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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린내 고개 이 고개에서 삼국 시대에 큰 전투가 있어서 비린내 고개라 부른다고 한다.
▲ 비린내 고개 이 고개에서 삼국 시대에 큰 전투가 있어서 비린내 고개라 부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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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고갯길에서 등산을 체험한다. 고갯마루에서 신선한 바람을 마음껏 호흡하고 시야를 멀리 펼쳐본다. 우수 절기를 며칠 앞둔 고갯길에 밤나무 가랑잎이 수북하다. 한적한 고갯길에서 월동한 가랑잎이 부스러지지 않고 온전하게 반짝인다. 고목 둥치를 쪼아대는 딱따구리 소리가 빈 골짜기에 가득하다. 잊힌 고갯길이 야생의 생명력으로 봄을 준비한다.

의견 설화의 고장인 임실 오수에 13번 국도가 통과한다. 이 도로는 전남 서남부의 완도 바닷가에서 영산강, 섬진강과 금강 유역을 달리며 전북 동북부 고원지대를 넘어 충남 금산에 도착한다. 총연장은 317km다.

오수에서 13번 국도를 따라 서쪽으로 2km쯤 가면 비린내 고개를 만난다. 자동차로 달리면 고갯길인 줄도 모르고 지나간다. 길이 500m의 짧은 고갯길로 박사골 삼계면의 들머리가 된다. 이 고개에서 삼국 시대에 큰 전투가 있어서 '비린내 고개'라 부른다고 한다.
 
성황당 고개 잊힌 고갯길이 야생의 생명력으로 봄을 준비한다.
▲ 성황당 고개 잊힌 고갯길이 야생의 생명력으로 봄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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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에서 비린내 고개에 이르는 지름길로 성황당 고개가 있다. 폭이 좁은 흙길이다. 학생들이 이 고개를 넘어서 통학하였다. 오수 장날이면 장보러 넘던 고갯길이었다. 그러나 13번 국도가 우회하여 멀지만, 시대의 흐름을 따라 성황당 고개는 인적이 뚝 끊겼다.

고갯마루의 성황당 돌무더기는 잡초에 묻혀 침묵한다. 성황당 고개의 오수 쪽 들머리에 말 무덤이 있었다. 조선 시대의 오수 역참에서 역마(驛馬)로 활동하고 수명을 다한 말들의 무덤이었다. 지금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임실 삼계면 어은리와 인경왕후 이야기
 
육우당 이 고가가 조선 숙종의 정비인 인경왕후의 외가다.
▲ 육우당 이 고가가 조선 숙종의 정비인 인경왕후의 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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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린내 고개를 넘어서면 순천 완주 간 고속도로가 우뚝 선 교각들 위로 하늘을 가로지른다. 삼계면 어은리 마을이 보인다. 오백여 년을 이어온 청주 한씨 집성촌이다. 마을이 숲속에 숨어 있어, 수초가 무성한 개울에 숨어 있는 물고기 같다. 어은리(魚隱里)의 지명 유래다.

어은리 높은 지대에 육우당(六友堂) 고가가 마을 뒤쪽의 소나무와 대나무 숲을 병풍 삼아 고아하다. 이 고가가 조선 숙종의 정비인 인경왕후의 외가다. 인경왕후가 어린 시절에 이 마을에서 자랐다. 조선 시대에 이 지역은 남원부 오지방 어은동이었다.

인경왕후는 현종 때인 1661년에 출생하여 10세에 세자빈이 되고 15세에 왕비가 되었다. 인경왕후가 세자빈으로 간택되는 과정에 일화가 있다. 양반가 규수들이 아버지 이름자가 새겨진 방석에 앉아 간택 면접을 기다렸다. 현종이 보니 한 소녀만이 서 있었다.

현종 : 자리에 앉지 않고 어인 일로 서 있는고?
소녀 : 어찌 자식 된 도리로 방석이라고 해도 아버지의 함자 위에 앉을 수 있겠나이까?
현종 : 세상에 제일 좋은 꽃이 무엇인고?
소녀 : 만민이 먹고 쓰는 벼꽃과 목화꽃입니다.


