자신감을 느끼며 용기 있게 삶을 개척해 나가는 힘을 얻는다. 하지만 그와 함께 실패도 배워야 한다. 실패는 끝이 아니다. 실패 앞에서 좌절하고 포기하고 싶을지라도 그럼에도 끝까지 나아가는 힘, 그렇게 삶을 살아가는 힘을 배워야 한다.

교육은 사랑과 닮았다
 

'삶을 위한 수업' 책 표지, 마르쿠스 베른센 (지은이),오연호 (편역) ⓒ 오마이북

 
바람직한 교육이란 무엇인가. 사람마다 대답은 다르겠지만 근저에 있는 것은 사랑일 것이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고 교사가 학생을 아끼기에, 자신이 아는 가장 좋은 것을 자신이 아는 가장 옳은 방법으로 주고자 할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학교교육은 어떠한가. 아이들은 미처 소화하지도 못할 만큼의 많은 지식을 채우느라 어른보다 낮은 수면 시간을 자랑한다. 왜 배워야 하는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헐떡이며 달려가고 있다. 아이들 각자의 개성과 고유성보다는 모두가 1등이 되어야 하고 1등만이 행복한 곳이다. 정작 1등도 행복하지 않다. 매일 경쟁에 치여 친구와 우정을 쌓을 겨를도 없다. 우리의 행복은 언제나 보류다. 그렇게 아이들은 어른이 된다.

<소유냐 존재냐>의 저자 에리히 프롬에 의하면 인간의 존재는 소유 양식과 존재 양식으로 나뉜다. 소유 양식에서는 내가 소유한 무언가로 자신이 증명된다. 이 소유의 대상에는 재산, 학력, 건강 등은 물론 인간관계마저 포함된다. 소유는 명사이고 구속이며 죽은 상태다. 반면 존재 양식에서는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속박되지 않으며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끊임없이 성장한다. 즉 동사며 변화이며 생명력의 증대다.

오늘날의 현대산업사회는 소유 양식이 기본이다. 우리는 사물의 소유를 통해 자기의 가치와 존재의 증거로 삼는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무언가를 소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정말로 소유가 우리 존재의 증거라면, 소유물이 사라지면 우리는 도대체 무엇이 되는 것일까. 직업이 없으면, 돈이 없으면,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가면, 수려한 외모가 없으면, 건강이 사라진다면, 그렇게 우리의 소유가 사라진다면 우리는 무엇이 되는 것일까.

레오 버스카글리아는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에서 교육의 본질은 "사람들에게 사실을 채워주는 것이 아니라 각 사람의 고유성을 발견하도록 도와주며 각자가 그것을 개발할 수 있도록 방법을 가르쳐 주는 일"이라고 말한다. 교육의 원리는 사랑의 논리와 닮았다. 참된 사랑을 하게 되면 진정한 나 자신의 모습으로 살게 되는 것처럼 교육은 아이들 각자가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많은 지식을 쑤셔 넣는 것이 아니라 깊이 있는 지식을 배울 수 있는 힘을 길러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학교는 안전하고 보호받을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따돌림과 괴롭힘이 없는 곳, 자신의 목소리를 내면 받아들여지는 곳, 무엇보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존중받고 사랑받고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느낄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그래야 어른이 되어 사회에 나갔을 때에도 삶에 깊게 뿌리를 내리고 마음껏 꿈을 펼치고 옳지 않은 일에 옳지 않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고 삶의 문제 앞에서 쓰러지지 않고 의연하게 견딜 수 있다.

당신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나는 소유하기 위해 글을 쓴다. 공중에 떠다니는 감정과 생각들을 언어로 꿰어 종이 위에 가두어둔다. 그렇게 글을 소유함으로써 내 삶을 소유하지 않게 된다. 존재 양식으로서의 삶의 방식에서는 매 순간이 소중하다. 지나간 과거에 집착하지 않고 오지 않은 미래를 위해 오늘을 포기하지 않는다. 글을 쓰는 이 순간 나의 모든 에너지와 열정을 쏟아부어 여백을 채워나간다. 이것이 내가 존재 양식으로서 삶을 살아가는 방법이다. 그래야만 이 살얼음 같은 인생을 끝까지 살아갈 수 있음을, 어른이 된 후 간신히 알게 되었다.

<삶을 위한 수업>은 언뜻 현장의 교사들을 위한 책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책이라고 단언한다. 학교에서 아무리 삶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가르치더라도 사회에 나가면 돈이 더 중요하고 양보와 배려보다는 내 잘남이 우선이라고 한다면 학교의 가르침은 거짓이 된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교사가 함께 배움을 강조하고 아이들 속도대로 배울 수 있도록 호기심과 동기 부여를 자극하는 수업을 할지라도, 정작 부모가 시험성적이 더 중요하다고 한다면 교사의 가르침은 아이들을 혼란스럽게 할 뿐이다. 무언가를 필요로 한다는 것은 그것이 부재함의 반증이다.

행복이라는 단어 자체가 불필요한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자신을 진심으로 격려해주고 사랑해 주는 사람이 있고 자신 또한 누군가를 그렇게 믿고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들로 채워진 사회였으면 좋겠다. 우리는 존재 자체로 사랑받아 마땅하다. 당신이 행복해야 모두가 행복하다.


삶을 위한 수업 - 행복한 나라 덴마크의 교사들은 어떻게 가르치는가

마르쿠스 베른센 (지은이), 오연호 (편역), 오마이북(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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