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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요양병원에 입원하신 재작년, 갑자기 혼자 지내게 된 엄마가 심심할 것 같아 읽으실만한 책을 사드렸습니다. 제가 청소년기 때만 해도 신문이나 책을 읽는 엄마를 더러 보곤 했습니다. 그래서 반가워하실 엄마가 상상되었고, 내심 기대했습니다. 우선 사드린 후 차차 다양한 책을 사드리면 되겠다, 나름의 목록까지 만들었고요. 그런데 눈을 반짝이며 책에 호기심을 보이던 엄마는 그리 오래지 않아 아예 책을 놓고 말았습니다.

그런 엄마를 보며 좀 더 젊으셨을 때 재미를 붙이고 읽을만한 책 한 권 사 드리지 못한 것이 후회됐습니다. 그랬다면 읽는 재미를 잊지 않았을 텐데, 그래서 어쩌면 책과 함께 노년을 보내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환갑이 되던 해, 한자 공부를 시작하셨는데, 그 무렵 공부 이야기를 할 때면 전화인데도 설렘이 느껴질 정도로 공부에 욕심내시던 게 떠오르기도 했고요.  

그동안 가끔 친구나 지인들에게 책을 선물하곤 했습니다. 그럼에도 엄마에겐 책 한 권 선물할 생각을 못했다는 것, 심지어 아버지 책을 사면서도 그 곁의 엄마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한 것에 '너무 무심했구나' 싶었습니다. 중요한 것을 잊어버려 놓쳤다는 그런 아찔함도 느껴졌고요. 그런데 계속 생각할수록, 제가 노년의 삶과 노후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이 부족했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았습니다. 

솔직히 엄마의 무료한 시간을 염려하는 게 한편으론 어쭙잖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누구에게든 삶은 스스로 살아내야 하는 숙제 같은 것이니까요. 내게는 무료하게만 보이지만 엄마만의 무언가가 있을 겁니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뭔가를 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시도하는 이유는 부모님이 문화와는 거리가 먼 그런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훨씬 풍성한 혜택 속에 사는 우리가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 싶기도 하고요. 접하기라도 해야 좋고 나쁨을 알 수 있을 테니까요. 하필 책을 선택한 것은 책만큼 노년에 친구 하기 좋은 것이 없겠다는 믿음이 갈수록 더해지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제가 자랄 때 종종 신문이나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던 엄마라 이제라도 읽기 시작하면 좋겠다 싶었던 겁니다. 

"공부, 인생의 고달픔과 죽음을 극복하는 힘"
 
"저는 스스로를 끝없이 단련하며 손자 세대와도 대화를 할 수 있는 할아버지가 되는 것이 평생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어렸을 때…."가 아니라 "니들은 그러니?" 하면서 손자 세대와 의식의 화합을 이룰 수 있는 할아버지가 되는 것이지요. 애들을 감동시킬 만큼 스스로 노력해야 된다고 봐요. 시간이 없어 글을 못 읽어. 시력이 나빠 글을 못 읽어, 하는 것은 무식과 야만을 자처하는 일입니다. 요즘 좋은 안경이 얼마나 많습니까? 시간을 왜 내지 않습니까?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려면 밑의 밑 세대와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인생은 두 개의 돌덩이를 바꿔 놓아 가며 건너는 징검다리다. 외롭고 고달프지 않은 삶이란 없다" 그래서 도를 닦고, 마음을 닦는 겁니다. 사람들은 덜 외롭고, 덜 고달프기 위해 도를 닦는 셈인데, 저는 이것이 평생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의 고달픔과 죽음의 공포를 극복할 수 있게 하는 힘, 그것이 평생교육이지요. 평생 교육의 마지막은 결국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 자아를 만드는 일 아닙니까?...." - <공부 열전> 78~79쪽.

노후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 거듭될수록 더욱 확고해지는 것은 '노년의 가장 좋은 친구는 자연(과 함께 할 수 있는 것들), 그리고 책'이라는 것입니다. 아마도 상대적으로 부족하고 아쉬울 수밖에 없는 노년의 삶일 텐데요. 이런 노년에 큰돈 들이지 않고 즐길 수 있는 데다가 뭣보다 날씨나 시간 제약 없으니 편하고 좋을 것 같아서입니다. 책이 옛날처럼 귀하지도 않고, 자칫 흘려보내고 마는 시간에 책을 읽어 얻게 되는 건 그야말로 끝이 없죠.

