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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수정 : 12일 오전 9시 54분]

월미도의 비극

월미도는 섬이었다. 인천항의 초입에 떡 하니 자리 잡고 있다. 항구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그 섬을 지나야 했다. 그런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개화기 당시엔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그 작은 섬 하나를 둘러싸고 한반도를 노리던 열강들의 각축전이 벌어졌다. 러일 전쟁도 이곳에서 촉발했다. 그 전쟁에서 사실상 승리를 거둔 일본이 결국 섬을 차지한다.

제국주의자들은 가장 먼저 이 섬과 육지를 제방으로 연결했다. 이때부터 섬이 돼 섬이 아닌 섬이 됐다. 그 후로도 그 주변을 지속적으로 매립해 섬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졌다. 한국전쟁 당시엔 UN군이 이 섬에 엄청난 포탄을 쏟아부었다. 월미산 해발이 몇 미터는 깎여나갔다는 설이 돌 정도다. 많은 주민들의 희생이 있었고 삶의 터전이 파괴되고 말았다.

월미도는 그 이름마저 논란의 대상이 됐다. 섬의 모양이 반달의 꼬리를 닮았다 해서 달 월(月) 자에 꼬리 미(尾)를 붙였다는 게 통설이었는데, 일각에서 순우리말로 물(미)을 어른다는(얼) 뜻의 '얼미도'가 변해 월미도가 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최재용, <월미도가 달꼬리라구>, 2003, 다인아트). 지금은 후자가 정설로 인정받고 있다.

1974년 경인전철이 개통하면서 하인천역에 맞닿아 있던 월미도는 일약 수도권의 명소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특히 학생과 젊은이들이 데이트를 즐기는 일명 '아베끄 족(avec, '함께'라는 뜻의 불어, 남녀 한 쌍을 의미하는 옛말)'의 필수 코스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그들을 겨냥한 놀이시설과 분위기 좋은 카페 등이 속속 등장했다.

월미도의 인기에 기름을 부은 것은 '바이킹'이었다. 북게르만 해적들이 타고 다니던 배 모양을 본떠 만든 모양의 커다란 그네가 앞뒤로 흔들리는 놀이기구다. 다른 데도 많았지만 월미도의 바이킹은 특별했다. 가장 높이, 가장 길게, 가장 고통스럽게 흔들어 주는 게 특징이었다. 주중 한가할 때는 토할 때까지 태운다는 무시무시한 소문이 떠돌 정도였다.

이 섬이 2001년 국가로부터 관광특구로 지정받았다. 제2의 도약기를 맞은 셈이었다. 인천시는 이곳을 수도권 관광 중심으로 발돋움시킬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그 중엔 '월미은하레일'도 있었다. 인천역과 월미도를 잇는 특별한 운송 수단이었다. 트램(Tram)이냐 모노레일이냐로 설왕설래하다가 결국 허공을 떠다니는 모노레일 방식이 채택됐다.

지옥과 천당을 오간 월미은하레일 사업 
 
두 량짜리 얼미바다열차가 시속 13km/h의 가공할 속도로 놀이공원을 지나고 있다.
▲ 월미바다열차 두 량짜리 얼미바다열차가 시속 13km/h의 가공할 속도로 놀이공원을 지나고 있다.
ⓒ 이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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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2008년 수백 억 원을 들여 '(구)월미은하레일' 건설 사업에 착수해 그 이듬해 완공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시험 운행 도중 예기치 않은 사고가 발생하자 안전과 부실시공 문제에 대한 논란이 제기됐다. 개통은 무기한 연기됐다. 이후 시장들이 바뀌면서 그 운명은 천당과 지옥을 오가야 했다. 근현대사의 월미도와 비슷한 비극적 운명을 타고난 셈이었다.

수백 억 원의 예산을 들여 만든 시설에 기껏 레일바이크를 놓자는 의견도 있었다. 아예 철거해 고철값이라도 챙겨야 한다는 의견마저 등장했다. 그러다가 2016년 정말로 교각만 남기고 차량과 레일 등을 철거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이성을 찾은 시 정부는 180여 억 원을 추가로 투입해 새로운 차량을 도입하고, 레일을 보강해 '월미바다열차'로 재탄생시켰다.

2019년 10월 월미바다열차는 역사적인 첫 운행에 들어갔다. 장장 10년 만이었다. 개통 초기 열차는 미처 예상치 못한 흥행몰이를 이어갔다. 소위 대박이 난 거다. 인근 차이나타운까지 난리가 났다. 표 끊고 2~3시간 대기는 기본이니 거기서 짜장면 먹고 와도 시간이 남을 정도라는 소문이 돌았다. 헛소문이 아니었다. 실제 그랬다.

쭉쭉 달릴 일만 남았다고 여겨졌지만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 코로나19가 쳐들어온 것이다. 운영사는 원래 정원 46명을 14명으로 줄여 운행하는 등의 자구노력을 들였지만 역병의 기세를 이기지 못했다.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지난 한 해 동안 백일도 운행하지 못하고 적자만 쌓여갔다. 다시 시민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구박 덩이로 전락하고 말았다.

다행히 코로나가 잠시 진정 국면에 들어간 지난달 19일부터 다시 운행에 들어갔다. 물론 방역 원칙에 따라 회당 14명만 태운다. 한창 시간인 오후 1시부터 4시까지는 예전 전성기를 방불케 할 만큼 성업 중이다. 특히 수도권에서 원정 온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과 가족 단위 승객들이 많다. 총연장은 6.1km, 정차역은 모두 4개다. 국내 최장이라고 한다.

