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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사람'이 있는 일터에 사고,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살기 위해 출근하는 곳에서 죽기도 하고, 다치거나 아프기도 한다. 하지만 아픔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장시간 노동, 심야노동에 맞서 싸우기도 하고 일터 괴롭힘과 만성적인 인력 부족을 사회적으로 알려내며 바뀌어야 하는 현실에 대해 알려내기도 한다.

코로나 19 최전선에 있는 간호사부터 병원의 청소노동자, 10년 넘게 노조파괴와 동료의 죽음을 안고 견뎌 나가고 있는 유성기업 노동자, 심리적 상흔을 입은 노동자들의 심리치유 활동을 하고 있는 활동가들까지 노동안전보건 문제를 둘러싼 여러 이들의 목소리를 담아봤다. <기자말>


밤에는 잠 좀 자자·노조파괴저지투쟁·한광호 열사·국가폭력·주간연속2교대제까지.

이 문제들을 안고 긴 시간 투쟁한 유성노조 노동자들에게 그동안 어떤 요구와 아픔, 투쟁이 있었을까. 지난 2월 2일, 유성기업 영동공장에서 금속노조 유성기업 영동지회 교육부장 김성민 교육부장과 인터뷰를 진행해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묻고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노조파괴, 일터괴롭힘으로 사망한 한광호 열사 앞에서 김성민 교육부장
 노조파괴, 일터괴롭힘으로 사망한 한광호 열사 앞에서 김성민 교육부장
ⓒ 김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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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조합 활동가의 하루

유성기업은 1960년에 설립된 자동차 엔진용 부품 제조 기업으로 내연기관의 핵심 부품인 피스톤링, 실린더라이너 등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아산과 영동, 대구, 울산에 공장이 위치해 있다. 사실 유성기업은 사회적으로 '노조 파괴 사업장'이라는 이미지가 각인 된 곳이기도 하다. 10년 전 회사의 일방적 직장 폐쇄로 촉발된 노사갈등은 노동자들과 조합원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았다. 유성 자본은 회사가 짠 근무 일정과 높은 강도로 노동자들을 유도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실제 유성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어떤 제품을 만들고, 다루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주조부에서 쇠를 녹여서 니켈ㆍ망간ㆍ크롬 이런 거 섞어서 합금을 만드는 거죠. 쇳물을 만들어서 원심 주조기에다가 부어요. 금형 틀에다가 넣으면 동그랗게 나올 거 아니에요, 그걸 생산부에 넘기면 가공을 하는 거죠. 면을 깔끔하게 만들고 피스톤 왔다 갔다 해야 하니까. 그리고 검사해서 내보내는 일을 하는 거죠.

김성민 부장은 현재 정비과에서 근무하고 있다. 이전에는 노동조합 상근 간부로도 활동을 오래 해왔기 때문에, 당시 투쟁하면서의 일과를 물어보았다.

"작년 12월 31일까지는 출근 투쟁(출투)를 했구요. 처음에는(2011년) 출투 하기가 어려웠대요. 회사가 용역을 세워놨고, 맨날 몸싸움 하는 게 일이다보니까. 조합원들도 두려움이 없다는 것은 거짓말이잖아요, 언제든지 해고될 수 있다는 공포가 있었기 때문에. 재정비하고 2012년부터 현장 조직화를 하려 했어요. 어용으로 넘어간 사람들을 금속으로 오게 하는 거죠. 현장에서 싸우는 것이 2015년까지는 자주 있었던 거 같아요. (중략) 2016년도 3월에 한광호 열사가 목숨을 끊은 거죠. 조합원들이 다시 투쟁해야한다 마음먹고, 안에서만 관리자하고 싸우는 문제를 넘어 사회화 투쟁으로 가는 것에 동의를 한 거죠. 돌아가신 날부터 서울 상경 투쟁을 했어요. 서울시청, 양재동에서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냈죠. 그러면서 2016년 11월에 산재 인정을 받았고 2017년 2월에 유시영이 구속된 거죠. 양재동에선 2017~2019년 초까지 조를 짜서 농성을 한 거죠. 현대차가 직접 개입했기 때문에 두고 볼 수 없다 해서. 새벽같이 출투하고 (농성장에) 와서 아침 먹고, 점심에 대법 가서 피켓 들고요."

