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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가치가 퇴색하는 세상입니다. 뿐만 아니라 급격한 자동화로 인간의 노동 그 자체가 종말을 고하지 않을까 우려되는 세상이기도 합니다.  마주했던 노동 현실의 민낯을 보며 현장의 관찰자이자 조율자로서 신입 노무사가 보고 겪고 느낀 것들을 독자와 공유합니다. [기자말]
근대 이전 사회에서 낮은 계급에 주어지는 노동의 의무는 개인의 역량을 한참 초과하였기에 다치고 목숨을 잃는 일이 다반사였다.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찾고자 들고 일어서 '산업재해'라는 개념이 생기고 이를 방지하려고 법이 만들어진 건 불과 지난 세기의 일이다.

계급제가 사라진 현대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고용 형태에 따라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새로운 계급이 생겼기 때문이다. 구의역 스크린도어 노동자 사망사건을 필두로 태안화력 하청업체 사건, 평택항 사건 등 '위험의 외주화'가 강화된다는 사실은 너무 많이 들어 익숙하기까지 하다. 이에 우리 사회는 산업안전보건법 상 사업주의 안전조치 의무를 강화하고, 최근 중대재해기업처벌법까지 제정하여 재해를 최소화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나는 기자 시절 취재 과정에서 업무상 재해를 입은 사람들을 수도 없이 만나봤고, 스스로 업무 도중 아찔한 순간을 겪기도 했다. 현재는 그들의 재해를 법·제도적으로 처리하는 노무사 일을 하고 있다. 길지 않은 경력이지만, 그간 마주한 재해 현장에서 과연 산업재해란 왜 발생하는지 계속 고민해 왔다.  

경제적 효용 앞에 경시되는 안전조치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숫자는 냉혹하다. 아무리 과정이 좋더라도 숫자로 나타나는 결과가 나쁘면 그 경영은 실패한 것이다. 이에 기업은 고정 인건비와 해고 리스크를 줄이려고 '다운사이징'이나 '아웃소싱'을 한다. 이전 글에서 '노동과 인간의 이혼'이라 표현했던 이 현상은 비단 일자리의 감소뿐만 아니라 산업재해라는 측면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 '이혼'의 가장 큰 문제는 그 부담이 계속 아래로 전가된다는 점이다. 본래 10명의 정규직이 처리해야 하는 일을 정규직 관리자 1인과 비정규직 서너 명 그리고 기계가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기계가 하지 못하는 복잡하거나 정형화되지 않은 일을 맡게 되는데, 문제는 여기서 고용 형태라는 신 계급제도로 인해 하기 쉬운 일은 정규직에게, 처리가 어렵거나 위험한 일은 비정규직에게 배분되는 결과가 나타난다는 데 있다.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건 취재 당시 필자는 이 점을 뼈저리게 느꼈다. 2016년 5월 28일 구의역에서 김군이 목숨을 잃은 그 날 작업 시 항상 2명이 동행해야 한다는 최소한의 안전수칙은 경제적 효율성 앞에 무시됐다. 취재하려고 몇 날 며칠을 대기했던 하청업체의 출입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사건 원청으로서 최종 책임을 져야 할 서울메트로마저 형식적인 반응만을 보였다. 오로지 죽은 자의 동료와 가족들만이 울부짖을 뿐이었다.

중대재해법 제정 전에 발생한 이 사건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7명 중 사건 관련하여 징역을 산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나마 가장 높은 형을 선고받은 하청업체 대표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나머지는 사람의 목숨값이라기에는 너무도 값싼 500만 원 내지 1000만 원의 벌금형만을 선고받았다.

이러다 보니 아직까지도 대다수의 기업은 '문제가 된 다음에 처리하는 게 문제 자체를 없애는 것보다 싸게 먹힌다'는 생각으로 나와 같은 노무사들에게 어떻게 하면 합법적으로 안전 관련 절차나 교육 훈련을 간소화할 수 있는지를 질문하게 된다. 5대 법정의무교육 중 하나인 산업안전 보건교육이지만, 솔직히 법문 그대로 제대로 시행하는 기업이 얼마나 될지는 의문이다. 적어도 이런 논리하에서 인간은 그저 '사고 유발 인자'로 잠재적 리스크에 불과하다.

