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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0일, 양평산나물공원에서의 내 나무 심기
 4월 10일, 양평산나물공원에서의 내 나무 심기
ⓒ 양평뉴딜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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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갖다 놓은 삽자루를 쥐고, 누군가 건네준 어린나무를 심고, 사진 찍고 끝. 어느새 익숙해져 버린 식목일 행사 풍경이다.

앞으로 이런 풍경은 어떨까?

우선 주민들끼리 숲에 관해 토론한다. 국토의 63%가 숲인 우리나라에서 왜 나무를 심고 숲을 가꿔야 하는지, 그것이 나 사는 데 무슨 영향을 주는지 다양한 의견이 공유된다. SNS에서는 '내 나무심기 챌린지'가 벌어진다. 전 청와대 비서관부터 어린이집 원장님, 전업주부 등 다양한 주민들이 피켓을 든다. 모금이 이뤄지고 내 나무 묘목과 내 이름이 적힌 작은 표찰이 준비된다. 나무 심는 날, 아이들 데리고 수백 명이 가족 단위로 모인 가운데 시민들의 합창을 시작으로 나무심기가 시작된다. 땀 흘려 나무를 심은 아이들은 자랑스럽게 내 나무 앞에서 포즈를 취한다.

지난 4월 10일 경기도 양평에서 실제로 벌어진 '내 나무심기 행사'의 명장면들이다. 이야기는 한 달 전인 3월 11일부터 시작된다.

[3월 11일] "알고 실천하고 알리고 요구하자"
 
3월 11일, 양평뉴딜포럼 교육현장
 3월 11일, 양평뉴딜포럼 교육현장
ⓒ 노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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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1일 목요일 오전 10시 30분, 양평읍 중앙로에 위치한 '양평뉴딜포럼' 사무실에는 8명의 주민이 열공 모드로 교육을 받고 있었다. 그린뉴딜 세미나, 일주일에 한 번씩 다양한 주제의 탄소중립 과제를 놓고 강사를 초빙하거나 영상을 본 뒤 토론을 한다. 이런 토론 모임이 3~4개 운영되고 있었다. 코로나 때문에 인원을 분산시키려는 방침 때문이다.

이날의 주제는 '숲에서 미래를 꿈꾼다'였다. 다큐멘터리 영상을 시청했는데, 단순히 '기후위기 시대 탄소를 흡수하기 위해 나무를 많이 심자'가 아니라, 숲을 어떻게 가꾸느냐에 따라 탄소흡수량이 달라지고 수많은 지역 일자리까지 창출된다는 국내외 사례가 흘러나왔다. 옥천면에 사는 최인숙씨는 눈여겨본 부분을 놓칠세라 열심히 필기했고, 서종면에 사는 양진영씨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예상 밖이에요. 숲에서 일자리를 만들고 건강을 지켜간다니..."

양평에 20년 살았다는 진영씨는 숲이 무분별하게 훼손되는 모습에 가슴 아팠다. 주민들 사이에는 이러다가 10년 후면 양평 숲 다 없어질 거라는 걱정도 나왔다고 한다. 군청이 제대로 계획해서 숲 훼손을 막고 체계적인 관리로 일자리까지 창출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놨다. 그러자 포럼 간부인 박민기씨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배우는 거잖아요. 우리 모토 다 아시죠? 먼저 알고 실천하고, 알리고 요구하자!"

청운면에 사는 이정화씨는 올 때마다 많이 배워간다며 옛날 초등학교 다닐 때는 '국토의 70%가 산'이라고 배웠는데, 오늘은 '국토의 63%가 산'이라며 7% 어디 갔냐고 물었다. 여기저기서 '맞아 맞아' 하는 소리가 나왔다. 서종면에 사는 청년 김영만씨는 캐나다 숲 풍경을 언급하면서 숲의 가치를 다시 한번 느꼈다고 말했다. 옥천면의 최인숙씨는 조카가 산림경영학과를 다니는데 열심히 목제 팰릿 기술을 학교에서 배웠지만, 사회에 나와 기술을 쓸 데가 없더라며 우리도 이제 산에 나무만 심을 게 아니라, 숲을 가꾸고 산림부산물을 산업에 적극 활용하는 국가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마디씩 하는 이야기가 너무 진솔하고 재미있었다. 토론하면 떠오르는 그 딱딱하고 공격적인 모습이 전혀 아닌, 같은 지역에 사는 중장년청년이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자연스럽게 공유하는 멋진 장면이 내 눈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3월 13일] 양평 오일장 "토종 임산물 사세요"

3월 13일 토요일, 세월리에 사는 도예가 김경희(양평군 강상면)씨는 자신의 공예작품들을 바리바리 챙겨 오일장에 나갔다. 공예품을 팔러 나간 게 아니라 임업인들과 함께 '토종 임산물' 판매를 하기 위해서다. 