치매 예방에도 좋다는 것은 이미 많이 알려진 사실이고요. 그러니 다시 읽을 때마다 새로운 사실(부분)들이 보이거나, 여전한 감동을 주는 책 몇 권 있다면 노후의 친구로 좋겠다 싶습니다. 여하간, 상대적으로 늘어날 노후의 시간을 그나마 덜 무료하게 보낼 수 있는 가장 좋은 친구가 책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해왔습니다. 
 
<공부 열전> 책표지.
 <공부 열전> 책표지.
ⓒ 창비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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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학습'을 주제로 사회 여러 분야 11인을 인터뷰한 책 <공부 열전>(창비교육)의 조정래 작가 편을 읽는 순간 뭔가 쿵! 짜릿했습니다. 노후에 더욱 필요한 책 읽기에 대해 정곡을 꿰뚫듯 말하고 있어서입니다. 

과연 죽음의 공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또한 무엇으로 극복할 수 있을까요? 그래도 책이라면 어느 정도는 도움 될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고 자신의 삶 어느 정도는 스스로 마무리하는 데 좋을 것 같습니다.

조정래 작가님처럼 손자 세대와의 소통을 위해서도 꼭 필요할 것 같고요. 여하간 이 부분을 읽으며 그간 막연하게 지향해오던 노후의 책 읽기에 대해 명확하게 정리하게 됐습니다.

'공부'라는 축복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
 
저 앞에 있는 느티나무가 내 나무거든요. 나무들은 정면이 없어요. 우리는 늘 정면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살잖아요? 남과 북으로 갈라진 역사 속에서 살면서 늘 하나의 답만을 강요당하며 살았지요. 보수와 진보가 극단적으로 갈라지고 경상도와 전라도로 갈라진 것도 어떻게 보면 어렸을 때부터 한쪽만을 바라봐야 하는 일상을 강요받으며 살았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나무는 바라보는 쪽이 정면이거든요. 어디서 봐도 다 정면이에요. 답이 하나인 세상은 없습니다. 학교에서는 또 얼마나 하나의 답을 선택하도록 강요합니까. 나무는 경계가 없어요. 이건 받아들이고 저건 안 받아들이는 게 아니에요. 자기에게 오는 것들은 모두 다 받아들이거든요. 그래서 자기를 완성해요. - <공부 열전> 24~25쪽.
 
외에도 <공부 열전>은 ▲"공부란 사람이 되어 가는 길입니다. 공부가 사람을 꽃이게 합니다"라고 평생 공부를 정의하는 김용택 시인, ▲"여행이야말로 가장 멋진 학습입니다"라며 모두 함께 사는 여행을 통해 끊임없이 배운다는 나효우 착한여행 대표, ▲80대 중반의 나이로 청년 같은 열정의 연기 인생을 사는 배우 이순재, ▲ 사회회에 공헌하는 삶을 살아가는 1세대 프로파일러 이수정 교수 등 사회 각 분야 11인의 평생 공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책 좋아하는 것을 알기 때문인지 "(책을) 읽긴 읽어야 하는데…"와 같은 말을 참 많이 들어왔습니다. 아마도 책 한 권 읽지 못하는 것을 스스로 아쉬워하며 변명하는 것일 텐데요. 안타까운 것은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책 한 권 읽지 못하고 산다는 것입니다. "일 놓게 되면 책이나 실컷 읽겠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글쎄요? 시간이 주어진다고 그동안 읽지 못하던 책이 쉽게 읽힐까요?

아쉽게도 우리의 뇌는 익숙한 것을 되풀이하려는 속성도 있다고 하죠. 그래서 좋아하는 것을 계속하려고(습관) 하고, 하지 못하면 불안하기도(중독) 하고요. 그래서, 반대로 아무리 쉬워도 안 하던 짓을 하려고 하면 힘들 수밖에 없는 것이라죠. 기대수명이 늘어나면서 최근 평생 학습에 대한 열풍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지만, 나이 들어서 뭔가를 배우거나 새로운 것을 하기란 더더욱 힘들다고 하고요. '노화로 인해 판단력이 떨어지기 때문(<부모님의 집 정리>)'입니다.

그러니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배워야" 합니다. '공부'라는, 가치 있고 대단한 축복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책 <공부 열전>을 건강하고 멋진 노후를 위해, 젊은 50대에 읽으면 좋겠다 싶은 '50플러스, 디어 마이 북' 목록 속에 넣는 이유입니다.

공부 열전 - 인생 고수들이 들려주는 지혜의 말들

김영철 (엮은이), 서울시평생교육진흥원 (기획), 창비교육(2019)


태그:#공부 열전, #50플러스,디어 마이 북, #평생학습, #노년의 삶, #백세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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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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