이 소녀가 세자빈으로 간택되고 훗날 숙종의 정비가 되었다. 인경왕후는 공주를 두 명 낳았다. 그러나 두 공주가 잘 자라지 못하고 모두 차례로 세상을 떠났다. 인경왕후는 어은리 외가에서 어린 시절에 즐겨 먹던 콩잎 장아찌를 그리워했다. 왕명으로 어은골의 콩잎은 진상품이 되었다. 지금도 어은리 인경왕후의 외가인 육우당 가까운 곳에 콩잎 진상전(進上田)이 전해오고 있다.

숙종의 초비인 인경왕후는 20세의 나이에 안타깝게 승하한다. 어려서 세상을 떠난 두 공주를 따라간 것일까? 그리고 인현왕후와 장희빈이 궁중 비화(悲話)의 무대에 등장한다. 인경왕후가 오래 왕비의 자리에 있으며 왕자를 낳고 왕대비까지 되었다면, 인현왕후와 장희빈의 궁중 비화(悲話)는 아마 전개되지 않았을 것이다.

한글 소설 <구운몽>의 작가 서포 김만중은 숙종과 인현왕후, 장희빈을 풍자하여 <사씨남정기>를 지었다. 명나라를 배경으로 유연수와 사정옥 교채란을 등장인물로 하였으나 조선 백성들은 궁중을 빗댄 이야기임을 바로 알았다. 소설 <사씨남정기>에는 인현왕후를 지지하는 주제와 의도가 드러난다. 인현왕후는 인경왕후와 친인척이었고, 인경왕후는 서포 김만중의 친조카였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꽃, 벼꽃과 목화꽃

벼는 외떡잎식물 벼목 볏과 벼속의 작물이다. 벼꽃은 7~8월에 개화하며 꽃잎이 없다. 여섯 개의 수술과 한 개의 암술이 있는데 개화는 벼 이삭이 출수하고 한낮에 1~2시간 사이에 벼꽃이 열렸다가 꽃가루 수정을 하면 바로 닫힌다. 벼꽃 하나가 쌀알 하나다. 대나무가 벼와 비슷한 식물로 꽃의 모양이나 특성이 서로 닮았다.

목화는 쌍떡잎식물 아욱목 아욱과의 한해살이풀이다. 목화씨를 고려에 도입한 문익점의 행적을 목화씨를 밀수했다는 영웅담으로 과장할 정도로 백성들에게 고마운 작물이었다.

목화의 솜털은 처음에는 민들레 씨앗 깃털처럼 가볍다가 점차 탐스럽고 실용성 있게 진화되었다고 본다. 익지 않아 물기 많은 목화 다래는 아이들이 따먹기도 했다. 목화는 7~8월에 개화하는데 꽃잎은 5장이고 지름 4cm의 꽃이 나선형으로 핀다. 목화 다래가 익으면 목화솜이 몇 조각으로 뭉게구름처럼 피어난다.

벼꽃은 꽃말이 풍요이고 목화꽃은 어머니의 사랑이다. 인경왕후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꽃이라고 한 벼꽃과 목화꽃은 고맙고 반가운 꽃이다. 벼는 식용작물에서 으뜸이고 목화는 비식용작물에서 으뜸이다.

두레 울력으로 함께 어울리는 노동 현장에서 백성들의 땀과 시간이 많이 요구되어 많은 농기구가 개량되었다. 인경왕후는 임실 삼계면 어은리의 논과 밭에서 농사짓는 백성들과 함께 이 꽃들을 보고 흥겨운 농촌의 세시 풍속도 함께 했을 것이다.

15세에 영조의 왕비가 된 정순왕후도 간택 과정에 아버지의 이름이 새겨진 방석에 앉지 않았고, 세상에서 제일 좋은 꽃이 목화꽃이라고 대답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왕비들의 지혜로움과 따뜻한 공감 능력이 돋보이는 이야기인데 항렬(行列)로는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되는 인경왕후와 정순왕후에게 이렇게 같은 내용의 일화가 전한다.

