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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으로 참여했던 공수부대원이 자신의 사격으로 인해 무고한 사망자가 발생했음을 인정하며, 지난 16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유족을 직접 만나 사죄와 용서를 구했다. 고 박병현씨의 형 박종수씨(오른쪽)와 박씨를 죽인 A씨가 부둥켜안은 채 오열하고 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으로 참여했던 공수부대원이 자신의 사격으로 인해 무고한 사망자가 발생했음을 인정하며, 지난 16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유족을 직접 만나 사죄와 용서를 구했다. 고 박병현씨의 형 박종수씨(오른쪽)와 박씨를 죽인 A씨가 부둥켜안은 채 오열하고 있다.
ⓒ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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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하고 싶어도 누굴 용서해야 할지 몰랐어요."

이 말이 자꾸 뇌리에서 맴돈다. 고 박병현(5.18민주화운동 당시 25세)씨의 형 박종수씨가 동생을 죽인 계엄군 A씨의 사죄 의사를 처음 들은 날 했다는 말이다.

지난 16일 박씨는 41년 만에 A씨를 마주해 외려 "고맙다"는 말을 건넸다. 뿐만 아니라 "과거의 아픔을 다 잊어버리고 떳떳하게 마음 편히 살아달라"고 덧붙였다. 두 사람은 부둥켜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스스로 했던 말처럼 박씨는 긴 시간 용서의 마음을 품은 채 살아왔다. 하지만 누굴 용서해야 할지 몰라 고통의 세월을 이어왔다. 국가가 공식 사과했고 '광주사태'가 아닌 '5.18민주화운동'이란 이름이 붙었지만, 유족들의 뻥 뚫린 가슴은 미처 다 채워지지 못했다.

박씨는 이번 만남을 계기로 "동생을 좀 편안히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털어놨다. A씨는 "이제라도 용서를 구할 수 있어 다행이다"고 말했다. 이번 만남이 소중한 이유는 단순히 '첫 사례'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누구도 상처를 입지 않는, 모두가 상처를 치유하는 만남이었기에 많은 이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이는 사죄의 대상이 명확했고, 사과의 말이 구체적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고백과 증언, 사죄와 용서의 과정이 진정했고 진솔했다.

'피해자'로 뭉뚱그려진 추상을 향한 사죄는 간혹 허무함을 남기곤 한다(물론 이조차 하지 않는 이들이 많다). 국가가 나서 '피해자 여러분'을 향한 거시적 치유도 중요하지만, 꺼내기 힘든 고통을 품고 사는 곳곳을 위한 미시적 치유도 이어져야 한다. 때문에 긴 조사 과정 끝에 두 사람을 연결한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위원회)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사죄와 용서의 가치

이번 만남이 큰 의미를 지니는 이유는 또 있다. A씨가 자신의 사죄 행위를 공개하기로 결정했다는 점이다. 지난 1월 A씨로부터 사죄 의사를 전달받은 위원회는 그에게 공개 사죄를 제안했다.

당초 '개인적으로 사과하겠다'는 생각을 전했던 A씨는 크게 당황했다고 한다. 직접 공개 사죄를 제안했던 최용주 위원회 1과장은 "사과와 반성을 추동했던 (A씨의) 도덕적 의지가 순간 위축돼 버렸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위원회의 설득이 이어졌다. 최 과장은 A씨에게 "당신의 사과와 상대방의 용서는 그게 사회적으로 공개되고 인정되어야만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고 A씨도 이에 공감했다.

이로써 A씨의 사죄는 공공의 것이 됐다. '자신이 죽인 희생자의 유족에게 5.18 계엄군이 사죄한 것'을 사회 구성원 모두가 알게 됐다. 개인적인 사죄와 비교해 공적인 사죄의 효과는 단지 알려지느냐, 마느냐의 차이 정도로 설명할 수 없다.

A씨의 진정어린 사죄와 유족의 너그러운 용서, 그리고 그들의 용기에 수많은 이들이 위로와 박수를 보내고 있다. 이번 만남이 작은 무언가라도 품고 있는 이들을 움직일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렇게 사실의 조각들이 모여야 진실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질 수 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으로 참여했던 공수부대원이 자신의 사격으로 인해 무고한 사망자가 발생했음을 인정하며, 지난 16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유족을 직접 만나 사죄와 용서를 구했다. 게엄군 A씨가 자신이 죽인 고 박병현씨의 묘 앞에서 술잔을 올리고 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으로 참여했던 공수부대원이 자신의 사격으로 인해 무고한 사망자가 발생했음을 인정하며, 지난 16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유족을 직접 만나 사죄와 용서를 구했다. 게엄군 A씨가 자신이 죽인 고 박병현씨의 묘 앞에서 술잔을 올리고 있다.
ⓒ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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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의 저편을 바라봅니다. extremes8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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