과도한 경쟁을 위해 소모되는 노동력

개인적으로 위와 같이 기업이 '돈 논리'를 추구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경영자는 자선사업가가 아니고 생존을 위해서라도 끊임없이 이윤을 추구해야 하는 게 사업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필요 이상의 과도한 경쟁이 벌어진다는 점이다.

기자 시절의 나 또한 이러한 경쟁이 낳은 부조리를 겪었다. 언론사는 '단독 기사'라는 희소한 재화를 확보하려고 수습 기자들에게 '하리꼬미(경찰서에서 숙식하면서 취재하는 방법을 이르는 은어)'를 시키면서 노동자로서 최소한의 휴식 시간조차 보장하지 않았다. 

카메라 기자였던 나는 무슨 일만 있으면 차를 타고 쫓아가며 생중계하는 이른바 '팔로잉'을 했다. 달리는 차의 선루프를 열고 몸을 내밀어 흔들리는 카메라를 꽉 부여잡고 유명인이 탄 차의 뒤를 쫓는 일이었다. LTE 모뎀이 달린 휴대용 중계기가 보급되면서 시작된 이 위험천만한 곡예는, 생방송 뉴스 중에 패널들이 말할 시간을 벌면서도 동시에 현장감을 극대화할 수 있는 훌륭한 수단이었다.
 
2017.5.31. 정유라 귀국 당시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차량을 타고 쫓아가는 '팔로잉 취재'를 하고 있는 필자
▲ [사진1] 정유라 귀국길 팔로잉 취재 2017.5.31. 정유라 귀국 당시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차량을 타고 쫓아가는 "팔로잉 취재"를 하고 있는 필자
ⓒ 박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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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팔로잉'에 어떠한 안전조치도 수반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유라씨 입국 당시 인천공항부터 서울중앙지검까지 이어진 도로 위 추격전에서 필자에게 주어진 안전조치로는 "카메라를 놓치면 위험하니 어딘가에 고정하라"는 데스크의 걱정 어린 한마디 말뿐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동료 기자들 대다수는 카메라에 달린 멜빵을 몸에 칭칭 감아 꼭 붙들었다. 취재가 끝나고 보니 멜빵 조인 곳뿐만 아니라 선루프 모서리에 부딪힌 곳이 멍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당연히 언론사도 데스크도 이런 관행이 문제라는 건 알고 있다. 소형 카메라를 차량에 달아 사람이 몸을 내밀지 않는 방법을 시험해보기도 하고, 조수석에 앉아 차량 내부에서 '비교적 안전하게' 팔로잉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확실하고 안전한 선택지인 '모두가 팔로잉을 하지 않는다'라는 선택지는 애써 피하고 무시한다. 경쟁력 있는 무기를 스스로 봉인하는 것에 누구도 책임을 지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해외출장 때 언론사는 기자들에게 '숭고한 희생'을 부탁한다. 내가 재직할 당시 가장 큰 해외 이슈는 단연코 제1차 북·미 정상회담이었다. 비용 절감을 위해 맡아야 할 곳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기자를 파견했기에 대다수 기자들은 자리를 지키려고 잠자는 시간 빼고는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 모여 대기하는 이른바 '뻗치기'(취재 대상을 무작정 기다린다는 뜻의 언론계 은어)를 했다.

문제는 결국 마지막 날에 발생했고 주인공은 다름 아닌 나였다. 당시 열흘 넘게 무더운 동남아의 태양 아래서 하루 16시간 이상 격무에 시달렸던 나는 김정은 위원장이 세인트레지스 호텔에서 회담을 마치고 공항으로 돌아가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내보낸 직후 쓰러졌다. 구토를 하다가 숨이 쉬어지지 않아 정신을 잃었고, 심폐소생술을 받으며 구급차에 타 응급실로 옮겨졌다. 병명은 '탈수 및 전해질 이상'. 전형적인 열사병이었다.
 