심야노동 철폐와 주간연속2교대제 쟁취를 위해

야간노동이 유해함은 사회적으로 익히 알려져있다. 하지만 생계를 위해 야간수당을 받아야 해서, 당장은 직접적 피해가 없어 보여서 후순위로 밀려났을 뿐 심야노동이 몸에 끼친 영향을 질문했을 때, "몸 좋다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며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야간 들어가면서 몸 좋다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저는 3년밖에 안 했어요, 너무 힘들더라고요. 출근할 때 스트레스를 받아요.  뒤에서 라이트를 조금만 비춰도 화가 나는 거예요. 실제로 만성적으로 피로를 많이 가지고 있어요. 거기에 패턴이 자꾸 바뀌잖아요. 그러다보니까 낮 시간에 농사 거들고 이거는 정말 어렵고. 가족들하고도 뭐를 못해요. 너무 피곤하고 퇴근하면 어차피 잠만 자는데. 좀 있다 출근해야 하고요."

유성기업노조는 노동시간 문제를 건강권과 연결하여 활동을 했다. '심야노동 철폐'를 요구로 만들고 투쟁했던 맥락에 대해 야간노동으로 사망한 노동자들을 보며 무엇을 할지 고민하게 되었고 노동시간 문제는 노동자의 생존에 직결되는 월급제와 같이 갈 수밖에 없는 문제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실제 2009년, 2010년 2년 동안 유성기업 아산공장에서 5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교통사고로 사망한 한 명을 제외하면 돌연사, 자살이었다.

"우리 조합원이 야간노동 마치고 버스에서 못 내렸어요, 돌아가신 거예요 차 안에서. 당시에는 산재고 뭐고 몰랐어요. 50대였는데 죽을 수 있구나, 그런가보다 했지. 그런데 제가 지회장을 맡고 나서 29살짜리가 자다가 죽은 거예요. 산재가 불승인나면서 회사가 줬던 임금을 빼앗아 갔어요. 그걸 갚기 위해서 야간을 많이 했어요. 3주 연속 들어갔더라고. 그렇게 들어가면 안 된다면서요. 문제는 우리한테 숙제가 남는 거죠. 왜 사람들이 죽는 걸까, 우리는 뭘 해야 할까. 그러면서 지역에서 들었던 것이 주간연속2교대제인 거예요. 심야노동이 문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야간노동 안 한다는 게 저역시도 상상이 안 갔거든요. 공부하고 사업에 넣기 시작했어요. 조합원들한테 그런 교육을 시켰어요. 주간연속2교대제 가면 임금이 줄잖아요, 미리 임금 인상을 했어요. 기본급 인상시키는 거를 하면서 잔업을 줄여나갔어요. 그다음 주간연속2교대제를 합의하자고 했죠. 2009년 실물경제 위기가 오면서 야간에도 잔업 안 시키고 퇴근 시킨 거예요. 그래서 돈이 80~100만원씩 줄은 거예요. 그때부터 탄력을 받은 거예요 사람 죽었을 땐 초반에 반짝 하다가 실질적으로 잔업 특근이 주니까 문제가 되는 구나. 월급제까지 가야 하는구나. 주간연속2교대제의 핵심은 월급제라 보거든요, 심야노동 없애는 거하고요."

노조 파괴, 가정에까지 영향 끼치는 심각성 

노사가 '주간연속2교대제'와 '월급제'를 2011년 1월부터 시행하기로 합의를 했었으나 2010년부터 회사는 노사 교섭에 안을 제대로 내놓지 않았고, 결국 직장폐쇄와 일주일간의 점검농성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사측의 노조파괴로 개별화/파편화된 노동자들은 부당한 징계를 피하고 '잘 보이기 위해', 생존전략의 일환으로 스스로 노동강도를 증가시키기도 했다. 이렇게 위축된 상황에서 2011년에 생산량이 20~30% 증가했다.

