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여보, 우리 침실을 따로 써야 할까?"

결혼 후 아무리 심각하게 다투더라도 각방만은 쓰지 말자고 굳게 약속한 우리 부부가 맞은 첫 위기였다. 서울시 전역이 집단감염으로 떠들썩했던 2020년 하반기, 코로나19 전담병원에 근무하는 16년차 간호사인 아내는 코로나 환자 치료를 앞두고 가족을 보호하기 위한 예방 차원에서 각방을 고민했다. 다른 이유도 아닌 코로나19 때문이라니, 공중보건위기에서 보건의료인력은 업무의 경계를 넘어 개인 삶의 터전에까지 고통이 수반된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최근 대한간호협회는 <코로나 영웅, 대한민국을 간호하다>라는 제목의 코로나19 간호 수기집을 발간했다. 암진단을 받고도 코로나19 현장파견을 자원한 간호사, 정신질환자의 코로나19 감염 치료 중 환자의 정신과 증상으로 인한 신체 공격으로 폭력을 경험한 간호사,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간호하다가 코로나19에 감염된 간호사 등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속 의료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밀폐된 격리병동 안 쪽, 두터운 보호구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간호사들의 절절히 배어 있는 땀과 눈물을 지켜보다 한 가지 질문이 고개를 든다. 코로나19 최전선에서 고군분투하며 우리들을 지켜준 영웅들을 위해 공감과 위로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일까.

공감과 위로, 그 다음엔?
 
간호협회는 '코로나 영웅, 대한민국을 간호하다' 수기집을 통해 코로나19 현장에서 활동한 의료진들의 눈물과 땀을 생생하게 담아내었다.
▲ 간호협회 "코로나 영웅, 대한민국을 간호하다" 수기집 발간 간호협회는 "코로나 영웅, 대한민국을 간호하다" 수기집을 통해 코로나19 현장에서 활동한 의료진들의 눈물과 땀을 생생하게 담아내었다.
ⓒ 대한간호협회

관련사진보기


WHO는 매년 핵심보건이슈를 주제로 정하여 관련 캠페인을 운영한다. 올해는 '국제 보건의료인력의 해(International Year of Health and Care Workers)'이다. 구체적으로 'Protect, Invest, Together'라는 주제로,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코로나19 퇴치에 분투하는 보건의료인력의 헌신과 희생에 감사하고 이들에 대한 보호와 투자를 확대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이는 코로나19로 심화된 보건의료체계 위기와 그중 핵심적 자원인 의료인력에 대한 우려가 반영된 것이다.

코로나19로 세계 보건의료인력의 현황은 이전보다 심각한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2020년 5~7월 WHO가 코로나19 대유행 중 필수의료서비스 지속 관련 설문조사(159개국 대상)를 실시한 결과, 응답국가(105개국 응답) 중 92%(97개국)에 필수의료 제공에 장애가 있었고, 상당수 원인이 보건의료인력 관련 문제로 파악되었다.

구체적으로 97개국 중 49%는 코로나19 긴급대응을 위한 보건의료인력 배치의 어려움, 44%는 의료종사자를 위한 개인보호구의 부족, 29%는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의료인력 부족이 문제로 나타났다. 또다른 연구들은 코로나19 상황에서 의료인력 중 23%는 우울과 불안, 39%는 불면증이 나타났고, 84개 국가에서는 부적절한 업무와 개인보호구 부족으로 의료종사자들의 노사분쟁과 파업이 발생하고 있음을 보고하고 있다.

WHO는 비단 코로나19 기간 뿐 아니라 향후 지속적으로 필수의료가 안정적으로 공급될 수 있도록 보건의료인력에 대한 지원, 보호, 동기부여, 장비공급과 투자를 확대할 것을 강조한다. 세부적으로는 보건의료인력을 낮게 평가하는 사회적 인식, 부족한 의료자원, 과로에 노출된 환경을 시급히 개선해야 하며, 덧붙여 보건의료인력에 대해 100일 내 코로나19 백신접종 조기완료, 충분한 수준의 역량강화, 의료종사자 권리 보호, 재정 지원 확충, 연대와 옹호를 제공해 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21년을 보건의료인력의 해로 지정하고 보호와 투자를 호소하고 있다.
▲ 세계보건기구는 2021년을 "보건의료인력의 해"로 지정 세계보건기구(WHO)는 2021년을 보건의료인력의 해로 지정하고 보호와 투자를 호소하고 있다.
ⓒ 세계보건기구

관련사진보기

 
장기적인 보건의료인력 대책 필요

한국은 어떠한가? 보건의료인력에 대한 개인보호구 보급, 코로나19 예방접종 우선시행 등과 같은 단순 물리적 차원에서는 양호한 수준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지속된 의료종사자 과로대책과 형평성 있는 재정 지원, 권리보호 문제에 대해 대책이 불투명하다.

