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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권은 원래 교사와 학생 모두에게 있는 '교육권'의 준말이지만 사회적으로 교사의 권리라고 정의내려진 이후에는 '교권이 지켜져야 한다'는 돌림노래만 들린다. 2021년 스승의날을 맞아 연대체 '연대하는 교사잡것들'에서는 연속기고 '#교권이_아니다'를 통해 교권에 대한 논의를 펼쳐보고자 한다.[편집자말]
저는 현재 교육 관련 일을 하는 변호사입니다. 학창 시절을 말하자면, 저는 흔히 말하는 '모범생'에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성적이 나쁘지 않았고, 큰 말썽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큰 말썽이 없었다고 해서, 소소한 말썽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머리가 길다는 이유로 교사로부터 "너가 이미연인 줄 알아?(이미연은 찰랑찰랑한 긴 머리로 유명한 배우였죠) 머리 묶어!"라는 핀잔을 듣거나, 수업시간 중 가디건을 어깨에 걸치고 있었다는 이유로 교사로부터 "입으려면 입고, 벗으려면 벗어"라는 말을 듣는 것이 일상다반사였습니다. 뭔가 부당한 느낌은 들었지만, 당시 저로서는 그 부당함을 뭐라고 설명할지 알지 못하였습니다.

내 두발 길이를 내가 결정할 수 있다니
 
2005년 5월 14일 오후 서울 광화문 정보통신부앞에서 열린 '학생인권보장 청소년축제'에서 참가 학생들은 자율발언 등을 통해 두발단속, 야간자율학습 강요, 학생회 간섭, 교문앞 용의검사, 인터넷 글쓰기 금지, 단체기합 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개선을 촉구했다. 두발단속이 없어지기를 바라는 뜻을 담은 '마지막 바리깡' 퍼포먼스를 위해 참가자들의 머리카락을 가위로 자르고 있다.
 2005년 5월 14일 오후 서울 광화문 정보통신부앞에서 열린 "학생인권보장 청소년축제"에서 참가 학생들은 자율발언 등을 통해 두발단속, 야간자율학습 강요, 학생회 간섭, 교문앞 용의검사, 인터넷 글쓰기 금지, 단체기합 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개선을 촉구했다. 두발단속이 없어지기를 바라는 뜻을 담은 "마지막 바리깡" 퍼포먼스를 위해 참가자들의 머리카락을 가위로 자르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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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1990년대 초반에는 학생인권이라는 말도 드물었고, 휴대전화나 인터넷도 쉽게 접할 수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당시 학생인 제가 무슨 권리를 가지고 있는지, 용의복장에 대해서 규정하는 학칙이 존재하는지조차 몰랐습니다. 학칙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몰랐으니, 학칙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도 당연히 몰랐습니다.

제가 학창 시절 느꼈던 그 뭔지 모를 부당함, 의문들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게 된 것은 대학에 들어와서 법을 공부하게 된 이후였습니다.

저는 헌법을 통해 처음으로 '내 머리카락 길이는 내가 결정할 수 있다'는 사실과 그러한 권리를 '일반적 행동의 자유'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헌법재판소는 바로 이 헌법 제10조로부터 자기결정권, 일반적 행동의 자유권 등이 도출된다고 보았습니다.

즉,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기 때문에, 자신의 삶과 운명을 스스로 기획하고 결정할 권리가 있으며, 따라서 다른 사람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한 자유로이 행동할 권리가 보장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고등학생인 저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진 존재인 이상, 저의 머리카락 길이나 가디건을 어떻게 입을지 정도는 결정할 권리를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저는 그즈음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누군가 마음 내키는 대로 제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일정한 사유가 있어야 제한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헌법 제37조 제2항은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누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제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제한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학생의 두발 길이를 결정할 권리에 대한 제한은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 중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요. 머리카락이 어깨에 닿으면,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에 어떤 위험이 초래되는 것일까요.
 
모 고등학교 징계규정
 모 고등학교 징계규정
ⓒ 강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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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학생의 머리카락 길이와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가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오히려 학생의 머리카락 길이 규제는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보다는 '말 잘 듣는 인간 만들기'와 더 관계가 깊다는 것도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머리카락 길이조차 결정할 수 없는 학생은 이후 직장에서, 사회에서 자신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정책에 대해서도 쉽게 결정할 생각을 하지 못할 테니까요.

결국 학생에 대한 용의복장 규제는 아무런 기본권 제한 사유 없이 학생의 자기결정권, 일반적 행동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므로 위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위헌'이 난무하는 학교

변호사가 된 이후 저는 교육 관련 법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됐습니다. 그런데 학교 밖에서 일반 국민에게 적용되었다면 당장 위헌이 선고될 만한 법률도 학생에게 적용되면 아무도 문제 삼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초중등교육법 제18조(학생의 징계)는 "학교의 장은 교육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법령과 학칙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학생을 징계하거나 그 밖의 방법으로 지도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학교의 장은 '교육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학생을 징계하거나 지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학생을 징계하거나 지도할 수 있는 '교육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란 어떤 경우일까요? 과거 저처럼 '가디건을 어깨에 걸쳐 입는 행위'는 교육을 위하여 징계나 지도가 필요한 경우일까요, 아닐까요? 어떤 선생님은 저와 같이 가디건을 걸쳐 입는 것을 문제 삼았지만, 또 다른 선생님은 가디건을 걸쳐 입든 말든 전혀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 헌법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가 자의적으로 제한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법치주의'를 천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법치주의로부터 '명확성의 원칙'이 파생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명확성의 원칙이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법률은 가능한 명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법률이 명확하지 않으면, 어떤 행위가 허용되고 어떤 행위가 금지되는지 알 수 없는 국민으로서는 자신의 행위가 혹시 처벌될지 모른다는 불안에 통상 그 행위를 포기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모호하고 명확하지 않은 법률은 그 자체로 법 집행당국의 자의를 허용하게 되므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위축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초중등교육법 제18조로 돌아와, 학생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고 있는 초중등교육법 제18조는 명확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솔직히 저는 나름 법률전문가가 된 지금도 법상 '교육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가 어떤 경우인지 자신있게 말할 수가 없습니다. '가디건을 어깨에 걸쳐 입는 행위'가 '교육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해당하는지, 그래서 징계나 지도가 가능한 것인지 지금도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법률전문가인 제가 이러한데, 법률전문가가 아닌 학생과 교사들은 이 법률을 어떻게 해석하고 집행하고 있는 것일까요. 결국, 초중등교육법 제18조는 명확성의 원칙에 반하여 위헌의 소지가 크다고 할 것입니다.

흔히 학교는 민주사회의 시민을 기르는 곳이라고 합니다. 또한 민주사회의 시민은 위에서 결정한 일을 일방적으로 따르고 순응하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을 지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교사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학교가 정말 민주사회의 시민을 기르는 곳이 되기 위해서 교사는, 우리 사회는 무엇을 함께 할 수 있을지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자신의 머리 길이조차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사람을 기르는 것이 민주사회의 시민을 기르는 진정한 교권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덧붙이는 글 | 저는 연대하는 교사잡것들이 함께하는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에서 활동하는 변호사입니다. 교사의 징계권 관련한 법적인 의미를 짚어봐달라는 요청에 연대하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태그:#교권, #교사, #스승의날, #교사잡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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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교육을 바꾸고 싶은 변호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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