사측은 CCTV 설치를 비롯한 일상적 감시ㆍ민/형사소송ㆍ임금 삭감 등 갖은 방법으로 조합원의 일상을 파괴하였다. 이렇게 자행된 조직적ㆍ지속적인 탄압은 조합원들의 몸/정신건강에 비가역적인 악영향을 끼쳤다. 탄압의 결과는 장소를 가리지 않았고, 스트레스는 가족으로의 폭력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억울한 거를 누구도 해결해줄 수 없다는 막막함을 가장 힘들어하는 거 같아요. (중략) 노조파괴의 핵심은 법으로 가는 거예요. 굉장히 긴 시간을 요하거든요. 해고자들이 대법 판결을 받으려면 5년이 걸려요. 버텨서 이기면 다행인데, 중반에 포기해버리면 회사가 이기는 거잖아요. CCTV 감시 이런 거는 워낙에, (회사가) 책임을 전가하기 위해서 일상적으로 했던 행동이기 때문에. 약간 농담 삼아서 얘기를 하죠, '조용히 얘기해 누구 있을지 몰라.' (중략) 스트레스 받고 집에 가면 모든 게 짜증나잖아요. 아이들이 조금만 떠들거나하면 평소와는 다르게 화를 내고. 저도 그랬고 다른 조합원들도 그랬고. 가정폭력이 일어나는 거죠. 노조파괴가 사람도 파괴하고 가정도 파괴하는 게."

떠난 사람들이 남긴 숙제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한광호 열사를 비롯한 많은 동료들을 떠나보냈다. 노조 대의원으로도 활동했던 열사에게 회사는 생전 수많은 소송, 징계, 폭행 등 갖은 탄압을 자행해왔고 결국 2016년, 열사는 죽음으로 내몰렸다. 떠나간 사람을 안고, 남긴 숙제를 풀어나가며 투쟁을 지속하는 시간을 노조에서는 어떻게 가져갔을까.

"처음 지회장 했을 때 아까 29살 노동자가 죽은 거예요. 지회장을 한 번 더 했는데 노동조합 상무집행위원이 지게차에 치여 죽었어요. 현장 안전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거를 굉장히 강조할 수밖에 없었고. 그리고 한광호 열사가 돌아가시게 된 거잖아요. 다 뭔가 남는 거예요. 첫 번째는 심야노동, 두 번째는 재해에 의한, 지게차에 치여 죽을 줄 누가 알았겠냐고요, 근데 (공장은 자재를) 2단 쌓기 했지 사람이 지나갈 길이 없지. 세 번째가 정신적 재해, 노조파괴로 인한 스트레스를 주면 사람이 죽는다. 이런 문제가 있다 보니까 해고자들 중 일부가 개별적으로 산재 승인을 들어갔어요. 문제는 굉장히 오래 걸려요. 한광호 열사의 경우 빨리 나온 편이라 하더라고요. 사람이 죽으면 그 이유가 분명히 있는 거고 그런 숙제를 남아있는 사람이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사람이 죽었는데 슬퍼해주고 말 문제가 아니잖아요, 그래서 그런 것들을 노동조합은 적극적으로 요구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한해 2천 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한다. 매일 5~6명의 노동자가 일 하다 돌아오지 못하는 현실에서 사회가 죽음과 고통을 받아들이는 역치가 높아졌다. 산재사망은 그동안 내재된 문제들이 곪다가 터진 가장 극단적인 형태임에도, 누군가 죽거나 단식을 해야 어렵게 이슈가 되기도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산재로 사람이 하루에 7~8명 죽는 것 보다는 주식이 1% 빠지고 올라가는 게 훨씬 더 많은 문제가 나온다.'는 김성민 부장의 말이 이를 단적으로 반영한다. 이러한 사회에, 김성민 부장은 '감수성'과 '경종'을 던진다.

