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4.27 13:37최종 업데이트 21.04.27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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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남중국해 갈등 ⓒ 연합뉴스

 
1991년까지 인류는 미·소 냉전 아래에서 살았다. 그것을 일견 연상시키는 미·중 냉전이 우리 눈앞에 이미 모습을 드러냈다.

2008년 8월 24일 베이징 올림픽이 성공적으로 폐막하고 9월 15일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데 이어 2010년에 중국 국내총생산(GDP)이 일본을 추월하고 2위로 올라서는 일이 있었다. 그러자 2011년에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아시아 재균형 정책(Pivot to Asia)'을 천명했다. 기존의 '대 중국 협력 노선'(A)에 '대중국 견제 노선'(B)을 가미한 정책이 미국의 대중국 정책으로 떠올랐다.


2017년 출범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A를 현저히 줄이고 B를 훨씬 두드러지게 하는 방법으로 중국을 과거의 소련과 비슷한 적대 국가로 만들었다. 올해 출범한 조 바이든 행정부는 B를 약간 완화하기는 했지만 트럼프 때의 기조를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2011년부터 10년간의 정책을 통해 미국은 중국과의 양강 구도를 부각했다. 근래에는 중국 압박을 위한 미·일·인도·호주의 쿼드 연대(4자 연대)를 형성했다. 또 유럽연합을 중국 포위 전선에 끌어들였다. 그러면서 북한과 러시아를 더욱 압박해 중·북·러의 밀착을 초래했다.

이로 인해 '미국 대 중국의 대결'이 어느 사이에 '미국 진영 대 중국 진영의 대결'로 바뀌고 있다. 진영 간 대결이 있었던 미·소 냉전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현상이다.

미국이 만든 덫

미·소 냉전 구도는 자연스레 형성됐다. 1917년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 이래로 반(反)제국주의 투쟁과 결합해 확산하던 공산주의는 소련의 제2차 세계대전 승리를 계기로 1945년 이후 하나의 진영을 형성하게 됐다. 이 공산주의 진영이 미국·영국 중심의 자본주의 진영(과거의 제국주의 진영)과 양강 구도를 이루며 1991년 소련 붕괴 때까지 유지됐다.

이에 비해 지금의 미·중 구도는 오바마 이래로 미국 행정부의 의식적 혹은 인위적 노력으로 만들어진 측면이 농후하다. 이 구도를 원하는 쪽은 미국이지 중국이 아니다. 중국이 볼 때는 엄밀히 말하면 '구도'가 아니라 '덫'일 수 있다. 자국을 포위하고 적으로 만들어 친미 진영의 결속력을 다짐으로써 냉전 시절의 위상을 회복하려는 미국의 의도가 담긴 덫 말이다.

그렇다면 하루라도 빨리 이 덫에서 벗어나는 게 중국으로서는 이익이다. 비교적 자연스럽게 생성된 미·소 구도와 달리 미·중 구도는 주로 미국의 인위적 노력으로 생겨났다는 점이 이 구도의 생명력을 떨어트리는 요인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미·소 냉전 때는 공산주의라는 이념적 끈이 양대 진영을 묶었다. 자본주의는 이념이라고 하기에는 취약했다. 그래서 자본주의를 이념으로 내세워 대중을 결집하기 힘들었던 미국 진영은 반(反)공산주의를 자신들의 이념으로 내세워 상대 진영에 대항했다.

그래서 냉전 시절에 미국 진영의 대중들이 배운 것은 반공 이념이지 자본주의 이념이 아니었다. 미국 진영 대중들이 자본주의의 거두인 애덤 스미스가 무슨 말을 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이처럼 미국 진영이 배운 것이 공산주의 이념을 전제로 하는 반공 이념이었으므로 미·소 냉전을 움직인 핵심 이념은 공산주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이념적 끈이 미·중 냉전에는 딱히 없다. 바이든 행정부가 적대 진영으로 분류한 중국·북한·러시아 중에서 러시아는 더는 공산주의 국가가 아니다. 북한과 중국은 여전히 공산주의 국가이지만, 이들이 미국과 맞서는 것은 공산주의 이념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다.

트럼프 행정부 때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한동안 중국을 중공(중국공산당)이라 지칭하며 '공산권 대 자본주의 구도'를 띄워보려 했지만 어느새 흐지부지된 것은 미·중 구도에서는 이념 대결이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국 진영을 묶을 만한 이념은 물론이고 상대 진영을 묶을 만한 이념도 별로 없다는 사실은 미·중 냉전을 장기간 지속할 에너지가 별로 없음을 뜻한다. 어느 곳에서라도 이념의 측면이 부각되다 보면 실전보다는 이념 대결에 치중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이념 대결의 특성상 상황이 장기화하기 쉬워진다. 그런 요인이 미·중 구도에 딱히 없다는 점은 이 구도가 미·소 냉전처럼 오래 지속될 가능성이 높지 않음을 의미한다.
 

