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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엔 잔치국수, 점심은 짜장면과 짬뽕이고 저녁은 콩국수. 어느 더운 날 우리 부부의 하루 식단이다. 우연하게 면 요리로만 하루 식사를 마치고 나니 밥이 궁금했을까? 전혀 아니었다. 이상하게도 밥이 특별히 생각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저녁을 먹으며 왠지 한쪽으로 기운 듯한 그 날의 식단을 되짚었을 뿐이다.

후텁지근한 더위가 몰고 온 식단이었다. 더우니 영 입맛이 없었고, 매일 먹는 된장찌개나 김치찌개도 콩나물국이나 미역국, 북엇국도 가스 불 앞에서 지치게 만드는 것 같았다. 덥지 않고 복잡하지 않고 한 끼 후루룩 넘어가는, '때움'이 필요했다. 나름 영양을 무시하는 것 같지 않게 국물이나 고명을 신경 썼고, 더위로 떨어진 입맛에 국수만 한 음식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균형 잡힌 식사가 되지 못한다고 딸은 한 걱정을 쏟아부었지만, 둘의 만족감은 컸다. 잔치국수엔 전복을 듬뿍 넣었고, 우리 부부가 공인하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찾는 부천 최고의 맛집에서 불맛이 나는 간짜장과 짬뽕을 먹었다. 저녁은 시장표 서리태 콩 국물에 소면을 말아 오이와 통깨로 장식한 콩국이었으니 단출하지만 영양적으로는 밥과 국에 못지않은 식사라고 생각했다.

수고롭지 않게 만들 수 있는 한 그릇 
 
거뭇한 국물이 뽀얀 국수와 어우러지는 색감의 조화도 식욕을 자극한다.
▲ 서리태 콩국수 거뭇한 국물이 뽀얀 국수와 어우러지는 색감의 조화도 식욕을 자극한다.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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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어가며 국수 종류를 많이 찾는다. 여름이 되면 특히 냉면과 콩국수를 즐겨 먹는다. 냉면은 육수의 비법이 맛집마다 남다르기 때문에 그것을 흉내 내서 집에서 맛을 내기는 어렵다. 콩 국물처럼 맛있는 국물을 쉽게 공수할 수도 없다. 반면 콩국수는 시장에서 비리지 않고 고소하고 진한 콩 국물을 얼마든지 만날 수 있고, 잘만 선택하면 집에서도 쉽게 그럴듯한 한 상을 차릴 수 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여름이면 콩을 사서 불리고 삶고 믹서로 갈아서, 베 보자기에 걸러 힘들고 어렵게 콩국수를 만들어 먹었다. 가족들의 떨어진 입맛을 잡아 보겠다고 나름 먹거리에 열정을 불태웠던 시절이었다. 비지는 냉동실로 직행했다가 비지찌개로 만들어졌고 어렵게 만든 콩 국물은 종일을 수고한 무용담과 함께 긴 여름철에 한두 번씩만 별식으로 먹었던 것 같다. 

힘들고 복잡해서 자주는 못 했지만, 그렇게 한번 해 먹으면 여름을 나기 위해 최선을 다한 스스로에 뿌듯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남은 더위의 시간을 잘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은 힘도 났다. 복잡하고 번거로운 작업의 기억 때문에 내게 콩국수는 공을 많이 들여야 하는 귀한 음식으로 각인돼 있다. 그야말로 비지땀을 흘리며 삶고 갈고 분리하고 했으니. 물론 지금은 그렇게 애쓰지는 못한다.  

우리 집 콩국수 비법은 시장표 콩 국물이다. 시장의 수십 곳 중에서 우리 입맛에 최적화된 단골집에서 여름이면 뻔질나게 콩 국물을 사 온다. 갈증이 나면 두유처럼 마시기도 하고 국수를 삶아 콩국수로 먹기도 한다. 과정의 90퍼센트는 콩 국물이 다 하는 것이라 10퍼센트의 수고로 특별한 식탁이 준비된다.

요즘엔 웰빙 바람을 타고 검은콩으로 만든 콩 국물이 시장에도 많이 선보인다. 가격도 흰콩 국물보다 더 비싸다. 집에서 만들 때는 시골에서 보내주신 콩이 있으면 가리지 않고 만들었는데, 시장에서 살 때는 늘 서리태콩으로 만든 콩 국물을 사 온다. 검은콩 국물이 모 연예인의 검고 윤기 나는 머릿결의 비결이었다는 소리에도 혹했고, 미운 흰머리가 쑥쑥 올라올 때마다 나에게도 비슷한 효과를 내주길 내심 기대하면서.

