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국제영화제 타이틀

전주국제영화제 타이틀 ⓒ 전주국제영화제

 
*주의!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오늘은 좋은 날이다. 정아(이주영 분)의 딸 지은이 회사에서 승진을 했다고 한다. 남들보다 먼저 회사 생활을 시작한 것도 기특한 일인데 능력까지 인정받고 있는 모양이다. 딸의 좋은 소식에 정아는 친구들에게 점심을 사기로 했고, 오랜 친구 네 명이 한 자리에 모였다. 아무래도 자리가 자리인 만큼, 정아는 기분이 한껏 좋다. 저도 모르게 딸 자랑도 하게 된다. 오늘은 좀 그래도 되는 날 같기도 하다. 오늘 저녁에는 딸이 발레 공연까지 보여주기로 했다며 자식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는 티를 숨기지 않고 낸다.

미금(김금순 분)은 그런 정아의 모습이 못마땅하다. 친구의 딸이 직장에서 승진을 했다는 소식은 축하해 줄만한 일이지만, 너무 으스대는 꼴에 마음이 상한다. 더구나 지은은 자신의 딸 유나(문혜인 분)와 비슷한 또래라 은근히 비교가 되는 것도 같다. 아니, 정아는 지금 분명히 들으라고 일부러 더 저러는 것 같다. 두 딸이 어릴 때는 유나가 훨씬 더 똑똑하고 공부도 잘해서 사람들의 칭찬을 들었으니까. 축하해주려고 나온 자리에서 괜히 속만 더 상한다. 사실, 지금 유나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친구들에게 자랑을 할만한 이야기는 별로 없는 자식이다.

결국 미금은 있지도 않은 거짓으로 딸 자랑을 하기 시작한다. 영화 감독 일을 하고 있는 딸 유나가 최근에 단편영화제에서 대상도 타고 정식 감독 계약까지 하면서 눈코 뜰새 없이 바쁜 날을 보내고 있다고 말이다. 그런 딸 덕택에 자신도 정아 못지 않은 호강을 누리고 있으며, 심지어 오늘 저녁에는 한강에 가서 유람선도 타고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도 하기로 했단다. 가만히 듣고 있던 친구들의 호응에 어깨가 으쓱해지는 것을 느끼는 미금. 하지만 정아는 그런 미금의 허풍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이 눈을 흘긴다.

그렇게 서로의 약을 올리면서 언성을 높여 나가는 두 사람. 미금은 미금대로 자신의 딸과 비교되는 정아의 딸 지은과 정아의 자랑에 배가 아프고, 정아는 정아대로 자신이 한 턱 내는 자리에 나와 딸 자랑으로 허풍을 떠는 미금이 못마땅하다. 다른 친구들이 아니었다면 진작에 싸움이 났을 것 같다.
 
 제 22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좋은날> 스틸컷

제 22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좋은날> 스틸컷 ⓒ 전주국제영화제


02.
두 사람의 딸의 효도로 인한 호강을 누리기 위해 함께 서울로 향한다. 정아는 딸이 보여주기로 했다는 발레 공연을 보러, 미금은 유람선을 타러 한강에 가기 위해서다. 친한 친구라 함께 하긴 했지만 속이 많이 상한 미금의 입장에서는 지금 이 동행 자체도 불편한 상황. 문제는 이제 서로 헤어질 때도 됐는데 정아가 갈 생각을 하지 않고 유나네 집으로 미금을 따라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별별 핑계를 다 만들며 끝까지 미금을 쫓아 오는 정아. 정아는 굳이 유나를 직접 만나 미금의 말이 사실이었는지 파헤치고 싶고, 자신의 허풍이 들통날까 겁이 나는 미금은 정아를 빨리 보내고 싶은 심정이다.

여기에서 끝나면 영화는 너무 평평해진다. 억지로 보내는 것도 모양이 이상한 상황에서 결국 유나의 집 근처까지 따라온 정아. 집 앞 골목에서 엄마를 마중 나온 유나와 만나게 된다. 미금의 속도 모르고 오랜만에 만나는 정아 이모를 엄마보다 더 반기는 딸. 함께 반가워하던 정아는 이내 곧 모른 척을 하며 미금이 했던 말들을 유나에게 직접 물어보기 시작한다. 이 상황을 알리 없는 유나는 그 상이 본선만 진출하면 모두 받는 상이었을 뿐이고, 계약도 아직은 아니라도 순순히 대답한다. 엄마와의 한강 행도 자신은 모른다며 되려 '엄마, 우리 한강 가 오늘?'이라고 해맑게 묻는다.