코로나 이전부터 한국은 OECD 29개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의 의료이용 대비 적은 의료인력 수로 널리 알려져 있었고 이는 의료인력이 상시 심각한 과로와 소진에 노출되었음을 암시한다. 이 중 간호사는 일·가정 양립의 어려움(42.5%) 등으로 높은 이직율(평균 15.4%)을 보이며 혹독한 근무환경에서 '태움'으로 알려진 엄격한 조직문화와 연이은 자살문제, 전문인임에도 열악한 사회적 인식과 대우 등의 문제가 누적되어 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가장 중요했던 최전방부터 고통의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2020년 서울시 코로나19 병원 입원환자 중 92%가 공공병원에서 치료를 받아 공공의료가 재난적 필수의료 상황에서는 1차적 방파제로써 그 역할을 공고히 하였다. 그러나 서울시립병원의 간호사들은 장기화 된 코로나 대응으로 피로가 누적되고 민간병원 대비 낮은 처우 등으로 불만이 높아져 전년 대비 퇴직율이 증가하는 문제가 발생되고 있다. 더 이상 과거와 같이 의료진들의 피땀어린 희생에 기댈 것이 아니라 합리적 대책이 제시되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정부와 지자체의 대응은 어떠한가? 중앙정부는 보건의료인력의 원활한 확보와 근무환경 개선 등을 지원하기 위해 2019년 10월 보건의료인력지원법을 시행하고 5년 단위로 종합계획을 수립하기로 하였으나 현재까지도 1차 계획이 공개되지 않고 있다. 중앙정부차원에서의 계획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지자체 차원의 세부계획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러나 공공의료기관 224개소 중 중앙정부가 설립한 기관 83개소 대비 지자체 설립 기관이 141개소로 63%의 과반수 이상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중앙정부의 정책만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지자체 또한 자체적 대책마련을 통해 적극적으로 공공보건의료 자원을 유지하고 공급해야 한다.

특히 공공의료인력을 위한 선제적 대책 마련에 서울시가 앞장서야 할 이유는 자명하다. 2020년 한 해 전국 5만 5355명의 코로나확진자가 발생했고, 천만 명이 살아가는 거대도시 서울에서는 1만 8356명이 발생하였다. 이는 코로나19 전체 확진자 3명 중 1명이 서울 시민이었음을 의미한다. 개별 지자체 중에서도 가장 많은 12개 시립병원을 보유하고 있다. 서울시가 재난적 의료와 공공의료인력 문제해결의 시발점이 되어야 한다는 근거는 충분하다.

서울시 공공보건의료재단은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입각해 지난 2020년 서울시립병원의 인사관리 전반적 대책 마련과 의사인력의 처우 개선안 등을 도출하였다. 올해 2021년에도 서울시 보건의료인력 정책 수립 방안과 시립병원 간호사 인력처우 개선 방안 연구, 시립병원 코로나19 근로자 경험 조사 등을 통해 안전하고 건강한 서울의 공공보건의료인력 강화에 기여하고자 한다.

코로나19는 모두의 삶에 깊숙하게 영향을 미치고 우리의 일상을 바꾸고 있다. 앞으로도 신종감염병 재난은 우리 일상 가까이에서 반복될 것이며,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이제라도 우리는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건의료인력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야 할 것이다. 백신은 신속심사와 도입으로 1년 만에도 개발할 수 있지만 잘 훈련된 전문의료진은 단기간에 양성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지금 우리는 공공보건의료인력에 대한 보호와 투자를 가장 높은 수준의 우선순위로 추진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이신영 시민기자는 서울시 공공보건의료재단 주임연구원입니다.


태그:#보건의료인력, #코로나19, #서울시, #공공의료, #지속가능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서울시 공공보건의료재단 주임연구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