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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소년과 개>
 책 <소년과 개>
ⓒ 창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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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오키상(일본의 대표적인 문학상 중 하나) 수상작치고는 약간 평이하달까. 2020년 나오키상 수상작은 여느 해에 비해 문장력이 뛰어나다거나 구성, 소재 등이 참신하다고 느끼지는 못했다. (물론 이건 내 생각이다.) 그렇다고 흥미진진하게 읽히는 편도 아니었고 구성이 절묘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일본 문단은 왜 이 소설 <소년과 개>를 극찬했을까.

2020년 나오키상 수상작인 <소년과 개>는 '다몬'이라는 개가 한 소년을 찾아 길을 떠나는 여정을 시간과 장소, 만나는 사람의 순서에 따라 엮은 소설이다. 다몬은 셰퍼드와 토종견이 혼합된 개로서 나이는 4살이다. 늠름하고 지혜로우며 똑똑하다. 체내에 내장된 마이크로칩에 의하면 다몬의 고향은 이와테현 가와이시. 주인은 동일본 지진 때 목숨을 잃었다.

하루아침에 주인 잃은 다몬의 여정은 그때부터 시작된다. 늘 남서쪽을 응시하는 늠름한 다몬. 다몬에게는 그곳에 가야할 이유가 있다.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는 것이다.

이와테에서 시작하여 후쿠시마, 나가노, 도야마, 교토, 시마네를 거쳐 마침내 구마모토까지. 일본열도의 북동쪽에서 시작하여 남동쪽까지 이어지는 5년간의 여정. 그 여정 중간중간 다몬은 '임시' 주인들을 만난다. 그들은 대부분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결핍과 상실, 쇠락과 상실을 그림자처럼 떠안고 사는 사람들이었다.

치매에 걸린 엄마와 누이를 책임져야 하는 한 청년, 평생 쓰레기장에서 먹을 것을 찾다 도둑이 되어버린 한 외국인, 한때 사랑했지만 서로에게 의무가 되어버린 한 부부, 남자에게 배신을 당하고 성매매를 해야 하는 한 여성, 죽을 날만 기다리며 잿빛 하루하루를 보내는 늙은 사냥꾼. 그들의 헐벗고 피폐한 삶을 다몬은 따뜻하게 품어준다. 다몬은 그들에게 위로였고 기쁨이고 삶의 햇살이었다.

마지막으로 다몬이 찾아간 곳은 구마모토에 있는 한 소년의 집이다. 소년은 5년 전, 동일본 대지진 피해를 입고 구마모토로 이사했다. 소년이 살았던 곳은 이와테현 가마이시. 여기에서 소년과 다몬의 인연의 퍼즐이 맞춰진다. 소년은 동일본 대지진을 겪은 후 마음의 상처가 생겼다. 대인기피증과 실어증. 하지만 다몬과 해후한 뒤로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구마모토에서 또 한번 지진을 만난다.

하지만 지난 동일본 대지진 때와는 다르다. 소년은 아무리 슬픈 일을 겪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갖게 되었다. 5년 동안 소년을 찾아온 다몬의 사랑 덕분에 소년은 단단해지고 강해졌다. 그 사랑은 다몬이 소년에게 남겨준 소중한 유산이었다.

코로나시대, 위로가 되고 싶다

이 소설을 쓴 작가 하세 헤이슈는 머리말에서 이 소설을 쓴 이유에 대해 간결하고 명쾌하게 밝혔다.
 
"현재 사람들 간의 이동이 제한되고 경제 활동이 멈춰져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소년과 개>가 고통받는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개와 마찬가지로 사람도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갈 수 있다면 힘든 코로나 바이러스 상황에서도 견뎌낼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기 때문이다."
 
소설의 배경은 동일본 대지진 직후에 시작하여 다시 지진으로 끝난다. 왜 소설의 배경이 동일본 대지진이었을까 생각해보았다. 3.11 동일본 대지진이 아직도 끝나지 않은 재해인 만큼 일본인들의 가슴에는 동일본 대지진이 트라우마로 남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한 치 앞을 가늠할 수 없는 불안한 현실 속에서 변치 않는 사랑과 위안을 주는 존재가 있다면 우리는 살아갈 수 있다고 작가는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소년과 개>가 나오키상을 받은 이유도 짐작할 수 있다. 이 소설이 현재 일본인들이 겪는 불안한 마음과 허무함, 결핍을 잘 어루만져주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앞서 이 소설이 여느 나오키상 수상작과 견주었을 때 문장, 구성, 소재 면에서 특별한 점은 없는 것 같다고 썼지만, 그 특별한 점이 없다는 것이야말로 이 소설의 특별함이자 장점인지도 모른다.

사랑은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니야
 
 그저 그 자리에 있는 , 그것만으로도 구원받는 기분이 들게 하는 개의 충직한 사랑. 사람이 개만도 못할 때가 많다. '개'가 들어가는 욕을 개들이 들으면 어떤 기분일까.
 그저 그 자리에 있는 , 그것만으로도 구원받는 기분이 들게 하는 개의 충직한 사랑. 사람이 개만도 못할 때가 많다. "개"가 들어가는 욕을 개들이 들으면 어떤 기분일까.
ⓒ 안소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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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 소설은 아주 쉽게 쓰여있으며 정말 술술 읽힌다. '사랑이란 어려운 말로 에둘러 표현하는 게 아니야'라는 듯, 문체도 간결하고 쉽고 선명하다. 다 읽고 나면 가슴에 핫팩을 얹어놓은 듯 뜨끈해진다. 착하고 선한 애니메이션 한 편을 본 듯한 기분도 든다. (70년대 애니메이션 <플란다스의 개>와 전북 '오수의 개' 전설, 일본의 '하치 이야기'를 버무려 놓은 듯한.)

우리 집 근처 도서관 옆에는 노인복지관과 넓은 공원이 있어서 어르신들이 가끔 왔다 갔다 하신다. 대개 홀몸 어르신들이다. 노인복지관에서 소일하는 걸로 시간을 보내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간 코로나19로 인해 적조했었다.

햇살 좋던 지난 주말 도서관 가는 길에 보니, 공원에 어르신들이 해바라기를 하고 있었다. 내가 놀랐던 건 반려견 숫자가 그사이 부쩍 늘어났다는 점이었다. 두 명 중 한 명은 반려견을 데리고 나온 듯했다.

'말을 걸어 주지도 이야기에 끄덕여 주지도 않는', 하지만 '그저 거기에 있'어서 '그것만으로도 구원받는 기분이' 들게 만드는 개라는 존재. 무척 쉬울 것 같지만 누구나 쉽게 할 수는 없는 충직한 사랑이다. <소년과 개>를 읽던 도중이어서인지, 그날 그 공원의 풍경은 강아지 털처럼 포근하고 부드럽게 느껴졌다.  

소년과 개

하세 세이슈 (지은이), 손예리 (옮긴이), 창심소(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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