"저는 노동조합을 하면서 감수성을 조금 배운 거 같아요. 이정도 힘든 일은 좀 견뎌야지 이런 것들이 많이 있었어요. 참고 일하면 안 되나?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살았으니까. 평등 감수성, 성인지 감수성 이런 걸 키워내는 게 필요하다 봐요. 당장 노동의 문제가 내 문제란 인식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LG 트윈타워에서 투쟁하시는 노동자들이 얼마나 힘들까 이런 생각을, 감수성이 있어야 하거든요. 양재동에서 투쟁할 때 이해가 되었어요. 노동조합이 할 수 있는 게 그런 거잖아요, '힘들게 투쟁한다더라 우리가 뭐 해야 하지 않겠느냐' 자꾸 만들어주는 게 필요하다 생각하고요. 경쟁체제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1등하는 사회에 대한 경종을 울릴 수 있는 그런 것들을 계속해서 해가야 하지 않을까. "

10년 만의 합의, 남은 과제들 

조합원과 여러 시민사회단체와 시민들의 연대의 힘으로 버틸 수 있었던, 투쟁으로 이끈 변화들이 많다. 이 중 자율성이 높아진 것과 노동조합을 지킨 것을 가장 먼저 꼽았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현장에서 자율적 행동이 가능하다, 일하는 시간에도 와서 인터뷰 하고 있잖아요. 조합원들도 자유롭거든요. 이거는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지금은. 졌으면 이렇게 못할 걸요? 두 번째는 노동조합을 끝까지, 절반으로 나가떨어졌지만, 지켰다는 것이에요. "

올해 1월 유성기업 노사는 2011~2020년 임금과 2020년 단체협약식을 가졌다. 무려 10년 만의 일이다. 노사 합의안에는 감시카메라 철거와 부당노동행위 책임자 처벌ㆍ조합원 트라우마 심리 치유사업 지원ㆍ노조 간 차별 금지ㆍ민형사상 고소‧고발 취하ㆍ주간연속2교대제 도입을 위한 실행위원회 가동 등이 포함됐다. 노동조합에 어떤 과제가 남아있을까.

"악은 징벌하고 선은 복을 받고 되어야 하는데 그게 없는 거잖아요. 화끈하게 노조파괴 했던 사람들 잘리고 사과문 팍팍 써, 못 준 돈 줘, 이게 아닌 거예요. 돈 아직 못 받았고 사과문 아직도 안 썼고. 그러다보니까 뭐냐 이거, 이런 것도 좀 있고. 일상을 찾아가려고 하는데 산 넘어 산이라고 봐요. 왜냐하면 극도로 어용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고, 근데 현장 조합원들 입장에서는 10년 째 같이 일을 했으니 얘기를 안 할 수 없어. 이런 것들을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것이 어려운 일일 거라 보고 있어요. 주워 담는 게 필요한 거 같아요. 널어놨잖아요, 연대 받았던 것도 널어놨고 치유해야할 것도 뒤로 미뤄놨고. 감정싸움 하고 있는 거도 추스르지 못했고. 노조가 담아야 하는 거예요."
 

10년이 지났다. 지속된 탄압은 사람을 만성적 긴장상태로 내몰았기에, 이를 추스르고 하고 싶은 걸 찾을 시간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소망, 계획을 물어보았다. 

"10년이 지났잖아요, 애들이 어떻게 컸는지 잘 모르는 거 같아요. 항상 불안하게 살아왔잖아요. 조합원들이 뭐 하고 싶은지 아직 모르는 거 같아요. 지금 조합원들 평균 나이가 10년 있으면 정년퇴직을 준비해야 하니까 애들 키우기 바쁘지 않나. 끝나고 뭐 할래 하면 '돈 벌어야지, 정년퇴직 준비해야지' 수준인 거 같아요. 사실 쉬고 싶었거든요, 개인적으로는. 전임자를 많이 했어요. 지금 현장 들어온 지 1년 되었거든요, 1년 되니까 조합원하고 친해졌어요. 임원하면 또 놓치게 되니까. 지금 일상이 좋은 거죠. 놀러 가고 싶고, 쉬고 싶고 그런 거죠."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를 작성한 조건희씨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이며, 보건의료학생단체 매듭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태그:#노조파괴, #산업재해 , #노동자건강권, #노동조합, #심야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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