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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북지역 주택가.
 서울 강북지역 주택가.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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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여름, 지인들이 모여 산 지 4년 가까이 되는 셰어하우스에 입주하게 됐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을 기반으로 공동체를 만들기 전에 나부터 공동체 생활에 대해 경험해보기 위해서였다.

입주를 하자마자 이사 논의가 시작됐다. 다주택자였던 집주인이 종합부동산세 인상 때문에 집을 내놓는다는 것이었다. 7.10 부동산 대책에 '다주택자 대상 종합부동산세 중과세율 인상' 정책의 영향이었다. 다행히도 새로운 집주인이 현 시세에 맞게 월세를 올리는 조건으로 계약을 연장해 주기로 했다. 하지만 한 달 후, 돌연 집주인이 들어오겠다며 두 달 안에 집을 비워달라고 했다. 부동산 전세난이었던 시기에 갑자기 다 같이 내쫓기게 됐다.

천국과 지옥
 
좀 이상했다. 지어진 지 30년도 넘어서 장마 때만 되면 거실과 베란다 천장에 누수가 있고, 주차도 불편한 집을 리모델링까지 해서 들어오겠다니. 새 집주인은 갑자기 왜 변심을 한 걸까? 혹시나 해서 부동산 정책을 찾아봤다.

집주인의 변심에는 이유가 있었다. 이번에는 6.17 부동산 대책이었다. 수도권 투기과열지구 재건축아파트에서는 조합원 분양신청 시까지 도합 2년 이상 거주한 경우에 한해 분양 신청을 허용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시간 차로 발표됐던 부동산 정책들에 천국과 지옥을 오고 가며 이사를 했다.

'이래서 전세난으로 난리가 났구나.'

6.17 부동산 대책 이후 재건축 단지 풍경은 부동산 집값을 잡겠다는 정책 의도와는 정반대로 흘러갔다. 재건축 아파트 단지들은 실소유자들의 실거주를 위한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이라는 기사들이 나왔다. 40년 이상 된 노후화된 아파트에 살려고 하니 리모델링을 안 하고는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반면 세입자들은 주변 시세보다 싼 재건축 아파트 단지와 같은 조건으로 갈 수 있는 아파트 매물이 없다 보니 주택으로 수요가 몰리면서 다세대·다가구 전셋값도 덩달아 뛰게 됐다. 또 '실거주 2년' 요건을 피하기 위해 재건축 조합 설립 진행이 더디었던 곳들은 2020년 안에 조합설립을 목표로 가속도가 붙었다. 그 결과로 코로나 시기에도 불구하고 2020년 말에 7곳이 조합 설립 인가를 받았다.  
    
며칠 전 은마아파트 28개동 지하에서 2300톤가량의 쓰레기가 나왔다. 땅 밑에 있던 쓰레기가 발굴된 것이 아니라 40여 년간 입주민들이 버리고 간 생활폐기물들이 지하실에서 방치돼 있다가 나온 것이다. 썩은 매트리스, 골프가방, 가스레인지부터 동물들의 사체까지. 여름마다 악취가 심해지고 벌레가 늘어나자 올해 동 대표 과반 이상이 동의해 폐기물 처리 작업이 시작됐다고 한다.
 
은마아파트 지하에서 나온 쓰레기들.
 은마아파트 지하에서 나온 쓰레기들.
ⓒ mbc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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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0톤이라는 쓰레기 산이 만들어지기 전에 진작 치울 수 있었을 텐데, '실거주 2년'을 조건으로 하는 부동산 대책이 나오자 진짜 집주인들이 살기 시작하고, 쓰레기 산이 지상으로 나왔다. 6.17 부동산 대책이 없었다면 은마아파트 지하의 2300톤 쓰레기는 아파트 철거 공사를 할 때 건축폐기물과 함께 조용히 치워졌을지도 모른다.

20억 원짜리 내 집 지하실에 쓰레기가 쌓여 있고, 온수를 틀 때 놋물이 나온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하루라도 빨리 집을 보수하고 쾌적하게 살 것이다. 내 집이라면 쓰레기를 쌓아두는 일 자체가 없을 것이다.

이 장면은 우리 사회에서 집의 성격을 분명히 보여줬다. 사람들이 사는 공간이 아니라 쓰레기가 쌓여 있어도 상관없는 투자재인 것이다. 은마아파트의 자가 실거주 비율은 2020년 기준 31%다. 집주인에게는 집값이 오르기만 하면 되는 투자재이고, 세입자에게는 악취가 나도 떠날 날까지 참고 버티는 곳이 된 은마아파트는 누구의 집일까라는 생각이 든다.

지역의 숨을 담는 재건축
 
안전진단 통과한 창동주공 17단지 걸려 있는 시공사 현수막
 안전진단 통과한 창동주공 17단지 걸려 있는 시공사 현수막
ⓒ 김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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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축 바람은 서울 도봉구에도 불고 있다. 창동과 방학동 내 주요 아파트 단지들이 최근 재건축 가능 연한인 30년을 넘으면서 대단지 아파트들이 예비안전진단에 하나둘 통과되고 있다. 도봉구는 서울시에서 자가 실거주 비율이 60.2%로 가장 높다(서울시, 2017 주거실태조사).

재건축의 핑크빛 미래만 본다면 설레겠지만 재건축 사업의 평균 소요 기간은 정비구역 지정부터 준공까지 평균 9.7년이다. 현재 재건축 진행 속도가 가장 빠른 단지가 예비안전진단을 통과했다고 하더라도 재건축 정비구역 지정 승인을 받기까지,  빨라도 2년 가까이가 소요된다. 10년이 넘게 걸리는, 생각보다 긴 사업이다. 긴 시간동안 돈과 높이만 좇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숨도 같이 담기길 바란다. 그렇게 새로운 스카이라인으로 도봉산과 함께 그려졌으면 한다.

참고로 재건축 단지 조합원이 분양권을 받으려면 2년간 실거주해야 하는 규제는 1년 1개월 만에 없던 일이 됐다. 지난 12일 열린 국토교통위원회는 1법안심사소위를 열어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 개정안' 중 재건축 2년 실거주 조항을 삭제하기로 하면서 백지화 됐다. 지난 1년간의 스트레스와 분노는 국민들의 몫이 됐다. 내년에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가 있다. 쏟아져 나올 부동산 공약들의 유통기한은 얼마가 될는지.

덧붙이는 글 | 기사를 쓴 김소희는 미래당 전 공동대표이며 2018년 도봉구 가선거구 (창1,4,5동) 구의원으로 출마했습니다. 현재 도봉구에서 지역활동을 하면서 작은 정치의 변화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태그:#은마아파트, #재건축, #김소희 , #부동산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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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에서 시작하고, 내 주변부터 변화하는 따뜻한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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