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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러브 액츄얼리'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두 아이의 엄마이자 영국 총리(휴 그랜트)의 누나 역으로 나오는 엠마 톰슨이 나랏일을 하는 동생과 자신을 비교하는 대목이다.

"동생이 총리여서 힘든 게 하나 있는데, 바로 내 인생에 대해 가혹하게 평가하게 된다는 거야. 내 동생은 오늘 나라를 위해 싸웠는데, 난 뭘 했게? 랍스터(바닷가재) 탈을 만들었어."

여기서 랍스터 탈은 그의 아이가 크리스마스 연극에 쓸 소품이었는데, 아이가 맡은 역할이 크리스마스 연극에 개연성이 전혀 없는 '랍스터'라는 점이 엠마 톰슨이 한 일을 더 '하찮게' 보이게끔 한다.
 
영화 '러브 액츄얼리' 중 한장면.
 영화 "러브 액츄얼리" 중 한장면.
ⓒ 스튜디오카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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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목이 기억에 남은 이유는, 아마 나도 타인의 위대함과 나의 하찮음을 비교하며 자괴감을 느끼는 경험이 종종 있어서일 것이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이 있지만, 명확하게 서열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정치'라는 직종에서 이런 비교는 더 쉬이 하게 된다. 이번에 국민의힘 대표로 선출된 이준석씨를 보면서도 처음엔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소위 '이준석 현상'을 거론하면서, '진보 쪽 청년들은 그동안 뭘 했나'라고 묻는 이들이 있었다. 물론 그들은 민주당이나 정의당 같은 원내정당을 염두에 뒀을 것이다. 덕분에 '청년정치'를 표방했던 미래당 당직자로서 나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과거 행적을 반추해봤는데, 결국은 이런 비교가 무의미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국민의힘과 미래당은 조직력, 인지도, 영향력 등의 상황이 애초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따릉이와 정치인   

이준석 대표가 따릉이를 타고 첫 출근을 한 게 언론에 대서특필 된 적이 있다. <조선일보>는 6월 13일 '고급차 대신 따릉이 타고... 당대표 이준석'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13일 따릉이로 국회의사당에 첫 출근하는 모습을 언론은 대서특필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13일 따릉이로 국회의사당에 첫 출근하는 모습을 언론은 대서특필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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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따릉러'로서 내 따릉이 라이프를 떠올려봤다. 나도 자전거를 타고 '줍깅'을 하러 가서 쓰레기를 주웠고, 동네 재래시장 상인분을 만나 일회용 봉투 대신 장바구니 사용을 넓히는 방법을 논의했다. 성평등 관점에서 지자체 정책을 모니터링하는 젠더 거버넌스 활동을 했고, 송파구 '녹색송파위원회'의 청년위원으로서 어떻게 송파구의 탄소배출 저감 방안에 대한 회의를 했다. 자치분권대학 온라인 강의도 들었다.

지난주에는 미래당 차원에서 정의당의 김희서 구로구의회 의원을 만났는데, '미래당 최지선, 따릉이 타고 정의당 김희서 만나'와 같은 헤드라인의 기사는 나지 않았다. 아마도 이런 지역활동들은 강대국에 맞서 싸우는 일보다는, 영화 속 랍스터 탈을 만드는 일에 더 가깝기 때문일 것이다. 
 
김희서 구로구의원을 만난 미래당 전략후보단
 김희서 구로구의원을 만난 미래당 전략후보단
ⓒ 최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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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릉이를 타고 쓰레기 '줍깅'에 나선 모습
 따릉이를 타고 쓰레기 "줍깅"에 나선 모습
ⓒ 최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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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과연 랍스터 탈을 만드는 일이 강대국에 맞서 싸우는 일보다 덜 중요할까? 요즘 미래당은 2022년 6월 지방선거, 그중에서도 기초의원 선거에 집중하고 있다. 3명의 '전략후보'를 뽑아 최저임금에 준하는 '정치기본소득'을 지급해서, 청년 정치인들이 생계 걱정 없이 지역활동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나도 이 전략후보 중의 한 사람이다. 국가보조금을 전혀 받지 않고 당비로만 운영되는 미래당의 재정 상황을 고려했을 때 이는 아주 파격적인 결정이었다. 이런 결정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사랑하는 아이가 연극에서 기죽지 않도록 정성스레 랍스터 탈을 만드는 것도 아주 중요한 작업이라는 공감대 덕분이지 않을까.

당신을 위해 일하는, 수많은 기초의회 '젊치인'

'뉴웨이즈'라는 비영리 스타트업이 있다. 내년 선거에서 기초의회에 40대 미만 '젊치인(젊은 정치인)'을 상당수 당선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최근 기초의회에서 새로운 관점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젊치인'들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가 인상적이다. 이 인터뷰를 보면, 내가 모르는 수많은 이들이 기초의회에서 나를 위해 랍스터 탈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걸 알 수 았다. 
 
뉴웨이즈 '젊치인' 인터뷰 화면 갈무리
 뉴웨이즈 "젊치인" 인터뷰 화면 갈무리
ⓒ 뉴웨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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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누군가 만들어준 랍스터 탈 덕을 본 적이 있는데, 바로 2016년 도입된 '서울시 청년수당'이다. '서울시 청년수당'은 서울시 거주 미취업 청년에게 6개월간 50만 원을 지원하는 정책이다. 큰 액수는 아니었지만, 심신이 모두 어려운 시기에 많은 도움이 됐다. 이는 '청년정책네트워크'라는 서울시 청년 거버넌스 기구에서 만들어낸 정책 성과다.

여의도로 대표되는 중앙정치도 중요하지만, 지역의 변화에도 관심을 기울여졌으면 한다.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지방자치법 전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됐다는 사실을 최근 온라인자치분권대학을 수강하며 알게 됐다. 이 법을 통해 내년부터 지방의원 의정활동을 지원할 '정책지원 전문인력제도'가 신설됐고, 지방의회 사무직원의 인사권이 의장에게 부여됐다. 그러나 아는 이는 많지 않을 것 같다(출처: '지방의회 관련 지방자치법 전부개정 주요 내용과 향후 과제', 국회입법조사처, 바로보기).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세심한 보살핌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또 살면서 내가 누군가를 보살펴 주기도 한다. 이렇게 서로를 위해 '탈'을 만들어 주고, 내가 받기도 하고. 이런 경험들이 차곡차곡 쌓이면 좀 더 나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 영화 '러브 액츄얼리'에서 국무총리로 나오는 휴 그랜트도, 어렸을 땐 누군가가 만들어 준 랍스터 탈을 쓰고 자라지 않았을까?

[관련 기사]
"한국은 젊치인 부족 국가"... 무슨 말이냐고요? http://omn.kr/1sy2b
너두? 나두! 야 너두 동네공약 만들 수 있어 http://omn.kr/1u8wz

덧붙이는 글 | 필자는 송파 지역 풀뿌리 활동가이며, 미래당 전략후보로도 활동 중입니다.


태그:#젊치인, #뉴웨이즈, #러브 액츄얼리, #이준석, #지방자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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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송파에서 시민 개개인이 주인이 되어 함께 잘사는 사회를 궁리하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 인스타그램@ditto.2020 페이스북@jeeseu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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