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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주시 경천대의 풍경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상주시 경천대의 풍경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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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북부를 여행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유사한 말을 듣게 된다. 상주시, 안동시, 예천군 주민들은 "우리 고장이야말로 조선 유학(儒學)의 본산(本山)"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틀린 이야기가 아니고, 터무니없는 과대 포장도 아니다. 이 지역이 배출한 유학자의 숫자와 학문적 성취로 일가를 이룬 선조의 숫자, 곳곳에 산재한 서원(書院)을 볼 때 지역민들이 가지는 긍지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

상주시를 여행했던 몇 해 전. 경천대를 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거기서도 산책 나온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 몇 분에게서 앞서 언급한 이야기를 들었다.

"조선 문반 오분의 일은 우리 동네에서 나온 기라. 거짓말이 아이데이."

실제로 그랬다. 낙동강이 한눈에 조망되는 무우정(舞雩亭)에 올라 내려다보니 그 풍광이 중국 고전소설을 읽으며 만나던 선경(仙境)이었다. 뿐인가. 빽빽하게 들어선 소나무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절로 선비의 곧은 절개를 떠올리게 했다.

적지 않은 시인 묵객이 경천대를 지칭해 "길고 긴 낙동강에서 만나는 최고의 풍경"이라고 상찬했다. 그래서다. 경천대는 부정할 수 없는 '낙동 제1경'으로 자리 잡았다.
 
 ‘비경’이라 부를 수밖에 없는 경천대의 풍광.
 ‘비경’이라 부를 수밖에 없는 경천대의 풍광.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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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아닌 하늘이 만들었다는 의미의 '자천대(自天臺)'로도 불려

이런 산세와 풍치를 어릴 때부터 보고 자랐으니 시서화(詩書畵)에 능한 이들이 많을 수밖에 없을 듯했다. 독일 철학자 카를 마르크스(Karl Marx·1818~1883)를 인용해 이야기하자면 "모든 인간의 의식은 존재에 규정당하는 것" 아닌가.

문장 뛰어나고, 글씨 좋고, 그림에도 빼어난 이들이 부지기수로 살았던 경북 상주시. 그 상주시 관광의 최정점에 서있는 경천대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권장되고 있는 비접촉·비대면 여행에도 썩 잘 어울리는 곳이다. 상주시청 문화관광 홈페이지는 바로 이곳 경천대를 아래와 같이 간략하게 안내하고 있다. 읽어보자.

"낙동강변에 위치한 경천대는 태백산 황지에서 발원한 낙동강 1천300여 리 물길 중 경관이 가장 아름답다는 '낙동강 제1경'의 칭송을 받아온 곳으로 하늘이 만들었다 해서 자천대로도 불린다. 낙동강 물을 마시고 하늘로 솟는 학을 떠올리게 하는 천주봉, 기암절벽과 굽이쳐 흐르는 강을 감상하며 쉴 수 있는 울창한 소나무 숲과 전망대, 조선 인조 때 대학자 우담 채득기가 은거하며 학문을 닦던 무우정, 임진왜란 때의 명장 정기룡의 전설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전망대, 야영장, 출렁다리, 드라마 '상도' 세트장 등이 갖춰져 있고, 정감 있는 돌담길과 108기의 돌탑이 어우러진 산책로도 관광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지척엔 도남서원도 자리하고 있다."

이른바 언택트 관광이 가능하려면 '다수의 대중이 밀집된 공간에서 동시에 즐기는 행위'를 경계해야 한다. 경천대는 그게 가능한 여행지다. 여기에 하나를 더하자면 경천섬도 빠뜨릴 수 없는 최상의 언택트 관광지. 상주시청 문화관광과 관계자는 경천섬을 이렇게 이야기했다.

"낙동강 상주보 상류에 위치한 20만㎡의 하중도(河中島)다. 섬을 둘러싸고 흐르는 잔잔한 강물과 비봉산 절벽이 하모니를 이뤄 절경을 만들어내는 생태공원이다."
 
 경천섬이 상주로의 봄 여행을 유혹하고 있다.
 경천섬이 상주로의 봄 여행을 유혹하고 있다.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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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천대와 경천섬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학 전망대.
 경천대와 경천섬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학 전망대.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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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다가올 봄이면 여기에 피는 유채꽃이 젊은 연인은 물론, 중년 부부까지도 매혹한다. 나이를 불문하고 꽃을 본다는 건 청춘으로의 복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여기에 상주시민들의 이런 설명이 덧붙여진다.

