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6.15 07:06최종 업데이트 21.06.15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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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7 정상회의 참석차 영국을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영국 콘월 카비스베이 양자회담장 앞에서 참가국 정상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남아공 시릴 라마포사 대통령,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영국 보리스 존슨 총리 , 문재인 대통령, 미국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두번째 줄 왼쪽부터 일본 스가 요시히데 총리,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 캐나다 쥐스탱 트뤼도 총리, 호주 스콧 모리슨 총리. 세번째 줄 왼쪽부터 UN 안토니우 구테흐스 사무총장,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 이탈리아 마리오 드라기 총리,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 연합뉴스

 
2021년 G7 개최국인 영국의 보리스 존슨 총리는 6월 11일 개회사(opening mark)에서 팬데믹 이후의 세계 질서는 "더 푸르고" "더 공정하고" "더 평등"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 가지 선언은 이번 G7의 주요 의제인 기후 문제, 다국적 기업 세금, 팬데믹으로 드러난 국가 간 격차와 각각 상응한다.

예상대로 이 의제들은 6월 13일 마지막 날 발표한 공동 성명에 포함되었다. G7은 지구 온도 상승을 1.5도로 제한하기 위한 노력, 다국적 기업 세금 부과, 10억 회분의 백신 기부, 아프리카 국가들에 대한 원조를 약속했다. 사실 이것들은 G7 본회의 전 실무진 선에서 어느 정도 사전 조율이 이루어진 의제이기 때문에 놀랍지 않다. 


오히려 공동 성명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G7이 공유하는 가치, 예를 들면 민주주의와 인권 존중을 재확인한 부분이다. 이것은 G7 등 서구 국가들의 동맹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바이든의 구상으로, 그가 상당 부분 뜻을 관철했음을 보여준다.

이와 관련해 G7 회의 3일간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바이든-존슨 '신 대서양 선언'

팬데믹 이후 처음 대면 외교로 진행된 2021년 G7 회의는 보리스 존슨에게 "세계적 영국(Global Britain)"을 국제 사회에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특별했다. "세계적 영국"이란, 2020년 EU와 공식 결별한 후인 2021년 3월 보리스 존슨이 영국의 미래상으로 내건 개념이다.

1990년대 초 세계화의 상징이었던 EU에서 탈퇴한 것은 세계화보다는 국민 국가로 후퇴한 것를 의미했고, 이는 불가피하게 영국에 대한 고립된 이미지를 형성했다. 하지만 "세계적"이란 단어 사용에서 보듯 보리스 존슨이 원한 것은 단절이 아니라 온전한 주권 국가로서 국제 사회로 복귀하는 것이었다.

보리스 존슨의 의도를 읽고 손을 잡아준 것은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다. G7 개최 하루 전인 6월 10일 영국 서퍽(Suffolk) 밀든홀 미 공군기지를 들른 후 G7 회의가 열리는 콘월에 도착한 바이든은 보리스 존슨과 함께 '신 대서양 선언(Atlantic Charter)'을 발표했다.  
 

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과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개막을 하루 앞둔 10일(현지시간) 영국 콘월 카비스 베이에서 첫 양자회담을 하고 있다. 2021.6.10 ⓒ 연합뉴스

 
대서양 선언의 기원은 1941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루스벨트(FDR) 대통령과 영국 윈스턴 처칠 총리는 2차 대전 이후의 세계 질서로 영토 확장 불가와 민족 자결주의, 자유 무역, 국제 협력을 골자로 하는 '대서양 선언'을 발표한 바 있다. 선언 이후 미국은 영국에 구축함과 군수 물자를 원조했다. 참전하지는 않았지만 미국의 영국 지지는 일본의 미국에 대한 적대감을 증폭시켰다. 4개월 후인 1941년 12월 일본은 진주만을 공격해 미국을 2차 대전으로 끌어들였다.

대서양 선언은 2차 대전 이후의 국제 질서에 상당한 역할을 했다. 제국주의자였던 처칠은 민족 자결은 독일 점령국에만 적용될 것이라며 대영 제국을 그대로 지키려 했다. 그러나 노동당 애틀리 내각은 대영 제국 해체 수순을 밟았고 전 세계적으로 제국주의 질서는 막을 내리게 된다. 방위와 경제면에 있어서 대서양 선언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탄생으로 이어졌다.

