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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10일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어난 김용균의 죽음 이후 2년이 되어서야 재판이 시작되었습니다. 재판정에는 원·하청 대표이사를 비롯해 14명의 피고(원·하청 법인 포함 총 16명 기소)와 그들이 고용한 대형로펌 변호사들이 나와서 그들의 책임을 부인하고 변호해주고 있습니다. 원청인 한국서부발전은 여전히 하청사에게 책임을 미루고 개인의 부주의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벌금 몇 푼에 진짜 권한 있는 책임자는 빠져나가고 말단 관리자만 처벌받는 관행을 바꾸기 위해 김용균 재판을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자 합니다. 재판 때마다 온라인 행동, 법원 앞 피케팅을 하면서 재판에 함께 참관해 주시는 분들의 글을 모아 차례로 싣고자 합니다. [기자말]
원·하청 법인까지 총 16명이 피고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원·하청 법인까지 총 16명이 피고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 김용균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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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6일,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재작년에 발생한 용균의 사고에 책임이 있는 한국서부발전과 그 하청업체의 재판을 방청하러 충남 서산으로 향했습니다. 용균의 사고가 있은 지 2년이 훌쩍 넘었는데도 이제 겨우 세 번째 공판이라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서울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서산터미널에 도착해 법원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탔습니다. 두 번째 가는 방청인데도 막상 서산에 도착하니 조금 긴장이 되었습니다. 오늘 증인신문에서는 치열하고 날카로운 말의 쟁투가 벌어지려나 싶은 순간, 택시 기사님은 전화로 막 다른 택시 기사님과 통화를 시작한 듯 보였습니다. "여어~" 여유가 넘치는 충청도 말씨의 기사님은 반가움이 묻어나는 말투로 상대 기사님에게 물었습니다. "왜 전화한겨~"

방금 전까지 느낀 긴장감이 무색할 정도로, 택시에서는 예상치 못한 만담이 펼쳐졌습니다. 왜 전화했냐는 물음에 목소리만 들리는 저쪽 기사님이 "얼레? 나는 받았는디?"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까? 곧 택시 안에서는 서로 자기가 전화를 받았다는 실랑이가 벌어졌습니다. "아니 뭔 소리여~ 나는 걸려 온 전화를 받았제에~"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두 기사님은 서로 자기는 전화를 건 것이 아니고 받았다고 느릿하게 번갈아 말했습니다.

대강 실랑이가 끝났나 싶으니 그다음에는 서로 용건을 말하라고 줄다리기가 이어졌습니다. "아 나는 받았는디 할 말이 없제~ 건 사람이 말을 해야제~" "나는 받았다니께~" "차암~ 귀신이 곡할 노릇이구머언~" 이런 내용 없는 통화를 5분간 꼼짝없이 듣고 있자니 영문을 모르면서도 웃지 않을 도리가 없었습니다. 다행히도 내릴 때쯤 되자 대화는 '할 말 없으면 이제 끊자'는 데까지 진전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었습니다. "아 (전화를) 건 사람이 먼저 끊어야제에~"

서로 자기가 전화 안 걸었다는 내용밖에 없는 줄 알았던 이 대화가 사실은 '반갑다, 별일 없이 잘 지내냐, 일 하기는 좀 어떠냐'는 무언의 안부로 꽉 찬 통화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재판이 끝날 무렵에서였습니다.

말은 본질을 흐리고

재판 내내, 말끔한 서울 말씨를 쓰는 판사, 검사, 변호사들은 택시에서 본 엿가락 같은 대화와는 달리 의미가 분명한 문장으로 목적이 명확한 질문들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토록 분명한 언어만이 오가는 재판에서 오히려 말은 본질을 흐리고 현실을 왜곡하고 감정을 다 표현하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날 재판에서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은 본질은 매우 간단명료했습니다. 사고 당시 태안화력발전소 작업환경은 시키는 대로 일하면 크게 다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위험했고, 그렇게 일하다 사람이 다쳤을 때 신속하게 처치할 방안은 전혀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용균은 컨베이어벨트 운전원이었습니다. 석탄을 운반하는 컨베이어벨트에서 떨어지는 석탄 덩어리와 가루들(낙탄)이 벨트 아래에 위치한 롤러(아이들러)에 끼어 작동을 방해하거나 화재를 일으키지 않도록 그 낙탄을 제거하는 것이 용균의 일이었습니다.

