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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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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원 2주째. 어린이집 원장님으로부터 얼굴 한번 보고 싶다는 문자를 받았습니다. 선생님들께서 저와 인사 나누고 싶어 하신다고요. 상냥한 말투지만 어쩐지 '얼마나 바쁘길래 애 맡기고 얼굴 한번 안 비추냐' 질책하는 메시지처럼 들려 가슴이 철렁했어요. 남편이 아이의 등하원을 담당하고 있고 다행히 아이가 잘 적응해주고 있어 따로 찾아뵐 생각을 못 했거든요.

다음 날 아침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습니다. 등원시간에 맞춰 선생님들께 인사드리려고요. 어린이집 입구는 아이들과 엄마들로 북적였습니다. 원장님께 쭈뼛쭈뼛 다가가 "안녕하세요. 저 지안이 엄마예요" 인사드리니 반갑게 맞아주셨어요. 선생님들께도 인사를 드리고 이제 아이와 작별하려는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아이가 제 가슴팍에 착 달라붙어 떨어질 생각을 않는 겁니다.

"엄마한테 어린이집을 보여주고 싶은가 봐요."

담임선생님 말씀이 제 등을 떠밀었습니다. 아이를 안고 어린이집 구석구석을 다니며 아이의 이름이 적힌 사물함, 아이의 사진이 붙은 게시판을 둘러보니 마치 제가 모르던 아이의 세상에 초대받은 것 같아 낯설기도 대견하기도 하더라고요. 그러다 벽에 걸린 시계에 시선이 닿았어요. 출근시간 15분 전.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회사에 지각하지 않으려면 당장 달려 나가야 할 시간이었거든요.

마음을 읽었는지 아이는 제 몸을 더 강하게 끌어당기며 얼굴을 비비기 시작했습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토끼 인형에 다가가도 눈길 한번 빼앗기지 않고요. 결국 울어서 목까지 빨개진 아이를 억지로 떼어내고 나왔습니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던 짧은 몇 분, 앞으로 제게 닥쳐올 무수한 갈등의 예고편을 맛보는 기분이었어요.

간신히 지각은 면했어요. 하지만 사무실에 앉아서도 내내 일이 손에 잡히지 않더라고요. 내가 직장에 다니지 않는 엄마였어도 우는 아이를 억지로 떼어놓아야 했을까. 친구 엄마들이 함께 있어 주는 걸 보며 아이는 얼마나 부럽고 외로울까. 우는 아이를 두고 사무실에 앉아 업무를 준비하는 제 자신이 너무 매정하고 이기적인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당장 팀장님께 말씀드려 반차를 내고 다시 어린이집으로 달려가 아이를 안아주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이런 일이 내일 또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었거든요.

우리 아이만 우는 게 아니었습니다 

선배 워킹맘들에게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가장 힘든 순간이 언제냐고 물어본 적이 있어요. 각자 처한 상황이 다르니 대답도 다양할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선배들의 대답은 한 가지로 모아졌습니다. "아이가 아플 때."

열이 펄펄 끓는 아이를 두고 출근해야 하는 순간, 아이가 다쳤는데 고객과의 약속 때문에 당장 달려가지 못하는 순간, 우산이 없다고 울며 걸려온 전화에도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는 순간에 선배들은 가장 힘들었대요. 그때마다 회사에 다니는 것이 욕심처럼 느껴져 아이에게 너무 미안했다고요.

아이가 아프면 엄마들은 자신을 먼저 탓하게 되는 것 같아요. 특히 워킹맘들은 직장 때문에 아이의 필요를 충분히 채워주지 못한다는 '부채의식'이 바탕에 깔려있어 사소한 문제의 원인조차 자신에게서 찾곤 하지요.

우는 아이를 억지로 떼어내고서 저도 그랬어요. 선배들에게 들은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의 일들까지 끌어와 워킹맘의 자녀로 자라날 아이를 안쓰러워하며 미안해했죠.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마침내 퇴사 시기를 가늠해보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러던 중 스마트폰으로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어요.

"완전 자지러지게 대성통곡 중ㅠㅠ 원장님께 맡기고 일단 나왔어요."

어린이집 엄마들 단톡방이었어요. 다른 엄마들도 "저도요", "우리 애도요" 하며 맞장구를 쳤습니다.

하, 우는 아이가 저희 아이만은 아니었던 거예요. 우는 아이를 억지로 떼어내고 돌아 나온 엄마가 저 하나만은 아니었던 거고요. 전업맘들도 워킹맘과 다름없이 마음 아픈 작별을 하고 있었습니다.

맞아요. 아이는 엄마와 독립해 세상으로 혼자 걸어 들어가는 순간을 지나야 하고, 제가 워킹맘이 아니었더라도 어쨌든 맞닥뜨릴 일이었지요. 그런데 제 부채의식은 문제의 원인을 제게서 찾고 저를 매정한 엄마로, 아이를 불쌍한 아이로 만들어버린 거예요.

워킹맘이라서 해줄 수 있는 것 

워킹맘의 아이들은 엄마의 빈자리를 느끼는 상황이 분명 많을 겁니다.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걸 충분히 해주지 못할 거예요. 이를테면 방과 후 맛있는 간식을 만들어 먹이거나 함께 도서관에 가 숙제를 돌봐주거나 하는 일들이요.

하지만 워킹맘이 아니라면 아이가 원하는 모든 걸 해줄 수 있을 것 같은 마음도 막상 닥치면 현실이 되기는 어려운 막연한 기대 같은 것일지 모릅니다. 좋은 컴퓨터를 사면 공부를 잘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막상 가져도 예상대로 성적이 쭉쭉 오르지는 않았고, 월급이 얼마쯤 오르면 생활이 아주 풍족할 것 같았지만 막상 기대만큼 올라도 극적인 변화가 나타나지는 않았던 것처럼요.

워킹맘의 아이들은 엄마의 보살핌을 받을 기회는 적겠지만, 스스로 뭐든 해내는 독립심은 더 클 수 있습니다. 아이 옆에서 손발이 되어줄 수는 없지만, 훗날 아이가 꿈을 향해 나아갈 때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줄 수 있어요. 아이의 연필을 함께 쥐고 문제 푸는 방법을 직접 가르쳐주지 못해도, 아이는 열심히 사는 엄마에게서 끈기와 열정을 배울 겁니다.

워킹맘이라서 해주지 못하는 것보다 해줄 수 있는 것에 집중해야겠어요. 함께 있지 못하는 시간을 자책하고 스스로를 채찍질하기보다 함께 있는 시간에 더 밀도 있게 사랑을 주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

아이가 엄마에게서 기대하는 감정도 '미안함'은 아닐 거예요. 딱하고 안쓰러운 아이가 되고 싶지 않을 거고요. 아이가 행복하려면 엄마인 저부터 행복한 아이로 대해줘야지요. 제 아이는 엄마와 늘 함께하지는 못하지만, 함께이지 못하는 순간에도 빈틈없이 사랑받는 행복한 아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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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기자의 브런치에도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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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엄마, 좋은 아내, 착한 딸이기 전에 행복한 나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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