"봄만이 아니다. 가을엔 코스모스와 메밀꽃이 그저 그만이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올 수밖에 없다. '학 전망대'에 올라 경천섬 주위 풍경을 만끽하는 건 상주 여행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이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석양 무렵을 기다려보라. 도시에선 결코 맛볼 수 없는 매력적인 해넘이에 기가 질릴 것이다."

호남의 시인을 매료시킨 영남의 절경 경천대

주민들이 이야기가 마냥 과장된 것이 아님을 문병란(1935~2015)의 시가 증명하고 있다.

문병란은 김지하, 조태일, 이성부 등과 함께 호남의 대표하는 시인. 민족적 서정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절창으로 20세기 한국 문단에서 이름이 높았던 사람이다. 그런 그가 경천대를 돌아보고는 다음과 같은 시를 썼다. <낙동강에 보내는 무등산 노래>다.

낙동강은 거기 있고
무등산은 여기 있다
거기 있는 마음 여기 오고
여기 있는 마음 거기 간다
오가는 마음 서로 만나고
만나는 마음 서로 사랑이 꽃핀다.

어기어차 노를 저어라
낙동강 칠 백리 두둥실 달이 밝으면
율려 개천 송 큰 할아버지 말씀
홍익인간(弘益人間) 이화세계(理化世界)
동방고문화국 지혜의 하늘 넓게 열리고
눈빛 고운 사람들 모여 태양을 모시었다.

흥부는 맑은 마음 나누어 놀부 가슴 다스리고
놀부는 참회한 마음 나누어 흥부의 가슴 채워주고
햇빛 달빛 별빛 놀빛 모두 불러 모아
흥부 놀부 다시 만나 형제 사랑 노래한다.

하나이면서 둘
둘이면서 하나
시작은 끝도 없이 영원무궁
무등산에 올라 부르는 백두산 노래여
낙동강 들과 꽃에 보내는 그리움이여.

무등산을 짊어지랴 낙동강을 들이키랴
산노래 들노래 서로 만나 어우러져
니캉 내캉 나누는 마음 합치는 마음
무문대도 남북통일 태극세상 밝혀내자.

다 드러내고도 부끄러움 없는 밝음
꽃은 꽃끼리 사람은 사람끼리
닫힌 것 열고 막힌 것 뚫고
한글 세상 삼천리 사랑시를 읊으리라
두둥실 두리둥실 우리 모두 하나 되자.


영남의 낙동강과 호남의 무등산을 소재로 동서화합을 넘어 남북의 통일까지를 문장 안에 숨긴 문병란의 이 작품은 '아름다운 풍경은 성정이 다른 인간들을 서로 포옹하게 만드는 힘까지 지녔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남북과 동서의 갈등이 없는 하늘로 떠난 시인을 추모한다는 뜻에서 경천대와 경천섬을 돌아보며 마음속으로 조용히 읊조려 보면 좋을 시다.
 
 유채꽃이 만발할 무렵의 상주 도남서원 일대 풍경.
 유채꽃이 만발할 무렵의 상주 도남서원 일대 풍경.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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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유학자 여럿의 위패를 모신 상주 도남서원 전경.
 조선 유학자 여럿의 위패를 모신 상주 도남서원 전경.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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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이 편액 내린 도남서원에도 곧 봄이 올 터

굳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모든 것은 끝이 난다. 고통 또한 그렇다"는 루이제 린저(1911~2002)의 진술을 인용할 것까지도 없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어떤 강력한 힘을 가졌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인간에 의해 그 기세가 꺾일 것임을 우리는 안다. 최근에는 각국에서 백신 접종도 시작됐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온다. 이것은 누구도 막지 못할 자연의 흐름. 한국 역시 2021년의 봄이 분명 올 것이다. 그때가 되면 상주를 찾아 경천대와 경천섬을 유유자적 산책하고 멀리 보이는 도남서원까지 가보자.

그곳은 정몽주, 김굉필, 정여창, 이언적, 이황, 노수신, 류성룡, 정경세, 이준의 위패를 모신 사액서원(賜額書院)이다. 사액서원이 뭔가? 왕이 이름을 지어 편액(扁額·이름을 쓰거나 새긴 액자)을 내림으로써 그 권위를 인정한 서원이다.

도남서원은 조선 숙종 때 사액서원이 됐다. 1871년엔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안타깝게 허물어졌으나, 지난 1992년 뜻을 모은 상주 유림들의 힘으로 복원된 공간.

거기서 도도하게 흐르는 낙동강을 바라보며 지난 시대 인간답게 사는 길을 찾기 위해 우리 선조들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생각해보는 시간은 누가 뭐래도 가치 있는 일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북매일>에 게재된 것을 일부 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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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등의 저자. 경북매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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