컨베이어를 감싸고 있는 덮개에는 가로 50cm, 세로 70cm의 구멍(점검구)이 뚫려 있어 안쪽을 들여다보고 롤러 주위의 석탄을 긁어내게 되어 있는데,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 점검구들이 롤러 위치에 맞게 뚫려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이 점검구에 몸을 구부려 집어넣어야만 일을 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일단 몸을 넣으면 빠르게 돌아가는 컨베이어벨트에 언제라도 몸이 닿을 수 있기 때문에 부상 위험은 매우 컸습니다. 하지만 비상정지 장치는 덮개 바깥에서만 작동시킬 수 있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2인 이상이 함께 작업을 해야 비상 상황에 사후적인 대처라도 가능했지만, 용균을 비롯한 운전원들은 사고 당시 모두 혼자 일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환경인데도 태안화력발전소를 운영하는 서부발전 측 변호인들은 원청의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기 위해 교묘히 현실을 왜곡하고 사고를 용균의 탓으로 돌리려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몇 번이나 용균이 몸을 집어넣은 것을 문제 삼았습니다. 하지만 롤러가 덮개에 가려 안 보인다고 낙탄을 제거하지 않았다가 쌓인 탄가루에서 불이라도 났다면 용균은 책임을 면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용균이 몸을 집어넣지 않고 주어진 일을 하려면 롤러의 위치에 맞게 점검구가 뚫려 있어야 했지만, 그 위험한 작업장을 방치한 책임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이번에는 용균을 그 자리에 배치한 것은 서부발전이 아니라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용균과 원청 사이에 어느 하청업체가 있었든, 심지어 몇 단계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런 환경'에서 하청업체 사람들을 일하게 한 원청의 책임은 변하지 않는데도 말입니다.

문답이 끝나고 난 뒤에는
 
재판이 있을 때마다 지역과 현장에서 여러분들이 함께 피케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재판이 있을 때마다 지역과 현장에서 여러분들이 함께 피케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 김용균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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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명확한 본질에도 불구하고, 증인신문은 짐짓 나른한 어조로 사건의 주변부를 고집스럽게 헤집고 다녔습니다. 무심한 듯 던져지는 질문들은 때론 방청석에 앉은 용균 엄마의 마음을 무참히 헤집어놓기도 했습니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재판 내내 종이 위에 증인신문 내용을 받아적던 용균 엄마는 사고 현장 상황을 묻는 질문이 두 차례 나올 때마다 황급히 법정을 빠져나가야 했습니다.

대각선 뒤쪽 방향에 앉아 있던 저는 그때 본 용균 엄마의 눈빛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종이와 펜을 미처 내려놓지도 못하고 급히 귀를 막느라 한쪽 손은 미처 다 올리지도 못한 채 문을 찾는 그 눈빛에 가득 찬 것은 슬픔마저 압도하는 공포였습니다. 그날 법정에서 오간 수천 마디의 말보다 그 눈빛이 어쩌면 용균의 그 날을 더 선명하게 그려냈는지도 모릅니다.

드라마 업계의 스태프 착취를 고발하며 세상을 떠난 이한빛 피디의 아버지인 이용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장은 '갑자기 자식을 잃은 가족들은 그때부터 진공의 시간을 견딘다'고 말했습니다. 마음 속 충격과 상실감은 어떤 말로도 다 표현되지 않는데, 그 자리를 채우려고 하는 말마다 의미 없게 느껴지는 상황을 보며 저는 그 진공의 시간이 무엇인지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진공'을 조금 이해하고 나니 '이제 그만 하라'는 어떤 이들의 말이 그 시간을 전혀 공감해 보지 않았음을 고백하는 말이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납득할 수 없는 상실을 겪은 그 순간부터 내내 온전히 애도할 기회를 갖지 못한 사람에게 '이제'는 '그때'와 같은 '진공의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곧 네 번째 공판이 열립니다. 판결이 나오기까지, 그 법정에서 오가는 말들이 또 얼마나 주변부를 들쑤시고 때로는 현실을 왜곡하려 들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 택시 기사님들의 대화처럼, 모든 문답이 끝나고 난 뒤에는 그 난해한 말들이 결국엔 본질을 가리켰음을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대학원생 연구자이자 한국의 재난재해 유가족들의 운동을 공부하고 있는 김민영님이 작성해주셨습니다.


태그:#김용균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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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26일 출범한 사단법인 김용균재단입니다. 비정규직없는 세상,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하는 세상을 일구기 위하여 고 김용균노동자의 투쟁을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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