블랙푸드의 대표주자인 검은콩에는 양질의 단백질뿐 아니라 지질, 비타민 B1, 비타민 B2, 비타민 E 등의 영양소가 들어있다고 한다. 검정콩은 일반 콩보다 노화방지 성분을 4배가량 많이 함유하고 있고, 성인병 예방은 물론 다이어트에도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네이버 지식백과). 거뭇한 국물이 뽀얀 국수와 어우러지는 색감의 조화도 식욕을 자극한다. 

콩국수 면으로는 중면이 딱이다. 소면보다 조금 더 오래 삶고 찬물에 바로 넣어 조물조물 전분기를 빼면, 부드럽고 매끈한 식감에 탄력을 입은 면이 완성된다. 물기를 빼고 국수 그릇에 소복이 덜고, 면 주위로 콩 국물을 돌려 붓는다. 하얀 면 위에 오이와 통깨를 듬뿍 넣어주고 반숙 달걀을 예쁘게 썰어 얼음 몇 조각까지 동동 띄우면, 맛집에서 먹는 것과 다르지 않은 비주얼의 '고오급' 콩국수가 완성된다.

설탕과 소금이 없어도 충분한 이 맛 
 
자주 가는 칼국수 집의 콩국수, 콩가루가 들어가서 고소한 맛이 두 배인 시장표 콩국수
▲ 시장표 콩국수 자주 가는 칼국수 집의 콩국수, 콩가루가 들어가서 고소한 맛이 두 배인 시장표 콩국수
ⓒ 장순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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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전부터 국수를 좋아했던 사람은 아니었다. 매일 해 먹어야 하는 밥과 국이 지겨워질 즈음 국수의 맛을 알게 되었던 것 같다. 처음엔 비빔냉면이, 그다음엔 칼국수가, 지금은 국수로 면 사랑이 이어지고 있다. 냉면은 계절을 가리지 않고 먹는 것 같다. 여름에도 좋지만 겨울에도 냉면 맛집은 손님들로 붐비는 곳이 많았다. 

뜨거운 칼국수는 여름철에는 오다가다 선택하기는 어렵다. 이열치열은 복날 같은 특별한 날에만 통하는 용어가 아닐까 싶다. 내 경우 칼국수는 더위에는 사양한다. 칼국수가 겨울철 대표 면 요리라면, 콩국수는 여름철 대표 면 요리다. 5월 말로 넘어가는 지점에 '콩국수 개시' 간판이 국숫집마다 걸린다. 들이는 공에 비해 쉽게 상하는 음식이라서 오래 두고 먹을 수 없으니 손님이 많이 찾는 여름철에만 반짝 장사를 하는 것 같다.

자주 가는 칼국수 집에서도 최근 콩국수를 시작했다. 칼국수도 푸짐하게 주는 가성비 맛집이지만 콩국수도 다르지 않다. "이 집 맛집이여"라고 시장 골목을 자주 지나치는 아저씨도 인정하는 시장의 명물이다. 칼국수에는 반죽을 밀대로 밀고 돌돌 말아서 주인장의 화려한 칼솜씨를 뽐내며 자로 잰 듯 썰어 넣지만, 콩국수에는 중면을 사용한다.

이 집의 콩국수에는 고소하게 볶아 빻은 콩가루가 들어간다. 콩가루의 고소함이 국물에 배어 아이들도 좋아하는 진한 맛을 즐길 수 있다. 취향에 따라 설탕이나 소금을 넣지만, 넣지 않아도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어 우리는 그냥 먹는 쪽을 선택한다. 그대로의 국물 맛도 충분해서 따로 짠맛과 단맛이 필요치 않다. 

지인이 수술을 위해 병원에 들어갔다. 입원하던 날, 똑 떨어진 입맛을 극복하고 기운을 불어넣을 마지막 식사로 우린 냉면과 콩국수를 두고 고민을 했다. 그리고 이내 결정했다. 환자의 상태를 고려하면 자극적인 냉면보다는 콩국수가 낫다고.  

고소하고 시원한 국물에 콩의 영양까지, 굳이 영양 성분을 따지지 않아도 영양 가득한 끼니에 의심을 품을 필요는 없다. 한 끼의 식사로 어느 음식보다 간편하면서도 입안 가득 채우는 식사. 바닥을 보일 때까지 국물을 남김없이 들이켜는 모습을 보면 뿌듯한 포만감으로 병을 이겨내고 퇴원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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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영화, 사람 사는 이야기를 씁니다. 50대 후반, 남은 시간을 고민하며 가치 있는 삶을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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