이로부터 80년이 지난 2021년 바이든과 보리스 존슨은 루스벨트와 처칠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바이든은 국내 개혁 정책에서 루스벨트와 비견되고, 보리스 존슨의 경우 윈스턴 처칠의 전기를 쓸 정도로 처칠은 그의 정치적 모델이다. 그의 영국과 유럽의 관계도 "유럽과 같이 가지만 유럽의 일부는 아니다"고 말한 처칠의 노선과 맞닿아 있다.

영국 언론은 유사성은 있지만 바이든과 보리스 존슨이 루스벨트와 처칠과 같은 돈독한 관계가 되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 일단 자라온 환경이 노동자 계급과 상류 사회로 크게 차이가 나고, 존슨이 예측 불가능하고 포퓰리즘적 측면이 있는가 하면 바이든은 그렇지 않다. 게다가 바이든은 존슨을 "외모와 정서적"으로 트럼프의 클론(clone, 복제)이라고 평한 바 있다.

두 정상 간의 긴장 관계를 뛰어넘는 것이 전략적 중요성이다. 지난 기사(세계를 이끄는 G7이 인정한 한국? 이런 측면도 있습니다 http://omn.kr/1tobg)에서 논했듯이 영국은 역사적으로 대서양 중심의 세계관, 즉 서구 사회 중심의 국제 질서 구축과 서구적 가치 형성의 핵심이다. 이 때문에 서구적 가치로 중국을 견제하려는 바이든에게 영국은 꼭 필요하다.

게다가 영국은 전통적으로 미국과 가장 오래된 동맹이고 유럽과 미국을 잇는 연결 다리였다. 브렉시트 이후 영국이 EU에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이 현저히 줄었지만, 여전히 유럽과의 동맹 강화 및 유지에 교두보 역할을 맡을 수 있다.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세계적인 영국"과 "서구의 동맹 강화" 속에 두 정상은 양국 관계를 재확인했다. G7 개최 하루 전날 바이든은 양국을 "특별한 관계(special relationship)"로 불렀다. 극적인 것을 선호하는 보리스 존슨은 "파괴될 수 없는 관계(indestructible relationship)"로 표현했다.  

바이든의 빅픽처

대서양 선언은 8개 조항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체로 양국의 공동 관심인 기후 변화, 방위 협력, 정보 공유, 사이버 공격에 대한 공동 대응, 의료 보건 시스템을 언급한다.

눈에 띄는 것은 첫 번째 항목이다.
 
우리는 민주주의 원칙, 가치, 제도와 열린사회를 수호할 것을 결의한다. 우리는 민주주의가 우리 시대의 중요한 도전을 해결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우리는 투명성, 법치주의, 시민 사회, 독립된 언론을 지지한다. 우리는 불공정과 불평등에 맞서고 모든 개인의 존엄성과 인권을 수호할 것이다.
 
여기서 바이든-존슨은 자국을 민주주의 사회로 규정, 반민주주의 세력에 대한 견제를 약속했음을 알 수 있다. 민주주의 대 반민주주의로 놓았을 때, 반민주주의 세력은 민주주의와 반대되는 속성을 보이는, 불투명하고 권위주의적이고 시민 사회가 억압되어 있고 언론이 통제되는 사회, 인권 탄압이 이루어지는 권위주의(독재) 사회이다. 중국과 러시아를 가리키고 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중국에 대한 견제는 민주주의란 개념에 그치지 않는다. 바이든은 중국의 일대일로(One Belt One Road) 정책에 대한 대안으로 B3W(Build Back Better World)를 G7에서 제안했다. G7이 결의한 백신 10억 회분의 개발국 기부와 아프리카 환경 문제, 인프라, 경제 재건에 대한 재정적 지원은 넓은 의미에서 B3W의 일환이다. 바이든의 계획은 G7에서 지지를 받았지만, 환경 문제의 경우 중국의 협조 없이는 해결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압박 수위를 조절해야 할 필요성도 같이 언급되었다고 알려졌다.
  
일면의 성공과 달리, 바이든의 구상을 불안하게 하는 요소도 G7은 가지고 있다. 서구 유럽 사회의 분쟁으로 영국과 EU는 현재 '소시지 전쟁 (Sausage War)'중이다.
 

