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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법원의 빗장이 드디어 풀렸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2월 1일 국방부 판결문 열람 서비스 시작과 동시에 최근 2년간 각 군 성범죄 판결문 158건을 전수분석했다. 국정감사 때마다 등장하는 군사법원 '솜방망이 처벌'의 실체와 판결문 속에 만연한 '군 중심주의'를 파헤쳤다. 8회 연속보도를 통해 군사법원의 존재 이유를 묻는다.[편집자말]
군사법원은 모든 판결문을 '비실명화' 작업했다고 강조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군사법원은 모든 판결문을 "비실명화" 작업했다고 강조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 envatoele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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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에서 특수기호로 표기된 정보는 국방부 판결문 열람 서비스에서는 모두 실명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 
 
"피고인은 2017년 10월 6일 새벽 2시경 당시 피해자의 집이던 파주시 ☆☆읍 ▲▲▲1길 ▲▲에서..."
 
판결문을 읽어 내려가다 눈이 멈췄습니다. 군 입대를 앞둔 사촌 오빠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14세의 피해자. 그의 피해 당시 집 주소가 활자 그대로 찍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 포털사이트가 제공하는 지도에 주소를 넣었더니, 사건 당시 아파트 이름이 버젓이 검색됐습니다.

판결문은 피해자의 집 주소뿐 아니라 성씨와 생년월일까지 드러냈습니다.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는 'A'로 철저히 숨겨 명기한 것과 대조적입니다. '군사재판 대국민 신뢰제고'를 내걸고 군사법원이 지난 2월 1일부터 공개한 확정 판결문 중 하나입니다. 군사법원은 모든 판결문을 '비실명화' 작업했다고 강조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증인 이름까지 공개, 누가 피해자 위해 나설까
 
고등군사법원 홈페이지 판결문 열람 서비스.
 고등군사법원 홈페이지 판결문 열람 서비스.
ⓒ 고등군사법원 홈페이지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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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가 ▲▲▲ 중사와 연애하는 과정을 알고..."

"○○○도 피해자가 전화해서 피고인이 자기한테만 근무 평점을 나쁘게 줬다고..."
 
고등군사법원에서 2020년 2월 선고된 해군에서 벌어진 직속상관의 위력에 의한 추행 사건. 이 판결문에선 피해자와 교제 중이던 같은 부대 소속 연인의 실명과 계급이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재판에서 피해 사실을 증언한 증인의 이름까지 나와 있습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직책도 그대로 기입돼 있어 비실명 취지가 무색한 대목입니다. 2019년 5월 확정된 또 다른 고등군사법원 판결문에선 증인으로 나선 이를 '피해자의 지인'이라고 소개하며 실명을 그대로 적었습니다.

투명해도 너무 투명한 군사법원 판결문. 문제는 이 때문에 발생할 수도 있는 2차 가해 피해입니다. 부대라는 좁은 조직에서 성과 나이, 부대와 직급, 심지어 주변인들의 실명까지 드러내는 것은 피해자를 그대로 공개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2017년 10월 14시경 경기도 ▲▲시 □□과 사무실에서 중사 ☆○○(여, 27)의 날개뼈... (중략) 군인인 피해자를 강제 추행."

"2017년 9월 하순경 10시 □□중대 행정반에서 하사 ▲○○(여, 22)에게..."
 
2020년 6월 11일 고등군사법원 제2부의 판결문입니다. 부대의 위치는 물론, 피해자들의 계급, 성과 나이까지 줄줄이 언급돼 있습니다. 이 중 한 피해자는 국내 성씨 100위권 밖의 흔하지 않은 성이라, 소속 부대원들로부터 특정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비실명 규정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군사법원 재판 사무에 관한 훈령을 보면 '판결서 등에 나타난 사건관계인을 특정할 수 있는 정보로서 공개될 경우 사건 관계인이나 제3자의 개인정보를 침해할 수 있는 사항은 비실명 처리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성명과 거주지, 주소, 소속 계급, 부대명 등 위 사례들에서 버젓이 공개된 부분들이 바로 그 문제의 '비실명 사항'입니다. 훈령에는 친절하게 비실명 예시도 설명해뒀습니다.

<예시>
*울산시 울주군(범서읍 천상리 현진에버빌) 2동 1701호 → 울산시 울주군 Q건물 R호


예시에 따라 판결문에서 피해자의 집 주소가 드러난 부분을 비실명 처리해 볼까요? '파주시 A읍 B건물 C호'가 될 겁니다. 국방부는 28일 <오마이뉴스>에 보낸 서면 답변에서 "미흡한 부분은 조기 보완하고 관련 규정에 따라 조치를 철저히 해서 피해자 인권 침해 소지가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각군 본부 및 각급 군사법원에 여러 차례 비실명화 조치의 철저한 이행을 강조하는 공문을 하달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도 했고요. 그러나 지금까지도 국방부가 설명한 '철저한 이행'은 이뤄지고 있지 않습니다. 국방부와 각급 본부 및 군사법원 간 지시 하달 체계가 문제인 걸까요?

<오마이뉴스>는 지난 2월부터 최근 2년간 군사법원 성 범죄 관련 판결문을 분석하며 '뜨악'한 신상 노출을 종종 목도했습니다. 물론 '피해자 F(가명, 여)' 등으로 가해자와 마찬가지로 피해자의 신상을 숨긴 사례도 없진 않았습니다만 한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었습니다. '대국민 군사재판 신뢰 제고'도 좋지만, 재판 당사자인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시스템을 먼저 정비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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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 사건팀. 가서, 듣고, 생각하며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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