2018.6.12. 싱가포르 세인트레지스 호텔 앞에서 호흡곤란으로 쓰러져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로 호송되고 있는 필자
▲ [사진2] 취재 도중 열사병으로 쓰러졌던 당시 상황 2018.6.12. 싱가포르 세인트레지스 호텔 앞에서 호흡곤란으로 쓰러져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로 호송되고 있는 필자
ⓒ 박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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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다행으로 근처에 있던 KBS 카메라 기자 선배들을 비롯한 여러 은인들의 신속한 대처로 현재까지 별 문제 없이 살고 있지만, 이 사건은 내가 기자직을 그만두게 된 큰 원인이 되었다. 매일같이 '죽음의 외주화' 따위의 제목을 내밀며,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고 부르짖는 언론사에서조차 이런 어처구니없는 재해가 일어난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또 언론사도 살아남으려고 노동자의 희생을 강요할 수밖에 없는 영리기업에 불과하다는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완벽한 법제도 마련보다 실행이 중요

아무리 법과 제도가 완비되어 있더라도, 이는 책에 쓰인 단순한 문자의 나열일 뿐이다. 그 문자의 나열을 현실에 대입해 실행해야 할 주체는 인간이므로, 각각의 개인이 이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나 의지가 선행되지 않는 한 법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내가 겪은 일이 과연 회사나 노동자들이 그 위험을 몰랐기 때문에 일어난 걸까? 결단코, 알면서도 무시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산안법상 안전조치 의무 조항은 선진국에 비하더라도 크게 뒤떨어지지 않는다. 양적으로만 봐도 당장 산안법 및 그 시행령·시행규칙,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등을 합치면 1천 개가 넘는 세세한 규정들이 있다. 오염된 바닥의 세척은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하는지(안전보건규칙 제5조), 용접용 가스 용기를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어떤 온도 이하에 보관하며 밸브의 개폐는 서서히 해야 한다(안전보건규칙 제234조)는 등 구체적인 행동 하나하나까지가 포함되어 있다.

문제는 이를 지켜야 할 사람의 태도다. 사업주는 작업의 효율성과 그에 따른 이익의 극대화를 이유로, 일터의 노동자들은 귀찮고 오래 걸린다는 이유로 이 세부적인 규정들을 무시하고 있다. 법과 규정이 잘 돼 있고 중대재해법 제정 등으로 그 처벌의 강도가 높더라도, 산업재해를 대하는 태도가 근본적으로 변하기까지는 재해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이에 초보 노무사로서 감히 제언해 본다. 산업안전보건교육이나 관련 규정이 아무리 귀찮더라도 사업주들이 이를 소홀히 여기지 않기를 부탁드린다. 경제적인 논리로도 그 '귀찮은 조치' 한 번에 잠재적인 사고 몇 건이 줄어들 수 있다면, 결코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안전에 대한 경시로 일어난 사고에 대해 여론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요즘, 기업의 대외적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라도 안전은 꼭 관리해야 한다.

노동자들에게도 부탁드린다. "괜찮아, 안 죽어"라는 말이 누군가의 유언이 될 수 있다는 말은 단지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잠깐의 귀찮음에 무시한 안전조치가 목숨과 직결될 수 있고, 살아남더라도 큰 후유 장해를 입어 죽느니만 못한 삶을 살게 될 수도 있다. '화이바'(안전모를 현장에서 주로 부르는 말) 잘 쓰고, 꺼진 불도 다시 보고, 안전지시에 적극 협조해 달라.

슬프게도 산업재해의 희생양은 보통 '높으신 분들'이 아니라 노동자 본인들이라는 사실을 꼭 명심하고 자기 일이라고 생각하고 관심을 가져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도 쓰러지기 전에는 몰랐다. 하지만 쓰러지고 후회하기엔 그 대가가 너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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現 조은노무법인 책임노무사, HR 책임컨설턴트 // 前 YTN 보도국 영상취재1부 영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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