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화천 계성리 석등은 고려시대 유물로서 보물 496호로 지정돼 있다.
▲ 석등 화천 계성리 석등은 고려시대 유물로서 보물 496호로 지정돼 있다.
ⓒ 김철관

관련사진보기


강원도 화천의 한 산골짜기 오지에, 고려시대 절터와 과거 초등학교 분교가 존재했다는 점에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지난 2월 28일 연휴를 이용해 강원도 화천군 계성리 석등과 계성사지 절터 발굴 현장을 다녀왔다. 고려시대 유물로 알려진 계성리 석등은 보물 496호로 지정돼 있고, 고려시대 계성사지 절터임을 알리는 중요한 유물이었다.

강원도 화천군 하남면 계성리(啓星里) 보령골은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변역에서 승용차로 출발하면 2시간 거리에 있다. 이곳 보령골에 있는 이동주택(조립식 주택)은 평소 잘 알고 지낸 지인이 직장을 다니면서 주말이나 휴일을 이용해 거주하기 위해 산 농가이다. 물론 텃밭에서 옥수수, 고추 등 농산물을 재배해 휴일에 지인들을 초대해 나눠먹는 곳이기도 했다.

특히 그가 복잡한 도시 생활을 잠시나마 잊고, 자연을 벗 삼아 휴식을 취한 곳이었다. 강원도 화천군 하남면 계성리와 안평리 경계를 이루고 있는 이곳 계성산(해발847.4m)은 군사 지역인 포사격장이 있고, 장군처럼 생겼다고 해 장군산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계성산에 있는 계성사지 절터와 절터를 알리는 석등은 계성리 보령골에서 포사격장을 끼고 걸어 1시간 30분 거리에 있다.

2월 28일 오후 1시 30분경 이곳 보령골 지인 집에서 점심을 먹고, 계성사지 절터로 트레킹에 나섰다. 이날은 마침 걷기에 좋은 영상의 날씨였다. 서울에서 함께 간 지인 등 총 네 명이 보령골 동네 양계장을 지나 산 오솔길로 들어섰다. 그리고 계성산 골짜기에서 흐르는 물줄기를 따라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하면서 천천히 계성사지 절터로 향해 걸었다.

산(山)과 천(川)이 어우러졌고, 낙엽이 떨어진 앙상한 나무와 산골짜기에서 흐르는 물줄기가 조화를 이루었다. 지난 추운 겨울 언 얼음 위에 쌓였던 눈이 일체가 된, 하얀 얼음이 천천히 녹아내리는 모습을 보면서 자연의 이치인 봄 왔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계성산 큰 나무에 기생해 살고 있는 겨우살이이다.
▲ 겨우살이 계성산 큰 나무에 기생해 살고 있는 겨우살이이다.
ⓒ 김철관

관련사진보기

 
입춘이 지나 빠른 봄을 재촉하고 있지만, 도로 옆을 끼고 나란히 계속된 산천의 두꺼운 얼음은 아직도 한겨울임을 암시했다. 하지만 멀리 산 중턱 높은 나무 위에 기생하고 있는 '겨우살이'를 보면서 자연의 신비로움을 체감했다. 겨우살이는 다른 나무에 기생하며 스스로 광합성 작용을 해 엽록소를 만드는 반기생식물로 사계절 푸른 잎을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화천은 군부대가 많은 탓인지 산 도로 곳곳에 군인을 알리는 심벌이 박힌 버려진 과자 봉지와 조명탄피, 섬뜩한 경고문 등을 쉽게 볼 수 있다.
  
꽁꽁 언 얼음을 녹이면서 계성산 산골짜기에서 흐르는 맑은 물이다.
▲ 녹아내리는 얼음 꽁꽁 언 얼음을 녹이면서 계성산 산골짜기에서 흐르는 맑은 물이다.
ⓒ 김철관

관련사진보기

 
이를 뒤로하고 조금 더 걸으니 계성사지 절터와 석등이 보였다. 석등 앞에는 오지를 탐사하는 사람들의 비박 텐트가 쳐 있었다. 복사골에서 이곳까지 1시간 30분을 걸어 도착한 것이다.

먼저 보물 제496호로 지정된 화천 계성리 석등(華川 啓星里 石燈)을 살펴봤다. 석등의 정확한 소재지는 강원도 화천군 하남면 계성리이다. 이곳 안내판에는 석등에 대해 설명해 놨다.

"이 석등은 총 높이가 2.77m로 고려시대 만든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의 자리에서 계곡의 위쪽 약 200m 지점의 계성사지 절터에 있던 것을 1960년경 학교 정원석으로 사용하기 위해 현재의 위치인 원천초등학교 괴산분교로 옮겨 놓은 것이라고 한다. 지대석(地臺石, 기초부 위에 까는 받침돌)이 보이지 않고 지붕돌의 귀꽃이 일부 깨진 것을 제외하고 모든 부분이 완전하게 남아 있다. 이 석등의 특징은 불을 밝히는 부분인 화사석(火舍石)이 6각형이라는 점이다. 석등을 받치는 기둥 돌은 북 세 개를 연결해 놓은 양식을 취하고 있으며, 표면에는 연꽃과 고사리무늬를 새겨 놓았다. 각 면의 부재(각 부분에 쓰인 재료)를 따로 만들어 조립함으로써 기존의 석등과는 다른 면을 보이고 있다."

석등이 서 있는 바로 뒤편은 과거 원천초등학교 괴산분교 교실 터가 자리하고 있었다.
  
강원도 화천군 하남면 계성산 산골에 위치한 계성사지 발굴터이다.
▲ 계성사지 발굴터 강원도 화천군 하남면 계성산 산골에 위치한 계성사지 발굴터이다.
ⓒ 김철관

관련사진보기

 
석등 바로 위쪽은 고려시대 절로 추정되는 개성사지 발굴터가 있다. 발굴된 절터에서 나온 돌기둥, 상석 등 석조물에는 잘 모르는 여러 가지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이곳을 발굴하고 있는 강원고고문화연구원은 2019년도에 국내 최초로 육각형 금당지가 확인됐다고 알린 바 있고, 고려시대 차 문화와의 관련성이 주목되는 화려하고 격조 높은 화덕시설도 찾아냈다고 밝힌 바 있다.

계성사지 절터를 둘러보고 함께 왔던 일행과 왔던 길을 되돌아 걸었다. 왕복으로 걸어온 시간은 대략 3시간. 오랜만에 한 산행이어서인지 출발지인 복사골에 도착하니 다리가 뻐근했다. 이곳에 거주한 지인이 미리 준비한 장어·양고기 요리를 안주 삼아 막걸리를 걸쭉하게 마신 후, 별(星)이 열리는(啓) 마을이라 해 붙인 이름인 '계성(啓星)'리 복사골 주거지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편히 잠을 청했다.

태그:#보물 496호 계성리 석등 , #계성사지 발굴터, #겨우살이, #자연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문화와 미디어에 관심이 많다. 현재 한국인터넷기자협회 상임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