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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영종도에 '게으른 날'이라는 편집숍이 있다. 천연수세미, 계피스틱으로 만든 천연방충제, 인삼꽃 설거지 비누, 코코넛 브러시, 대나무 조리도구, 옥수수 빨대, 대나무 칫솔, 소창 커피필터 등을 취급한다.

이곳을 이용하는 손님 대부분은 '게으른 사람들'이다. 이곳은 뭐든 빨리 결과가 나와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급한 사람들에게는 이해 불가한 답답한 공간이다.

가게 주인장은 부부다. 나무늘보를 동경한다는 이들의 삶의 철학은 급하게 살아온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게으른 날'편집샵을 운영중인 김진혁, 이나영 부부
 "게으른 날"편집샵을 운영중인 김진혁, 이나영 부부
ⓒ 이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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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권을 포기하고 군대에 가다

김진혁(41세, 운서동)씨는 외교관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인생의 반 이상을 해외서 살았다. 그는 태국서 유치원을 나오고, 초등학교는 미국, 중학교 시절은 한국에서 보내고, 고등학교와 대학교는 캐나다에서 졸업했다. 캐나다의 하버드로 불리는 명문 맥길대 경영학과를 입학하고 잘나가던 그가 어느날 영주권을 포기한다. 한국인 남자라면 꼭 가야 하는 군대를 가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한국으로 들어와 공군통역장교로 제대를 한 후 네팔에서 1년 반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봉사를 했다. 대학도 과를 옮겼다. 맥길대학교에서 가장 인기 높았던 '경영학과'에서 가장 점수가 낮은 '국제개발학과'로 전과한 후 그는 인류를 가슴에 품기 시작한다.
 
'게으른 날' 편집샵 내부. 친환경 제품으로 꾸며져 있다.
 "게으른 날" 편집샵 내부. 친환경 제품으로 꾸며져 있다.
ⓒ 이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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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유니세프에서 1년간 봉사를 하고 '코스타리카 유엔평화대학원'에 입학해 1년 반을 다녔다. 그후 한국에 돌아와 어린이재단에서 어린이 인권을 위해 일했다. 아프리카 남수단으로 직접 가서 어린이 인권 봉사하기도 했다.

"남수단은 물 부족 국가입니다. 하루는 한 우물을 사이에 두고 두 개 부족이 싸움이 일어났어요. 새벽에 A라는 부족이 B부족 부모를 다 죽여 버렸습니다. 졸지에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모두 고아원에 들어갔지요."

그는 그때 아이들의 슬픈 눈을 잊지 못한다고 전한다. 어린이 인권을 위해 일해야겠다고 마음을 먹는 계기가 됐다. 사비를 털어 고아원 아이들에게 말라리아 모기장을 지원했다. 그러나 막상 자신은 그곳서 말라리아에 걸려 죽다 살아나기도 했단다.

그후 인도네시아에서 기업의 사회공헌팀 소속으로 일했다. 오염된 물밖에 없는 물 부족 마을에서 텐트를 치고 1년간 일했다. 번듯한 대기업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SK하이닉스에서 1년 4개월간 근무했지만 유니세프 일하면서 만났던 인권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의 눈망울이 떠올라 심한 우울감을 느꼈다.

그는 과감히 사표를 던지고 통역과 번역을 하면서 여전히 유니세프에서 구호활동을 하고, <빅이슈>라는 홈리스 자립잡지에 기고활동 중이다. '슬로스브루잉'이라는 수제맥줏집도 운영하고 있다('슬로스'라 불리는 '나무늘보'에서 따온 상호명이다).
 
수제맥줏집 '슬로스브루잉' 소개글
 수제맥줏집 "슬로스브루잉" 소개글
ⓒ 이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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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혁씨가 운영하는 수제맥줏집에서 나오는 이익금으로 네팔어린이를 돕고 있다.
 김진혁씨가 운영하는 수제맥줏집에서 나오는 이익금으로 네팔어린이를 돕고 있다.
ⓒ 이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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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만능주의자, 느림의 미학을 접하다

강남 로펌에서 근무하던 이나영(36세, 운서동)씨는 20대부터 10년 이상 다녔던 직장생활로 디스크 증상을 얻게 된다. 디스크를 고치기 위해서 시작한 요가는 현재 그녀의 직업이 됐다.

"디스크로 육체적으로 힘들었고 더더더 많이 갖고 싶어서 안달났던 때라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때였습니다."

어느날 그녀는 지인으로부터 한 남자를 소개받는다. 좋은 차, 좋은 아파트를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던 나영씨 인생에 전환점이 되는 남자였다. 자신보다는 세계 기근을 생각하고, 오염되지 않을 지구를 생각하는 남자를 만나면서 나영씨 인생은 180도 바뀌었다.

