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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 30분, 알람을 끄고 눈을 뜹니다. 잠든 아이의 배 위에 얇은 이불 한 장을 덮어주고 거실로 나옵니다.

창가에 서서 팔을 쭉 뻗어 왼쪽으로 허리를 길게 늘여주고, 반대로도 한 번 늘여줍니다. 나이 한 살 더 먹은 걸 몸도 알아챘는지, 요 며칠 부쩍 허리가 뻐근하네요.

거실 창 너머로 보이는 세상은 아직 깜깜합니다. 대체로 어두운 이 아침에 일어나 있다는 사실에 으쓱한 기분이 듭니다. 도로 위를 오가는 차들에게 동질감마저 느낍니다. 거기 부지런한 기사님, 여기 깨어있는 1인이 또 있습니다. 우리 같이 오늘 하루 힘내자구요!

새벽기상의 역사는 대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에 몰두하던 시절, 동아리 친구들과 신문읽기 모임을 하려는데 수업, 과제, 동아리 활동으로 서로 겹치는 빈 시간이 없는 겁니다.

모임을 하고는 싶고, 시간은 없고, 에라 모르겠다 그럼 새벽에 해! 새벽에 수업 듣는 사람 없잖아? 누군가 던진 한마디에 모임 시간은 새벽 6시 30분으로 정해졌습니다. 강제 새벽기상의 시작. 시계가 6:30에서 6:31로 바뀌는 순간부터는 벌금이 5천 원, 30분 이상 지각하거나 결석을 하면 만 원이었습니다.

아침 잠 많은 제게 새벽기상은 정말이지 곤욕이었습니다. 초반에는 신문이 머릿속에 들어오지도 않고 하품만 쩍쩍해대며 좀비처럼 앉아있었어요. 정신은 이불속에 그대로 두고 딱 몸만 빠져나온 꼴이었지요. 기사에 대해 토론을 할 때조차 머릿속에서는 '나는 누군가, 왜 여기 있는가'라는 질문만 빙빙 돌았어요.

한 시간의 신문읽기가 끝나고 다 함께 꾀죄죄한 몰골로 식당으로 향합니다. 조용한 식당 구석에 모여 밥을 먹고 있으면 학생들이 하나둘씩 들어오는 게 보입니다. 그때였어요. 새벽기상의 진정한 대가가 찾아오는 순간은. 누군가는 잠들어있는 시간에 먼저 일어나 하루를 시작했다는 사실이 뿌듯했습니다. 남들에게는 없는 한 시간을 덤으로 얻은 기분이었달까요.

3학년 1학기부터 졸업 때까지 이어진 모임에서 저는 딱 한 번 벌금을 냈습니다. 제 자신이 새벽에 일어나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사실과 아침의 한 시간이 가진 위대한 힘을 그때 깨달았지요.

대학을 졸업하면서 신문읽기도, 새벽기상도 함께 졸업했습니다. 취업을 하고는 피곤하다는 핑계로 늘 늦잠을 잤어요. 일어나고 싶은 시간이 아니라 일어나지 않을 수 없는 시간에 일어났어요. 아침은 허둥지둥 정신이 없었고 머리는 덜 말린 채 출근하기 일쑤였습니다.

종종 프로젝트처럼 아침에 일어나 영어공부를 하거나 화상수업을 듣기도 했지만 일 년에 고작 한두 달이 전부였습니다. 대학 때처럼 저녁시간에 모임을 하거나 늦은 시간까지 해야 할 과제가 없었으므로 아침시간에 대한 간절함이 없었던 거지요.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퇴근 후 시간을 활용해도 충분했으니까요.

하지만 워킹맘이 된 제게 시간은 더 이상 마음대로 쓸 수 없는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남편과 저는 샤워를 할 때도 서로에게 양해를 구합니다. "나 좀 씻어도 될까?" 내가 씻는 동안 아이를 온전히 보살펴달라는 의미입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예요. 급여를 받는 직장인의 시간은 개인의 것이 아니지요.

밥 먹는 시간, 화장실 가는 시간조차 내 것이 아닌 게 되어버린 워킹맘의 일상에 나를 위한 일, 내가 진정하고 싶은 일을 끼워 넣을 틈은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새벽에 일어납니다. 아이도 회사도 저를 찾지 않는 시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새벽에요. 사실 6시 30분은 '새벽'이라고 하기에 부끄러운 시간이긴 합니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히 그쯤이면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기상시간일지도 모르겠어요.

5시 30분, 4시 30분에 일어나면 더 많은 걸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 소중한 시간을 끝까지 지키는 방법은 무리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제 영혼만큼 몸도 아껴주고 싶습니다. 딱 한 시간, 알람소리를 듣고 눈을 떴을 때 반갑게 맞이할 수 있는 한 시간만으로도 지금은 충분합니다.

엄마가 되면 뭐든 아이에게 양보하게 돼요. 생크림케이크 하나를 먹어도 가장 맛있는 딸기는 아이 몫이 됩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던 우리는 이제 누가 시키지 않아도 가장 좋은 것을 아이에게 주고 싶은 엄마가 되었어요.
하지만 하루 중 가장 귀한 이 시간은 저를 위해 쓰려고 합니다. 막 포장지를 벗겨낸 하루의 첫 시간을요.

글쓰기.
좋아하는 책 읽기.
아이패드로 그림 그리기.
한자 공부.
거품 내어 반신욕.

하루의 첫 시간을 이용해 하고 싶은 일들입니다. 오늘도 이 시간 덕분에 한 편의 글을 썼어요. 잠들기 전 힘든 하루에 대한 보상으로 뭐라도 재미있는 걸 찾고 싶어 평소에는 관심조차 없던 급상승 검색어를 기웃거리는 대신, 스마트폰 메모장에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을 적어둡니다. 눈을 감고 메모해둔 생각을 조금씩 키워나가다 보면 저도 모르게 어느새 잠이 들어요. 지금 이 글도 며칠 전에 적어둔 메모로부터 탄생했습니다.

엄마를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나를 위해 모든 걸 포기한 사람, 나로 인해 많은 걸 희생한 사람. 우리 아이는 훗날 저와 같은 마음을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엄마를 떠올릴 때 미안해하기보다는 자랑스러워하고 또 여전히 응원하는 마음을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술김에라도 아이에게 "너 낳고는 아무것도 못 했어"라는 말은 하고 싶지 않아요. 차곡차곡 모인 이 아침의 한 시간들이 저를 그렇게 만들어줄 거라고 믿습니다.

오롯이 날 위한 시간을 보내고 하루를 맞이하는 기분은 허둥지둥 정신없이 보내던 때와는 분명히 다릅니다. 이미 가장 좋은 것을 내가 취했기 때문에 나머지 시간을 대하는 마음도 너그러워져요. 아이와 직장을 대하는 마음에도 여유가 생깁니다. 하루 중 가장 달콤한 첫 시간을 날 위해 썼으니까요.

덧붙이는 글 | https://brunch.co.kr/@nostop/45
개인 브런치 매거진을 통해 발행한 글입니다.
'워킹맘 생존법' 이라는 주제로 주 1~2회씩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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