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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엄마는 30년 경력의 워킹맘이십니다. 제 유년기 시절에는 집에서 자동차 부품 조립하는 일을 하셨고 그 이후 2년간은 남의 집 아이를 돌보셨어요. 저희 자매가 모두 학교에 다니고부터 엄마는 출퇴근을 시작하셨습니다. 집에서 자전거로 10분 거리의 아파트로요.

당시 저희 가족은 몸이 불편하신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습니다. 엄마는 매일 아침 출근해 오전 근무를 하고 점심시간이 되면 집으로 와 할아버지의 식사를 차려드린 후 오후 근무시간에 맞춰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곤 하셨지요.

그 시절 엄마가 본인의 점심식사를 어떻게 해결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머지 가족들의 세 끼는 단 한 번의 누락도 없이 성실하게 채워졌습니다. 매일 아침 밥상 위에는 갓 지은 따뜻한 밥과 손수 만든 반찬이 올라왔습니다. 방바닥은 늘 깨끗했고, 설거지통과 빨래통은 아침이면 새것처럼 비워져 있었어요.

당시에는 몰랐는데 이제와 돌아보니 저희 엄마, 엄청난 분이셨네요! 슈퍼맘 중에서도 초강력울트라메가톤급 슈퍼맘이 바로 저희 엄마셨던 겁니다. 하지만 그런 엄마에게도 못하는 게 딱 한 가지 있었습니다. '힘들다'는 말, 그 짧은 한 마디 하는 법을 엄마는 몰랐습니다.

아이를 낳은 후에야 말하지 않은 엄마 마음이 읽혔고 복직을 하고는 엄마의 지난 삶이 생생하게 그려져 화가 났습니다. 엄마는 왜 누구에게도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았던 걸까요. 왜 혼자서만 꾹 참고 견디셨던 걸까요.

'징징대지 마라. 옛날에는 여섯일곱 낳고도 군말 없이 잘만 키웠다.'

요즘 엄마들의 고충을 토로하는 글에 자주 달리는 이 댓글처럼, 누군가 엄마에게 압박을 넣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제 자식은 똥도 예쁘다, 하루 종일 들어도 팔 아픈 줄 모른다, 라는 말을 듣고 나면 차마 똥이 더럽다, 팔이 아프다 말할 수 없게 되는 것처럼 엄마라면 응당 그래야만 한다는 사회가 만든 기준과 스스로 만들어낸 책임감이 차마 힘들다는 말이 밖으로 나올 수 없도록 틀어막고 있었는지도요.

'나 혼자 힘든 것도 아닌데 뭐.'

어쩌면 엄마는 속으로 참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남편에게 부담주기 싫어서, 공부하는 애들한테 걱정 끼치기 싫어서, 다들 바쁘게 사는데 괜히 내 짐까지 더하지 말고 그냥 참자, 했을 겁니다. 말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닌데, 어차피 내가 감당해야 할 일인데, 하면서요.

엄마를 닮아서인지, 저도 역시나 엄마이기 때문인지, '힘들다'는 말이 쉽게 나오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힘이 들면 '힘들다' 말하려고 해요. 힘이 들면 어떤 식으로든 티가 나기 때문입니다. 영혼이 빠진 듯한 표정에서 드러나고, 상대방은 잘못한 게 없는데 괜히 틱틱거리게 되는 말투에서도 드러납니다. 같은 짐을 짊어진 사람에게는 더 노골적으로 드러날 수도 있겠죠.

나는 힘들어 죽겠는데 남편은 마냥 평화로워 보이는 날에는 눈도 마주치기 싫어질 겁니다. 소파에 앉아 티비를 보는 남편이 얄미워 괜히 "소리 좀 줄여. 애 자고 있잖아" 차갑게 말하게 될지도 몰라요. 그럼 남편은 "지금 네 목소리가 훨씬 크거든" 하고 더 차갑게 받아칠지도요. 거기에 맞서 몇 마디 더 주고받다 보면 그나마 남아있던 힘까지도 모조리 빠져버릴 걸요. 그보다는 '힘들다' 말 한 마디가 훨씬 나을 겁니다. 부작용도 없고요.

아무렴요. 옛날 어머니들 많이 힘드셨을 겁니다. 저희 외할머니만 봐도 알아요. 세탁기도 없던 시절 남편과 일곱 자식 빨래며 설거지며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틈나면 농사일도 거들어야 했을 테고 세 끼 식사 차려내고 때맞춰 새참도 챙겨야 했고. 

그래도 군말 없이 묵묵히 하셨겠지요. 하지만 군말 없이 사신 할머니들, 속에서 맴도는 군말도 없었을까요? 글쎄요. 그들도 사람인 걸요. '화병'이 괜히 생긴 건 아닐 겁니다. 옛날 사람들이 더 많이 고생했고 잘 참았다는 사실은 내게 어떤 영향도 주지 못합니다. 내가 힘든 이유는 오늘 나를 둘러싼 과업과 상황들이니까요. 
 
뚜렷한 해결책이 없어도 상대방이 내 말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납니다.
 뚜렷한 해결책이 없어도 상대방이 내 말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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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 엄마는 애 셋에 야근을 밥먹듯이 해도 멀쩡하던데, 라고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저마다 상황이 다르고 각자 힘들다고 느끼는 영역도 달라요. 온도재듯 정확히 어느 지점에서부터 힘들어진다고 정해진 것도 없잖아요. 내가 힘들면 힘든 겁니다. 

압니다. 요즘 세상에 힘들지 않은 사람 없지요. 학생들도 힘들고 취준생도 힘들고 아빠들도 힘든 것 알아요. 나만큼 저 사람도 힘들 것 같아 "힘들다" 말하기가 어렵다면 "힘들지?"라고 말해봅니다. "응" 하고 말 사람은 없어요. 분명 "너도 힘들지?"라는 대답이 돌아올 거예요.

뚜렷한 해결책이 없어도 상대방이 내 말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납니다. 같은 짐을 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정말로 내 짐을 조금 덜어줄 수도 있겠죠. 그럼 좀 어떤가요. 다음번에는 상대방 짐을 내가 덜어주면 되잖아요.

힘들면 힘들다고 말해요. '오늘은 하늘이 파랗네', '지금은 오후 네시야', 하듯 '나는 지금 힘이 든다'라고 말하는 겁니다. 엄살이나 투정이 아니에요. 내가 지금 느끼는 사실 그대로를 말하는 거예요.

세 살짜리 우리 아이는 가끔 넘어져서 웁니다. 그때마다 저는 아이의 다친 부위에 입을 갖다 대고 '호~' 해줘요. 그럼 아이는 울음을 뚝 그칩니다. 다친 게 '호~' 한 번에 바로 나았을 리 없는데도요.

내 상황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때로는 큰 힘이 됩니다. 우리가 왜 함께 살고 있나요? 옆에 있는 누군가가 내게 힘이 되어줄 수 있도록 말해주세요. 지금 힘들다고요.

덧붙이는 글 | 기자의 브런치에도 함께 게재됩니다.
https://brunch.co.kr/@nosto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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