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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러니까 결혼을 못했지."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지인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다. 어떤 한 싱글 중년이 요즘 인기있는 트로트 가수 중 한 명의 팬클럽에 가입하고 열정적으로 활동한다는 말을 듣고 나온 말이었다.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본인도 '아차' 했는지 목소리가 뒤로 갈수록 줄어들었다. 옆에 있는 나 역시 비혼이라는 걸 뒤늦게 감지했던 모양이다. 그 사람이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것만 해도 다행이다 싶었지만, 그래도 모른 척 넘어가지지는 않아서 웃으며 한 마디 했다.

"그거 위험한 발언입니다. 결혼 했던 안했던 자기가 좋아하는 걸 찾고 재미있고 활기있게 살면 되는 거죠. 그게 결혼하고 무슨 상관이 있대요?"

결혼하지 않는 삶이 왜 이상한가? 
 
트로트 가수 팬클럽에 가입하고 활동하는 사람들을 보고 무심결에 나온 말.
 트로트 가수 팬클럽에 가입하고 활동하는 사람들을 보고 무심결에 나온 말.
ⓒ elements.env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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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이 그렇다. 트로트 가수 팬클럽에 가입하고 활동하는 사람들 중에는 기혼들도 분명 많을 텐데, 그 사람들을 보고 "저러니까 결혼을 했지"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트로트 가수의 팬클럽 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 자체도 개인적으로는 건강한 활동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 자체를 비하하는 듯한 말도 걸렸지만, 거기에 맥락 없이 결혼을 못했다는 이유까지 갖다붙이니 오랜만에 마음속으로 실소가 나왔다. 게다가 그 말을 한 사람은 평소 예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저러니까 결혼을 못했지'라는 말을 계속 더 곱씹어 보게 되었다.

한 비혼 모임에서 초등학교 교사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동료 교사 중에 비혼 남성 동료가 있는데 뭔가 일을 제대로 못하거나 모난 행동을 할 때면 자신도 비혼이면서 무의식적으로 "저러니까 결혼 못했지"라는 말이 튀어나온다고, 참 이상하다고 했다.

결혼을 한 사람이 똑같은 행동을 했을 경우, "저러니까 결혼을 했지"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으니 이상하긴 하다. 개인의 성격이나 실력, 캐릭터로 보지 않고 결혼과 연관짓는 게 아무래도 억지스럽다.

이런 말 속에는 결혼을 '인생의 완성'과 '정상적 삶의 표본'으로 보는 오래된 교육과 가치관이 한몫 한다. 결혼을 해야 어른이 된다. 아이를 낳아 봐야 부모 마음을 안다. 지금은 이런 말을 조심스럽게 하는 분위기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이런 인식은 사회 전반적으로 강하다.

분명히 결혼이 주는 성숙과 성장이 있을 테고, 부모가 되면서 품게 되는 세상도 달라질 것이다. 주변에서도 결혼과 양육을 통해 이전보다 더 성숙해지고, 이웃과 사회를 보는 눈이 확장된 친구들을 종종 봤다. 그리고 부모 마음을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도 꽤 들었다.

그럴 때마다 엄마에게 죄송했다.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는 영역이 있겠구나 싶어서. 그렇다고 해서 결혼을 안 한 사람들이 다 부모 마음 헤아리지 못하는 철부지인 것은 아니다.

결혼해서 애 낳고 사는 평범한 바람을 이루어드리지 못할 뿐이지, 결혼하지 않고 애 낳지 않아도 부모 마음을 잘 헤아리는 비혼들도 꽤 많다. 반대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해서 다 철이 들고 성숙하는 것만도 아니다. 그런데도 비혼은 무언가 부족한 사람, 때론 이상한 사람으로까지 취급당한다.

모든 삶은 존중받아야 한다 
 
김숙은 개그우먼이 된 것보다 어린 나이에 결혼하지 않은 걸 잘한 일이라 말했다.
 김숙은 개그우먼이 된 것보다 어린 나이에 결혼하지 않은 걸 잘한 일이라 말했다.
ⓒ 카카오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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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염수경 주교가 한 말이 눈에 띄었다. "'비혼 동거'와 '사실혼'의 법적 가족 범위 확대 정책은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서 보편적인 가치로 여겨졌던 것과는 매우 다르다"고 말했던가. 보편적 가치라는 말에는 사실상 견고한 선이 그어져 있다. 여기까지가 정상, 여기 안에 들지 않으면 비정상이라는 선.

그 기사를 접하는 순간, 뭔가 또 다시 강제적으로 선 밖으로 밀려나는 듯한 기분이 들면서 동시에 "아니거든요" 하는 말이 재채기처럼 튀어나왔다. '비혼'이라는 비보편적인 가치에 따르지 않고 "저러니까 결혼을 못했지"라는 말을 들으며 살다 보니 생긴 저항감이다.

정상과 비정상 가족이라는 건 누군가 정해주는 게 아니다. 각자가 갖고 있는 고유한 삶의 서사와 삶의 다양성을 무시한 채 '보편적 가치'라는 말로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건 때론 폭력이 될 수 있다.

다행히 지난 4월 27일, 정부가 비혼 동거 커플이나 위탁가족도 법률상 '가족'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반가운 발표를 했다. 이번에 발표한 제 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에는 '혼인과 혈연' 관계만 가족으로 인정하고 달라진 시대 흐름을 반영한 법과 제도의 손질이 필요하다는 여론을 반영해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인정하고 자녀 성을 부모 협의로 결정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입법이 되기까지는 또 지난한 시간을 거치겠지만, 그래도 수면 위에서 다양한 논의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건 반가운 변화다. 이렇게 하나씩 차곡차곡 변하다 보면, "저러니까 결혼을 못했지", "저러니까 이혼을 했지", "저러니까 애를 못 낳았지", "저러니까 혼자 살지" 등등 이렇게 사람들을 가르고 함부로 삶을 판단하는 말들이 지워지지 않을까.

한 프로그램에서 개그맨 이경규씨가 초대 손님인 후배 김숙씨에게 결혼 생각이 없냐고 물었다. 없다고 하자, 개그를 하지 않았으면 결혼하지 않았겠냐고 재차 물었다. 그때 김숙씨의 대답은 담담하고 시원했다.

"만약 했다면 후회했을 것 같다. 지금이 너무 좋다."

결혼을 했고 안 했고 보다 중요한 건, 그리고 존중받아야 할 건 "지금이 좋다"는 이 말이라고 생각했다. 나 역시 지금이 너무 좋다.

태그:#염수경주교, #비혼, #건강가정기본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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