거인의 책꽂이에 숨겨진 이야기
 
기네스 북에 오른 최대의 벽화 곡물저장창고인 사일로에 그려 넣었다. 책 제목을 모두 연결하면 한 편의 서사시가 된다
▲ 거인의 책꽂이 기네스 북에 오른 최대의 벽화 곡물저장창고인 사일로에 그려 넣었다. 책 제목을 모두 연결하면 한 편의 서사시가 된다
ⓒ 이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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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짠~하고 거대한 책꽂이가 나타난다. 곡물창고인 사일로에 그려 넣은 벽화다. 그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여기에 그림을 그려 넣은 거다. 그 모습이 마치 거대한 책꽂이 같다. 양옆은 책의 앞 뒤 표지고 정면은 나란히 선 책등처럼 보인다. 그 모습 그대로 양 옆에 표지 그림을, 책등엔 제목을 달아 넣었다.

거기엔 마치 다빈치 코드처럼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 앞표지에서 아이가 들판으로 뛰어나가며 이야기는 시작한다. 곧 나타나는 첫 번째 책등에는 '봄, 가능성의 씨앗을 뿌려라'라 쓰여있다. 곧이어 '여름, 고통을 이겨내라, 꿈을 좇아 도전하라', '가을, 네 삶을 되돌아보고 순간을 기억하라', '겨울, 너의 시간을 가져라' 등이 이어진다. 모두 영어라 해석은 다소 힘겹다.

열차가 회전 구간에 접어들면 책의 뒷면이 나타난다. 거기엔 어느덧 어른으로 성장한 아이가 수확한 벼를 한 아름 안고 성큼 걸어 나온다. 책 제목과 그림을 모두 연결하면 우리 인생을 그린 한 편의 서사시가 된다. 계절은 우리의 인생을 상징한다. 열차는 그 모든 메시지를 차근차근 읽을 수 있도록 시속 9km로 정속주행한다. 

각기 표정이 다른 정차 역들

월미바다열차는 인천역 옆에 있는 '월미바다 역'에서 출발한다. 그 유명한 차이나타운이 바로 길 건너다. 짜장면 동네 옆에는 송월동 동화마을이 있다.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벽화와 시설물들이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다. 그 뒤편으론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공원인 자유공원이 있다. 인천항이 한눈에 보인다. 닭강정과 공갈빵으로 유명한 신포시장도 지척이다.

첫 번째 정차역은 '월미공원 역'이다. 과거 군부대가 있던 자리다. 2001년 시가 반환받아 공원으로 조성했다. 월미산을 끼고 있다. 일반인의 출입이 오랫동안 제한됐던 곳이라 자연환경이 잘 보존되어 있고, 곳곳에 조선시대 풍의 건축물들을 재현해 놓아 아이들이 즐기며 배울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벚꽃이 장관이지만 안타깝게 코로나 때문에 전면 폐쇄 됐다.

두 번째 닿는 역은 '월미문화의거리 역'이다. 두 말이 필요 없는 국민관광지다. 전철을 타고 와 바다를 볼 수 있는 유일한 장소다. 예전엔 바다를 볼 수만 있었지만 지금은 철책을 철거해 바닷물에 손을 담글 수도 있다. 물론 들어가선 안 된다. 문화의 거리답게 화가들이 관광객의 초상화를 그려주고 무명의 악사들과 춤꾼들이 즉석 버스킹을 벌이기도 한다.

이곳에서 출발하는 유람선을 타고 나가면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등대가 있는 팔미도와 최장 인천대교의 장관도 볼 수 있다. 놀이공원도 있다. 예전엔 바이킹으로 유명했지만 요즘엔 '디스코 팡팡'이 대세다. 현란한 디제잉과 보조 진행자의 화려한 묘기가 압도적이다. 회와 조개칼국수 등을 파는 음식점과 잘 꾸민 커피숍 등이 즐비하다.

세 번째 역은 '박물관 역'이다. 진짜 박물관이 있다. '이민사 박물관'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이민자들이 인천에서 배를 타고 하와이로 떠났다는 역사적 사실에 착안했다. 1902년 102명의 이민자들을 태우고 떠난 '갤릭호'부터 일제의 간교로 멕시코로 팔려간 중남미 이주사(史)를 훑어, 오늘날 700만 명으로 늘어난 최근의 이민자 근황까지 일목요연하게 전시되어 있다

"월미바다열차는 표 한 장으로 그 모든 것을 다 돌아볼 수 있습니다. 자연스레 시간여행 패키지가 되는 셈이죠. 주변명소를 다 둘러보실 수 있도록 하차와 재승차가 가능합니다. 속도는 느리지만 그래서 안전하고 어르신들과 아이들이 특히 좋아하십니다."

이영권 인천교통공사 월미운영팀장의 말이다. 그의 말처럼 월미바다열차는 과거에서 미래로, 신화에서 역사로, 자연에서 문명으로 가는 버라이어티한 여정이다. 어르신들은 옛 추억에 젖고, 아이들은 미처 몰랐던 지식의 세계에 매료된다. 그게 만 원도 채 안 된다(성인 8000원, 노인/청소년 6000원, 어린이 5000원, 장애인/국가유공자 4000원). 어서 인천으로 가자.

태그:#월미바다열차, #월미도, #사일로, #차이나타운, #바다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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