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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농한기에 들어가는 육지와 달리 제주도의 겨울은 바쁜 농사철이다. 제철을 맞은 감귤수확이 시작되었고, 밭에서는 브로콜리, 콜라비, 양배추를 수확하고 있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추위를 느끼지 못할 만큼 따뜻한 날씨였지만,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몸을 움츠릴 만큼 춥고 차갑다. 제주도의 서쪽 한림읍 새귤농원은 1970년대 중반에 조성된 감귤나무에서 지금도 수확을 하고 있다. 

10년 전 제주도로 귀농한 고세원(46) 농부는 미국에서 대학을 다녔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지인과 함께 중국에서 1년 동안 사업을 위한 경험을 쌓는 과정에서 경영에 대한 공부의 필요성을 느꼈다.
 
고세원 농부
 고세원 농부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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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학교에서 MBA경영과정을 졸업하고 사업을 준비했으나 자금이 여의치 않아 실행하지 못하고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3년간 자동차회사를 다니면서 불합리한 조직문화를 경험하였고 직장 생활에 회의를 느낄 무렵 당직 근무를 하던 날이었다.

"전원주택에 관심이 있어서 인터넷으로 한옥에 대한 정보를 찾다가 전국귀농운동본부를 알게 되었고, 농사에 관심이 생겼어요."

전국귀농운동본부에서 도시농부학교와 생태귀농학교를 다녔다. 텃밭농사를 하면서 농사에 대한 재미와 관심이 생겼고, 결혼 2년이 되던 해에 귀농을 결심했다. 그러나 교회에서 만난 부인 정혜연씨의 반대로 귀농은 못했지만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냈다.

새로운 일을 찾는 중에, 전국귀농운동본부에서 활동가를 모집한다는 것을 알았고 그곳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활동가 일이 재미는 있었지만 해야 할 일이 많았고, 그때는 적은 급여와 여러가지로 열악한 환경적인 것들로 힘들었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괜찮지만, 귀농은 반대했던 혜연씨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고생하는 남편의 뜻을 받아주기로 했다.

"남편이 회사 그만두는 것도 반대 안 했고, 농사가 좋아서 활동가 하는 것을 재밌어 했지만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 어디를 가더라도 두 사람의 할 일이 없을까. 무엇을 하던지 먹고 살지 못하겠냐는 자신감이 있었어요."

세원씨는 몇 달간의 짧은 활동가 일을 그만두고, 학원에서 수학강사로 일하던 아내와 함께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정착할 곳을 찾아다녔다. 그러던 중에 제주도에 한번 다녀오자고 섬에 들어왔는데, 눈에 보이는 것들이 좋았고, 제주도 정착을 결정했다.

혜연씨는 서울 여의도에 있는 학원으로 버스를 두 번 갈아타는 출퇴근을 하였다. 한강에서 불어오는 겨울의 매서운 찬바람에 눈물이 날 정도로 추위에 고생한 것과 농사를 우선하는 지역보다는 주거와 생활의 편리성을 먼저 생각해 제주도 행을 결정하였다.

유기농산물의 가치를 왜곡하는 현실

2012년 제주도에 귀농한 세원씨는 1천평의 감귤농장을 임대했고, 농사를 하면서 남는 시간을 쪼개어 제주대학교에서 농업경제학 박사 과정의 공부도 시작했다. 임대한 농장에서는 소득보다는 농사 경험을 쌓는데 집중했고, 화학농약에 대한 거부감이 있어서 유기농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유기농에 불신이 있는 농장주인과 불화가 있었고, 땅이 팔리면서 1년 만에 옮겨야 했다.

제주도는 농사 경험이 없는 육지 사람에게 쉽게 땅을 빌려주지 않았고, 5천평의 새귤농원 땅을 담보로 융자를 받아서 구입했다. 농사를 짓고 공부하느라 바쁜 세원씨와 달리, 혜연씨는 연고도 없는 제주에서 집에만 있다보니 우울증이 생겼다. 그러다 학원강사 경험을 살려서 집으로 방문하는 과외를 하다가 다시 학원강사로 일을 시작하면서 우울증은 사라졌다.

새귤농원은 9년째 감귤농사를 유기농으로 짓고 있으며, 판매는 주로 생협으로 납품하고 직거래도 하고 있다. 감귤농사를 시작한 이후로 올해 가장 어려운 것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생협으로의 출하와 직거래 주문이 많이 줄었다. 늦게 수확하는 하우스감귤을 제외한 노지감귤은 1월초 판매가 모두 끝났다. 지난 8일 찾은 농장에서는 수확을 미루고 있는 노지감귤이 조금 달려있고 창고에도 감귤이 쌓여 있었다.

유기농 감귤농사에 대한 경험과 기술은 부족함이 없지만, 적정한 가격을 받을 수 있는 판로에 대한 고민과 불합리적인 유통구조에는 불만이 있다.

"생협으로 납품하는 생산자 가격이 너무 낮다. 친환경 학교급식도 단가가 낮고 상품율이 적으며, 유기농인데 껍질이 깨끗한 것을 찾는다. 유기농 감귤농가에서 껍질이 깨끗한 것을 만들려고 경쟁한다. 상품용이 안 되는 것은 가공용으로 받아가는데 생과에 비해서 단가가 너무 낮아 인건비도 안 될 정도의 가격이다."

세원씨는 농업경제학 박사공부를 하면서 한국은 농사에 비전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농사와 농촌에 경험이 없는 정책 입안자들이 농업 정책을 만든다고 비판했다.비전이 없는 농사를 그만두고 육지로 다시 돌아갈 생각을 했을때, 건강이 좋지 않아서 수술을 하고 몸을 회복하는 기간이 있었다. 건강을 회복한 후에, 농사를 그만하려던 생각은 다른 유기농 감귤농장을 방문한 것을 계기로 용기를 내서 농사를 다시 시작하였다.

농사에 뼈를 묻겠다고 내려왔는데...
 
고세원 농부 가족이 감귤농장을 산책하고 있다.
 고세원 농부 가족이 감귤농장을 산책하고 있다.
ⓒ 고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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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는 결혼 10년 만에 시험관으로 어렵게 딸을 얻었다. 혜연씨는 출산을 위해 학원을 그만두고 육아를 하다가 3살된 딸을 어린이집에 보내면서 작년에 수학학원을 개원해서 혼자 운영하고 있다. 농사 수입만으로는 형편이 어려워 계획보다 빨리 학원을 열었지만 코로나19로 수강생이 늘고 있지는 않다.

농사는 땀흘린 만큼 대가가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고, 이전보다 못한 가격에 회의가 들기도 한다. 농사 수익은 처음이나 지금도 별로 나아진 것은 없다. 감귤나무는 해거리로 생산량이 들쑥날쑥하고, 작년에는 하우스감귤에 방제를 잘못하여 낙과 되면서 소득이 크게 줄었다. 농사를 하면서 대학의 연구원으로 월급을 받고 2년간 일했던 것도 농사 수입만으로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세원씨는 농사 규모를 줄여서 농장의 일부를 팔아 빚을 갚으려고 한다. 그는 인생 계획에 농사가 있어서 하고 있지만, 천직으로 하는 것은 아니라며 일하는 동안은 열심히 할 것이라고 했다. 땀 흘리며 농사짓는 것이 너무 좋아서 농사만 잘 지으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할 일이 많은 것이 농사라며 혹시라도 농사를 그만두더라도 농사와 관련된 일을 할 것이라고 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드라망생명공동체 회원 소식지에도 실립니다.


태그:#귀농, #새귤농원, #제주도, #유기농, #감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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