미 전투기가 남중국해를 순찰한 후 항공모함 USS 로널드 레이건 호에 착륙하고 있다. 2019.8.6 ⓒ 연합뉴스

 
군사적 긴장 높이는 미국

이념 대결을 부추길 요소가 별로 없다 보니 이 구도에 집착하는 미국이 쉽게 유혹을 받는 것이 있다. 대결 구도를 선명히 하려고 중국 인근으로 군사력을 자꾸 이동하게 된다는 점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자마자 타이완해협(대만해협)과 남중국해에서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는 데는 그 같은 사정도 작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미국 진영이 공통으로 싫어할 만한 이념을 중국·북한·러시아가 갖고 있다면, 그 이념을 부각하는 것만으로도 미·중 구도를 선명하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게 없다 보니 군사적 긴장 고조라는 카드를 꺼내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미·소 냉전 때는 미국과 소련의 대리인이라 할 만한 나라들이 전쟁을 벌이기는 했어도 미국과 소련이 직접 충돌하지는 않았다. 이 역시 미·소 냉전이 오래 간 요인이었다. 두 진영 리더들이 상호 충돌을 회피함으로써 이들의 국력과 권위가 보존되고 이로 인해 냉전이 장기화하는 측면이 있었다.

그에 반해 지금의 미국은 중국 코앞에서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타이완뿐 아니라 일본까지 중국과의 대결에 끌어들이고 있다. 4월 16일 대면 정상회담을 한 바이든 대통령과 스가 총리는 공동성명을 통해 타이완해협과 양안 관계(타이완·중국 관계)에 대한 개입 의지를 천명했다. 타이완해협과 남중국해는 과거에도 긴장이 높은 곳이었지만 바이든 취임 이후로 한층 더 살벌한 곳이 되고 있다.

이는 미·중 구도를 이끄는 미국과 중국의 직접 충돌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진영 리더들이 상호 충돌을 자제했던 미·소 냉전 때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금처럼 세계 2위의 강대국 코앞에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다 보면 조만간 전쟁이나 급변 사태가 발발할 가능성이 농후하게 된다. 이런 양상이 벌어지는 곳에서는 장기간의 이념 대결이 나타나거나 실전이 억제될 가능성은 경험법칙상 극히 희박하다. 미국 정부는 이런 식으로 긴장을 고조해 양강 구도를 유지하고 싶겠지만, 그런 구상은 이제까지 역사가 흘러온 경험 법칙과 위배된다.

이처럼 미국은 한편으로는 미·중 냉전 구도를 만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구도를 스스로 약화시키고 있다. 냉전 구도를 오래 유지하려면 군사 긴장을 과도하게 고조하지 말아야 하는데도 지금 타이완 인근과 남중국해에서 그렇게 하고 있다. 미·중 냉전이 미·소 때처럼 장기화 할 가능성이 별로 없을 뿐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조기에 해체될 가능성도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다.

한국이 갈 길

미·중 냉전의 단명 가능성을 보여주는 요인들은 이 외에도 많다. 그중 하나는 중국과 미국 진영의 끈끈한 관계다.

미·소 냉전 때는 굳이 상대 진영 국가와 교역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었다. 그 시기에도 진영 대 진영의 무역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이 없더라도 살아가는 데 지장이 없었다. 한국도 1988년 서울 올림픽에 공산권 국가들이 참가하기 전에는 그들과의 교역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많은 나라들이 중국과 연계돼 있다. 미국과 함께 쿼드를 주도하는 일본도 마찬가지다. 미국 역시 사정이 다르지 않다.

작년 10월 20일 자 러시아 <스푸트니크 통신> 중국어판 기사 '중국, 계속해서 미국 국채 투매(中国在继续抛售美国国债)'에도 설명된 것처럼 2019년에 최대 채권국에서 2위 채권국으로 바뀌기는 했지만 중국은 미국의 국채를 많이 보유한 나라다.

러시아가 중국에 '미국 국채를 팔라'고 제안한 일이 알려진 뒤 미국 정부는 2012년 국방수권법을 개정해 중국이 보유한 자국 국채에 대한 국가안보 위험 평가를 의무화했다. 이는 중국이 미국 국채를 갖고 미국을 위협할 가능성에 대비하는 조치였다.

이렇게 미국 진영과 중국의 경제적 유대가 긴밀하기 때문에 미·중 냉전이 장기화하거나 과도하게 격렬해지면 중국뿐 아니라 미국 진영도 다치게 된다. 이는 미·중 냉전의 장기화나 과도한 격화를 억제하는 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 또는 미국의 의도대로 이 구도가 유지되기 어렵게 만드는 요소라고도 말할 수 있다.

위와 같은 요인들 때문에 미·중 냉전은 미·소 냉전과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또 미·소 냉전처럼 오랫동안 유지되기도 쉽지 않다. 대결 구도의 생명력을 높여줄 만한 요소들이 딱히 없다.

보수 언론들의 사설을 읽다 보면 미·중 간의 양자택일을 촉구하는 글을 자주 접할 수 있다. 어느 한쪽을 빨리 선택해야 한국이 이롭다는 식의 사설들은 미국을 선택하고 중국과 거리를 두자는 속뜻을 담고 있다. 미·소 냉전 때 같았으면 그렇게 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지 않은 미·중 냉전하에서는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어느 쪽에 줄을 설 것인가를 고민하는 일이 아니다. 그보다는 타이완해협·홍콩·남중국해·신장위구르·티베트 같은 곳에서 미·중이 군사적으로 충돌해 미·중 냉전이 순식간에 와해할 가능성을 대비하는 것이 훨씬 더 급선무다. 미·중이 실전에 돌입할 경우에는 그 승부 여하에 따라 전혀 새로운 세계질서가 우리 목전에 출현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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