두 세 걸음 뒤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미금의 표정이 굳어진다. 갑자기 골목으로 도망을 치기 시작하는 미금. 당황한 정아가 신고 있던 하이힐까지 벗어 손에 쥐고는 그 뒤를 쫓기 시작한다.

03.
'쪽팔려서, 유나가 아이고 내가 쪽팔려서'

멀리 도망가지 못하고 정아에게 붙들린 미금은 이렇게 고백한다. 식사 자리에서 자신도 모르게 딸에 대해 거짓말을 하게 된 상황이, 그 거짓말을 미리 고백하지 못하고 상황을 이렇게까지 만든 자신의 자존심이 이제와 후회가 되는 셈이다. 사실, 정아도 그 마음을 모를 리가 없다. 영화 속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두 딸이 어린 시절에 공부도 잘하고 똑똑한 유나가 사람들에게 칭찬 받는 걸 보며 정아도 속이 상하고 부러워했던 적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미금이 그 상황에 우쭐해 하지 않았을 리 없고 말이다. 닮은 사람들끼리 친구가 된다고 하지 않나.

말없이 두 사람이 버스 정류장 벤치에 앉아 있는데 정아의 딸 지은의 전화가 걸려온다. 시작부터 짜증이 가득한 목소리. 정아가 말하던 그 착하고 엄마를 위하는 딸의 목소리라고 하기엔 조금 이상한 느낌이다. 대화를 조금 듣다 보니, 정아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큰소리치던 내용과 다르게 발레 티켓도 딸이 아니라 정아 본인이 산 것이었고, 심지어는 엄마의 취향도 잘 알지 못하는 딸이 자기 마음대로 예매한 공연이 발레였던 것이다. 정아는 발레를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괜히 딸 자랑이 하고 싶어서 친구들 앞에서 그렇게 말했을 뿐이었다. 정아도 미금도 결국엔 모두 빛 좋은 개살구인 셈이다.

서로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된 두 사람은 함께 한강 공원으로 향한다. 처음으로 한강 라면을 끓인 두 사람은 우아한 발레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큰 맘 먹고 준비한 정아의 스카프를 잔디 위에 깔고 함께 시간을 보낸다.
 
 제 22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좋은날> 스틸컷

제 22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좋은날> 스틸컷 ⓒ 전주국제영화제


05.
영화 <좋은날>은 정아의 딸이 승진을 한 일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자리에서 친구 미금이 자신의 딸에 대한 허풍을 늘어놓으며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담은 작품이다. 친구가 자랑하는 꼴을 보다 못해 거짓말을 늘어놓는 미금과 그런 미금의 말이 거짓인지 사실인지 직접 확인해 보겠다며 쫓아나서는 정아에 대한 이야기. 비슷한 성향에 좁은 속까지 꼭 닮은 두 중년 여성의 모습이 담겨 있다. 영화의 전체적인 톤은 코믹하다. 똑 닮은 두 사람의 티키타카를 보고 있으면, 정작 내가 같은 상황에 놓이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으면서도 그 유치한 상황 자체만은 웃음이 난다. 그래서 두 사람이 오랜 친구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영화는 엔딩이 가까워져 올수록 마음을 누르는 힘을 느끼게 한다. 부모는 자식이 전부라는 말을 보여주고 싶기라도 하는 듯, 딸들에 의해 좌우되는 두 엄마의 모습은 처음에 등장했던 철없는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그런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는 대상이 결국에는 어린 시절의 친구라는 점 역시 이 영화가 시사하고 싶은 부분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의 말미에 다음과 같은 대사가 나온다. 두 사람의 대화처럼 이제 와서 성질을 죽이는 건 힘들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대신, 두 사람은 오늘 함께 먹은 이 한강 라면의 맛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정아야, 우리 성질 좀 덜 부릴까?"
"우리가 그게 쉽게 되겠나?"
"그런가? 오늘 날이 참 좋다"
영화 전주국제영화제 좋은날 황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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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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