유럽연합(EU) 지도자들이 11일(현지시간) 영국 남서부 콘월의 카비스 베이 호텔에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개막 전 EU 조정회의를 하기 위해 모여 있다. 왼쪽부터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의장,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 G7 정상들은 이날부터 사흘간 이 호텔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약 2년 만에 처음으로 직접 만나 회담을 한다. 2021.6.11 ⓒ 연합뉴스

   
불안요소, 소시지전쟁

영국-아일랜드의 관계는 아시아의 한-일 관계와 비슷하다. 몇 세기에 걸친 갈등 끝에 양쪽은 세계 1차대전 직후 2년간 전쟁을 벌였고, 그 결과로 아일랜드는 1921년 독립한다. 하지만, 영국 지지파(대부분 개신교)가 많았던 아일랜드섬 북동쪽의 북아일랜드는 영국령으로 남았다. 이후에도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와의 무력 충돌은 계속되었고 오랜 협상끝에 토니 블레어 노동당 내각은 1998년 금요일 협정(Good Friday Agreement)으로 갈등을 봉합했다.   

북아일랜드는 브렉시트의 뇌관이다.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사이에 실체적 국경선을 만들 경우 금요일 협정으로 일단락 맺은 영국-아일랜드 관계가 다시 악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뇌관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 EU와 영국은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사이에 국경을 만들지 않는다는 대원칙(북아일랜드 협약)을 세웠다. 주권국인 아일랜드를 영국 마음대로 EU에서 탈퇴시킬 수 없기때문에 이 원칙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북아일랜드를 EU 단일 시장에 남기는 것이었다. 이것으로 영국은 EU 단일시장 법이 적용되지 않는 잉글랜드-웨일스-스코틀랜드와 EU 단일시장 법이 적용되는 북아일랜드로 나뉘어졌다. 예를 들어 영국 상품이 아일랜드 해를 건너 북아일랜드로 넘어갈 경우, 북아일랜드가 영국 영토이지만 동시에  EU 단일 시장 소속이기때문에 세관 검사를 받아야 하는 껄끄러운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북아일랜드 협약 이후 보리스 존슨 특유의 가벼움과 낙관론이 발동했다. 3월 말로 정한 유예기간이 끝나도록 영국은 세관 검사를 위한 시설을 짓지도 않았고 인력을 충원하지도 않았다. 이전과 다름없이 영국산 소시지와 냉장육이 세관을 거치지 않고 북아일랜드로 유입되자 EU는 합의한 바를 지키라며 영국에 항의했고 영국은 유예기간을 일방적으로 연장했다.

'소시지 전쟁'은 G7이 개최되기 이틀 전인 6월 9일까지도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EU국 정상들과 보리스 존슨의 갈등은 회의 기간 내내 언론에 언급되었다.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은 "조약의 무게를 믿는다"라며 "협상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못박았다. 북아일랜드 협약을 지키지 않을 경우 영국산 생선의 수출 제한과 영국 저지(Jersey) 지역 전기 공급 감소 등 무역 전쟁에 들어갈 것임을 예고했다. 보리스 존슨은 북아일랜드는 나눌 수 없는 영국의 영토라며 유연성 있는 방식을 찾자고 했다.

영국-EU 간에 벌어지는 서구 사회의 불협화음은 바이든에게 마뜩찮다. 그는 중국 견제를 위해서 서구, 즉 민주주의 세력으로 묶일 수 있는 국가들이 돈독한 관계를 갖기를 원한다. G7 회의 기간 중에는 언어 수위를 조절하며 1998년 금요일 합의를 지켜야 한다고만 언급했다. 미국과의 자유 무역 협정이 아직 성사되지 않은 상황이라 보리스 존슨이 바이든의 말을 무시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번 G7에서 바이든이 보여준 움직임은 동아시아에도 적용된다. G7에 참석한 비서구 국가는 한국·일본·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그 중 한국과 일본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국과 가장 가까운 동맹국이다. 미국은 한미일 동맹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고자 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 한일 관계는 영국-EU처럼 원만하지 못하기때문에  바이든은 이번 G7에서 영국에 했던 방식을 사용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하면, 한일 양국이 필요한 바를 들어줌으로써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과시하면서도 다른 한쪽으로 양국을 압박하는 방식이다.

이때 한국은 무엇을 할 것인가. G7에 초대될 만큼 국격이 올라갔다고 좋아만 할 것이 아니라, 한국이 내세울 외교적 카드를 정교하게 고민하고 다듬을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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