나영씨는 남편 진혁씨를 물질만능주의 늪에서 자신을 구해준 고마운 남자로 소개한다.

"남편을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도 더 갖기 위해 안달복달하면서 살고 있겠죠."

그때 만난 '요가'와 '남편'으로, 그녀는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다.
 
'게으른 날' 편집샵에서 판매하는 수세미
 "게으른 날" 편집샵에서 판매하는 수세미
ⓒ 이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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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 소개로 만난 김진혁씨의 첫 인상은 너무 강렬했다. "마치 UFO를 타고 날아온 어린왕자인 줄 알았어요." 세상물정 모르고 세상을 누비며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진혁씨의 행동이 기행으로 다가왔지만, 자신과 다른 그에게 그녀는 사랑을 느꼈다.

"남편 소개받고 3개월 후 진혁씨가 외국으로 떠났어요. 오염된 물밖에 없는 곳에서 텐트를 치고 살고 있다는 소식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자신은 좀 더 좋은 차를 위해, 좀 더 넓은 집을 구하기 위해 일하고 있는데 그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일한다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대나무 빨대
 대나무 빨대
ⓒ 이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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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해외봉사를 떠났고 그녀의 인생은 그렇게 덜어내는 삶으로 바뀌었다.

"해외봉사 중에 배가 전복되는 사고를 당했어요. 여자와 아이들 먼저 구명보트에 타라고 외치는 남편이 저보고는 그 구명보트를 타라고 안 하더군요. 그때 '아, 내가 이 남자와 살면 이런 삶을 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때 들은 생각이 '쉬운 길로 가지 말고 옳은 길로 가자'였습니다."

그녀는 지금 요가강사로 일하면서 '게으른 날' 편집숍을 운영하고 있다.

"남편은 수제맥줏집을 운영하고 저는 소품가게와 요가학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남편 맥줏집이 워낙 넓어서 이곳에서 가끔 주민들과 무료 요가 수업을 하고 있어요."

그녀는 코로나 이전에 이웃과 어울려 요가도 하고 테라스에서 바비큐 파티를 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햇빛, 좋은 사람들, 요가, 자연, 어울림 등으로 영종도 생활을 즐기고 있다.

부부, 이웃과 환경을 생각하다

그녀의 소박한 소품가게 품목은 환경을 생각하는 물품이 대부분이다. 물건을 사용하고 버렸을 때 모두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는 제품을 취급한다. 수세미라는 자연식물을 이용한 비누받침, 욕실수세미, 보디스크럽, 샤워스펀지, 계피스틱으로 만든 천연방충제, 인삼꽃으로 만든 설거지 비누, 코코넛으로 만든 채소 껍질 까는 브러시, 대나무 빨대, 커피를 거르는 소창으로 만든 커피필터 등.

모두 환경적인 부분을 가게에 접목했다. 소품가게 쇼핑백도 직접 디자인한 종이가방이다. 진혁씨가 운영중인 맥줏집 포장지 역시 종이제품이다.

"저희는 환경의 가치를 많이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게 모든 운영에 환경적인 부분을 넣습니다.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는 운동을 지역에서 펼치고 있어요. 플라스틱 사용을 자제해 지구에게 인간의 부정적 발자국을 지우자는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속적으로 지구에서 살기 위해서 천천히 나무늘보처럼 느긋하게 살고 싶다고 전한다.
 
대나무 칫솔
 대나무 칫솔
ⓒ 이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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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더 가까운 삶을 살고 싶어서 영종도에 들어왔고 나누는 삶을 살고 싶어서 한 달에 조금씩 기부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아이를 낳지 않을 생각이다. 자신들의 아기가 생기면 이기적인 생각에 남을 돌볼 여력이 없을 것 같아서다. 아이에게 투자할 돈을 저소득층이나 엔젤스헤이븐, 워터닷오알지, 네팔어린이 교복지원 등을 위해 수익금 중 100만 원씩을 한 달에 한 번 기부하고 있다. 부부는 '파시미나'라는 머플러를 살 때마다 빈곤층 아이들의 교복지원을 하고 있는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부부는 말한다.

"환경을 위한다면 느리게 사세요. 나무늘보처럼 잠깐 게을러도 괜찮습니다. 나무늘보처럼 느긋해도 좋습니다."

부부는 집 없어도, 10년 이상 된 중고차를 타고 다녀도 웃는다. 아무나 가는 쉬운 길은 아니지만, 누구나 갈 수 있는 옳은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게으른 날' 편집샵 전경
 "게으른 날" 편집샵 전경
ⓒ 이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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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날 편집샵
인천 중구 운서동 3087-2
영업시간 : 월요일~토요일, 오후 2시~9시 30분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천시 인터넷신문 'i-View'에도 실립니다. 글쓴이는 'I-View'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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