인경왕후의 마음의 고향, 임실 삼계면 어은리 외가

장다리는 한철이고 미나리는 사철일세. 철을 잊은 호랑나비 오락가락 노니니 제철 가면 어이 놀까나. 한양에서 이 노래를 널리 불렀다. 인현왕후에 비교하여 장희빈이 제대로 평가되지 않은 면이 있다.

장희빈은 미천한 신분에서 궁녀와 후궁을 거쳐 왕자를 낳고 왕비에 이르고 폐위되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한 시대를 드라마같이 풍미한 여인이었다. 권선징악의 구도에서 작품화한 김만중의 <사씨남정기>도 남인과 대립하던 서인의 입장을 많이 반영한 것으로 비판적 시각에서 읽어볼 수 있다.

숙종은 현종이 승하하고 서인과 남인의 정쟁이 긴장감을 높이는 시기에 열세 살의 나이에 국왕이 되었다. 숙종은 영특하여 서인과 남인을 경쟁시키며 왕권을 강화하였다. 인현왕후와 장희빈을 폐위하고 복위하는 과정을 진행하며 서인과 남인을 차례로 약화하는 환국 정치를 하였다. 어떤 면에서는 인현왕후와 장희빈 모두 숙종에게 정치적으로 이용당한 희생양이었다.

인경왕후가 어린 시절을 행복하게 보낸 임실 어은골은 평온하다. 어머니와 외가, 외할머니는 포근하고 넉넉한 영원한 마음의 고향이다. 아름드리 상수리나무와 소나무 고목이 병풍처럼 고요하여 인현왕후와 장희빈의 궁중 비화에 무심하다. 이끼 낀 고택의 지붕 기와, 풍상을 이겨낸 용마루가 인경왕후의 이야기를 한가롭게 들려준다. 어은골 콩잎 진상전은 지금도 인경왕후를 추억한다.
 
콩잎 진상전 어은리 인경왕후의 외가인 육우당 가까운 곳에 콩잎 진상전(進上田)이 전해오고 있다.
▲ 콩잎 진상전 어은리 인경왕후의 외가인 육우당 가까운 곳에 콩잎 진상전(進上田)이 전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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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경왕후는 세자빈이 되고 왕비가 되어서도 외가의 콩잎 장아찌를 그리워했다. 구중궁궐에 있으면서도 외가 마을의 산천과 논밭의 풍경이 못내 그리웠던 것이 아닐까? 백성들이 일하는 건강한 모습과 따뜻한 인정이 못내 그리웠던 것이 아닐까?

인경왕후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꽃이라 한 벼꽃과 목화꽃이 피었던 어은골 들녘을 걷는다. 인경왕후도 비린내 고개와 성황당 고개를 넘어서 이 지역의 교통과 문화의 거점인 오수 역참 동네에 나들이하러 다녔을 것이다. 인경왕후가 즐겼던 콩잎 장아찌! 아 비린내 고개! 어은골 고개 콩밭에서 허기진 백성들이 생콩을 따서 먹어보고 콩 비린내가 난다고 웃지 않았을까? 그래서 비린내 고개가 아닐까? 고갯길을 걸으며 엉뚱한 해학을 창작해 본다.

작은 고갯길도 먼 여행길만큼 흐벅지다. 마음이 나그네면 몸도 곧 나그네처럼 자유롭다. 명승지 아닌 소박한 고갯길도 진솔한 이야기가 풍부하다. 고갯길을 넘으면서 보석 같은 이야기를 엮어간다. 나비야 청산 가자 범나비 너도 가자. 우수를 지나니 곧 경칩이로구나. 어화 좋다, 어화 좋아! 어느 고개를 찾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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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임실군 문화관광해설사] 향토의 역사 문화 자연에서 사실을 확인하여 새롭게 인식하고 의미와 가치를 찾아서 우리 지역의 가까운 고갯길을 걸으며 기사를 엮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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