"환경기후 문제의 해답이 숲에 있다고 하잖아요. 숲을 체계적으로 가꾸려면 산에서 나오는 임산물 판매도 잘되고 그 수익이 다시 산에 투자돼야 하는데, 현실은 우리 산에서 나오는 토종임산물 파는 매장 하나 없어요. 전부 중국산... 이런 인식부터 바꿔나가야겠다. 임산물도 이제 로컬로"
 
도예가 김경희씨
 도예가 김경희씨
ⓒ 노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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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희씨가 이처럼 숲에 관심을 가지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양평군 면적의 70%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숲을 잘 가꾸면 백 년 숲을 가꾸는 독일처럼 많은 일자리가 만들어져 지역에 건강한 활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에서 공방을 운영하다 15년 전 양평으로 이사 왔어요. 좋아요. 제 인생에서 제일 잘한 일이 양평으로 이사 온 일이에요. 그런데 여기서 그린뉴딜과 숲 일자리에 대해 알게 되면서 남의 일이 아니라고 느꼈죠. 부모 따라 양평에서 큰 우리 아이들이 지금 청년이 돼서 일자리가 부족한데 아이들 일자리가 숲에서 나올 수 있고 은퇴한 어르신에게 적절한 일자리도 숲에서 나올 수 있다면..."

실제로 산림청은 '양평형' 산림일자리 창출 모델을 공식화시키고 있다. 수도권에 위치한 지리적 장점과 풍부한 산림인프라를 활용해 선도산림경영단지, 친환경 목재도시, 목재산업 클러스터, 용문산휴양림 중심 산림복지 클러스터, 지방 정원인 세미원을 거점으로 한 정원 네트워크 구축 등 일자리를 만들어간다는 계획이다. 

[3월 16일] "내 나무심기 챌린지를 시작합니다"

페이스북을 통한 챌린지 이어가기가 시작됐다. 양평에 내 나무를 심어 탄소중립 숲을 만들어가자는 취지의 나무심기 챌린지는 한 사람이 두 명의 이어받기 주자를 지명하고, 1인 1그루 1만 원의 나무심기 모금을 동시에 진행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주민들은 물론 정동균 양평군수, 홍순용 산림조합장도 참여하더니 4월 5일에는 어린이집 원장님들도 나무심기 피켓을 높이 들었다. 
 
내 나무심기 챌린지에 참가한 양평 어린이집 원장님
 내 나무심기 챌린지에 참가한 양평 어린이집 원장님
ⓒ 양평뉴딜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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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극복 '양평 100만 그루 나무심기 챌린지'에 동참합니다. 2050년까지의 탄소중립이 세계적인 과제로 우리의 목표는 양평군민 모두가 양평 숲에 내 나무를 심고 가꾸기입니다. (나무에 후원자의 이름표를 달아줍니다) 옥천어린이집 원장님이 이어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챌린지를 이어갈수록 모금액과 참여자가 350명 규모로 급속히 늘어났다. 나무심기행사를 준비하던 자원봉사자들도 바빠졌다.

"처음이라 작게 시작하려 했는데 너무 커져서 저희도 놀랐어요. 자작나무 300그루가 일찌감치 모금됐고, 나무가 모자라서 편백 150그루를 더 심었어요." (박민기 양평뉴딜포럼 집행위원)

[4월 10일] '내 나무를 심는 사람들'

4월 10일 토요일 오전, 양평 산나물공원에 수백 명의 가족 단위 주민들이 모였다. 내 나무를 심는 날. 나무 심을 장소로 여러 곳의 임야가 추천됐지만, 사유림보단 공유림이 좋다는 의견 속에 양평군이 관리하는 이곳을 택했다. 식전공연으로 시민들이 준비한 <인디언 노래>가 숲속에 울려 퍼졌다. 
 
"마지막 나무가 사라진 후에야
 마지막 강이 더럽혀진 후에야
 마지막 남은 물고기가 잡힌 후에야
 그대들은 깨닫게 되리라.
 돈을 먹고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인디언 노래를 부른 양평 시민들과 최재관 전 청와대 비서관
 인디언 노래를 부른 양평 시민들과 최재관 전 청와대 비서관
ⓒ 양평뉴딜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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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기타반주를 맡아 시민들과 함께 노래한 최재관 전 청와대 농어업비서관은 앞으로 식목일이 이렇게 달라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기후변화로 인해 식목일을 앞당기는 게 나무에 스트레스를 덜 주는 길이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다시 공휴일로 지정해서 온 국민이 아이들 손 잡고 내 나무를 심는 날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기후위기 시대 나무심기는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지키는 일입니다." (최재관 양평뉴딜포럼 공동대표)

곳곳에서 나무를 심는 사람들이 산나물 공원 산비탈에서 장관을 이뤘다. 아이들은 처음 해보는 삽질에 땀을 흘리며 묘목을 심고 난 뒤 인증샷을 찍었다. 뿌듯한 표정들이다. 나무마다 아이들의 이름이 새겨진 나무 이름표가 걸렸다. 이름표는 마치 자석처럼 나무를 심은 이들을 다시 이 장소로 오게 할 것이다. 한 해 두 해 몰라보게 성장해나갈 자작나무들이 숲을 이룰 무렵 아이들의 아이들이 더 많은 숲을 가꾸고 있지 않을까?
 
4월 10일, 양평 산나물공원내 내 나무 심기 현장
 4월 10일, 양평 산나물공원내 내 나무 심기 현장
ⓒ 양평뉴딜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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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출범한 양평 내 나무심기 운동 본부는 양평군과 함께 올가을에도 나무심기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가꿔나가는 양평 포레스트의 시작이다.

태그:#식목일, #내나무심기, #그린뉴딜, #기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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